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09
309화
마초의 가벼운 손짓에 관평과 요순은 엄청난 긴장감을 느끼고 관우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본 마초는 크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손짓 한 번으로 관우가 데려온 호위들을 겁먹게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만약 관우까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면, 그는 웃느라 말에서 굴러떨어졌을지도 몰랐다.
“제가 전령에게 화살을 쏘기는 했으나, 그건 예외적인 경우이고 그리 막 나가는 인물은 아닙니다. 하하하!”
마초가 한바탕 웃고 정신을 차리자, 눈앞의 관우가 굳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군, 알았네. 이제 우리는 서로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알았으니, 나는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
“그리하지요. 아, 두 사람이 만난 기념으로 제가 병사들의 시신을 거둘 수 있도록 허락해 드리겠습니다.”
마치 시혜를 베푸는 듯한 말에 말고삐를 잡은 관우의 손에 힘이 꾹 들어갔다. 마초 역시 관우의 행동만으로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초는 다시 한번 피식 웃은 뒤 용건을 마쳤다는 듯이 말머리를 돌렸고, 그것을 본 관평이 재차 소리쳤다.
“이런 무례한 자가!”
처음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관우도 말리지 않았다.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분명 그의 마음도 관평과 같았으리라.
그러자 마초는 다시 말머리를 돌렸다. 굳어 있던 그의 얼굴은 어느새 방금 전처럼 웃는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가면을 쓴 마초는 마치 한량 같은 말투로 관평에게 빈정거렸다.
“대체 무엇이 무례하다는 겁니까? 저는 관 공과 대화를 하게 되어서 기분이 좋았고, 관 공은 전장에 나뒹구는 시신을 거두어 고향으로 보낼 수 있도록 좋은 거래를 했는데 말입니다. 아니면 내가 물러날 때도 왕작을 받은 인물을 대하듯 뒷걸음치며 가야 한다는 말은 아니겠지요? 하하하! 내가 서량 출신이라 말을 잘 몰지만, 뒷걸음질하는 것은 배우지 못했으니 죄송하구려.”
관평은 마초의 말에 어찌 대응할지 몰라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관우가 조용히 말을 돌리자, 관평도 그 뒤를 따라 물러났다. 잠시 후, 그들이 사라지자 방덕은 놀란 마음에 마초에게 물었다.
“공자, 어찌하여 그리 관우를 도발하십니까?”
“천하의 관우가 내 도발에 넘어가는지 한번 확인해 본 것이지.”
옆에 있던 곽원이 클클클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렇다면 마 장군, 수확은 좀 얻었소이까?”
“기대 이상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그러자 갑자기 곽원의 얼굴빛이 싹 바뀌며 진중한 목소리로 마초에게 말을 건넸다.
“그런데 소장이 보기에는 관우도 무언가 얻은 듯하오. 게다가 진작에 장군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데려온 인원도 별로 없지 않았소이까.”
정곡을 찔린 마초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더니 방덕을 쳐다보며 말했다.
“속마음을 숨기기 위해 나름대로 많이 노력했다고 생각하는데, 가면이 약간 벗겨진 것 같군. 가까운 사람도 걱정할 정도면 관우를 속여 넘기기 쉬울 거라 여겼는데 말이오.”
아무래도 가벼운 모습을 보여 상대에게 빈틈을 만들려는 마초의 계획은 실패한 듯했다.
그러고 나서 곽원은 창을 다시 잡은 뒤 마초보다 먼저 돌아가며 말했다.
“관우를 잡을 것이라는 내기는 내가 이길 것 같구려. 하하하!”
* * *
관우는 막사로 돌아가는 길에 수염을 길게 빼고 인상을 찌푸렸다.
“나와 맞지 않는 사내로군. 동생과는 말이 잘 통했을 터인데.”
“그 막돼먹은 자가 숙부와 합이 잘 맞다니요. 숙부는 성격이 좀 급할 뿐이지, 무도한 인물은 아닙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따뜻한 면도 많지 않습니까.”
