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94
294화
이통은 조인에게 무시를 당하고도 남양을 돕기 위해 꿋꿋이 여남의 군세를 모았다. 물론 군을 함부로 움직이는 것은 큰 죄가 될 수 있는 일이기에 조정의 명을 기다리며 서평에서 머물렀다.
그때, 이통의 군영으로 붉은 깃을 매단 전령이 미친 듯이 말을 타고 달려왔다. 그는 병사들을 향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급전이오, 급전! 매우 중요한 것이니, 태수, 아니, 장군께 직접 전해야 하오!”
전령을 맞이한 병사는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서신을 받자마자 막사로 빠르게 달려갔다.
한편, 이통은 직접 갑주를 닦으며 곧 맞이하게 될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를 호위하는 근위병들도 저마다 갑주에 옻칠하는 와중에 갑자기 한 병사가 급하게 들어왔다.
“장군님! 전령이 서신을 가져왔습니다!”
“무엄하다! 더는 다가오지 말고 그 자리에 멈춰 서라!”
갑작스러운 병사의 접근에 부관이 그를 제지했다. 그러고는 이통을 돌아보며 허락을 구했다.
“제가 먼저 받아 보겠습니다.”
부관은 병사가 건넨 함을 받아 진흙을 부수고 서신을 꺼냈다. 그러고는 아무 이상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조심스레 펼쳐 내용을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곧 놀란 기색으로 말을 꺼냈다.
“장군, 신야성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뭐라? 지금 무어라 했느냐!”
이통은 부관의 말에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런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현실을 받아들인 이통은 침통한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일이 복잡하게 되었군.”
이처럼 전령이 가져온 서신은 이통을 당황하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신야성이 함락되었다면, 유비가 이미 완성으로 진격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기야 이 정도로 심각한 일이니 조정에서도 거드름을 피우지 않고 급전을 보낸 것이리라.
조정에서는 신야에서 수성전을 펼치면 적어도 수개월은 막을 수 있으리라 보았다. 그 틈에 하북의 군대를 조금씩 남하시켜 유비를 막으려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신야가 생각보다 훨씬 빨리 함락되면서 지금 조정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였다.
이는 조정에서 미처 생각지 못한 변수 때문인데, 그것은 바로 유비의 명성이었다. 유비는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 온 덕망을 이용해 신야 백성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물론 유비가 신야를 다스릴 때 인망을 얻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신야를 그저 거쳐 가는 발판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과도한 노동을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직접 나서서 농지를 수복하며 평판을 높이는 데 힘썼다.
반면, 순욱은 신야를 형주 세력의 발호를 막기 위한 최전선으로 여겼다. 그래서 백성들의 삶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성벽의 보수나 방어 시설의 확충 등 노역을 굉장히 많이 시켰다.
그러다 보니 백성들의 마음속에는 유비가 다시 다스렸으면 하는 감정이 든 것이었다. 결국 성민들은 유비군과 싸울 때 조금 불리해지자마자 곧바로 반란을 일으켜 성문을 열어 버렸다.
물론 성문이 열리더라도 반란군들을 빠르게 처치한다면, 유비군의 공격을 막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상대해야 할 장수가 진도와 위연인 것이 불행이었다.
유비의 친위대이자 최정예병을 이끄는 진도, 그리고 유비의 부곡으로 오랜 시간 경험을 쌓은 위연.
물론 관우와 장비, 황충과 같은 오호대장군과 비교하면 다소 명성이 떨어지지만, 능력만큼은 그들 못지않은 장수들이었다.
둘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그렇게 신야는 유비의 품으로 넘어간 것이었다.
* * *
한차례 전투를 끝낸 관우가 월도를 돌려 피를 털어 냈다. 그가 말 위에서 전장을 둘러보자, 적군은 항복한 이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음을 맞이한 상태였다.
“갑주와 무기만 벗기고 모조리 풀어 주어라.”
관우가 자비를 베풀자, 그에 감화된 적군 중 몇몇이 함께 싸우겠다고 나섰다. 그들 대다수가 억지로 징집되어 끌려 나온 경우라 가능한 일이었다.
관우는 굳이 막지 않았다. 싸울 수 있는 자들에게는 창을 쥐어 주었고, 각자 능력에 맞게 배치했다.
“아버님, 주군께서 서신을 보냈습니다.”
관우가 서신을 받아 들고 월도를 관평에게 맡겼다. 그는 죽간을 펼치자마자 크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관평은 오랜만에 아버지의 웃음소리를 듣자 약간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옵니까?”
아들의 물음에도 관우의 입에서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리라. 병력의 손실뿐만 아니라 진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어마어마하게 줄이게 되었으니 말이다.
“대형께서 대단한 일을 해냈구나! 이제 모든 것이 갖추어졌다.”
“설마… 신야가 아군의 손에 떨어진 것입니까? 대체 어찌 된 영문입니까?”
“그래. 대형께서 신야를 인의로서 함락시켰으니, 이제는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관우가 아들에게 죽간을 건네었다. 전황이 어찌 흘러갔는지 알게 된 관평은 입을 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군사의 지략이 대단한 듯싶습니다. 이러한 방법을 쓰다니 말입니다.”
관우는 제갈량의 이야기가 나오자 살짝 인상을 찡그렸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군사가 유비와 굉장히 가까이 지내며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은 맞지만, 실력 하나만큼은 대단했다. 형주의 호족들을 묶어 유비의 발밑에 두게 만든 것도 그의 능력이었으니 말이다.
