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95
295화
조조 사후에도 조가와 순가의 사이는 그리 나쁘지 않은 듯했다. 각각 군대와 조정을 장악한 뒤 중요 관직을 나누어 가진데다, 조조의 아들인 조비가 패공의 작위를 이어받는 것에 합의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조씨들은 은연중에 순가를 자신의 아랫사람이라 여겼다. 과거, 조조와 순욱이 군신 관계를 유지했으니, 두 가문 사이에도 우열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조가의 세력은 여러 싸움을 거치며 점점 줄어드는 반면, 순가는 중앙에서 차근차근 힘과 인맥을 늘려나갔다. 결국, 조가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군대에도 순가의 영향력이 조금씩 미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조인은 순가에서 자신들을 밀어내고 권력을 독점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런데 조인이 자신이 생각한 바를 이야기하자, 가만히 듣고 있던 조순이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저희는 어째서 조정을 위해 싸워야 합니까?”
조인은 화가 난 조순의 어깨를 다독이듯 두드려 주며 말했다.
“선대 패공께서 원하신 일이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한조를 받들어 모시고 천하의 제후들이 발호하는 일을 막고자 하셨다. 그리고 법도와 규율을 엄중히 세워 백성들이 편안히 살 수 있는 세상을 원하셨지. 만일 우리가 싸우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쌓아 온 모든 것이 무너질 텐데, 어찌 그리하겠느냐.”
형제의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조인은 차마 아무 말도 잇지 못하는 조순을 뒤로한 채 전장으로 나섰다.
조순을 대신해 조가의 정예 기병들을 이끌고 출진한 조인은 완성의 주변 지리를 살펴본 뒤, 유비군이 어디로 진격할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예측대로 정확히 들어맞았다.
* * *
육양 일대에 주둔지를 꾸린 관우는 완성으로 진격하기 위한 길의 안전을 확보한 뒤, 전령을 보내 본대에 소식을 전했다.
그런 후, 잠시 여유가 생긴 관우에게 관평이 다가오며 말했다.
“하하, 적들도 아버님의 기세에 눌렸나 봅니다. 여기까지 오며 적의 그림자 하나 보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관우는 관평의 너스레에도 아무 말 없이 멀리 보이는 완성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길 뿐이었다.
‘조인이 이렇게 허술할 리가 없다. 조씨 일가에서는 그를 하늘이 내린 장수, 천장이라 부르지 않던가. 그런 사내가 지금까지 조용히 있을 리 만무하지.’
관평은 관우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자, 안절부절못하며 급히 말을 바꿨다.
“그게 아니라면, 역시 수성에 전념하느라 코빼기도 내밀지 않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마 조정에서도 주군께서 이렇게 빨리 움직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 분명 조인도 지원을 기다리기 위해 시간을 벌 속셈일 겁니다.”
“시간을 번다… 하기야 아무리 조인이라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있는 법이니…….”
자신을 안심시키려는 말에도 관우는 어쩐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의 감 때문에 유비가 내린 명을 늦출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일 아침, 군을 움직여 완성으로 갈 것이다.”
출격 명령을 내린 뒤, 어떻게 하면 조인을 밖으로 끌어낼 수 있을지 생각하던 관우의 입가에 문득 미소가 떠올랐다.
“이런 격장지계는 원래 동생의 특기인데 말이야.”
관우의 입가에 맺힌 미소를 보고 관평도 맞장구쳤다.
“맞습니다. 숙부님의 걸걸한 욕을 한 번 들으면 무덤에 있는 조조도 못 참고 뛰쳐나올 것입니다.”
“분명 그러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동생과 처음 만났을 때 서로 싸운 이유도 욕설 때문이었지. 생전 처음 듣는 모욕에 나도 모르게 월도를 휘두를 뻔했으니… 만약 대형께서 우리를 말리지 않았다면 둘 중 하나는 죽었을 게야.”
웃으며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는 관우의 모습은 누구보다 즐거워 보였다.
