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93
293화
관우의 기마병들은 멀리 보이는 이통의 부대를 보고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원래는 첨병을 보내 적아(敵我)를 구분해야 했지만, 그러한 일을 일절 하지 않은 것이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관우는 적진의 깊숙이 들어와 있는 상황이고, 보급로도 정해져 있으니 저들이 보급 부대일 가능성도 없었다.
그러니 눈앞에 나타난 이들이 백기를 들지 않은 이상, 적이라고 판단하는 게 당연했다.
상대가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는 것을 본 이통은 빠르게 결정을 내려야 했다. 한번 싸워 볼 것인지, 아니면 피할 것인지 말이다.
“전군, 퇴각한다. 우선 적이 이곳까지 왔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니 물러난다!”
이통은 관우의 무서움을 알기에 주저 없이 퇴각을 선택했다. 게다가 관우가 움직였다는 것은 유비의 본군도 출진했다는 뜻이리라.
그렇다면 지금 적의 숫자가 적어 보이더라도 빨리 본대에 상황을 알리는 것이 중요했다.
자신과 맞서지 않고 퇴각하는 이통을 본 관우는 이내 병사들을 멈춰 세웠다.
어째서 관우가 추격을 멈췄는지 궁금할 법도 한데, 부관은 순순히 명을 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관우의 말이라면 불속에도 뛰어들 수 있을 만큼 충성스러운 병사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딱 한 명, 관우에게 질문을 던지는 이가 있었다. 바로 그의 첫째 아들 관평이었다.
“아버지, 저들을 이대로 놓아준다면 분명 문제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관우는 아들의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겠구나.”
이제는 백발이 성성하게 난 관우이지만, 그의 기세는 젊을 적과 다르지 않았다.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관우의 시선에 관평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의문을 품는 것은 좋은 자세다.”
자신에게 주눅 든 아들을 격려해 준 관우는 멀리 달아나는 기병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의 갑작스러운 돌진에도 저들은 당황하거나 경시하는 기색이 없었다. 즉, 방금 전처럼 돌발적인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훈련이 잘되어 있다는 것이지. 게다가 맞부딪쳐도 이득이 없다는 것을 알고 곧바로 퇴각했으니, 적장의 판단력도 뛰어나다 할 수 있겠구나.”
새삼 앞으로의 전투가 힘들어질 것을 예상한 관우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이렇듯 적의 장수가 신중하고 준비성이 뛰어나니, 오랫동안 진군한 우리와 비교하여 분명 여유가 넘칠 것이다. 그렇기에 뒤를 쫓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저들이 무사히 돌아간다면, 저희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 들통날 것입니다.”
“지금껏 요란하게 움직였는데 들키지 않았을 리가 있겠느냐? 그리고 저들과 여기서 마주쳤다는 것은 이미 우리의 움직임이 어느 정도 읽힌 상태라고 봐야겠지.”
“아… 과연 그 말이 옳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고작 수백에 불과하니, 저들도 그저 별동대나 척후 정도라 여길 것이다. 잘못된 정보를 가져가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아버님의 혜안이 대단하옵니다.”
관평이 예를 표하고 물러나려 하자, 관우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네가 나의 자리를 이어받아 우리의 꿈을 반드시 이뤄야 한다.”
갑작스러운 관우의 당부에 관평은 고개를 내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지, 어찌 그리 약한 말을 하십니까? 아버지께서 직접 대업을 이뤄야 하시지 않겠습니까!”
“이제 내 나이가 지천명을 지났는데 아직도 천명을 이루지 못하였다. 게다가 아직 전장에 서고 있는데 뚜렷하게 이룬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다만, 내 한목숨 바쳐 대형의 이상을 좇을 뿐이다.”
비장한 각오를 듣던 관평의 눈에 어느새 희게 변한 아버지의 수염이 보였다. 그러자 어쩌면 아버지에게는 이번이 중원의 심장을 찌를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관평의 격려에도 관우는 그저 웃음 짓고 몸을 돌릴 뿐이었다.
