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
삼국지 : 미완의 군주 2화
승태의 발소리와 냄새 때문에 토끼들은 빠르게 도망갔고, 안 그래도 밥을 굶
은 승태는 힘이 점점 빠져나갔다.
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창을 토끼에게 던졌다.
퍽!
창이 바닥에 박히는 소리가 아닌, 뭔가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배에
창이 꽂힌 토끼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승태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달려갔다.
“이게 맞네?”
토끼로서는 억울할 것이었다. 자신은 분명 회피 동작을 한다고 방향을 틀었는
데, 재수 없게도 날아간 창에 자신의 몸을 가져다 댄 꼴이었으니 말이다.
“역시 운이 좋아! 복권이라도 사야 하는 거··· 아니지. 내가 조조에게 가면
유비 목도 베고, 조비 대신 위나라를 먹어서··· 히야! 역사를 바꾸는 황제가
되는 거지! 멋지네, 엄청 멋져. 젠장······.”
암울한 감정을 숨기기 위해 게임에서나 꿈꿀 법한 일을 입 밖으로 꺼내 봤지
만, 별달리 썩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승태는 숨이 끊어진 토끼를 창에 꽂아 놓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다시 창을 들었다.
“일단··· 빼야겠지?”
창에 박힌 토끼를 빼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좀체 빠지지 않는 탓에 피
만 손에 잔뜩 묻힐 뿐이었다.
한참이나 고민한 승태는 인상을 찡그리고 창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발로 토끼를 고정한 후 창을 뽑았다.
발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엄청난 배덕감이 되어 그의 가슴을 후려쳤지만, 배가
너무 고픈데 어쩌겠는가.
창이 빠지자 토끼의 몸에서 피가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문제는 피가 나오는
자리에서 내장도 같이 흘러나왔다는 것이다.
“아, 젠장······.”
갑자기 전에 본 참담한 몰골의 시체들이 떠오르면서 먹은 것도 없는 속이 뒤
집히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승태는 일단 먹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실눈을 뜨고
창을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부드러운 토끼의 배에 창날을 푹 쑤셔 넣고는 길게 갈랐다.
승태는 차마 보지 못하겠는지 고개를 돌린 채 토끼의 배 속으로 손을 집어넣
어 내장을 뜯어냈다.
“우, 우욱······.”
다시 한번 속이 뒤집힐 뻔했지만, 가까스로 참아 냈다.
“어휴, 머리는 어떻게 하냐?”
승태는 토끼의 귀를 잡아 올렸다. 온통 피투성이인 데다 생기가 사라진 눈동
자이지만, 살아있을 때의 모습이 떠올라 승태는 저도 모르게 무거운 한숨을
내뱉었다.
이윽고 그는 머리가 안 보이게 토끼의 귀를 나무에 걸었다. 그러고는 창을 조
금씩 대고 짓이기듯이 목을 잘라 냈다.
뼈가 걸리는 느낌이 엄청나게 거슬렸지만,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문 채 참아
냈다.
그런 후, 피를 뺀다고 꼬리를 위로 들어 올리는 순간, 피가 옷에 튀었다.
“으으, 찝찝하긴 한데··· 나중에 씻지, 뭐.”
그런 말을 내뱉고 나서 속으로 한번 피식 웃었다. 어차피 땀과 흙이 범벅된
옷인데 피가 좀 튀었다고 유난을 떨다니 말이다.
실없이 웃던 승태는 사위가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마음이 급해진 그는 빨리 짐을 챙기고 그 자리를 떠났다.
***
빛이 거의 사라져 어두컴컴해진 숲속.
승태는 우두커니 서서 풀어헤친 머리를 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깊숙이 들어
온 숲이 어둠에 잠기자, 도대체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 돌겠네! 숲을 빠져나가기는 글렀고··· 오늘 밤은 여기서 보내야겠다. 하
아, 뭐라도 해 먹으려면 불이 필요한데······.”
승태는 불을 피우기 위해 마른 나뭇가지와 나뭇잎 같은 것들을 구해 왔다. 자
리에 주저앉아 창으로 나무를 긁어 톱밥을 얹고 난 후, 가장 단단해 보이는
나뭇가지로 홈이 난 나무를 비비기 시작했다.
“아, 손 다 해지겠다··· 불난다며? 생각보다 잘 난다며?”
분명 연기가 나기는 하는데, 잠깐 생기더니 이내 다시 잠잠해지기를 반복했
다. 하지만 승태는 포기하지 않고 불이 타오를 때까지 열심히 나무를 비볐다.
