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96
296화
진도는 흉흉한 기세를 느끼며, 그제야 어째서 관우와 장비가 조인을 만나면 조심하라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 진도는 이번 기습으로 조인을 쓰러트릴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그러나 백이병과의 합공도 무리 없이 막아 낼 뿐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위기로 몰아넣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판단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진도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창을 다잡아 조인을 향해 겨눴다.
만약 관우와 전장에서 마주치게 되면 이런 압박감을 받게 될까?
그만큼 지금 조인이 뿜어내는 기세는 유비군에서 가장 뛰어난 장수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듯했다.
파아아아앙!
그러나 일생일대의 대적을 맞이한 것 같은 자신과 달리 조인은 대도를 고쳐 잡고 천천히 다가올 뿐이었다. 무덤덤한 눈빛 때문에 진도는 상대방의 의중을 전혀 읽을 수 없었다.
“뭐, 그래도 방금 전에 쏜 화살은 꽤 재미있었다.”
‘설마 상황이 이렇게 변할 줄이야.’
조인의 중얼거림을 들은 진도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처음엔 자신들이 유리했을 텐데…….
“아직도 도망가지 않은 그 기개는 가상하지만…….”
파아아아아아앗!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머리를 향해 순식간에 대도가 날아들었다. 진도는 조인의 맹공을 막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였으나, 계속되는 공격에 점차 수세로 몰렸다.
파가각!
결국, 창이 부러지고 칼날이 허리를 양단할 찰나, 뒤로 몸을 굴려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진도는 헉헉대며 부러진 창을 짚고 일어섰다.
그러나 설상가상으로 방금 일격을 막은 진도의 손목이 욱신거리며 찌르르 울려오기 시작했다.
“네놈의 기지는 칭찬하마. 네가 상대한 사람이 내 동생이라면, 바닥에 뒹굴고 있는 것은 분명 녀석이었을 테니까.”
그러나 조인의 말 따위는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진도의 모든 감각은 눈앞의 대도에 집중되어 있었으니.
진도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조인이 자신을 놓아주지 않을 거란 사실을 깨닫고 한숨을 내쉬었다. 상대방은 이미 수염이 희끗거리는 나이이지만, 기량은 전성기의 관우와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그로서는 도저히 지금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수단이 떠오르지 않았다.
천장.
진도는 그 이름의 무게를 새삼 실감하고 있었다. 그동안 내심 허명이라 여기며 무시했지만, 직접 맞서 싸워 보니 자신은 아직 애송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 눈앞의 조인이 입가에 미소를 짓는 것도 패배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럼… 잘 가라.”
뿌우우우우우!
진도는 마치 사형선고라도 내리는 듯한 조인의 말에 얼굴을 찌푸리며 부러진 창을 들었다.
손목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무시하며 마지막 격돌을 준비하던 그때, 갑자기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신경 쓰지 않으려 했으나, 이어지는 목소리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다.
“여기, 연인 장비가 왔다!”
“…하, 정말 운이 좋은 놈이로군.”
진도는 적어도 팔 하나는 잃을 것이라 각오했는데, 장비의 등장 덕분에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아 안도했다.
이미 자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사라지는 조인을 보며 입술을 짓이겼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정면으로 싸우면 어쩌지 못하더라도, 계책을 사용해 이길 자신은 있었다. 이제 장비의 경기병들이 도착했으니, 다시 조인을 압박할 차례였다.
조인은 말 머리를 돌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함정에 빠졌다는 걸 알아차린 뒤, 적의 지원군이 오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게 장비일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설마… 내 주변에 첩자라도 있단 말인가.”
자신이 직접 출병한다는 사실은 조순과 측근들밖에 모르는 일이니, 첩자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배신자의 범위는 좁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디에서 간자를 보냈느냐가 중요했다. 만약 유비군에서 심은 것이 아니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설마… 이 조인이 지금껏 남이 설계한 바둑판 위에서 움직였다는 것인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던 조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선대 패공이 살아 있던 시절에는 자신도 언제나 자유롭게 싸울 수 있었지만, 지금은 족쇄에 묶인 신세나 마찬가지였다.
하기야 판을 짜는 모사들이 더는 조가를 위해 힘쓰지 않는데, 자신이 어찌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그들은 이제 조가를 견제하는 데 모든 신경을 쏟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미 하북, 중원, 서북까지 차지했으니… 더 이상 위협적인 적은 없을 거라 착각하는 중인가.’
만약 자신이 한낱 희생양에 불과하다면… 조인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맴돌자, 점점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동안 여기저기에서 조가를 견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자신이 바보 같았다.
그러나 당장은 분노를 토해 내는 것보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었다. 조인은 아수라장으로 변한 전장에 뛰어들어 큰 소리로 외쳤다.
“퇴각한다! 말을 탈 수 있는 자들은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난다!”
조인의 말에 병사들은 빠르게 후퇴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싸우던 병사들은 기마술에 능숙하지 않기에 쉽게 따돌릴 수 있었지만, 문제는 백이병이 아니라 장비와 그의 경기병 부대였다.
“네 이놈, 조가야! 어디로 꽁무니를 빼느냐!”
조인이 흘낏 뒤를 바라보자, 장비가 부하들과 함께 엄청난 속도로 자신을 쫓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마구 소리치는 장비의 얼굴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새하얀 수염으로 뒤덮인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본 조인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읊조렸다.
“다들 늙기는 했군.”
“조인! 조가의 천장이라 불리는 놈이 이리 도망가는 것이 부끄럽지 않느냐! 나와 함께 한바탕 놀아 보자꾸나!”
조인은 계속되는 장비의 도발에 크게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불리한 상황에서 억지로 맞서 싸우는 것이야말로 진정 멍청한 일이었다.