* * *
여남에 급전을 보낸 이통은 그대로 군을 돌려 완성으로 향했다. 그가 담당하는 지역은 여남이지만, 유비의 침공이라는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조인을 찾아간 것이었다.
그가 안내를 받아 들어간 곳에서는 많은 이들이 군량과 군의 움직임에 대해 보고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남양에서는 이미 유비의 진군을 알고 있는 듯 보였다.
‘하기야 완성은 형주와 가까우니, 침공당한 것을 모를 리가 없겠지.’
“무음의 보급대가 전멸했습니다!”
“신야가 완전히 포위되어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호양의 지원군이 적을 습격을 받아 후퇴하고 있습니다!”
“양성의 지원부대도 기습을 받아 패퇴했습니다.”
“역현의 지원군과 보급 부대가 남양으로 진군 중입니다!”
“좋아. 보급을 지킬 수 있게 병력을 추가해서 보내라!”
문제는 이곳저곳에서 군이 격파되었다는 소식이 올라온다는 것이었다. 이통은 얼마 전 관우의 군세와 부딪친 날을 떠올렸다.
“설마 그렇게 적은 숫자로 아군을 격파하고 있는 건가?”
하지만 곧 관우 때문에 이 모든 상황이 일어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유비에게 장비라는 동생이 한 명 더 있지만, 그걸 감안해도 이 정도로 밀리는 것은 이상했다.
“관우, 장비 이외에도 뛰어난 이들이 더 있나 보군.”
이통이 유비 휘하에 소속된 인물을 모두 아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다른 인재가 있을 거란 사실 정도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곰곰이 생각에 잠긴 채 걷던 이통은 의복을 모두 풀어헤친 채 앉아 있는 조인을 볼 수 있었다.
조인은 이통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해 주었다. 그러고는 변명하듯 말했다.
“미안하네. 내 옷차림이 좀 추레하군.”
그러나 조인은 미안하다는 말과 달리 여전히 의복을 정제하지 않았다. 이는 얼핏 깔보는 모습이라 여겨질 만도 하건만, 이통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예를 취했다.
“괜찮습니다.”
“유비의 선봉대가 극양현까지 진군한 것을 보았단 말이지?”
조인은 이통을 자리에 앉히지도 않고, 그저 자신이 궁금한 것만 일방적으로 물었다.
“그렇사옵니다. 아마 작금의 상황을 만들어 낸 이들 중 하나로 보입니다.”
조인은 잠시 무엇인가 생각하더니 물었다.
“혹시 수염을 길게 기른 자도 있었는가?”
이통은 조인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관우가 출진했는지를 묻는 것이리라. 그는 조인의 물음에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기다란 수염을 기른 자가 기병대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조인이 갑자기 허벅지를 두드리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그래! 그래야지. 유비가 나왔으니, 관우 또한 출진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드디어 관우와 싸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오는구나. 하하하하!”
조인은 마치 바로 앞에 있는 이통 따윈 보이지도 않는 듯 한참 동안 미친 듯이 웃어 댔다. 이윽고 웃음을 그친 조인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알았네. 내 나중에 그대를 찾지.”
누가 봐도 명백히 사람을 무시하는 모습이었다. 이통의 부관은 조인의 무례함에 얼굴이 벌게진 채 무어라 따지려 했지만, 이통이 제지하는 바람에 멈춰야 했다. 이통은 평온한 얼굴로 예를 표하며 물러났고, 곧바로 현청을 빠져나왔다.
부관이 고개를 돌려 침을 뱉고 욕을 하자, 이통이 그를 말렸다.
“그만하거라.”
“저자가 어찌 장군께 이럴 수 있습니까? 그동안 조정을 위해 일한 것이 얼마나 많은데 말입니다! 저희가 매년 바치는 세곡의 양만 해도 엄청납니다. 또 유민들을 위한 구휼미는 사재를 털어 마련하지 않았습니까. 그뿐입니까? 장군께서는 몸을 아끼지 않고 직접 나아가 반란의 주모자인 구공, 강궁, 심성 등을 모조리 죽이고 조정에 바쳤는데! 그런 사람을 이따위로… 윽!”
부관이 말을 듣지 않고 계속해서 불평을 내쏟자, 이통은 그의 종아리를 걷어찼다.