* * *
한편, 선봉대를 발견한 조인은 관우의 이름이 새겨진 깃발을 보며 중얼거렸다.
“저놈들은 숨을 생각이 전혀 없군.”
하기야 자신이 관우의 입장이라도 비슷했으리라. 어지간한 습격은 지닌바 무용으로 쉽게 막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어설픈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게다가 저쪽도 자신을 끌어내기 위해 온갖 수작을 부릴 터.
한참 동안 적의 부대를 살펴보던 조인은 좋은 수가 떠올랐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 머리를 돌렸다.
“굳이 저놈들을 맞상대할 필요는 없겠지.”
조인은 기마병을 이끌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선봉대의 위치를 확인했으니, 후속 부대를 노릴 셈이었다. 그동안 남양의 병사들이 고통받은 만큼 돌려줄 차례가 아니겠는가. 달려가는 그의 입가에는 섬뜩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러나 조인의 계획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암초에 부딪혔다. 몇 차례 후방이 습격받자, 유비군에서 반격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피슈슈슈슈우욱.
퍼버버버벅.
사방에서 쇠뇌 소리가 들려왔다. 쇠뇌병이 있다는 것은 곧 적의 주력부대가 들이닥친다는 뜻이었다. 조인은 혼란에 빠진 부하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다들 한곳으로 모여라!”
뿌우우우우우우우!
조인의 부관 중 한 명이 재빨리 나팔을 불어 병사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다행히 나팔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린 아군이 모여들자, 조인은 급히 군대를 이끌고 탈출했다.
“큭, 하필이면 쇠뇌병이라니…….”
예전 원소와 싸울 당시, 쇠뇌에 혼쭐난 기억이 있는 그로서는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금세 마음을 진정시킨 조인은 피해 상황을 확인하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설마 자신을 잡기 위해 쇠뇌까지 동원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조인이 지금이라도 완성으로 돌아가야 할지 고민하던 그때, 눈앞에 기마를 탄 일단의 병사들이 나타났다.
조인은 대도를 길게 늘어트리며 새롭게 나타난 적을 빤히 바라보았다.
“설마… 백이병까지 온 것은 아니겠지?”
정말 눈앞의 부대가 유비군의 정예부대인 백이병이라면,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가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었다. 조인은 오늘 길보다 흉이 많겠다는 생각을 하며 적병을 살펴보았는데, 이상하게도 예전에 본 이들과 달리 기마술이 형편없었다.
조인은 예전에 갑옷을 깃털로 치장한 유비의 친위병을 본 적이 있는데, 대다수가 북방 이적(夷狄) 출신으로 뛰어난 전사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있는 병사들은 한족 출신에 말도 제대로 못 타니, 정말 백이병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다만, 조인이 유일하게 거슬리는 것은 저들을 이끄는 장수였다. 대장기에는 진도라는 이름이 적혀 있으나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풍기는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흠, 이걸 어떻게 한담? 저런 약졸들이라도 미리 머릿수를 줄여 두는 편이 나을 터인데.”
사실 저런 어설픈 기마술로 조가의 정예 기병을 뒤쫓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 그냥 달아나도 무방했다. 하지만 조인은 저런 오합지졸이라면 쉽게 무찌를 수 있다고 여겨 맞서 싸우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조인이 빠르게 달려들자, 갑자기 작은 나무창을 꺼내 드는 것이 아닌가. 그는 상대를 너무 얕봤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들의 공격이 말을 노리자, 허를 찔린 조인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빌어먹을!”
조인의 눈에 적장이 무어라 지껄이며 자신을 비웃는 것이 보였다.
파바바바박!
날아오는 나무창은 진짜 창처럼 갑주를 뚫을 위력은 아니지만, 말에게 피해를 주기에는 충분하였다.
