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98
298화
이통이 가져온 비보를 들은 조순은 머릿속에서 무언가 툭 끊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조인의 관을 보았을 때, 그는 현실을 부정하며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조인의 시신이 가문을 향해 떠나자, 현청에는 조순과 이통, 둘만 남게 되었다.
불편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조순은 문득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적개심 어린 눈동자로 이통을 쏘아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대가 가장 먼저 적의 움직임을 파악하였지. 일이 이렇게 될 동안 자네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저는 서평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 대답을 듣자마자 조순은 벌떡 일어나 분노를 터트렸다. 서평과 완성의 거리는 매우 가까워 말을 달리면 하루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째서!”
크게 고함을 지른 그는 칼자루로 손을 가져갔지만, 차마 검을 뽑지는 못하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조정에서 군을 움직이라는 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여남 내부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야 어떻게든 둘러대면 넘어갈 수 있는 일이지만, 완성까지 군을 움직여 싸웠다면 사전(私戰, 개인적인 전투)으로 간주되어 큰 형벌에 처할 터라 미처 조 장군을 돕지 못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조가 세운 군율 중 하나가 사전을 금지하는 것이었다. 사실 조조도 황건적을 잡겠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일으켰지만, 나중에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 전쟁을 벌였으니, 모순적인 정책이긴 했다.
그랬기에 조조는 자신 같은 인물이 다시 나오지 못하도록 사전을 금지했다. 그러고는 휘하의 모든 세력이 중앙의 명령이 있을 때만 군을 움직일 수 있게 만들었다.
조조 생전에는 사공부에서 맡아 하던 일이지만, 지금은 순욱의 승상부에서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즉, 승상부의 명이 떨어지기 전에는 군을 사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 사정을 떠올린 조순은 눈앞의 이통에게 분노를 터트려도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닫고 화를 삭였다. 그 말인즉슨, 조인을 죽게 만든 원흉이 다름 아닌 순욱이라는 의미였으니.
조순은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앞으로 자네는 어쩔 셈인가? 이대로 완에서 수성해도 적의 공세를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네. 분명 수개월 내로 유비의 군세는 이곳 남양을 넘어 여남을 노리겠지. 그러니 그대는 여남으로 물러가 그곳에서 방비를 단단히 하는 것이 어떠한가?”
조순이 말을 마치자 이통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기야 누구라도 화를 내다가 갑자기 차분해지는 사람을 본다면 비슷한 반응을 보이리라.
“그럼… 도위께서는 어찌하려 하십니까?”
조순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러고는 무언가 단단히 결심한 표정으로 한 자, 한 자를 똑똑히 내뱉었다.
“나는 완성에 남을 것이네.”
“저와 같이 물러나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유비가 군을 정비하는 이때가 기회입니다. 지금이 아니라면 곧 적이 사위를 포위해 후퇴하기도 어려워질 테니 말입니다.”
“형님이 맡긴 곳이니 떠날 수는 없네. 대신 자네는 물러가게. 내가 반드시 반격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 주겠네.”
“…알겠습니다. 하나 끝까지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제가 완성을 구하러 올 때까지 반드시 버티셔야 합니다.”
이통이 고개를 숙이며 말하자, 조순은 크게 웃음을 지었다.
“하하! 그래, 그리하지. 그대가 돌아올 때까지 버텨 내겠네. 아, 중요한 것을 잊어버릴 뻔했군. 형님의 시신은 반드시 초현으로 모셔 주게.”
이통은 조용히 인사하고 현청을 떠났다. 물론 조순을 도와 이곳에 머물 수도 있겠으나, 끝까지 버티기는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이미 기세가 오른 유비를 외부의 지원 없이 이겨 내기는 힘드니, 차라리 원군을 모아 돌아오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고 도독이라면 달랐을까?’
문득 고순을 떠올린 이통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고순이라 한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아무런 방법이 없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 * *
이통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던 관우는 유비의 옆에 앉아서 천천히 부채를 흔들고 있는 제갈량에게 다가갔다.
이통이 완성을 떠날 것이라 예상한 제갈량의 말이 그대로 들어맞았으니, 관우로서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군사의 말이 정확히 맞았소이다. 이 관 모가 그대를 무시한 것을 용서해 주시오.”
장비는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관우의 모습에 순간 욱하는 마음이 들었으나, 이내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화를 낸다 한들 뭐가 바뀌겠는가. 대형은 이미 제갈량이 오랜 심복인 것처럼 아끼고 있는데 말이다.
장비가 유비를 바라보니, 그는 흡족한 듯 무릎을 내려치며 연신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리고 제갈량이 그 옆에서 무어라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군께서는 상책을 택하신 것입니다. 만약 이번 전쟁의 목적이 그저 남양과 여남 일대를 차지하는 것이라면, 완성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는 게 옳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조인의 시신을 가지고 돌아간다면, 주공께서 천하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장비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갈량의 말은 너무나 당연했으니. 조인이 이렇게 당한 이유가 무엇인가. 중앙에서 파견되었음에도 충분한 지원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조정의 행동은 마치 자신들의 진군을 막는 일보다 조인을 죽이는 게 더 중요한 문제처럼 느껴졌다.
‘뭐, 만약 조인이 밖으로 나서지 않고 완에서 옥쇄를 각오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테지만.’
