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08
308화
임협, 협객, 유협 등등. 그들을 지칭하는 말은 많지만, 모두 같은 의도를 가진 단어였다. 칼을 들고 다니는 무법자들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것. 그러나 의와 협을 신봉한다고 하지만, 결국 제멋대로인 놈들이었다.
관우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도 멋모르던 시절, 천하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 주유하는 동안 그렇게 자칭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끝내 천하를 오시할 정도의 무예를 얻게 되었음에도 개인의 힘으로는 무엇 하나 바꿀 수 없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저 훈장을 하다가 운명처럼 유비를 만나 군을 이끌게 되었다.
그런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만드는 이들이 눈앞에 있었다. 스스로의 무예로 천하를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행동 하나하나를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이들. 지금 관우의 가슴속에는 그저 역겨운 감정만이 남아 있었다.
뒤를 돌아 그들을 바라보자, 하동에서 관인들을 죽이던 때의 자신과 같은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내가 언제 전장에 나가는 지가 어찌하여 궁금한가?”
이들이 아무리 눈치가 없다고 하나, 관우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도 모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 무리를 이끌고 있다는 자존심을 내세운 것이 관우의 속을 더욱 긁었다.
“당연히 관 공과 같이 싸울 영광을 얻기 위해서지요. 무신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무예를 견식하고, 전장에 나아가 적을 쓰러트릴 수 있다면 그와 같은 광영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신과 함께 전장을 누볐다는 말로 명성을 올리고자 하는 수작임을 모를 것으로 생각했는지, 뻔뻔하게 말하는 인물을 바라보며 관우는 도리어 덤덤해졌다.
“다들 같은 생각인가?”
관우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애써 외면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유협 무리의 대장들 모두가 광기 어린 표정과 말투로 관우의 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렇습니다. 응당 유협이 되어 관 공의 곁에서 검을 한 번이라도 놀릴 수 있다면, 삼생의 영광일 것입니다.”
관우는 자신의 앞에서 거짓을 고하며 빙글거리는 이들을 보며 관평이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들은 구제할 수 없었다. 어쩌면 유비는 이 상황을 바랐는지도 몰랐다. 이들을 죽인다면, 남은 유협들은 당연히 관우를 따를 테니.
관우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만드는 추한 이들을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남에게 고개를 숙이지 못하는 이들이라면, 소원대로 영원히 고개를 숙일 수 없게 만들 뿐이었다.
“더럽군.”
관우는 한마디를 남기더니 손에 잡힌 월도를 빠르게 휘둘렀다.
휘잉!
단 한 번 휘둘렀는데 바람이 갈라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맨 앞에 서 있던 대장의 머리가 날아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나머지 사람들은 놀란 눈으로 관우를 바라보았고, 미처 대응할 틈도 없이 월도가 그들의 목을 갈랐다. 그 누구도 관우의 움직임에 대응하지 못했다.
대장 무리의 목숨을 거둔 관우가 월도를 휘둘러 피를 털어냄과 동시에 머리를 잃은 몸이 하나둘 바닥으로 쓰러졌다. 잘려 나간 머리는 하나같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람의 목을 한 번에 베는 것이야 어렵지 않은 일이겠지만, 일격에 여러 명을 처리한 건 놀라운 신기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과 같이 다니던 무사들은 눈을 크게 뜨며 칼을 꺼내려 했다. 그러자 열 명 정도의 호위병들을 향하여 관우가 경고했다.
“검을 뽑으면 내가 직접 손을 쓸 수밖에 없다.”
관우의 으름장에 호위들은 멈칫하며 서로 눈치를 보았다. 분명 관우 홀로 있음에도 그들은 마치 수만의 대군의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압박감을 느껴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다.
그때, 한 명이 호위가 이를 꽉 깨물고 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
사실 그들의 주인은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제자와 수하의 목숨 따위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동안 검술 하나 제대로 가르쳐 준 것도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은 스승이었다. 자신들이 충과 효를 바치기로 한 상대이니, 결코 물러날 수는 없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이들이 관우에게 칼을 겨누었다.