이윽고 손이 다 헐기 직전에 나무 위로 불길이 모습을 드러내자, TV에서 본
대로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입김을 살살 불었다. 그러자 연기가 코로 들어와 간
질였다.
“켁켁, 후우··· 훅, 훅, 후우··· 제발, 제발 꺼지지 마라.”
승태는 불 위로 아까 모은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올렸고. 그러자 불은 안정적
으로 유지되었다. 그와 동시에 따뜻한 온기가 승태의 몸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으아아··· 따뜻하다. 그래서 불은 피웠는데, 이건 어떻게 먹어야 하냐······.”
토끼의 발을 쥐고, 불 위로 이리저리 구우려다가, 도저히 손이 뜨거워서 토끼
를 꺼냈다.
“아이고, 토끼 한번 먹으려다 내가 먼저 구워지겠다.”
뭔가 좋은 방법이 없나 궁리하던 승태는 토끼를 창에 꽂아 불 위에 조심스레
올렸다. 해냈다는 자부심이 가슴에 가득 찰 때 즈음에야 털이 타는 오징어 냄
새에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알 수 있었다.
“아, 털 타는 냄새구나. 아오, 미리 가죽을 제거해야 했는데······.”
사방에 노린내가 진동했으나, 승태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보다는 무엇인가
를 먹을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컸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마음도 토끼 고기를 한입 씹자마자 모두 파괴되었지만 말이다.
탄 맛과 누린내, 그리고 털이 씹히는 감촉에 인상이 한껏 찌푸려졌다.
“마늘이라도 있었으면··· 아니지. 일단 가죽이라도 벗기면 좀 나으려나?”
군 시절, 아무거나 잘 먹는다는 소리를 듣던 승태이지만, 고수만큼은 도무지
적응할 수 없었다. 당시에 미나리인 줄 알고 쌀국수에 한 움큼 집어넣었는데,
한입 먹는 순간, 모조리 뱉어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끔찍하기 짝이 없는 맛이었는데, 지금 눈앞의 토끼 고기가
딱 그 꼴이었다.
“입아, 토끼를 잡아 구웠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결국, 식사를 포기한 승태는 토끼를 창에서 빼냈다. 그러고는 주변의 굵은 나
뭇가지를 주워 불 위에 올려놓고, 나무 밑동에 기대앉아 머리를 뒤로 젖혔다.
“훈연하면 냄새도 사라지겠지?”
훈연 요리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그렇게 하면 잡냄새가 사라진다는 것을 유
튜브에서 본 기억이 났다. 승태는 잘 익은 고기를 기대하며 바싹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그러나 그때, 그의 의지와 달리 눈이 점점 감기기 시작했다.
사실 토끼 사냥이나 불을 피우는 것은 꽤 고된 일이다. 그랬기에 잠시 휴식을
취하자 피로가 그의 몸을 잠식해 왔다.
“슬슬 내일을 위해 잠을······.”
잠시 눈을 붙이려던 승태는 뭔가 위화감이 들어 주변을 쓱 훑어보았다. 그러
던 중 노란 눈동자 몇 개와 눈이 마주치자, 순식간에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번쩍 정신이 들었다.
“설마··· 아니겠지?”
하지만 ‘설마’는 언제나 사람을 잡는 법이고, 틀리길 바라는 예측대로 언제나
확실하게 들어맞는 법이었다.
솔직히 늑대와 같은 놈들이 모이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토끼의 피와 내
장은 여기저기 흩뿌려 놓았지, 고기 굽는 냄새는 아무런 방비 없이 퍼져 나가
게 두었지. 더욱이 혼자 있어서 포식 동물들이 습격하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이 없었다.
현대의 대한민국에서 편히 살아온 승태가 야생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가. 그리
고 설령 알았다고 해도 그런 걸 챙길 여유가 없었다.
아우우! 컹컹!
승태는 바로 양손에 창과 토끼 고기를 들고 뛰기 시작했다.
‘젠장! 젠장! 젠장!’
늑대의 하울링 소리가 늘어났다. 승태는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시간이 흐를
수록 살 수 있다는 희망도 조금씩 줄어들어만 갔다.
계속된 스트레스로 인해 미쳐 버릴 것 같던 승태는 정상적인 사고가 더 이상
불가능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늑대에 대한 두려움보다 자신의 처지에 대
한 원망과 분노가 쌓여 가기 시작했다.
