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1
삼국지 : 미완의 군주 30화
승태는 자신의 공방에 대하여 그다지 별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지금 세상에서
는 검증이 된 것도 아니고, 주입식 교육으로 기억에 남는 것을 자신의 존재가
묻히기 싫어서 이렇게 시간이 남을 때마다 적은 정도였다.
이런 지식이 알려진다고 해 봐야 검증도 제대로 못 해서 미친놈 소리 정도만
들을 정도의 물건들이었다.
‘뭐, 나중에 밝혀져서 비운의 천재 정도로 나오면 다행이지. 누가 이것들을
믿겠어? 아마 쓸 만한 건 배의 설계도 정도일까나··· 나중에 만들면 좋겠는
데······.’
“없지요. 제가 뭔가 생각 날 때마다 영감을 얻어 적은 것들입니다. 그리고 직
접 실험을 마친 것을 빼면 헛소리 같은 것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이미 승태를 높이 생각하는 양수의 생각은 달랐다.
“아닙니다. 절대 아니에요. 그렇게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저
기 저 천체를 그린 것만 해도, 시대의 모든 이들을 흔들 만한 일입니다. 그것
도 제가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직접 그것을 봐 가면서 적은 게 아니겠습니까?
하아! 그뿐입니까? 저기 정치학이라고 적은 내용은 이 양모가 다 확인하지 못
했지만, 깨우치는 느낌입니다.”
양수의 말을 들은 승태는 순간 겁이 났다. 자신에게 빠진 양수가 이렇게 말하
는 정도면, 만일 다른 이가 봤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말이다.
“그 정도입니까?”
“역시 공께서는 그저 지나간 지식이겠지만, 고루한 경학만 파는 이들이었다면
사문난적이라며 불태우라 했을 겁니다. 아니, 천하를 뒤흔들 수 있는 지식을
가진 공을 죽이라고 요청했을지도 모르지요.”
승태는 갑자기 오싹해지는 느낌이었으나, 이내 양수가 먼저 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지나갔다.
‘만일 정현의 제자 같은 이가 와서 봤으면 경을 치를 뻔했네.’
“그러나 저는 다릅니다. 경학뿐 아니라 제자백가의 모든 책을 섭렵하였으니,
그런 편협한 생각에 갇혀 있지도 않지요. 그저 대단할 뿐입니다.”
그 순간에도 잘난 척을 끼워 넣는 양수는 덜덜 떠는 손으로 공학 기초인 탄소
함유에 따른 강철의 연성 그래프를 보며 놀라 했다.
“수로 이렇게 아름답게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면 누가 믿겠습니까?”
“뭐··· 그렇지요.”
“이 양모, 다시 한번 조 서주의 능력에 감탄, 또 감탄합니다. 이 양모는 임관
을 빨리한 제가 원망스럽습니다. 지금 당장 무릎을 꿇고 주인으로 섬기고자
하나, 이미 한조에 묶인 몸이니 말입니다.”
그러자 승태는 웃음을 지었다. 양수를 보니 어디에다가 말할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좀 잔망스럽기는 하지만, 신념 같은 것은 지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승태는 약간 부족한 느낌이었다. 단순히 양수를 믿을 수 있다고 해도,
그를 전적으로 믿기에는 어려웠으니 말이다.
‘그를 같은 사문난적으로 만들면 되지 않나? 그저 놀라는 게 아니라 이 새로
운 생각에 가담시켜 수족이 되게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진군이
말하던 홍농 양가가 원가와 필적한다고 하니, 가문의 적장자를 내 편으로 끌
어들이면 더욱 안전하지 않을까?’
승태의 차가운 심장이 활발하기 뛰며 양수에게 암수를 뻗었다.
“굳이 주종의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후일을 같이 도모하는 사람들
인데요. 양 공과 제가 나이가 같으니, 친우가 되는 것이고. 옳고 바른 생각들
을 백성에게 널리 이롭게 만드는 같은 생각을 하는 당여(黨與)가 되면 되지
않겠습니까?”
“당여라, 당여. 아!”
양수는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입을 뗐다.
