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99
299화
조인의 급작스러운 죽음은 조정을 충격과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기 충분했다. 심지어 순욱조차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순욱이 느끼는 불안감은 뭇 관료들에게 전염되어 조정은 마치 시끄러운 저잣거리처럼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해졌다.
‘어쩌다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지?’
혼란 속에서 순욱은 전황이 악화된 이유를 곰곰이 떠올렸다. 이런 사태가 벌어질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유비가 움직인다는 것을 파악한 뒤, 곧바로 맞설 준비를 시작하였다. 먼저 중앙군을 맡고 있던 조인을 완성에 파견했고, 유비군의 기세가 심상치 않자 지원군을 보내기 위해 여러 장수에게 급전을 보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조정에서 보낸 서신이 굉장히 늦게 도착하였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수십 일 전에 움직여서 조인을 구원했어야 할 이들이 모든 전투가 끝난 이후에야 연락을 받은 것이다. 그나마 서평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이통 덕분에 조인의 시신이라도 찾아올 수 있었다.
“승상,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순욱은 애타게 부르짖는 목소리에 불안한 눈빛으로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황제와 신료들을 바라보았다.
지금 당장 세울 수 있는 대책은 수도를 이전하는 것밖에 없다. 완성이 함락된 이상, 허도는 바람 앞의 등불 신세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이곳에서 수성한다고 해도 급하게 끌어모은 병력으로 기세가 오른 유비를 상대하기는 힘들 터.
상황도 상황이니만큼 지금이라면 수도를 옮기더라도 반대하는 이가 적으리라. 그런 순욱의 생각을 정확하게 파악한 듯 순심이 나서서 말을 꺼내었다.
“폐하, 낙양의 재건이 완료되었으니, 적도들을 피해 낙읍으로 가시는 것이 좋을 듯싶사옵니다!”
그때, 최염이 앞으로 나와 순심의 주장을 반박했다.
“어찌 그리 쉽게 천도를 입에 담을 수 있는단 말이오! 폐하께서 낙양으로 파천(播遷)한다면, 유비를 상대하는 장수들은 어떤 생각을 하겠소?”
그러자 순심이 최염을 가리키며 말했다.
“도성이 위험에 빠졌으니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것뿐인데, 어찌 그런 말을 하는가! 그렇다면 이대로 폐하께서 위험에 처하는 것을 보고만 있자는 뜻인가! 그게 아니면… 설마, 불순한 속셈을 품은 것은 아니겠지?”
“관내후! 그게 무슨 말이오!”
“사례교위! 그것을 가져오게!”
순심은 분노를 터트리는 최염을 무시하고 만총이 가져온 서신을 순욱에게 전달했다. 그러자 가만히 보고서를 살피던 순욱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최 공, 수춘후와 무엇을 꾸민 것이오?”
사적인 자리에서나 쓸 법한 호칭으로 자신을 부르자, 최염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승상, 무슨 뜻인지 모르겠소이다. 나와 수춘후는 서로 국가의 정책에 관하여 이야기했을 뿐, 지금 중요한 일은 그런 것이…….”
“이제 거짓말은 그만하시게!”
순심이 거세게 소리치며 최염의 말을 끊었다.
“최 공께서는 수춘후를 따르는 사당을 조직했고, 그가 사적으로 인재를 뽑는 일에 가담하였으며, 조정을 모욕하였소. 인정하시오?”
최염은 순심의 말에 이를 갈았다. 분명 자신은 조정이 바로 서지 못함을 한탄한 적이 있다. 또 수춘후가 실시한 과거 시험 같은 제도의 시행에 도움을 주거나 그의 정책에 동조하는 젊은 관료들을 모으기도 했지만, 결코 불순한 의도로 행한 일이 아니었다.
“한조의 전통을 부정하고 작금의 시책을 붕괴시키려는 죄. 역모와 같소!”
순심의 선언에 만총은 병사들을 시켜 최염을 붙잡게 하였다. 하지만 최염은 곧바로 그들의 손을 뿌리치고 말했다.