그동안 유비는 대업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제갈량을 만난 후, 마치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일이 순조롭게 풀렸다.
아마 장비나 자신이었다면 분명 잡음이 나왔으리라. 과거, 장비가 단양병들을 흡수하려고 한 때처럼 말이다.
“그래, 군사의 능력은 인정해야겠지.”
관우가 말 머리를 돌리며 손을 내밀자, 관평은 그에게 월도를 건네었다.
“단단히 준비하거라. 이제 조인을 상대해야 할 것이니 말이다.”
“아무리 조인이라 하더라도 어찌 아버지께 비견이 되겠습니까.”
그러자 관우는 잠시 아무 말 없이 관평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붉은 얼굴을 바라본 순간, 관평은 고개를 숙였다.
“그런 마음가짐이 패배를 부르는 것이다. 전투는 천 번을 준비해도 모자람이 없다. 너는 한순간의 자만으로 병사들을 죽음으로 밀어 넣을 것이냐?”
관평은 숨이 막히는 관우의 기세에 아무런 답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의 말도 주춤거리며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이만 가 보겠다. 준비는 철저히 해 두어라. 내 직접 확인할 것이다.”
관평은 관우가 눈앞에서 사라진 후에야 겨우 숨을 고를 수 있었다. 그는 잠시 말고삐를 쥔 채 멀어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관우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주변의 병사들은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한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던 관평은 관우의 명을 이행하기 위해 움직였다.
* * *
신야가 적에게 넘어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조인은 손에 쥔 죽간을 부수고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승상께서 다른 말은 없었느냐?”
“그저 죄송하다는 말을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조정에서는 지원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조인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벅저벅.
거구의 조인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며, 이윽고 그의 그림자가 전령의 몸을 전부 덮어 버렸다.
위압감을 느낀 전령은 몸을 덜덜 떨었다. 조인이 자신의 바로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방금 전 대화를 되새겨보면, 조인이 분노한 표정을 짓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전령의 예상과는 달랐다. 차갑다 못해 완전히 굳어진 그의 얼굴은 주변의 사람들도 질려 버릴 정도였다.
조인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곳까지 오며 너 또한 보았을 것이다. 지금 물자들이 부족해 수성전을 펼쳐도 오래 버티는 것은 힘들다. 이렇게 급박한 상황인데 지원이 어렵다는 것은 대체 무슨 말인가.”
“예, 장군. 그래서 승상께서 하북에 있는 병사들을 내어 도울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미 신야가 떨어졌다. 그런데 돕겠다는 확답도 아니고, 도울 것이라니… 승상께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 모는 모르지만, 이 말은 반드시 전하게. 이곳이 무너지면 허도는 바람 앞의 불씨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이야.”
전령이 허도로 떠나자, 조인은 조순을 불러들였다.
“적의 진군을 막아야 할 것 같다.”
조순은 조인의 말에 숨겨진 의미를 깨달았다. 지금은 정면 대결보다는 시간을 버는 것이 중요하니, 적의 보급을 끊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유비군의 보급로를 파악하지 못한 이상, 조인의 작전을 실행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형님,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그러자 조인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말이 되게 해야지. 그래서 내가 직접 나설 것이다.”
“형님!”
조인은 그의 눈앞으로 가절을 들어 올렸다. 이것은 더 이상 반발을 듣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 확고한 태도에 조순은 정말로 형님이 직접 나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제가 하겠습니다. 제가 나아가 저들을 막아 낼 것입니다.”
“내 가절을 올려 둔 이유를 모르겠느냐? 더는 반대치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리 나오면 어찌하느냐.”
조순이 다시 무슨 말을 하려 하자, 조인은 동생의 옆에서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그러고 나서 조곤조곤 타일렀다.
“나는 무예에 재주가 있고, 너는 병사를 이끄는 것에 재능이 있다. 그러니 성에서 적을 막는 것은 네가 훨씬 나을 것이다.”
“형님!”
조인이 아무리 따뜻한 말로 안심시키더라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지금 그가 말한 계획은 당랑거철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조순이 다시 한번 문 앞을 막아서려 하자, 조인이 어깨를 짓누르며 말했다.
“다른 방법이 있느냐? 조정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도 쉬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국 하북의 지원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유비의 발목을 잡아낸다면, 조정의 결정이 빨라질지도 모르지. 그리고 혹시…….”
조인이 중얼거리던 말을 끝까지 들은 조순은 화가 나서 얼굴이 붉어졌다.
“도망갈지도라니요? 형님! 승상께서, 아니, 조정이 도망을 간단 말입니까? 어찌 그럴 수가!”
“이미 선대 패공께서 낙양을 재건하라 명한 지 오래되었다. 어느 정도 복원되었으니, 천도를 하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수도를 옮기는 것은 형님을 버리겠다는 말 아닙니까? 어떻게 지금껏 충성을 바친 장수를 이렇게…….”
조인은 자신과 조순을 번갈아 가리키며 말했다.
“너와 나는 순씨가 아니라 조씨이지 않느냐. 그렇다고 영천 출신인 것도 아니고.”
조순은 순간 충격을 받은 듯 손을 달달 떨기 시작했다.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도 권력 다툼을 한다니, 두려움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조인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유비보다는 우리가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