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06
306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거세지는 유비의 기세에 조정은 황제를 모시고 낙양으로 천도를 하였다. 그 여파는 중원을 뒤흔들 게 분명했지만, 아직까지는 큰 영향이 없었다.
작금 유비가 완성의 조순을 포로로 잡았고, 무관과 도양을 향하여 진군하고 있다는 소식이 천하에 퍼졌기 때문이다.
무관은 관우가, 도양은 장비가 직접 군을 이끌며 노렸고, 유비는 완성에서 주둔하며 그 둘의 뒤를 단단히 지키고 있었다.
물론 조정도 마냥 손 놓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허도에서 하후돈, 우금, 이통, 허정 등 중원의 이름난 이들이 나섰고, 장안을 중심으로 마초와 가규, 곽원의 군세가 모여 관우와 장비를 막기 위해 움직였다.
그렇게 여러 군세가 바쁘게 움직이며 적을 상대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지금, 화북과 삼보는 전쟁의 수혜를 톡톡히 입고 있었다.
조정은 남쪽이 어지러운 상황에서 화북마저 난이 일어나면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인지, 서주에서 가져온 양곡의 대다수를 각지로 보내 백성들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그러나 세상일이 언제나 계획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조비는 산처럼 쌓인 재화들 앞에서 포도를 씹으며 웃음을 지었다.
“참으로 대단하군, 대단해. 다른 놈들에게 손 한 번 벌리지 않고 창고를 채울 수 있다니 말이야.”
그러자 그의 옆에 서 있던 사마의가 고개를 숙였고, 조비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간의 실패를 모두 잊을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공이니 말이야.”
조비의 살기 어린 눈빛에도 사마의는 여전히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사실 그간 승태를 노린 계략들이 모조리 무산되고, 이에 분노한 조비는 사마의에게 준 많은 권한을 빼앗아 버렸다.
그런데도 사마의는 별것 아니라는 듯 조비에게 충성을 바쳤고, 유비의 진군과 동시에 새로운 계획을 세워 실행한 것이었다.
“그저 명공의 능력이옵니다.”
“하하하하하! 덕분에 위왕의 권세를 만방에 떨칠 수 있으니 참으로 좋군.”
조비는 껄껄 웃음 짓느라 사마의가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니, 조비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방금 사마의의 표정을 보지는 못했으리라. 그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마 조정의 지원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계속 양곡을 받기 위해서 어느 정도 내놓는 게 좋을 듯하옵니다.”
“백성들에게 구휼을 하자는 것인가?”
“명공, 조정에서 사람을 보내어 어디에 사용됐는지 확인할 테지요. 유비와의 전쟁에서 사용할 군량으로 쓸 수 있음에도 하북에 지원을 한 것은 그만큼 이곳의 가치가 높다는 뜻이니 말입니다.”
조비는 사마의의 말에 순간 얼굴이 굳어졌다. 조정이나 백성, 모두 조비가 싫어하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하! 그들이 어떻게 나의 재산을 빼앗는단 말인가! 그리고 백성들이야 어차피 가난이 일상인 이들이니, 그냥 지금처럼 살면 되는 일 아니겠는가.”
“방금 말씀드렸듯이 지원은 또 있을 테니, 꼭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자 조비는 사마의를 빤히 바라보았다. 허리를 숙인 채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사마의에게 조비가 말을 툭 던졌다.
“알았네. 뭐, 전부 내놓는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지. 그런데 말이야…….”
갑자기 조비는 죽간 하나를 들고 오더니, 사마의를 자리에 앉히고 내용을 보여 주었다.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라… 다시 수춘후에게 돌아간다는 의미인가, 아니면 내가 그동안 핍박해서 시위하는 건가?”
조비의 태도는 더없이 가벼웠지만, 어쩌면 사마의의 목숨이 걸려 있을지도 모르는 질문이었다.
“아니옵니다. 아직 제가 할 일이 많은데 어찌 그러겠습니까.”
조비는 곧바로 고개를 조아리는 사마의를 보며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온현의 본가에 잠시 가려고 하옵니다.”