“장군께서도 저희가 왜 이러는지 알 것이라 생각합니다.”
“윗물이 더러운데 아랫물은 깨끗하다니, 참으로 묘하군.”
그러고 나서 관우는 월도를 내려놓고 지휘봉을 잡았다. 유비에게서 받은 물건인데, 귀한 나무로 만들어서 단단하고 가벼워 매로 사용하기 좋았다.
“장군, 저희를 무시하는 것입니까!”
관우는 그런 그들을 보며 살짝 웃음을 지었다. 저들이야말로 진정한 무인들이었다. 승산이 없는데도 죽음을 각오하고 맞서 싸우니 말이다.
“나는 그대들을 옆에 두고자 하는 것뿐이네. 지금껏 지던 멍에를 내가 대신 가져가면 되지 않겠는가?”
그 말을 끝으로 관우는 재빨리 그들에게 파고들었다. 호위들의 무기는 모두 장검이라 효과적으로 공격하기 위해서는 거리를 벌려야 했다. 그들이 뒤로 빠지려는 순간, 한 명의 머리로 관우의 지휘봉이 떨어졌다.
퍼억!
단 한 방이었다. 호위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관우는 당황한 채 서 있는 나머지 사람들에게 달려들었다.
“크헉!”
목 언저리에 맞은 호위 한 명이 앞으로 고꾸라지며 쓰러졌다. 부들부들 떨지 않았다면 죽었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힘 조절이 어려웠군.”
관우는 마치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지휘봉을 다시 들어 올렸다.
“한꺼번에 덮쳐!”
나름대로 빠르게 움직였지만, 관우는 유려한 움직임으로 공격을 모두 피하고 호위들을 쓰러트렸다. 그러고는 바닥에 널브러진 이들을 향하여 말했다.
“저들의 무도한 행태를 내가 참지 못하여 목을 베었다. 너희는 주인을 지키기 위하여 나를 필사적으로 막았으나, 실패했을 뿐이다.”
관우가 그들의 처우를 결정하고 자리를 옮기자, 어딘가에서 나타난 관우의 부곡들이 시체를 치웠다. 어느 정도 정리되자, 부곡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관우의 옆에 섰다.
“요순(요화의 개명 전 이름)인가?”
곧바로 무릎을 꿇으며 예를 표하는 요순에게 관우는 손을 내저어 그만두도록 하였다.
“예, 장군. 군은 퇴각하였습니다.”
“나팔 소리는 들었다. 다른 특별한 사안은 없는가?”
“…적군의 대장이라 칭하는 인물이 나와 장군을 직접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대장이 밖으로 나왔단 말인가?”
마초의 행동은 굉장히 파격적이었다. 아무리 전투가 끝난 이후라고 하지만, 대장이라는 인간이 눈먼 화살에 죽을지도 모르는 위협을 무릅쓰고 밖에 나돌아 다니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단 말이지.”
관우는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나가 보도록 하지. 적장의 얼굴도 확인할 겸 해서 말이야.”
관우가 그렇게 말하자 요순은 빠르게 자리에서 물러났다.
* * *
마초가 말 위에 올라탄 채 적진을 빤히 바라보고 있을 때, 방덕이 옆에서 잔소리를 날렸다.
“장군, 굳이 적장을 보시겠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적장이 어찌 나올지도 모르는 노릇이옵니다.”
“그래도 명색이 관우인데 비겁한 수작을 부리겠는가?”
“대체 전장에서 장수의 이름값이 무슨 상관입니까? 공자께서 직접 하신 말 아닙니까!”
“하하하, 물론 그렇지만, 명성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다르지. 무신이라고 불리는 관우 정도가 되면, 그 이름이 도리어 족쇄가 되는 법이네.”