‘누구는 이 세계에 떨어지면 마을이나 침대에서 일어나던데! 왜 나는 전장 한
복판에 일어나서 야생에서 굴러야 하는 거야! 억울하다 못해 어이가 없네!’
얼마 지나지 않아 힘이 빠진 승태의 걸음은 느려졌고, 늑대 중 일부가 포위하
듯이 양옆으로 추월하여 달려나갔다.
‘이렇게 될 거였으면 숫자가 늘어나기 전에 싸울걸.’
숨이 턱까지 차오른 승태는 적어도 한 마리는 길동무로 삼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그 순간, 늑대의 것과는 다른 울음소리가 숲 안쪽에서 들려왔다.
꾸어어어!
거대한 곰 한 마리가 갑작스레 나타난 것이었다.
흥분한 곰이 앞발로 내려치려 하자 늑대 몇 마리가 허겁지겁 뒤로 물러났고,
승태는 그 틈을 타 토끼 고기를 바닥에 내동댕이친 채 도망갔다.
기어이 놈들을 떨쳐 내는 데 성공했는지, 곰과 늑대들이 싸우는 소리가 아스
라이 들려왔다.
사실 늑대들에게 승태는 별로 중요한 사냥감이 아니었다. 하지만 의도와 다르
게 곰의 영역으로 들어간 순간, 엉뚱한 곳으로 불이 번지고 말았다.
물론 늑대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승태가 가진 토끼 고기에 현혹되어 영역을 넘은 대가였다.
결국 곰과 늑대들이 서로를 견제하는 사이, 승태는 망설이지 않고 걸음을 옮
겼다.
한참을 이동한 후에 승태는 문득 오른발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갑자기 멈춰 섰다.
그런 후, 바닥에 주저앉아 발을 살폈다.
“윽! 뭘 잘못 밟았나?”
따끔거리는 고통에 신발을 벗어 보니, 온통 쓸린 상처와 거기서 흘러나온 피
가 발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당황한 승태는 상의 하단을 조금 찢어 상처 부위를 묶었다.
“으윽! 진짜, 아··· 쓰읍, 진짜······.”
괜히 소리를 냈다가 늑대나 곰이 올까 싶어 입을 앙다물었다.
새삼 밀려드는 무력함에 승태는 자신이 달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그때, 갑자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풀숲에서 들려왔다. 승태는 화들짝 놀라
창을 들었다. 하지만 재빠른 반응이 무색하게도 단순히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
리는 소리였다.
힘이 완전히 풀려 버린 그는 창을 털썩 내려놓았다. 그러자 팔이 부들거리기
시작했고, 이내 근육통이 밀려왔다. 머릿속에는 쉬고 싶은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런데도 승태는 휴식보다 안전을 택했다. 조금이라도 늑대들과 곰에게서 더
멀어지고 싶은 마음에 주변을 살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려면 지금 움직여야겠지······.”
맹수들을 만난 이후로 승태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언제, 어떤 짐승에게 습격당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그를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이미 심신이 지쳐 버린 탓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앞으로 굴러 버렸다.
한참을 끙끙거리던 승태가 부들거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그러고
는 새삼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온통 해진데다가 여기저기 찢어지고, 진흙과 피로 범벅이었다. 더는 옷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였다. 가슴을 가리는 흉갑의 철편들은 모두 떨어
져 상태를 유지하기도 어려웠다.
“하아, 설마 이 짓을 또 하게 될 줄이야······.”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하는 모든 행동이 허무하고 의미가 없는 것
만 같았다.
“똥 밭에 굴러도 사는 게 좋다고는 하던데··· 난 왜 전혀 아닌 거 같지?”
어이없는 상황과 고통으로 인하여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지만, 화낼 대상이
마땅치 않았다. 승태는 하늘에 삿대질하며 따지듯이 말했다.
“다시 살려 주신 건 정말 고마운데, 왜 이런 고통을 주는지 이해가 되지 않네
요! 차라리 아예 태어날 때로 보내 주든가! 죽이고 싶은 거면 깔끔하게 보내
버리든가! 왜 이러는 거야 정말!”
슬픔, 허무함, 절망.
승태의 가슴속에 여러 부정적인 감정들이 교차하였으나, 이제는 오기만이 남
았다.
“내가 만약 살아서 돌아가면, 이 숲은 홀라당 다 태워 버릴 거야! 진짜 다 밀
어 버릴 거라고! 잘 들어! 내가 다시는 이 자리에 숲이 안 생기게 할 거라고!”
