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80
280화
선우보를 제압한 장료가 황제가 내린 칙서를 보즐에게 건네는 가운데, 염행은 사방을 경계했다. 혹 빈틈을 노리고 주변의 병사들이 달려들지 몰라서였다.
선우보는 장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워낙 강한 힘으로 억누르는 터라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내 잠시 풀어 드릴 테니, 쓸데없는 수작은 꿈꾸지도 마시오. 알겠소?”
그 말과 함께 장료가 슬쩍 풀어주자, 선우보는 여전히 분노한 표정으로 칼을 움켜쥐려 했다.
그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본 장료는 이내 선우보의 손을 내려찍고는 더 이상 저항하지 말라는 듯 자리에 얌전히 앉혀 주었다.
선우보는 고통이 느껴지는 손을 부여잡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괜한 짓을 해 봐야 의미가 없음을 깨닫고는 곧 보즐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크흠, 조정의 명령이라 하니, 받아 보아야겠지. 아니 그런가?”
마치 협박 때문에 마지못해 따른다는 기색이 역력히 묻어 나오는 행동이었다. 그에 병사들이 눈치를 살피며 뭔가 행동에 나서려 하자, 선우보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폐하께서 내린 칙서를 받고 있음이다. 순 승상께서 어렵게 폐하의 옥음을 받아 이렇게 칙서를 내렸는데, 누가 감히 나서려 하느냐!”
마치 호통치듯 당당한 태도를 보이려 하였으나, 그 말속에는 황제의 뜻이 아닌, 순욱의 전횡을 꼬집는 비아냥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선우보의 소심한 항의에 기분이 상한 이는 없었다. 오히려 장료는 슬쩍 웃음을 띠기도 하였다.
괜히 무안해진 선우보는 극진한 예를 드러내듯 머리를 조아렸고, 이내 보즐이 칙서를 펼쳐 들고 낭독을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보즐은 큰 충격을 받은 듯 두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예상한 바와 전혀 다른 내용이 칙서에 적혀 있는 탓이었다.
아울러 장료나 조운은 이미 칙서의 내용을 알고 있었기에 이처럼 강압적인 행동에 나섰으리라 이해가 되었다.
“짐은 여양 태수의 공을 높게 사 건충장군의 직을 내리며 짐의 곁에서 호위토록 하겠다. 또한 유주를 안정시킨 공이 지대하므로 무안정후로 삼도록 하겠다.”
선우보를 정후로 삼되 황제가 거하는 허도로 부른 것이었다.
선우보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보즐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보즐이라 해서 별다른 방도가 있겠는가. 그는 그저 칙서를 읽은 죄밖에 없는데 말이다.
결국,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숙이자, 선우보는 참지 못하고 분통을 터트렸다.
“정후(亭侯)는 무슨 얼어 죽을 정후더냐? 분명 수춘후는 내게 유주를 책임질 수 있게 해 주겠다 약조하였거늘, 이런 칙서라니! 지금 나를 놀리는 것인가! 전날, 패공께서도 나를 믿고 여양을 맡기셨는데, 고작 정후의 자리를 가지고 나를 달래려 해?”
선우보는 자신이 예상한 것과 달리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듯하자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정후 자리 역시 유주가 아닌 기주로 삼았다는 것은, 자신에게서 권력을 빼겠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아무리 그가 분노를 한다고 해도 명령을 내린 이는 황제라는 점이었다. 비록 순욱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갔을 테지만, 옥새가 찍힌 칙서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선우보가 보즐의 입을 막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주변에 있던 조운이 그 앞을 가로막으며 냉정하게 말을 꺼냈다.
“아직 칙서의 낭독이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리 무례한 태도라니, 진정 역심을 가진 것이던가!”
역심이라는 말에 순우보는 어쩔 수 없이 다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처사라 해도 칙서에 이의를 제기했다가는 꼼짝없이 역모죄를 덮어쓰게 될 터이니 말이다.
그런 와중에 보즐의 입에서 선우은과 전예에 관한 언급이 튀어나왔다. 그 순간, 두 사람은 선우보 옆으로 튀어나오더니, 납작 엎드려 예를 취하였다.
“현령 선우은을 여양 태수로, 징사 전예를 도위로 삼는다.”
이윽고 칙령의 낭독이 모두 끝나자, 전예와 선우은은 감읍해하며 대례를 취하였다. 졸지에 모든 권력을 잃어버리게 된 선우보는 반발하려 하였으나, 그전에 전예가 먼저 나서 병사들에게 명했다.
“정후께서 지금 심신이 좋지 않을 터이니, 안으로 모시거라.”
부곡들은 선우보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 뭐래도 그들의 주인은 선우보이나, 만약 전예의 명에 따르지 않는다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방금 막 태수 자리에 오른 선우은도 전예의 뒤에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면, 이미 대세는 결정 났다는 촉이 느껴진 탓이었다.
솔직히 장료나 조운이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자신들이 나선다 해도 별반 힘도 쓰지 못한 채 제압될 것이 분명하기도 했다.
결국 지금은 뒤로 물러날 때라고 계산을 마친 그들은 빠르게 선우보를 데리고 사라졌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본 전예는 장료와 조운을 돌아보며 예를 표하였다.
“이런 불편한 상황을 만들어 사죄를 표하고자 합니다.”