“그렇습니다. 이 전란을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새로운 생각이
필요하지요. 그런데도 저는 주종과 군신이라는 생각에만 매여 있었습니다. 당
여라··· 제가 아직 구시대에 젖어 있던 듯합니다.”
“양 주부께서 이런 새로운 일에 관심 있으면서 입이 무거운 자들을 포섭해 주
세요. 저는 이 모든 지식을 총망라할 이상을 만들어야겠습니다.”
“아아··· 역시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방대한 내용을 총망라하다니요.”
승태는 마치 양수를 귀인처럼 연기하며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제 지식을 이리 높이 평가해 준 것은 양 주부가 처음입니다. 제가 하여 이리
마음을 열어 양 주부를 믿겠습니다. 제가 새롭게 생각하는 것들을 펼치기 위
해서는 유능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한 군데가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유능하나 다른 이들의 지식을 쉽게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진정한 인재들 말입
니다.”
양수는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
“예. 자신만 옳다는 아집이 아니라 남을 인정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자가 필요합니다. 저는 사람을 찾아 모을 능력이 되지 않습니다. 양 주부, 저
를 도와 새로운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새로운 세상을 여는 겁니다.”
양수는 순간 굳은 눈을 하며 승태를 바라보았다. 순간, 승태는 일이 틀어지는
게 아닌가 싶어 당황했지만, 양수의 생각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윽고 그는
승태의 앞에서 구배(九拜)를 올리며 말했다.
“소인 양수는 스스로 자만하여 누구도 저를 넘을 지식을 가졌다고 여기지 않
았습니다. 하나 지금은 아닙니다. 스승의 예를 올린 것은 이 양수가 진심으로
공의 이상을 따르고자 하니, 이를 받아 주십쇼.”
승태는 속으로 웃음을 흘리며 양수를 일으키며 말했다.
“양 주부, 제가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은 후일에 우리의 이상이 한의 전역에 퍼
졌을 때, 그때 하기로 합시다. 그전에는 그저 당여로 친우로 같은 사상을 가
진 동료로 서 있는 겁니다.”
“예! 그리하겠습니다! 제가 허도만 아니라 홍농 양가와 외가의 부를 털어서라
도 제가 공의 생각이 천하를 덮도록 만들 겁니다.”
승태가 예를 차리자, 양수도 예를 행한 뒤, 굳은 눈으로 공방을 빠져나갔다.
양수는 차 약속을 잊은 듯이 바로 허도로 향한다며 저택을 떠났고, 승태는 기
운 빠진 듯이 자리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미래의 지식을 총망라하는 데 무슨 의미가 있냐. 내가 말해 놓고 뭔지를 알
수가 없네.”
승태의 공방은 양수가 오고 난 후부터 밤에도 환했고, 깊은 밤이 되어서야 불
이 꺼졌다. 또한, 승태만 들어갈 수 있도록 자물쇠가 걸렸다.
그리고 그날로 인해 양수는 여혜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었다.
승태는 양수가 떠나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미래를 머
릿속에 떠올리게 된 것이었다. 지금이야 조조가 정정하게 살아 있으니, 그의
밑에서 무엇이든 하며 살아남는 것이 주요 목표겠지만, 그의 사후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에 빠진 승태가 집무실에서 서도를 손에 굴리며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사
이, 문이 살며시 열리며 조성이 예를 취하고 들어왔다. 승태는 아직도 생각에
심취해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러자 조성이 약간 큰 목소리를 내었다.
“조가 영이 조 서주를 뵙니다.”
“아, 조 도위. 제가 생각이 깊어 듣지 못했나 봅니다.”
“아닙니다. 업무로 바쁘신데, 제가 생각지 못했습니다.”
“무슨 일로··· 군에 관련된 일은 고 장군에게 문의를 하면 될 터이니, 군이
아니라 다른 옥에 있는 사람의 일일 텐데··· 혹여 진 선생님에게 변고가 생긴
겁니까?”
조성은 손을 휘저으며 극히 부정했다.