장비를 변호하는 말에 관우는 슬쩍 웃음을 지었다. 하기야 관평의 입장에서 보면 장비는 굉장히 친절하고 따뜻한 사내였다. 게다가 높은 학식을 가진 이들을 존경하니, 장비와 가까운 아이들이 보기에는 정말 멋진 삼촌이 아닐 수 없었다.
“네가 그리 생각하는 게 이미 의제가 쓴 가면에 속아 넘어간 것이지. 그리고 방금 만난 마초도 같다. 겉으로 보이는 무도함 속에 무엇을 감추었는지 생각해보아라.”
관우는 대답하지 못하고 조용히 있는 관평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가진 눈은 수많은 생사를 가르는 전장에서 살아남아 얻은 게 아니던가.
관평같이 확실히 이길 수 있는 전장에서만 싸운 아이에게 기대하기에는 이를지도 몰랐다. 지금껏 착실하게 무예를 쌓아 자신의 옆을 지키는 것만 해도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실망할 것은 없다. 나의 곁에서 전장을 겪고, 사람을 만나다 보면 언젠가 보일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이후 마초는 관우를 끌어내기 위해 또 다른 수를 내보였다. 아군의 시신을 수습하는 적병들 앞에서 포로를 베기 시작한 것이었다.
동료의 시신이 하나둘 쌓이는 모습에 관우군 병사들의 분노는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였다.
* * *
제갈량은 오랜만에 자신에게 온 친우와 작은 누이의 서신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져온 인물을 바라보며 더욱 기뻐하였다.
“사원이 아닙니까. 설마 친우의 서신을 전하러 자네가 올 줄은 몰랐습니다.”
“종형 또한 안부를 전해 달리하였습니다.”
“산민 공이 말입니까? 저야 언제나 건강하지요. 참, 이럴 게 아니라 앉아서 편하게 이야기나 나누지요.”
“일이 바쁘시지 않습니까?”
방통은 제갈량의 주변에 쌓인 각기 다른 색의 끈으로 묶인 죽간들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색에 따라 급한 정도가 다른 것일 터였다.
그것을 바라보는 방통은 절로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양도 어마어마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욱 쌓일 게 분명했다.
“하하하, 제가 바쁜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요. 하기야 주공께서 전장에 나가 계시니 군사가 더욱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시간을 좀 더 들이면 해결될 겁니다.”
그러자 방통은 더 이상 사양치 않고 자리에 앉았다.
“사원, 혹 임관은 했습니까?”
방통은 제갈량의 물음에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은 임관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에 제갈량의 눈이 번쩍였다. 그렇지 않아도 믿을 만한 인물이 없는데, 방통이라면 충분히 자신과 같이 대업을 도모할 만한 인재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와 같이 일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그러나 방통은 고개를 내저었다.
“죄송하지만 불가할 것 같습니다.”
방통의 단호한 말에 제갈량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어찌하여 그렇습니까?”
“이미 약속을 해 둔 사람도 있거니와 아직 제가 배울 것이 많아 그렇습니다.”
“배울 것이 많다니요. 형주에서 저와 같이 봉추로 불리던 이가 그런 말을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사원, 그대가 약속한 인물이 대단한 인물인가 봅니다. 그럼 지금은 어디서 수학하고 있습니까?”
“수춘의 제갈가에 몸을 의탁하고 이것저것 배우는 중입니다.”
그러자 제갈량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아는 사람이 없는 곳보다는 여기서 지내는 게 나을 거라고 재차 권유할 생각이었는데, 자신의 형님이 있는 곳이지 않은가.
“그러나 그곳에 있다고 한들 큰일은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방 공의 능력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방통은 잠시 제갈량이 쌓아 둔 죽간들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서른이 되어 가는 나이에 큰 공이 없으니, 높은 자리에 가기는 어려울 게 뻔했다.
