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84
284화
염행, 자는 언명(彥明).
오호대장군 중 한 사람인 마초를 거의 죽일 뻔했다는 일화로 인해 수많은 이들 사이에서 이름이 오르내린 인물이다.
물론 그 일에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만큼 진위 여부에 대해 논란이 많은 것도 사실이나, 무예가 뛰어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게다가 대국을 바라보는 머리 또한 나쁘지 않아, 한수에게 조조의 옆에 서라는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물론 한수는 그 말을 무시했지만.
여하튼 그런 염행이 병사들 사이에 뛰어들었으니, 그야말로 양 떼 사이로 늑대 한 마리가 들이닥친 격이었다.
양들이 뭉쳐서 상대해도 말이 안 될 것인데, 병사들은 종횡무진 창을 휘두르는 염행의 무위에 오히려 혼비백산하며 주변으로 흩어졌다.
그때,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선비족의 장수가 용기를 내 달려들었다. 비록 염행의 무위가 뛰어나 보이긴 하나, 적은 혼자이고 자신들은 다수이니 힘을 합치면 쓰러트릴 수 있을 거라 여긴 것이다.
또한 이미 병사 기십을 베어 내는 동안 힘이 빠졌을 테니, 잘만 하면 적의 장수를 잡았다는 명예를 얻을 수도 있을 터였다.
‘저놈을 잡으면 나를 버린 가문으로 당당히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헛된 망상을 품는 머릿속으로 혹시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떠올랐으나,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만약 상황이 불리해지면 그저 몸을 빼 도망가면 그만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선비족이 아닌, 강족이나 저족의 사람이었다면, 염행이라는 말을 듣는 즉시 바로 꽁무니를 뺏을 테지만 말이다.
“네 이놈! 나 모용의 숙치가 너를 상대하겠노라!”
염행은 겁도 없이 자신에게 달려드는 이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간 승태의 휘하 장수들과 무예를 겨루며 안목이 한껏 높아져 있는데, 어디서 듣도 보도 못 한 장수가 자신을 도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실력이 있다면 이해라도 하겠는데,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덤벼드는 이는 승태 휘하의 일반 상비병만도 못 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도 도망치지 않고 달려드는 용기만은 칭찬해 줄 만하구나.”
염행이 창을 다잡자 주변의 병사들은 우르르 뒤로 물러났다. 그들의 얼굴에는 모용숙치가 염행의 목을 따주길 바라는 염원이 가득 드러나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염행은 어이가 없어 잠시 주춤거렸다. 모용숙치가 어떤 인물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설마 자신이 저깟 애송이에게 당할 거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받아들이기 힘든 탓이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일말의 기대를 품고 다시금 달려오는 모용숙치를 바라보았다.
한편, 염행이 주춤거리는 모습을 겁에 질려 당황한 것이라 여긴 모용숙치는 더욱 의기양양해진 태도로 창을 다잡았다.
“이 모용숙치가 악적 놈들을 쓰러트리고 이 여양에 정의를 바로세우리라!”
하지만 염행은 침을 튕겨 가며 달려오는 모용숙치의 후덕한 얼굴에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휴, 기마조차 제대로 타지 못하는 놈이 무슨 자신감으로 내게 덤벼드는 것인지 모르겠군.”
소위 북방의 기마민족이라는 인간이 말조차 다루지 못하니, 자신이 손을 쓰는 것조차 수치스러울 지경이었다.
“빨리 끝내는 게 낫겠군. 괜한 희망을 심어 주었다가는 아까운 목숨만 더 날아갈 테니.”
염행이 고삐를 잡아채자, 그 뜻을 알아들었다는 듯 말은 마치 폭발하듯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렇게 단숨에 거리를 좁힌 염행은 창을 짧게 잡으며 모용숙치를 노려보았다.
그 살벌한 위세에 당황한 모용숙치는 다급하게 창을 휘둘렀으나, 그런 단순한 공격에 맞을 염행이 아니었다.
푸욱!
가볍게 몸을 젖혀 공격을 피해 낸 염행이 훤히 드러난 모용숙치의 목으로 창을 내질렀고, 순간 붉은 피 분수가 허공을 수놓았다.
염행은 피가 묻는 것도 수치라는 듯 얼른 모용숙치를 털어 내고는 멍하니 대결을 지켜보던 병사들을 향하여 창을 돌렸다.
“자, 내게 달려들 놈은 더 없느냐?”
그와 함께 일방적인 학살이 시작되었다.
* * *
여양에 일어난 반란은 많은 상처를 남겼다. 현청과 가옥에 불이 붙으며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패퇴한 병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민가를 약탈하며 이리저리 숨어들었다.
물론 그래 봐야 도망칠 길은 없기에 결국 하나 남김없이 모조리 잡히거나 목이 달아났지만.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된 후, 전예는 사로잡힌 이들 앞에 섰다. 그들 대다수는 그간 권세를 부려 오던 유지였다. 그래서인지 반란을 일으킨 죄인임에도 꽤나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몇몇 이들은 자신들이 죽을 일은 없을 거라 여기는 것인지, 되도 않는 요구를 하며 병사들을 윽박지르기까지 했다.
물론 그들의 심정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마치 온실 속의 화초처럼 지금껏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은 없었을 테니 말이다.
전예는 이들을 남겨 둔 채로는 이족들을 상대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자칫 온정을 베풀어 살려 주었다가는 언제 또 뒤통수를 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처신을 내리는 인물이 바로 공손찬이고, 전예는 그의 휘하에서 이적(夷狄, 동이와 북적)들을 상대하는 방법을 익혔다.
약한 이들에게는 무자비하게 약탈을 자행하고, 강한 자 앞에서는 굴종하며 고개를 숙이는 습성.