“놔라! 폐하께 마지막으로 예를 표하고 내 발로 가겠다.”
최염이 공손히 예를 갖춰 인사하고 자리를 떠나자, 조정은 정적에 잠겼다. 그동안 순가의 천하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던 관료들이 그제야 현실을 자각하고 공포에 질린 것이다.
게다가 그동안 이런 일을 벌이지 않던 순가가 갑자기 강압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더더욱 두려움이 컸다.
사위가 고요한 가운데, 순욱이 정적을 깨트리며 말했다.
“이 정도면 됐네. 최 공의 청렴과 강직함은 뭇 관료들이 다 아는 사실이네. 그간의 공이 적지 않으니 이번 일은 더는 논하지 않도록 하지. 그가 생각하기에 우리의 정책이 불합리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네. 다만, 외방의 제후인 수춘후와 이야기한 것이 문제이지만, 큰 죄라 보기는 어렵겠지.”
“알겠습니다.”
순심의 행동은 조정의 신료들에게 경고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최염같이 청렴하고 강직한 인물도 언제든지 역모로 엮을 수 있으니, 미리 조심하라는 의도였다.
그러다 보니 한바탕 소란이 생긴 이후로는 누구도 최염처럼 천도를 반대하지 못하고, 그저 순욱이 꺼낸 말에 따라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다만, 최염이 모은 하급 관리들은 마음속에 불만을 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수인 최염이 당한 일에 분노했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게 없어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 * *
허도의 모처.
병석에 누워 있던 진규는 연신 쿨럭거리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마구 웃느라 점점 기침이 심해지자, 진응이 옆에서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애썼다.
“아버님, 이만 수춘으로 가시지요. 이제 원하시는 바를 모두 이루지 않았습니까. 주군께서도 혹시나 아버님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계십니다.”
진응의 말에 진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러시겠지. 마음이 따뜻한 주군께서는 이 노인네가 어디 가서 객사나 하지 않을까, 혹여 아프지는 않을까, 항상 걱정해 주셨으니. 오히려 그분께서 위험한 곳에 계실 때가 더 많은데도 말이야.”
“주군의 걱정을 덜어드리는 것도 신하의 의무이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하지만 나의 욕심이 크니 이렇게 남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노쇠한 몸을 이끌고 돌아간다고 한들 주군께 짐만 되지 않겠느냐?”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내 진공대와 약조한 것이 있다.”
진규의 눈빛이 굳은 결심을 한 듯 단단하게 변했다.
“모략에 성공하더라도 공을 내세우지 않고 이곳에서 내 한목숨을 바치기로 말이다.”
진응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에 깜짝 놀란 눈이 되어 진규를 쳐다보았다. 공을 내세우지 않는 것이야 충분히 납득되는 일이었다.
지저분한 모략을 어찌 공으로 내세우고 보답 받기를 바란단 말인가. 혹여나 주인에게 그 먼지가 닿지 않도록 평생 조심하고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목숨을 바치는 것은 너무 과했다. 모사가 하나의 계략을 짜낼 때마다 자신의 목을 걸어야 한다면, 대체 누가 모략을 짜고자 하겠는가.
“너는 큰 그림을 보지 못하여 모르겠지만, 나와 공대의 모략은 망탁(왕망과 동탁)이 한 짓과 같은 것이다. 어쩌면 한조의 명맥을 끊을지도 모를 일이지. 그러니 내 어찌 주군께 돌아가 떳떳하게 고개를 들 수 있겠느냐. 나는 그저 다시 한조의 몰락을 불러일으킨 죄인으로 죽을 뿐이다.”
“아버님, 서신의 도착을 늦추고, 하급 관료들이 상급 관료들을 믿지 못하게 만드는 일이 어찌 한조를 몰락시킨다는 것입니까? 소자의 짧은 식견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허허, 언뜻 보기엔 상관없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우리가 한 일은 한조의 주춧돌을 파내고 기둥뿌리를 썩게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분명 겉으로 볼 때는 멀쩡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엉망일 것이다. 하지만 승상은 그저 대들보와 기둥을 수리하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겠지. 제도를 바로잡음으로써 천하를 안정시킬 수 있으리라 믿는 자이니 말이다. 뭐… 그의 생각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지만, 그 정도로는 썩어 빠진 한조를 바꿀 수 없을 터… 쿨럭쿨럭!”