“아닙니다. 조 서주께서 그렇게 챙겨 주시는데, 몸이 나빠지신다면 그것이 이
상한 일일 겁니다.”
“그럼 무슨 일입니까?”
“진 선생의 일은 맞습니다만, 다른 이야기입니다. 진 선생께서 조 서주를 뵙
고자 하십니다.”
승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일어났다. 갑자기 일어난 바람에 서도가 바닥에
굴렀지만, 그런 거야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무려 진궁이 자신을 찾는 거였으
니 말이다.
“갑시다.”
승태가 조성을 따라 옥에 돌아오자, 진궁은 뒷짐을 지고 밖에서 들어오는 약
간의 볕을 보고 있었다. 조성이 옥졸에게 눈치를 주자 곧바로 문을 열었고,
승태가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진 선생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는데······.”
“자네는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뜬금없이 웬 선문답이야? 뭘 듣고 싶어서 그걸 묻는 거지?’
“흠, 내 말이 너무 선문답처럼 느껴졌는가?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고, 할 일 없는 사람이 궁금할 것이 그것밖에 없는데.”
“포장할까요? 아니면 사실대로 말해 드릴까요?”
진궁은 뒤를 돌아 승태를 보며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역시 재미있는 사람이군. 포장이라··· 요즘에 쓰는 말인가? 하여튼 이 사람
이 누구의 약점을 잡자고 그런 게 아니네. 그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삶이
너무 허무하기도 하고 자네의 말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더군. ‘나는 죽기 위해
달려온 것 같다’라고 말이야. 아, 둘 다 말해 주겠는가? 궁금해지는군.”
승태는 조성과 옥졸을 향해 예를 취하고 말했다.
“잠시 나가 주시겠습니까? 조금 사적인 얘기들이 오갈 것 같으니······.”
조성은 말없이 예를 취하고, 옥졸과 물러나서 감옥을 나갔다.
“이렇게 털어놓는 것은 제가 공대 선생을 믿어서가 아니라, 공대 선생을 평생
밖으로 내보내지 않을 자신감이 있어 이리한 것입니다.”
“협박인가? 뭐, 사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것도 아니지만, 가슴 깊이 새겨 두
지.”
“포장한 것을 먼저 말하는 편이 좋겠죠? 저는 제 이상을 제가 밟은 땅 위에서
이룰 겁니다. 천하가 아니라 내 품 안의 사람들을 내 사상 위에 올려 두고,
모두가 우러르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할 겁니다.”
“허, 포장이 참으로 훌륭하군그래. 속내는 무엇인가?”
“그냥 살려고 합니다. 권세도 누리고, 부도 누리고. 그리고 내 안의 사람들에
게 내 것도 좀 베풀고, 내가 가진 생각과 비슷한 사람도 모으고, 그들을 방패
삼아 안전하게 살려 합니다. 제법 초라하지 않습니까?”
진궁은 빙그레 웃으며 승태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자네의 모습에 과거의 원술이 보이는군.”
‘이거 악담이냐?’
혼자 칭제해서 사방에 마구 맞아서 망해 버린 원술이라니. 그를 닮았다고 하
면 당연히 욕처럼 들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무엇 때문에 칭제했는지 모르지만, 과거의 원술은 참으로 당당한 사
내였네. 다른 모든 이들보다 인간적이었지. 그래서 그를 따르지 않은 것이지
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만큼 안정적인 군주가 없다는 생각이 드네.”
‘악담이 아닌가?’
“어찌해서 말입니까?”
“그는 인정에 굶주린 자였네.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의 목숨을 중히 여기지.
그뿐인가? 부유함을 즐기는 것을 좋아하니, 자네가 말한 그대로 아닌가?”
‘이거 욕 맞네! 좀 너무한 거 아니냐? 차라리 뒷담을 하지, 앞에서 팩트로 때
리면 너무 아프잖아.’