그러자 조비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온현은 승태의 봉지이기도 하니, 혹여나 사마의가 도망가지 않을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가 분노를 터트리려고 할 때, 사마의가 먼저 나서서 말했다.
“가문에 문제가 생겼다 하여 그렇습니다.”
조비는 사마의의 말에 흥미가 생겼다. 사마 가문의 고향인 온현에서 문제가 생겼다면, 분명 수춘후의 부하들과 다툼이 생겼다는 뜻일 테니 말이다.
“호오… 가문에 문제가 생겼다니, 궁금하군.”
“서량의 마초가 온현을 뒤집어엎었다고 하옵니다.”
“하하하! 역시 무식한 시골 촌놈이라 불릴 법하구나!”
조비는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껄껄 웃다가 이내 사마의를 빤히 바라보았다.
“자네가 온현을 장악해서 수춘후의 아들을 가지고 노는 것도 재미있겠군. 아니,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 좋아, 내가 그 일을 도와주지. 사직은 반려하지만, 외직으로 빠질 수 있도록 하지.”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 * *
예를 표하고 나온 사마의는 얼굴이 굳어졌다. 그가 저택에 도착하자 이미 짐을 옮기고 있는 이들이 보여 한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부인,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소.”
하지만 사마의는 갓난아이를 안고 있는 장춘화의 앞에서 곧 입을 닫고 말았다. 화가 났는지 그녀의 눈썹이 점점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말을 할 참이면 빨리 오셔야 하지 않습니까? 아이가 있어 제가 직접 하지 못하고 사람을 쓰고 있는데, 늦게 오신 분이 할 말은 아닌 듯합니다.”
“그것이…….”
“조정의 일은 어찌 되었습니까?”
변명하려던 사마의는 장춘화의 무시무시한 얼굴을 보고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쯧쯧, 표정을 보아하니 직을 내려놓지도 못했나 봅니다.”
사마의는 아기를 어루만지며 집으로 들어가려는 장춘화에게 급히 다가가며 말했다.
“부인, 내 그래도 외방으로 갈 수 있게 되었소. 온현에 도착하면 안심하고 지낼 수 있을 것이오.”
“그래도 그자가 부르면 다시 조르르 달려와야 할 것 아닙니까?”
“부인, 명공을 그리 말하면 어찌합니까? 내 절대 집안사람들을 위험에 빠트리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그래도 사람들이 있어 나름대로 사마의의 체면을 챙겨 주던 장춘화는 자택으로 들어가자마자 곧바로 따졌다.
“그렇게 모략을 꾸몄는데도 빠져나오지를 못했어요?”
“부인, 그것이…….”
“이게 설명이 필요한 일이에요? 성공과 실패로 말할 일이지. 당신이 계속 그자 아래에서 관직을 지내고 있으면, 나중에 어떻게 되겠어요? 그리고 조비가 욕심은 많아도 멍청한 이는 아닌데, 나중에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요?”
“부인, 혹 귀가 있을지도 모르니…….”
“귀? 우리 집안에 제가 귀를 남겨 두었을 것 같아요!”
사마의는 장춘화의 말에 입을 꾹 닫았다. 하기야 원래 역사에서도 열세 살의 나이에 여종을 죽여 목격자를 지워 버리는 인물이었으니, 첩자가 있을 상황 따위는 만들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항상 조심해야 할 것 아니오.”
“당신이 수춘에서 후의 아래에 남았으면 이런 걱정 따위 할 이유가 없지 않겠어요? 조가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호언장담하고 여기로 와서 지금까지 이룬 게 뭐가 있나요?”
사마의는 억울한 눈으로 장춘화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주군의 안위를 위해 한 일이 많소. 만일 내가 없었으면 후께서 위험해졌을 상황이 얼마나 많았을 것인데… 또 선대 패공의 식솔들을 주공의 품에 안겨 드린 사람도 나요.”
“그런다고 한들 당신이 진정으로 따르는 그분은 아직도 후에 머물러 있고, 망가트리겠다는 놈은 황실의 핏줄만 오를 수 있는 공에 올라 떵떵거리고 있는데, 무슨…….”