게다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은 저 장비 놈이 더 심했다. 저놈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개똥밭을 구르며 천치 연기라도 할 수 있는 작자가 아닌가.
한창 달려가던 조인은 어째서인지 장비가 자신을 도발하며 마치 토끼몰이를 하듯 한곳으로 유인하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나 한발 늦은 깨달음이었다. 이미 완성으로 가는 얕은 하천 앞에서 위연의 장창병들이 조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기랄, 완전히 함정에 빠졌군.”
조인은 급히 고삐를 잡아당기자, 뒤따라오던 기마들도 일제히 멈춰 섰다.
더 이상 조인의 부대가 다가오지 않자, 위연이 말 위에서 크게 소리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적을 밀어붙여라!”
“우오오오오오오!”
사기충천한 위연의 부대와 달리 앞뒤로 적을 맞이한 기병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조인은 이대로 가면 싸워 보기도 전에 무너질 것으로 생각하고 병사들을 진정시켰다.
“다들 진정해라! 그러고도 너희들이 조가의 정예라 할 수 있느냐!”
그제야 겨우 소란이 점차 가라앉으며 상황을 제대로 살필 수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진도는 보이지 않지만, 장비와 위연의 군세가 점점 자신들을 좁혀오고 있었다.
더는 피할 곳이 없자, 조인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결국, 여기에서 끝인가.’
그때, 부관 하나가 조인에게 절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군, 어서 완성으로 가셔야 합니다!”
“…나 혼자 말이냐?”
“저희는 목표한 일을 모두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장군께서 할 일은 아직 많이 남았으니, 어서 완성으로 돌아가 이들을 막으셔야 합니다!”
조인은 순간 그 말에 혹했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자신이라 해도 홀로 장창병들을 뚫고 지나가기는 불가능하고, 뒤로 돌아가려 하다가는 도리어 장비 놈에게 발목을 잡힐 것이 빤했기 때문이다.
설령 기마병들을 미끼로 던진다고 해도 성공할 가능성은 작았다.
“이미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그래 봐야 소용없다. 게다가 조가의 정예인 너희를 모두 잃고 나 혼자 살아남아 봤자 앞으로 어찌 고개를 들 수 있겠느냐. 차라리 여기 남아 저들의 숫자를 하나라도 줄이는 편이 완성의 수비에 도움이 될 것이다.”
기왕 끝까지 남아 싸우는 김에 멋들어진 연설로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는 편이 좋겠지만, 그의 성격과는 맞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조인의 말투에 익숙해진 기마병들은 이미 용기백배한 상태였다. 병사들은 온갖 미사여구보다 그저 조가의 천장이 끝까지 함께한다는 말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본 조인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바보 같은 놈들… 다들 끝까지 살아남거라.”
“충!”
조인은 완전히 포위되기 전에 말을 돌려 뒤에서 쫓아오던 장비의 부대에게 달려들었다.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조인은 다시 말 머리를 돌려 위연과 장창병들의 뒤로 돌아갔다.
놀랍게도 조인의 의도를 파악한 듯 병사들이 둘로 찢어져 각각 장비와 위연의 부대로 향한 것이다.
“이런! 설마 이 상황에서 병력을 나누다니!”
돌발적인 상황 변화에 위연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장창병들은 무기의 길이 때문에 신속하게 몸을 돌리는 것이 어려워 뒤쪽에서 공격을 받으면 순식간에 진형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이끄는 부대의 약점을 잘 아는 위연은 잠시 인상을 찌푸리더니, 신속히 호위병들과 함께 움직였다.
“조인을 막아라! 창병들이 진을 만들 때까지 버터야 한다!”
그러나 위연의 기병들은 조인과 정예 기병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필사의 돌격 앞에 그저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갈 뿐이었다.
퍼억!
위연의 눈앞에서 조인의 대도에 맞은 병사가 날아갔다.
칼날이 무뎌진 조인의 대도에 당한 기병들은 불행하게도 편히 죽지 못했다. 그들은 말에서 떨어진 뒤, 사지가 꺾여 끔찍한 비명을 질러 댔다.
“으아아악!”
위연은 눈앞으로 조인이 다가오자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그는 자신이 조인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임을 깨달았다.
위연은 인상을 찌푸리며 기병들에게 조인과 싸우라 지시하고는 곧바로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기병들은 조인에게 우르르 달려들었지만, 전혀 상대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위연이 몸을 피할 때까지 시간을 버는 제물에 불과했다.
“사, 살려……!”
달아나는 위연의 뒤에서 참극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에게는 자신이 살아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으니.
“저런 놈들을 상대하는 법은 따로 있지.”
위연은 유비의 부곡으로 지내며 관우와 장비처럼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무예에 익숙했다.
그렇기에 그런 존재를 만나면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항상 고민했다.
“아무리 뛰어난 무용을 지녀도 결국은 사람에 불과하니, 언젠가는 지치고 무너지기 마련이지.”
위연은 장창병들에게 원형진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아니, 저것은!”
한바탕 유혈극을 벌이며 쫓아온 조인은 위연이 노리는 것을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기마들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마진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달려든다면 자신들은 그저 꼬챙이에 꿰인 고기 신세를 면치 못하리라. 조인이 거마진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고민하는 동안, 몇몇 기병이 장창병을 향해 덤벼들었다.
그들은 조인이 우려하던 것처럼 진에서 튀어나온 여러 가지 무기들에 의해 철저하게 유린당했다.
“조인이여, 오너라!”
조인은 위연의 도발적인 언사를 듣고 허탈하다는 듯 웃음 지었다.
“마지막 가는 길이 지루하지는 않겠군.”
여기서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 봤자 앞뒤로 포위당해 죽을 뿐이었다. 그럴 바에야 화려하게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이 장수다운 결말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