“그러나 그만큼 인간적인 자도 없었네. 남이 옳다고 여겨지면 자신의 반을 내
주는 사내였네. 나쁜 짓을 해도 포장하지 않고, 잘못을 말했네. 그리고 자신
의 부를 자신의 사람들과 함께 누릴 줄 아는 사람이지. 그래서 그와 처음을
함께한 자들은 원술이 죽어라 하면, 웃으면서 죽을 것이네. 아니, 죽기 전에
그가 자신을 구하거나 자신의 가족을 책임질 것이라 믿고 죽겠지.”
“그러나 실패한 사람입니다.”
“그래. 그는 실패한 사람이지. 그런데 그런 인물이 섬기기 나쁜 사람인가?”
‘아마 욕망만 좀 조절할 수 있으면 최고의 상사일 것 같기는 해.’
“그래도 난세에는 인간적인 사람이 아닌, 비범한 자가 필요합니다.”
진궁은 승태의 어깨를 쥐며 그의 눈을 바라보고 물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그래서 어찌 되었는가? 연주에 포공(포신)을 따르던
호족들은 모조리 죽었고, 서주의 민간인은 수를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학살되
었지. 원술은 언제나 소문을 몰고 다니지만, 진정 그리했는가? 이 진모는 진
정 모르겠군.”
승태는 목적 없이 나도는 말에 신물이나 일어서려 하자, 진궁은 난대 없이 극
진한 예를 표하며 말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람 냄새가 풍기는 사람을 섬겨 보려 하네.”
승태가 엉겁결에 주저앉으면서 엉덩방아를 찧자, 진궁은 살짝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일어나 승태를 일으키고 가볍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이 진공대, 조 서주를 따르고자 합니다. 새로운 주공을 맞사오니, 부디 내치
지 말아 주소서.”
“저를요? 왜요?”
‘왜 저를 더 힘들게 해요. 그냥 허도로 가세요. 제발.’
승태는 자신과 의도치 않게 조조에게 또다시 엿을 먹이는 상황이 이루어 내고
만 것이다.
***
한편, 진공대가 승태의 휘하에 들어갈 때, 능양에 도착한 허탐은 태사자가 기
거하는 산채에 도착하였다.
단양에 들려 건장들을 모아 도착한 허탐을 태사자는 융숭히 대접하였다. 특히
허탐이 꽤 많은 양의 양초를 바치자, 태사자는 그에게 더 많은 지원을 받고자
독대를 청했다.
태사자의 방은 굉장히 검소했다. 창, 활, 대도와 같은 무기 몇과 갑주가 뒤에
걸려 있을 뿐, 다른 장신구는 보이지도 않았다. 이에 허탐은 고개를 끄덕이며
태사자를 좋게 평가했다.
태사자가 직접 괜찮은 술상을 가져와 내놓았다.
“여기 하인이 없어 제가 직접 상을 옮겼습니다. 솔직히 누군가 저를 도와줄
것이라는 생각은 못 했는데, 참으로 놀랐습니다.”
허탐은 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제가 태사 공을 돕기 위해 온 게 아닙니다.”
태사자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럼 누가 저를 돕기 위해 나섰단 말입니까? 제가 모시는 유양주도 저를 버
리듯 이렇게 두었는데 말입니다.”
그의 말에 약간 슬픔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의 답에 오히려 허탐은 속으로 웃
었다.
“저는 단양 태수를 칭하신 태사 공을 단양의 주인으로 만들어 드리고자 서주
목 대리의 명을 받아 온 것입니다.”
태사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갸웃했다. 서주에 주목이 여포 이외의 사람이 실권
을 잡았다는 것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유력한 것은 아마 조조의 친인
이 여포의 장수를 처리하고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이 유력했기에 물었다.
“허 공, 설마··· 서주에 몹쓸 짓을 저지른 조가(曹家)의 인물입니까?”
허탐은 태사자의 말에 약간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술을 들이켰다.
“태사 공, 맞는 말이기는 하나, 지금 일주를 다스리는 분이 된 인물입니다.”
태사자는 약간 못 미더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해 봐야 가문의 후광을 엎어서 다스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는 오히려 허공
같은 대상(大商)께서 그를 따르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허탐은 손을 부르르 떨며 일어나려 하다가 품에 있는 승태의 서신을 꺼내 놓
았다.
