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00
300화
승태는 요하에서의 일을 모두 끝내고 수춘으로 돌아왔다. 승전의 귀로이기에 대다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걷고 있었지만, 이후에 큰 난관이 기다리는 것을 아는 승태와 노숙, 그리고 유엽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빌어먹을, 물론 유비가 움직일 거로 생각했지만, 조 장군이 나섰으면 충분할 터인데…….’
하기야 조정에서도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조인의 능력이라면 유비 정도는 쉽게 이길 수 있다고 말이다.
원래 역사에서도 조조를 제외하고 조조군에서 유비를 이긴 것은 조인이 유일하였으니, 조정의 인선은 나름 훌륭한 셈이었다.
물론 조인 역시 사람이니 질 수도 있고,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굳이 요하에 있던 자신까지 불러야 할 이유가 있는가.
‘뭐, 일단 가 보면 무슨 일인지 알 수 있겠지.’
자신이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조정은 큰 위험에 처한 듯했다. 그러니 이 상황에서 다시 권력을 정비하겠다고 수춘에 마수를 뻗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이 정도면 되었지. 혹여 조정이 유비의 기세에 놀라 다시 낙양으로 수도를 옮긴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고 말이야. 나와의 거리가 좀 더 멀어지니 중앙의 간섭은 더욱 줄어들 테고.’
승태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관청으로 향했는데, 그곳에서 굉장히 반가운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바로 단이가 관료들과 함께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승태는 이제 중학생 정도의 나이가 된 단이를 바라보며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그간 운동도 꽤나 열심히 했는지 아직 어린데도 풍채가 남달랐다. 하기야 여포의 피를 물려받은 아이가 평범하겠는가.
‘혜가 보고 싶네. 오늘은 대충 끝내고 집에 들어가야겠다. 그나저나 누구 아들인지 늠름하기 그지없구나. 내가 어릴 때는 어른들에게 주눅 들어서 감히 나서지도 못했는데.’
승태는 자신을 마중 나온 조단이 너무나 기특하여 달려가 껴안아 주고 싶었다. 그러나 속마음과 다르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무뚝뚝하기 그지없었다.
“어찌 이리 밖으로 나왔느냐?”
그러자 조단은 절도 있게 걸어 나와 예를 표하였다. 승태는 문득 고개를 돌려 유엽을 보았는데, 그는 너무나 기뻐하며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그래서인지 마중을 나온 일조차 유엽이 시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버님께서 오랜 시간 전장에서 어려운 시간을 보내셨는데, 어찌 아들이 되어 나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승태는 딱딱한 단이의 반응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어리광을 피워도 될 나이인데 벌써 이리 커 버렸다고 생각하니, 새삼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좀 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부족한 능력으로 이리저리 전장에 불려 나가느라 그러지 못해 참으로 애석할 뿐이었다.
“별다른 일은 없었느냐?”
“조정에서 아버님을 찾았습니다.”
순간, 표정이 굳어진 승태는 단이의 옆에 서 있던 제갈근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는 곧장 고개를 숙이며 조정에서 내려온 장계를 내밀었다. 붉은 수실로 묶인 전서는 급한 명령을 의미했으니, 열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서 이 사실이 그동안 내게 보고되지 않은 것인지 궁금하군.”
단이는 차가운 승태의 말에 당혹할 법도 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숙이고 답하였다.
“아버님이 요하에서 받으신 전서와 같은 내용이기에 보고를 올리지 않았습니다.”
승태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것은 자신이 판단할 일이었다. 아무리 장자라지만 조정에서 보낸 장계를 마음대로 처리해서는 안 됐다. 그러나 신료들이 모두 보는 자리에서 단이를 혼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았다.
앞으로 자신이 직접 움직일 때마다 단이가 대리로 수춘을 다스릴 터. 그런데 여기서 체면을 깎아 버린다면, 나중에 분명 신료들이 무시할 게 빤했다.
승태가 질책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던 때, 조단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신료들과 함께 판단한 바로 아버님이 귀환하기 전에 조서를 보냈다면, 큰일이 생길 게 분명했습니다.”
“흠, 큰일이라니?”
“만약 그랬다면 조정의 명을 가져온 이의 말을 따라야 했겠지요. 그럴 경우, 그자는 아버님이 없는 틈을 타 수춘의 뭇 신료들을 겁박했을지도 모릅니다.”
조단의 입에서 겁박이라는 말이 나오자, 승태는 당황했다. 남의 영역에서 그런 짓을 한다면 필시 대단한 자임이 틀림없으리라.
“혹시… 조연이 와서 그런 말을 한 것인가?”
순심이라면 조단이 압박감을 가질 만하였다. 사실 순심이 한 번씩 오갈 때마다 승태 본인도 심장이 떨리니 말이다.
“순 조연은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승태는 누가 압박을 했다는 것인지 더욱 궁금해졌다. 웬만큼 뛰어난 인물이 아니고서야 수춘에 있던 이들이 대응하지 못할 리 없었다. 다행히 조단은 그의 의문을 금방 풀어 주었다.
“태산 태수 여건입니다.”
여건이라면 조조의 밑에서 기병을 이끄는 직책을 맡은 적도 있고, 도적을 토벌하는 재능이 뛰어난 장수였다.
‘요하에 있는 나까지 조정에서 부르는 상황에 당장 형주로 내려가지 못할망정 그자는 지금껏 수춘에서 이따위 수작이나 부렸단 말인가? 그것도 단아 혼자 있는 이곳에서?’
물론 조단의 뒤에서 함께 일을 수행하는 이들이 많으니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았으리라.