허공에다 한바탕 분노를 쏟아 낸 후에야 한결 차분해진 승태는 창을 지팡이
삼아 일어났다.
늑대와의 추격전으로 인해 그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은 상태이지만, 입은 바
싹 말라 있었다. 갈증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었으나, 참을 수 없는 분
노가 그에게 힘을 주는 것만 같았다.
절뚝거리며 걷던 승태는 방향을 잡기 위해 나무 밑동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소득은 없었다.
“이 빌어먹을 숲··· 쿨럭, 내가 반드시 나가고 만다.”
갈증이 점점 심해져 속이 타는 것만 같았다. 그와 비례해 하늘에 대한 원망
역시 점점 커져만 갔다.
***
승태는 고민했다.
계속 움직일지, 아니면 휴식을 청할지 말이다.
“간다. 잠을 줄여서라도 간다.”
억울해서라도 여기서 멈춰 설 수는 없었다. 승태는 다시 한번 몸을 일으켜 별
들을 바라보며 대강의 방향을 잡았다. 그러고는 힘을 내 다시금 이동했다. 피
로와 고통이 끊임없이 괴롭혔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 숲을 박
살 내겠다는 의지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하루나 이틀이 지난 것은 아닐 터였다. 그랬으면 몸이 못 버텼을 테니까. 그
러나 체감상 그간의 시간은 그보다 더 긴 것처럼 느껴졌다.
망가진 것은 시간 감각뿐만이 아니었다. 누적된 피로와 당 부족으로 정신도
오락가락했다. 그런데도 승태가 쓰러지지 않고 계속 걸을 수 있던 것은 스스
로 걸고 있는 암시 때문이었다.
“태운다. 다 태워 버린다, 이 빌어먹을 숲.”
승태는 거의 기대다시피 창에 몸을 맡긴 채 걸었다. 위태롭기 그지없는 걸음
이었다.
그 순간, 제대로 아래를 확인하지 못하고 창을 잘못 내디뎠다. 창의 끝이 나
무줄기를 짚고 비틀어져 버린 것이었다. 그 탓에 그는 넘어져 구를 수밖에 없
었다.
“야이······.”
승태는 신경질적으로 짜증을 냈다. 하지만 듣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저 숨넘
어가는 사람이 미약하게 내뱉는 숨소리처럼 들렸을 것이 분명했다.
그 정도로 승태는 힘이 빠져 있는 상태였다. 그가 다시 창을 잡고 일어나려
했지만,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점차 주변이 흐릿해 보이기 시작
했다.
“결국··· 이렇게 고통만 주고 데려갈 거면서··· 참 오래도 끌었다. 하, 아무
리 내가 신을 안 믿는다고 해도 그렇지··· 이딴 식으로 엿을 먹이면 믿겠냐
고······.”
승태는 이대로 눈을 감는 순간이 자신의 끝임을 직감했다. 그렇기에 그는 온
힘을 다해 오른손을 들어 올렸고, 하늘을 향해 엿을 날렸다. 그제야 비로소
그의 얼굴에 슬며시 웃음을 떠올랐다.
문득 승태는 은형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조금 늦게 가네. 아니, 이정도면 일찍 가는 건가?”
눈앞이 점점 흐려져 가자, 승태는 왠지 편안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그의 이마에 빗물이 툭툭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빗물이 그
의 입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갈증이 씻겨 나가듯이 사라졌다.
승태는 목숨을 건질 수 있게 된 이 상황에 더욱 짜증이 났다.
‘며칠 동안 괴롭혔으면 된 거 아니냐? 여기서 뭘 더 어떻게 하라고!’
그래도 살고 싶었는지, 승태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비를 받아 마셨다.
그렇게 얼마나 빗물을 받아 마셨을까, 갈증은 해결됐지만, 승태는 일어날 힘
이 아예 없었다. 그렇게 원하던 물을 마셨음에도 움직일 의지가 생기지 않았
다. 허탈함 때문에 분노로 가득하던 의지도 꺼져만 갔다. 오히려 이대로 눈을
감고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신, 네가 자애로운지는 잘 모르겠고, 죽일 거면 깔끔히 해. 거참, 취미 한번
고약하네. 어디 올라가면 한번 보자.’
그렇게 눈을 감고 있으니, 귀에 익숙한 언어가 들려왔다.
“이곳에 막사를 올릴 거니까, 준비해 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