그러나 제갈량이 있는 이곳은 가문의 기반이 있을 뿐 아니라, 형주의 문사들도 많이 빠져나간 상태이니 높은 자리에 올라 공을 세우기도 쉬울 터. 게다가 자신의 능력이라면 분명 유비의 측근이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혹할 만도 하지만 방통은 고개를 내저었다. 입신양명(立身揚名)의 뜻이야 뭇 사인들이 꿈꾸는 것이지만, 지금은 자신에게는 다른 꿈이 생겼다.
“그 말씀이 옳지만 이미 약조된 바가 있으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갈량은 방통이 약속한 내용이 궁금하였으나 물어보지는 않았다. 자신과 비견되며 봉추라 불리는 인물이 저렇게 나온다는 건 이미 확고한 의지를 굳혔다는 뜻이었다.
“친우가 보내준 차향이 좋습니다. 이렇게 마시라고 했는데 맞는 방법인지는 모르겠군요. 공위(公威 맹건의 자)가 알려 줬는데 말입니다.”
“아마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저도 수춘에서 유행하는 다도를 접한 지 오래되지 않아 정확하지는 않지만요. 후일 제가 정리하여 보내 드리겠습니다.”
수춘이 언급되자 제갈량이 방통에게 물어봤다.
“요새 수춘은 어떠합니까? 예전에 잠시 지나친 적은 있으나, 그다지 좋은 기억은 아니니 말입니다.”
“그때와는 다르지만, 요즘은 꽤 시끄럽지요. 황숙께서 군을 일으켰으니 수춘도 난리가 났습니다. 특히 호족들이 말썽입니다.”
“호족들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뭐, 수춘의 호족들은 수춘후께서 꽉 휘어잡은 상태이긴 하지만, 그래도 힘 있는 집안 아니겠습니까.”
“혹여 수춘의 호족들이 난이라도 일으켰는지요? 수춘후께서 호족들을 중용하지 않는다는 건 이미 유명합니다만…….”
“하하하, 그건 아닙니다. 그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난을 일으킬 리 없지요. 양주와 서주의 호족들에게 수춘후께서 몇 번이나 철퇴를 가했는데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런 짓을 벌이지 못할 겁니다.”
“그렇습니까…….”
제갈량의 입장에서 희망적인 이야기는 없었고, 도리어 걱정해야 할 말이 이어졌다.
“지금 수춘에서는 호족들이 이번 전쟁에 참전을 요청하며 경쟁적으로 군수품을 바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전(市廛)에서 물건을 구경하기가 힘들 정도이지요.”
제갈량은 순간 방통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보통 지역의 주인이 호족들의 참전을 독려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혜택을 베푸는 게 일반적일 텐데, 수춘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방통은 수춘에서 행하는 일을 말해 주었고, 제갈량은 두 눈을 껌벅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가능한 일입니까? 아니, 호족들이 받아들일 리가 없을 텐데요?”
“자유(子瑜, 제갈근의 자)공께서 대체할 이들이 많으니 호족도 어쩔 수 없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춘에는 호족들의 입지를 위협하는 요소가 많으니, 자신들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그러는 것이겠지요.”
사정을 들은 제갈량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형주의 호족들을 달래고 어른 일들이 수춘의 상황과 비교하면 의미가 없지 않은가.
그 모습을 보고 방통이 덧붙였다.
“시작이 다르니 비교하는 건 부적절합니다. 서주는 겪어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하기야 양주와 서주 모두가 거의 절멸에 가까운 상황까지 갔으니, 호족과 타협할 필요성도 없겠지요. 게다가 수춘후께서는 그들에게 빚이 없으니…….”
지금까지의 고생을 드러내는 제갈량의 한탄에 방통은 가만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수춘의 이야기는 다 들었고, 사원, 그대가 누구를 보러 왔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방통은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형주를 방문한 목적을 밝히기로 했다. 어차피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면 알려질 일 아닌가. 게다가 잘하면 부탁받은 일에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자초(子初, 유파의 자) 선생을 뵈러 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