특히 서주의 진가와 노가, 양주의 손가와 같은 여러 명문가에서 수춘을 떠받드니, 여건이 장난질을 하더라도 쉽게 흔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기분이 나쁜 것은 어쩔 수가 없군.’
승태가 고개를 돌리자, 노숙이 붉은 실로 묶인 서신들을 모두 읽어 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 관청에서 서서가 뛰어나와 노숙에게 무어라 귀엣말을 건넸다.
“여건이 애가 탈 만했군.”
노숙의 말에 승태는 문득 자신이 모르는 사실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무슨 일입니까?”
“조정에서 주군께 명령을 내려 여남으로 향하면, 그동안 여건은 서주를 장악하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서주를 장악한다? 그간 조정에서 계속해서 애쓴 일이긴 하지만, 과연 서주의 대가들이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의 말을 듣겠습니까?”
승태가 외방에 나가 있는 동안 조정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서주를 중앙의 영역으로 삼기 위해 계속 작업을 해 왔다.
그도 그럴 것이, 승태가 그간 노력을 쏟은 결과, 서주의 물산은 도겸이 통치할 때처럼 다시 풍부해졌기 때문이다. 과거, 기주와 필적할 정도로 부강한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뭐,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지금, 조정은 돈이 점점 궁해지니 서주가 굉장히 탐나겠지. 하지만 탈이 나지 않게 한 번에 삼킬 수가 없어 이런저런 계략을 꾸미는 것일 테고.’
“주공의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요. 하나 만일 여건이 서주목이나 자사로 임명되면 어찌 되겠습니까? 아마 서주에서도 그를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자 서서도 옆에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주군께서 군을 움직이시면 태산 태수에게 서주의 치안을 맡긴다는 이야기가 조정에서 나온 건 사실입니다.”
“흐음, 원직이라면 조정의 소문을 잘 추려서 가져왔을 테니, 아마 맞는 말이겠지요.”
자신을 믿어 주는 승태의 말에 서서는 살짝 웃었다. 그런 서서의 모습을 처음 본 조단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승태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승태는 조단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신료들도 두 사람을 우르르 따라가기 시작하였다.
‘서서의 말대로라면 여건이 무슨 짓을 꾸몄는지 대강 이해는 가네.’
만약 승태가 조정의 명에 따라 곧바로 여남으로 떠났다면, 분명히 여건은 주인이 없는 서주에 어떻게든 군을 주둔시켰을 것이다.
물론 승태가 수춘에 먼저 들렀으니, 여건의 계획은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서주를 차지하려는 조정의 의지가 강한 이상, 또 다른 수작을 부릴지도 모르니 계속해서 주시해야 할 대상이었다.
조단과 수춘의 관료들이 조정의 전서를 보고하지 않은 이유를 깨달은 승태는 뒤에서 따라오던 제갈근을 향해 웃음 지었다.
“그동안 잘해 주었네. 내 갑자기 다그친 것을 사과하지.”
“아닙니다. 주군께서 직접 판단하셨으면 더욱 현명한 결정을 내렸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하, 설마 그렇겠는가. 나야 능력이 좋은 이들의 말을 듣고 결정할 뿐이지. 단이가 내린 결론 또한 그대들의 도움이 크겠지.”
그러자 제갈근은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였다.
그런데 승태 일행이 현청에 들어가기 직전, 관료 하나가 빠르게 달려왔다. 그는 순간 승태와 높은 직위의 인물들이 있는 것을 보고 당황해 허둥지둥하다 급히 인사를 올렸다.
“후께서 행차하신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해…….”
유엽이 그 어리바리한 관료를 꾸짖으려 하였으나, 승태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만하시지요. 저희가 방금 도착했으니 모를 수 있는 법입니다. 자네는 할 일을 하게.”
그러자 관료는 재빠르게 일어나 서서에게 다가갔고, 그 모습을 본 유엽은 약간 불만 어린 표정으로 승태에게 말했다.
“하지만 승전을 알리는 주군의 행차를 방해한 것은 큰 잘못입니다.”
승태는 엄하게 말하는 유엽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공식적인 개선식도 아닌데 너무 과한 처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의 경중에 따라 다르지요. 괜한 허례허식 때문에 중요한 보고를 놓친다면, 그것이 더 큰 죄 아니겠습니까?”
“맞는 말씀이십니다.”
그제야 유엽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승태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유엽의 아부는 영 익숙해지지 않는단 말이야. 너무 대놓고 하니까 오히려 기분이 좋지가 않아.’
잠시 후, 관료의 말을 듣고 있던 서서가 큰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승태의 곁에 다가오자, 아부를 떨던 유엽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유엽은 고까운 표정으로 서서를 째려보았지만, 승태는 급한 일임을 알아차리고 물었다.
“무슨 일인가?”
“그, 그게… 조 장군과 진 대리께서 졸하셨다는 소식입니다.”
승태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물론 진규의 죽음은 가슴이 아프지만, 나이가 많으니까 생길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조인의 죽음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유비군을 막고 있어야 할 조인이 갑자기 왜 죽었단 말인가. 설마…….’
승태는 얼이 빠져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승상께서 허도를 버리고 낙읍으로 수도를 옮기실 것으로 보입니다.”
충격적인 이야기가 이어지자, 승태는 머리를 부여잡고 휘청거렸다. 조인과 진규의 죽음에 슬퍼할 새도 없이 곧바로 천도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조인이 죽을 때까지 조정은 대체 무엇을 한 것이지? 게다가 기다렸다는 듯이 낙양으로 천도한다니……. 이제 유비는 누가 막는단 말인가. 설마 나를 여남으로 보내는 이유가… 하하, 앞으로 고생길이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