“내 분명 그만하라 일렀다.”
이통의 엄포에도 부관은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다만, 이통에게 맞아서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아마 이통이 푸대접을 받은 사실이 계속해서 분했기 때문이리라. 잠시 울먹거리던 부관은 바닥에 엎드려 원통하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주인께서 억울한 일을 당하는데 어찌 종이 이를 가만히 보겠습니까? 일개 장수가 이럴진대, 대체 조정에서는 어떤 일을 당하겠습니까?”
이통이 생각하기에 부관의 말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조금 전, 조인의 태도를 보면 자신을 독립된 군웅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일개 지방관마냥 취급하는 듯했으니.
아마도 이번 일을 시작으로 지방의 관리들을 길들이려는 것 같았다.
“새로운 물결일 뿐이다. 선대 패공께서 세운 기반을 바탕으로 삼아 분명 작금의 조정은 천자를 받들고 불충한 신하들을 징벌할 것이다. 이미 가장 큰 대적인 원소가 쓰러졌고, 다른 간적들도 대부분 처리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서천의 유장과 유비밖에 없느니라. 이번에 유비가 일으킨 난을 진압한다면, 분명 천하는 다시 안정될 것이다. 너는 나를 역적으로 만들고 싶으냐?”
따끔한 질책에 부관이 아무 말을 하지 못하자, 이통은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작금의 승상께서는 현명하시니, 공을 세우면 분명 알아줄 것이다.”
모든 것에 순응하는 듯한 이통의 말에 부관은 더더욱 슬픈 표정을 지었다. 이제 군웅들의 황혼이 찾아온 것이었다.
* * *
한편, 조인은 이통의 앞에서 보인 당당한 태도와 달리 마음속으로 초조해하고 있었다. 당장 관우를 상대하기에는 자신이 데려온 군대가 미덥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직 군 대다수가 하북에 묶여 있어 지금 완성에 있는 병력은 정예부대라고 할 수는 없었다. 물론 자신의 집안사람들은 조가에서도 가장 뛰어난 부곡들을 이끌고 왔으리라. 하지만 그들만으로 유비의 군대 모두를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상념에 빠진 조인에게 조순이 말을 걸었다.
“형님, 이통에게 굳이 그리 박정하게 대해야 했습니까? 같이 전장에 나갈 사이인데 말입니다. 그가 혹여 다른 마음을 품는다면, 문제가 커질 것입니다.”
조인은 의자에 몸을 기대며 조순을 바라보았다.
“똑똑한 이라면 고개를 숙일 것이고, 아니라면 칼을 들어 올리겠지.”
“유비와의 전투가 바로 앞에 있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그자가 유비의 손을 잡는다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입니다.”
“진정 현명한 인물이라면 한조에 충을 지키겠지. 이번 전투에서 이기고 형주만 차지한다면, 천하가 평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고작 그런 일로 칼을 거꾸로 들겠느냐?”
“그렇다고 하더라도 굳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제가 가서 잘 설명하지요.”
계속해서 조순이 설득했음에도 조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럴 필요 없다. 지금 신경 써야 할 것은 전장을 어디로 삼아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조정에서 지원을 더 받아 낼 수 있는가와 같이 전쟁과 관련된 일뿐이다.”
“수춘후에게 손을 벌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지금 제일 안정적인 지역이니, 조정에 고하여 이것저것 더 받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조순의 말에 조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네 생각을 눈치챘는지, 이미 수춘에 남은 군량들을 빼돌렸다고 하더군. 쯧쯧, 의뭉스러운 놈… 도대체 뭘 원하는지 알 수가 없어. 어느 때는 조정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가 싶다가도 이럴 때 보면 제멋대로 하니 말이야.”
“뭐, 추가적인 지원은 받지 않아도 괜찮겠지요. 유비가 예전에는 꽤 명성이 높았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 유약한 수춘후에게조차 패배하지 않았습니까?”
조순의 자신감에 조인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예전에 본 관우와 장비는 결코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인물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너무 자신만만하지는 말거라. 네 생각보다 어려운 싸움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