제멋대로 말을 꺼내는 마초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방덕은 자신의 옆에 서 있는 곽원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마음도 모르고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빙글거리고 있었다.
“지금 적장이 이곳으로 오는데, 대장의 호위로서 온 자가 준비가 덜 된 것 아닙니까?”
곽원은 그렇게 말하는 방덕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지형지물의 파악은 다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적장이 무슨 짓을 벌이면 도망갈 수 있도록 부곡들도 준비시켜 두었고 말입니다.”
호위로서 할 일을 모두 했다는 그의 말에 방덕은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하고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영 못 미더운 얼굴인데, 일 처리는 참 잘 한단 말이야. 특히 보급같이 후방을 책임지는 일은 나도 따라가기 힘드니, 무어라 질책할 수가 없군.’
방덕은 조용히 적진을 바라보았다. 차츰 세 개의 인마가 보이더니,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그닥다그닥.
어느새 사람의 얼굴까지 알아볼 거리가 되자, 기다란 수염을 늘어뜨린 관우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마초를 제외한 이들의 온몸에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방덕과 곽원은 순간적으로 애병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나 마초는 그들과 달리 관우에게 평온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거기 멈추시지요.”
마초의 말에 흥분한 관평이 그들에게 소리치려는 순간, 관우가 앞으로 나왔다.
“움직이는 모습이 영악하기에 노회한 인물인 줄 알았는데, 젊은 미장부로군. 혹여 누구인지 물어도 되겠는가?”
마초는 그런 관우의 말에 웃음을 지었다. 미장부라, 하기야 자신은 유난히 흰 얼굴이었으니 말이다.
“마맹기(猛起)이오. 관 장군의 무예가 천하에 이름을 떨치니, 나는 삼두육비의 괴물인 줄 알았습니다. 한데 이리 보니 참으로 멀쩡하십니다!”
“이놈! 네… 커허억!”
무례한 말에 관평이 호통을 치자, 관우가 관평을 월도의 손잡이로 후려쳤다.
“군을 이끄는 대장 사이의 대화다.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니 조용히 하고 있어라.”
그러자 관평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 없이 물러났다. 마초는 그 모습을 보고 턱을 쓰다듬으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상대하기 골치가 아픈 인간이로군.”
마초의 행동거지를 자세히 지켜보던 관우가 물었다.
“무어라 하였는가?”
마초는 웃으며 말을 건네었다.
“관 장군을 상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마초의 솔직한 답에 관우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참으로 솔직한 인물이로군. 그대는 어찌하여 악적 조조를 이은 순욱의 밑에 있는가? 그대와 같은 이가 한조의 재건을 돕는다면 능히 부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네.”
마초는 창으로 관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하하하, 저는 별로 대단한 인물이 아닙니다. 그리고 조정에 대해서 그다지 좋은 감정도 없지요. 한데 장군께서 제 족인들을 참하였으니 당연히 복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마가의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로군.”
관우가 침중한 표정으로 마초를 바라보았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럼, 저기 있는 병사들은 나를 잡기 위해 온 것인가?”
관우는 멀리 보이는 구릉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곽원이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병사들을 숨겨 뒀는데, 잠깐 일별한 것만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마초는 그런 관우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제가 여기서 잡으려고 한들 통하겠습니까?”
관우는 눈앞의 세 명과 병사들이 숨은 곳을 번갈아 보더니 수염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흠… 확신하긴 힘들군.”
관우가 보기에 마초 이외의 두 사람도 꽤나 뛰어난 듯했고, 병사들까지 들이닥친다면 위험할 수도 있었다.
갑자기 마초가 손을 들어 올려 어떤 신호를 보내는 듯하자, 관평과 요순이 순간 무기를 잡고 관우를 지키기 위해 좌우로 섰다.
방덕은 아무 명령도 받지 못해 어물쩍거렸고, 곽원은 반사적으로 창을 잡았다.
바빠진 두 진영을 보며 마초는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