“부인, 정말 이번이 끝이오. 이번 일만 마무리된다면 분명 조가의 정통성은 주군께 모두 흘러갈 것이오. 그리되면 수춘으로 돌아갈 수 있소.”
그러고 나서 사마의는 장춘화를 애절하게 쳐다봤지만, 여전히 냉랭한 표정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명심하세요, 멀쩡한 아들 괜히 유복자 만들기 싫으면 신념보다 안위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큰일도 몸을 지켜야 할 수 있는 법이에요.”
“알겠소. 내 명심하리다.”
* * *
관우는 눈앞의 무관을 빤히 바라봤다.
유비는 무관에서 넘어오는 이들을 막으라고 했지만, 가능하다면 반대로 넘어가도 괜찮다고도 말했다.
아마 장비였다면 방어에 치중하겠지만, 관우의 생각은 약간 달랐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였다. 자신의 부대가 움직인다면, 분명 적은 시선이 빼앗겨 다른 것은 신경 쓰지 못하리라.
“아버지, 정말 괜찮겠습니까? 우리의 숫자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옵니다. 혹여나…….”
관우는 걱정스러워하는 관평의 말에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것이 최선이다. 네 말대로 우리의 숫자가 적으니 모든 곳을 방비하지는 못한다. 이곳 전체를 막겠다고 군을 흩트리면, 적에게 각개 격파당할 수도 있지.”
“아버님을 추종하는 이들이 많으니, 그들을 이용하면 시간이라도 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관평이 언급한 것은 형주 각지에서 모인 유협들로, 관우의 무예와 인품에 반해 군으로 모여든 참이었다.
“아니. 그들은 더더욱 쓰기 어려운 이들이다. 의협을 행한다고 하지만, 그 기준이 없는 이들이니 말이다.”
“기준이 없다는 것은…….”
“그들은 각자 생각하는 의협의 기준이 다르다. 하지만 군대는 하나의 군율 아래에서 움직여야 하지. 즉, 함부로 출전시키면 무슨 짓을 벌일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그렇기에 내가 있는 곳에서나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관우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는 관평을 보고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 그럼 우선 적장에게 항복을 권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도록 해라.”
* * *
“드디어 왔구나.”
한편, 관우가 노리는 무관에서는 마초가 흰색 깃발을 보며 섬뜩하게 웃음 짓고 있었다.
“무관의 장수는 들어라! 항복하여 한조를 다시 세우는 일에 동참하라!”
마초는 곧바로 활을 들어 항복을 요구하는 병사의 머리를 날려버리려 했으나, 옆에 서 있던 방덕이 말리는 바람에 멈춰야 했다.
“혹여나 항복을 권하는 전령을 죽이면 나중에 말이 나올 수 있으니, 그러시면 안 됩니다.”
“설마 내가 그러겠는가.”
마초의 태연자약한 대답에도 예전의 일을 떠올린 방덕의 얼굴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이미 항복을 위해 백기를 들고 달려오던 적을 죽인 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지금은 그때와 달리 흥분한 기색이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아찔한 것은 여전하였다.
피슈우우웅!
결국, 마초가 쏜 화살은 백기를 든 병사의 입가를 스쳐 지나가는 데 그쳤다. 화들짝 놀란 적병은 입을 부여잡고 빠르게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이런, 삐끗하였군. 그래도 전령이 죽지 않았으니 다행이로다. 조금만 더 빗나갔으면 목을 꿰뚫을 뻔했으니.”
북방에서 기사(騎射)를 할 때도 누구보다 뛰어난 궁술을 보인 마초가 실수라니, 아무도 믿지 않을 게 빤했다.
“아, 혹시 내가 손을 잘못 놀려서 저들에게 도발하게 된 것인가?”
마초의 웃는 얼굴만 봐도 일부러 그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터. 게다가 옆에서 곽원이 떠드는 얘기까지 더해지자, 방덕의 속은 더욱 부글거렸다.
“하하하, 역시 마 공답소. 그 활 솜씨는 가히 신궁이오, 신궁!”
간절한 방덕의 눈이 양수와 마주쳤으나, 그 역시도 기대를 배신했다.
“마 공, 잘하셨습니다.”
결국, 마초를 말릴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에 방덕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