전예의 정중한 사죄 표명에 장료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사죄는 무슨 사죄인가. 이러한 일이 생기리라는 예측은 자네도 이미 알지 않았는가. 조 장군뿐 아니라 주군께서도 자네에 대하여 칭찬 일색이었으니, 이러한 작은 일로 책임을 물을 생각은 추호도 없네. 단지 걱정되는 것은, 모멸감을 느낀 선우보가 추후 어떤 마음을 품을지 모른다는 것이네.”
장료의 걱정은 당연하였다. 어차피 승태가 원하는 바는 안정적인 보급로 구축과 노룡계곡에 대해 잘 아는 인물로 향도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험하기로 유명한 길인데 승태나 저수의 말만 듣고 그곳을 지나가는 것은 자칫 자멸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예는 전혀 문제될 것 없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대답했고, 장료는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치 광인처럼 달려들던 선우보인데, 아무 일도 없을 거라 하니 쉽게 믿기가 어려운 탓이었다.
그때, 옆에 있던 선우은이 끼어들며 말했다.
“전 도위의 말이 맞습니다. 수춘후께서 걱정할 일은 그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을 터이니, 걱정하지 마소서.”
장료는 두 사람의 태도를 보며 자신이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물론 이들이 자신을 속여 뒤를 노릴 수도 있겠지만, 승태가 이끄는 군세가 이미 역현 근방에 주둔 중이니 그랬다가는 파멸을 면치 못할 것이다.
“반드시 그래야 할 것이네. 나의 주군께서 지금 역현에 계시다는 것은 자네들도 알고 있을 테니 말이야.”
장료의 협박에 전예는 그저 고개를 숙여 보일 뿐이었다.
“그럼 나는 먼저 나가 보지.”
장료가 자리를 뜨자, 조운은 전예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을 건넸다.
“후일 갑주를 풀고 다시 보도록 하세. 지금은 이것저것 처리하기에 바쁠 것이니 말이야.”
전예가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려 하자, 조운이 황급히 말리며 말했다.
“우리 사이에 이러한 예가 필요하겠는가. 주군께서 자네를 중용하고자 하니, 분명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될 것이네. 그때가 되면 오히려 내가 그대에게 고개를 숙여야 할지도 모르지. 만약 그렇게 되면, 지금을 생각해 주게. 하하하하!”
살갑게 말을 건네는 조운의 모습에 전예는 조금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전과 달리 꽤 부드러워지셨습니다.”
“그러한가? 아무래도 오랫동안 주군 곁에 있다 보니 닮아 가는 듯싶네.”
“그러시군요. 그럼 급한 일을 처리한 후에 바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래. 지금은 공석이라 그렇다 쳐도 나중에 사사로이 만날 때는 좀 더 편하게 대해 주게나.”
전예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고, 그 말을 끝으로 조운은 장료를 따라 자리를 떠났다.
많은 이들이 떠나고 전예와 단둘이 남게 된 선우은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원만하게 일이 마무리된 게 아닌가 싶네. 비록 종형께서 약간 난동을 부리긴 하였으나, 그간 해 온 행동에 비춰 보면 천만다행이지. 솔직히 죄를 물어 목을 쳐도 할 말이 없을 정도 아닌가. 그런데 큰일을 치르지도 않고 오히려 제후의 자리에 앉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하늘이 도우심일세. 뭐, 당장은 유주의 권세를 잃었고 생각하시겠지만, 시간이 지나 보면 종형께서도 그게 아님을 잘 알게 되실 것이네.”
전예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선우은을 바라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선우은의 말에 동의하는 행동 같지만, 그 깊은 눈동자는 무언가 또 다른 생각을 하는 듯하였다.
그런 전예를 향하여 선우은이 물었다.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도 있는 것인가?”
“본시 이런 혼잡스런 계책은 내부를 깨끗하게 만드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선우은은 어려운 말을 꺼내려는 전예를 바라보며 말했다.
“끙, 그런 말은 형님에게나 하게. 자네도 이제 도위에 올랐으니, 조정에서 바라는 대로 군을 다스리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말씀 마십시오. 무릇 태수란 이런 것들을 모두 알아야 하는 법입니다. 이제 태수 자리에 오르셨으니, 더 이상 귀찮다고 피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네의 친우인 조 장군에게도 말하지 그랬는가.”
그 말에 전예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가 저의 친우인 것은 맞으나, 아직 확실하게 속을 털어놓기는 어렵습니다.”
“참으로 복잡하기 그지없군. 내 원상의 일을 무마하기 위해 그런 줄 알았는데, 자네는 대체 몇 수 앞을 내다보는지 모르겠어.”
“지금은 정후 자리에 오르신 태수(선우보)께서 제게 이후 평안히 살길을 물으셨고, 저는 물을 흐려 알아볼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번잡스러운 일을 만든 게 아닌가. 삼군오환의 위협보다는 이제 조정의 힘이 더 강해졌으니, 서 있는 곳을 달리해야 한다고 말이야.”
“하지만 단순히 오환이냐, 조정이냐를 떠나 조정 내에서도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신중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 말에 선우은은 꽤난 놀란 눈치였다. 언제나 확고부동하게 답을 제시하던 것과 달리 전예가 조금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우리를 노리는 이들에게 틈을 보여서는 안 되며, 눈을 가려야 할 것입니다. 마치 물고기가 물을 흐려 자신을 숨기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하여 순 승상뿐 아니라 위공이나 수춘후도 우리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해야겠지요. 또한 답돈에게 붙은 자들은 불합리한 처사에 정후(선우보)께서 불만을 가질 것이라 여겨 움직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긴 조금 전에 종형께서 보인 행동이 알려진다면, 복잡한 정국이 꾸려지겠지. 하하하, 어쩌면 우리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