마갑을 씌우는 큰 전투와 다르게 지금 자신의 부대는 맨몸인 상태였다. 이윽고 나무창에 맞은 말이 쓰러지자, 적병들이 무질서하게 공격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말에 타고 있을 때와는 달리 용기백배한 듯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조인은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훈련되지 않은 이들이라는 것이 새삼 느껴졌기 때문이다. 조가의 정예 기병들이 어중이떠중이 같은 병사들에게 당하자, 조인은 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네놈, 비루한 유협들을 모은 것이더냐!”
그러나 상대방이 여전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조인이 달려들어 적장의 목을 베려 할 때, 뒤에 있던 기마병들이 순식간에 앞으로 뛰쳐나왔다.
“잡졸들은 꺼져라!”
조인은 큰소리를 지르며 대도를 마구 휘둘러 그들을 추풍낙엽처럼 휩쓸어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눈앞으로 창 한 자루가 튀어나왔다.
재빨리 머리를 젖혀 피했지만, 기습을 당했다는 사실에 조인이 분노를 터트렸다.
“이런 비겁한!”
적장은 한번 기세를 타자 연속해서 공격을 이어 갔다. 한동안 위태롭게 창을 막던 조인이 방향을 바꿔 옆을 노렸으나, 호위병들이 필사적으로 가로막는 바람에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으아아아아! 비켜라!”
또다시 방해받은 조인이 거칠게 대도를 휘두르자, 기세에 눌린 호위병들이 한 발짝 물러났다.
그때, 조인의 눈에 적장이 비열하게 웃으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다음이야 빤했다. 방금 전 물러난 병사들과 합공할 테지.
“놈! 이번엔 그렇게 안 된다!”
적장의 창이 자신의 가슴을 노리고 다가온 순간, 조인은 몸을 살짝 비틀어 피하고 창대를 붙잡았다. 그러고는 그대로 잡아당겨 상대의 자세를 무너트린 후, 머리를 부수려 했다.
그런데 적장은 조인이 창대를 붙잡자마자 창을 놓고 뒤로 물러났다. 비록 무기는 빼앗았지만, 조인의 계획대로 되지는 않은 셈이었다.
그러자 조인은 꿩 대신 닭이라는 듯 달려드는 호위병 하나를 창대로 밀어 떨어트리고 말발굽으로 짓이겼다. 그러고 나서 당혹스러워하는 다른 병사를 대도로 베었다.
그렇게 무용을 뽐낸 조인은 적장을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말했다.
“하, 그러고도 네놈이 무인인가! 무기도, 병사도 버린 주제에 어찌 일군을 이끄는 장수라 칭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적장이 자신의 도발에도 아무런 대답 없이 말고삐를 잡고 달아나자, 조인은 말문이 막혔다. 다시 뒤쫓으려 하자, 어느새 활을 든 적장의 모습이 보였다.
타아아아앙!
조인은 자신의 말을 노린 화살을 겨우 쳐 내고는 더 이상 추격하지 않았다. 그는 잠시 적장을 노려보더니, 아수라장으로 변한 전쟁터로 뛰어들었다.
“천장이라는 칭호가 허명은 아니었군.”
한편, 진도는 조인이 뛰어든 전장을 살폈으나, 적아를 구분하기 힘든 상황에서 그를 찾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진도는 조인을 끌어내기 위해 큰 소리로 외쳤다.
“조인이여! 설마 겁이 난 것이더냐! 나를 겁쟁이라…….”
파아아아아아악!
한데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옆에서 갑자기 조인의 대도가 튀어나왔다. 깜짝 놀란 진도는 곧바로 말에서 뛰어내려 공격을 피했지만, 불행하게도 말은 그러지 못했다.
말의 목이 잘리며 쏟아진 피를 그대로 뒤집어쓴 진도를 바라보며 조인이 으르렁대듯 말했다.
“이거 아쉽군. 그건 그렇고, 나는 네놈이 벙어리라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말할 줄도 알잖아? 어디 아까처럼 더 씨불여 보시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대도를 든 채 당당하게 나타난 조인의 모습에 진도는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