공손찬은 그러한 특성을 잘 알고 있기에 이가혹하리만큼 찍어 누르며 제압하였다.
그러자 공손찬에게 기대려는 이들이 나타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는 점점 늘어 갔다. 공손찬은 완전한 복속을 청한 그들에게 관직을 내주며 아량을 베풀었다.
물론 그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일부 유자(儒子)와 지방 호족들은 야만인과 붙어먹는다며 공손찬을 비난했고, 그 결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다.
이 일은 결국 공손찬에게 족쇄가 되어 더 이상 세력을 늘리는 것에 제동을 걸었고, 중앙 정계에서도 경계심을 품게 만들었다.
전예는 그 일을 반면교사 삼아 조심하되, 공손찬의 방식을 따르기로 했다.
“유 유주의 방식은 지금 이 순간 끝이다.”
유화정책은 본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인물이 있을 때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유우는 전혀 그런 인물이 아니었고, 그래서 결국 공손찬에게 잔인하게 목숨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유우의 복수를 천명한 이들이 원소를 끌어들여 공손찬을 몰아내자, 마치 유화정책이 옳은 방식이었다는 착각을 심어 주었다.
공손찬을 쓰러트린 원소는 이민족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원희와 같은 우유부단한 인물을 유주자사로 내세웠고, 덕분에 유주는 이족들의 세상이 되었다.
“결국 유 유주가 살아 있었다 해도 이족들에게 휘둘리기만 했을 테지. 유 유주의 복수라며 나선 이들에게는 그저 권력을 얻기 위한 명분일 뿐이었으니 말이야.”
전예는 차가운 웃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니 이제 유우의 유주가 아닌, 공손찬의 유주로 돌아가야겠지.”
선우은은 전예의 냉정한 태도에 껄끄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진정 이들을 모조리 처리할 것인가? 그랬다가는 이후 유주를 다스리는 데 많은 어려움이 생길 것 같은데 말이야.”
하지만 전예는 전혀 문제될 것 없다는 태도였다.
“잠시 어려움을 겪더라도 이런 족속들을 단번에 쳐 내지 못한다면, 결국 바뀌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반발이 적지 않을 텐데……. 지금은 우리만 생각할 때가 아니지 않은가. 수춘후께서 이끄는 부대의 뒤를 받쳐야 할 텐데, 중요한 지위에 있던 이들을 모두 죽인다면,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전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기에 지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침 반역이라는 좋은 명분이 있으니, 저들도 감히 반발하지 못할 테고, 설령 그런 이가 있다 하더라도 조정과 수춘후의 권위로 찍어 누를 수 있을 테니.”
“하나 분란이 커지면 수춘후나 조정에서 문제로 삼지 않겠는가? 만약 이 일로 인해 원정에 문제가 생긴다면, 분명 책임을 우리에게 돌릴 것이네. 난 결코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네.”
“그럼 어쩌실 생각입니까?”
“저들도 우리가 따뜻한 모습을 보이며 용서해 준다면, 분명 고개를 숙이고 진심으로 우리를 따를 것이네.”
여전히 결단을 내리지 못해 주저하는 선우은의 태도에 전예는 단호한 몸짓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따뜻함의 대가가 지금과 같이 뻔뻔한 모습입니다. 만약 또다시 아량을 베풀어 용서를 해 준다면, 분명 더욱 기세등등해져 후안무치한 태도를 보일 것입니다. 명분과 강한 힘을 가진 지금, 잘못된 관계를 끊어 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유주를 하나로 만들어 북방 호인들을 막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우은의 입장에서 전예의 말에 동의는 하지만, 얼른 따르겠다고 말하는 것은 어려웠다. 자신 또한 그런 호족 가문 중 하나가 아닌가.
만약 자신의 선택으로 가문에 손해를 끼친다면, 집안에서 쫓겨 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태수, 이제 둘 중 하나입니다. 저들에게 계속 휘둘릴 것인지, 아니면 강하게 찍어 눌러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갈지 말입니다.”
결국 판단을 내리지 못한 선우은은 눈을 감으며 말했다.
“나는 잘 모르겠네. 하니 자네가 책임을 지고 뜻대로 해 보시게.”
마지못한 듯 허락하는 선우은의 말에 전예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취하고 물러났다.
* * *
여양에서 발생한 반란이 수습되어 갈 무렵, 장료와 조운은 지리에 밝은 이들을 앞세워 노룡계곡을 지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백랑산 근처에 도착하여 잠시 숨을 돌리며 휴식을 취했다.
“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길로는 병력을 많이 데려오기 어려울 것 같은데… 고민이로군.”
조운도 장료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보즐 또한 두 사람과 같은 마음인 듯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기마가 지나가기에는 길이 워낙 좁으니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혹여나 답돈이 우리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기습을 하기라도 하면…….”
“단번에 끝장날 수도 있겠지.”
장료의 말에 보즐은 눈을 질끈 감았다. 만약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절벽 위에서 당장 바위라도 떨어진다면, 그다음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빤했다.
그러자 온갖 후회스런 감정들이 얼굴에 드러났으나,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장료가 그의 머리를 잡고 몸을 감추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게…….”
“쉿!”
보즐은 놀란 마음에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장료의 다급한 경고에 냉큼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보즐의 눈에 꽤 많은 병력들이 웃고 떠들며 이동하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보즐은 슬며시 고개를 돌려 조운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부터 조운이 오롯이 한 명만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순간, 뭔가를 느낀 장료가 나직하게 물었다.
“답돈인가?”
조운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장료는 허리춤에 걸어 둔 투구를 쓰며 말했다.
“잘됐군. 모조리 쓸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