장비는 곰곰이 생각하다 죽간의 존재를 떠올리고는 다시금 고개를 흔들었다. 조인이 완성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한들 그의 운명은 지금과 같았으리라. 간자가 있는 한 그의 패배는 예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마지막에 이통이 도착한 것으로 보아 조정도 조인을 구원하기 위한 시늉은 보인 듯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이미 조인이 죽었으니, 조가와 순가의 알력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장비도 죽간을 받지 않았다면 그림자 속에서 일을 꾸미는 자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정말 순가에서 조씨를 적극적으로 몰아내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원가가 패망하는 꼴을 보고도 그런 일을 저질렀다면, 순가는 유자의 이름을 달 자격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유비와 제갈량 사이에 여러 이야기가 오갔지만, 장비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흑막의 정체와 목적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었다.
한참 동안 상념에 빠져 있던 장비가 정신을 차리자, 마침 제갈량의 말 한마디가 귓가에 들어왔다.
“남양이 무너졌으니, 분명 유종에게 붙은 이들 일부가 우리에게 귀부하고자 할 것입니다.”
하기야 권세를 누리는 자들은 어려움을 겪으면 편하게 지내던 과거가 그리울 터였다. 게다가 과거에는 유비가 썩은 동아줄 같았는데, 지금은 도리어 조정을 받드는 세력이 무너지게 생겼으니 어쩌면 좋을지 갈팡질팡하고 있을 것이 빤했다.
그러나 장비는 약간 다른 생각을 떠올렸다.
‘우리가 유리해지자 허겁지겁 넘어오는 사람들이 과연 쓸 만할지는 잘 모르겠군. 분명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놈들일 터인데.’
제갈량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관우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군사, 그러면 대체 완성은 언제 공격한단 말이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적이 병사를 움직여 구하러 올 터인데.”
“관 장군의 말이 맞습니다. 분명 조정의 명이 내려오기 전에 조순을 구하기 위해 군을 움직이는 이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장비는 제갈량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이렇게 여유롭게 있을 시간이 없지 않은가. 지금이야 정예병 대다수가 하북에 있지만, 조정이 위기에 빠지면 금방 내려오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내 제갈량이 원하는 바를 알 수 있었다.
“지금 중원에서 큰 군세를 가진 이들은 하후돈, 하후연, 조홍 같은 조가의 인물들뿐이니, 조인이 죽은 지금 상황에서 출진을 망설일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조정도 저들을 온전히 믿을 수 있겠습니까? 마음속 한구석에 의심이 생길 것이 분명합니다.”
제갈량은 유비 삼 형제를 바라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지원군이 내려온다 한들 방어적인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관 장군께서 그들을 맡아 주신다면, 쉽게 무너트릴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희가 천하의 의기를 다시 세운다면, 분명 과거 동탁과 싸울 때처럼 중원 각지에서 제후와 의병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유비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지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하기야 계속해서 패전만 당하다가 제갈량을 만난 후부터 형주의 패권을 얻고 승리를 이어 가는 중이니, 저러는 것도 당연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유비가 제갈량에게 말했다.
“좋네. 어차피 형주의 물자는 군사가 호족들을 설득하여 받아 낸 것이 아니던가. 그대의 결단에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네.”
제갈량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였다.
* * *
진류, 하후가의 거처.
하후연은 자신에게 서신을 건넨 전령의 목을 잡아 내동댕이치고는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붉어진 얼굴로 콧김을 씩씩 내뿜는 것이 마치 당장에라도 전령을 죽일 듯한 분위기였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자식들이 나서 그를 말리려 했으나, 하후연의 힘을 누가 당해 내겠는가.
결국 상석에 있던 하후돈이 뛰어나가 하후연을 말렸다. 그럼에도 하후연이 참지 못하고 칼을 향해 손을 가져가자, 하후돈은 노성을 질렀다.
“종제, 그만두어라! 전령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러는가!”
“저 빌어먹을 놈이 가져온 서신을 종형도 보지 않았소이까! 자효(子孝)가 죽었다니요! 그럴 리가 없는데 말입니다!”
하후돈이 전령에게 물러나라고 눈짓하자, 하후연이 곧바로 으르렁대며 따라가려 했다. 그러나 하후돈이 제지하는 바람에 다시금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조가의 인물 중 전장에 가장 밝은 인물이 자효입니다. 저나 종형 같은 반편이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 녀석이 죽었다니… 믿을 수 없습니다!”
하후돈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한번 전령에게 달려가려는 하후연을 막기 위해 재빨리 허리춤을 잡아끌었다.
“그가 완성에서 유비를 막고 있다는 것은 너도 알지 않느냐. 일단 정확한 사실을 확인해 보자꾸나.”
하후돈의 말에 하후연은 씩씩거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사실 하후돈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인이 위험해졌다면 분명 허도에서 급전이 왔을 터다. 완이 떨어지면 허도가 바로 지척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는 조정에서 군대를 움직이라는 명을 내리지 않았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심각한 소식에도 하후돈은 급히 움직이지 않았다. 조비가 공의 자리에 오르고 조조가 원하던 대로 제후들을 호령할 기반이 만들어진 지금은 신중하게 움직여야 했으니.
그때, 또 다른 전령이 도착하였다.
“호위장군께서 조정의 명을 받아 허도로 향한다고 하십니다!”
하후돈은 그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우금이 허도로 간다는 것은 기주에 공백이 생기는 걸 감수하면서까지 남쪽에 병력을 보낼 일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진정, 진정 인이가 죽었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