“주공께서 전하라는 서신입니다. 그대가 이것을 본다면, 당신이 주공을 평하
는 정도가 변할 겁니다.”
허탐은 덤덤하게 관조하는 듯한 승태의 모습을 생각하며 비단 위에 적힌 서신
을 태사자에게 건네었다. 태사자는 유려하게 쓰인 글자에 고개를 우선 끄덕였다.
‘글씨는 꽤 좋구나.’
승태가 태사자의 속마음을 들었으면 호통을 치며 이게 석봉체라고 했겠지만,
들리지 않는데 어쩌겠는가.
― 대장부로 세상에 태어나 7척 칼을 지니고 천자의 계단에 올라야 하거늘, 그
대와 같은 영웅이 어찌하여 강남에 남아 영웅들과 겨루지 않는가.
이렇게 시작한 승태의 말에 태사자는 충격을 받은 듯 비단을 꾹 쥐었다. 그
뒤로 적힌 것은 공융이 위기에 빠지자 홀로 수만의 대군을 단기로 돌파한 일,
태사자가 유비를 원군으로 부르기 위해서 만천과해(瞞天過海)의 계책으로 수
만을 속이고 공융을 구원한 일을 칭찬하며 지금의 그와 비교하였다.
태사자는 화가 나서 읽지 못하겠는지 서신을 닫으려고 했다. 그 순간, 허탐이
말을 꺼냈다.
“그대를 알아주지 않는 이를 계속 섬기시겠소?”
태사자는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렇게 나를 모욕하고도 나를 등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이오? 나는 영
웅을 따르는 것이지, 그대의 주군 같은 범부를 따르고 싶지 않소.”
“태사 공, 주공께서 태사 공의 분노를 예측하시고 이리 말씀하셨습니다. 주공
께서 용맹이 부족하기에 휘하 장수들의 용맹이 돋보이며, 지혜가 부족하니 모
사들의 지혜가 돋보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공께서 말씀하시길 태사 공은
의열(義烈)하고, 용맹하며, 지혜로우니, 능히 군을 이끈다면 뭍 영웅들과 천
하를 논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허, 일군을 내주겠다는 말인가?”
태사자가 약간 풀어지는 모습을 보이자, 허탐은 쐐기를 박듯이 말했다.
“주공께서 이르시길 작금 강동에서 손가를 대적할 인물은 태사 공밖에 없으
니, 주공의 빙장(여포)에 대한 은원을 갚아 줄 인물도 태사 공밖에 없다고 했
습니다. 태사 공께서 주군께 속하신다면 주군께서 단양병을 내주고, 진짜 단
양의 태수가 되어 돌아오라 명했습니다.”
“나를 어찌 믿고 일군을 내준다고··· 그대의 주공께서 진정 그리 말한 게 맞소?”
이에 허탐이 크게 웃자, 태사자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영웅을 따르고자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 정도가 되어야 영웅의 배포가 아니
겠습니까? 또한 아까 말했듯 주공께서는 의열한 마음이 거짓이 아니라면 태사
공은 반드시 받은 이상을 돌려주는 선비이니 걱정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태사자는 한숨을 내뿜으며 서신을 다시 펴서 천천히 다시 읽었다.
“의기가 천하에 덮음에 구름이 낀 하늘에도 고고하구나. 자신을 돌보지 않고
의를 행하는 선비이니, 그가 바로 의열지사(義烈之士)로다.”
태사자는 갑자기 뜨거워지는 머리에 웃음을 지었다.
“내 강동을 넘어 소인들만 보아 그간의 일을 잊었나 보오. 나는 나를 높이기
위해 강을 건넜는데, 나를 알아주는 이가 강동도 아닌 강을 건너 있는 분이라
니! 내 말실수를 사과하오.”
허탐은 태사자가 어느 정도 넘어온 듯 하자 말을 이었다.
“주공께 신속(臣屬)하시겠소?”
“이 보잘것없어 버려진 이를 높이 평해 주는데, 어찌 따르지 않겠소?”
이날로 태사자와 휘하 병사들이 산에서 내려와 광릉으로 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