쉬지 않고 말을 하던 진규는 한바탕 기침을 쏟아 낸 뒤, 진응의 손을 잡고 말했다.
“모략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하찮아 보이는 일이라도 차근차근 진행해야 한다. 기억하거라. 그 어떤 지고(至高)한 일이라도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진응은 그제야 비로소 진규가 행한 일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진규는 그동안 한미한 직책에 있는 관리에게도 감사를 표했고, 그들이 간단한 부탁을 들어줄 때도 큰 보상을 주었다.
평소 친절한 대접을 받던 이들은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조정의 존망이 달린 상황인데도 급전 보내는 일을 잠시 멈추기까지 했다. 그 결과, 조인의 죽음이라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주군께서는 아버님이 무사히 돌아오시길 바랄 것입니다.”
그러자 진규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진응의 두 손을 더욱 꽉 쥐었다.
“이것은 개인적인 욕심이라 해 두자꾸나. 주군께서는 고향의 피비린내를 씻어주셨는데, 어찌 천하를 혼란으로 물들인 노인네가 함께할 수 있겠느냐. 그리고 한 시대의 몰락을 내 손으로 만들었다는 것에 만족한다. 하하하, 쿨럭쿨럭! 역시 나는 탐욕에 찌든 소인배로구나.”
“그렇지요. 진가는 언제나 탐욕이 그득하고 거짓이 입에 붙은 집안입니다. 하하하!”
진규를 따라 웃는 진응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혀 있었다.
“오늘은 잠이 빨리 오는구나. 더는 객을 받지 말아라.”
진규는 진응의 걱정스런 눈빛을 알아채고 고개를 저었다.
“별일 아니니 걱정 말아라.”
진응은 진규의 말에 안심하고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이 늙은이의 욕심이 참으로 끊이질 않구나. 아들놈이 편히 지내지 못할까 걱정이 드니…….”
진규는 점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본능적으로 삶의 끝이 다가왔음을 깨달았다.
“참으로 기쁘구나. 유자로서 모실만하신 주군을 만났으며, 가문의 이름을 널리 알렸고, 죽을 자리도 잘 찾았으니 말이다.”
그날, 진규가 졸하였고, 승태는 수춘으로 돌아왔다.
* * *
한편, 조정이 혼란에 빠져 있을 때, 관우는 남양에서 벌어진 두 번의 싸움에서 모두 승리를 얻어 냈다.
처음 상대는 공을 세우겠다고 나선 남양의 뭇 도적들이었다. 관우는 기병들을 이끌고 그들을 모조리 물리쳤다.
두 번째는 무관에서 종요가 보낸 마등의 군세였는데, 관우는 일신의 무예로 그들을 쉽게 격파했다.
군을 이끄는 마등의 두 아들은 양주 기병의 장점을 살려 뒤를 기습하기 위해 빠르게 유비군을 노렸으나, 관우가 그들을 막아섰다.
그 전투의 결과는 너무나 처참했다. 지휘관인 마철, 마휴가 모두 관우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관우의 실력을 알지 못하던 마씨 집안의 인물들은 호기롭게 달려들었지만, 반대로 그들의 목이 달아났다.
게다가 관우는 마대가 이끄는 보급까지 모조리 빼앗아 종요가 운신하기 어렵게 만들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마씨 일가와는 더는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을 만큼 큰 원한을 쌓게 되었다. 하지만 관우는 이번 전투를 통해 일신의 무예로 도적과 거친 서량병들을 처리하였다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심지어 조인을 죽인 사람이 장비가 아니라 관우라는 소문까지 겹치며, 천하의 무인들 가운데 정점에 섰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천장이 완성에서 지자, 무신이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