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10
310화
제갈량은 방통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유파가 지금 형주에서 일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딱히 이곳에 애착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방통이 영입 제안을 한다면 단번에 승낙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유 선생을 모셔 갈 생각입니까?”
그러자 방통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요…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갈량의 마음속에 안도감이 퍼졌다. 만약 지금 유파가 떠나간다면 형주에 큰 부담이 생길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머릿속이 맑아지자, 유파가 수춘과 어떤 연이 있는지 생각나지가 않았다.
제갈량의 마음을 꿰뚫어 보았는지 방통이 유파와 만나려는 목적을 얘기했다.
“유 공자(유종)께서 안부를 묻고자 서신을 보내셔서 전하는 것뿐입니다.”
그러고 나서 방통은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재빨리 말을 이었다.
“뭐, 사실 유 공자께서는 큰 공자님과의 불화를 풀고 지금의 상황에 대해 논하며 형제간의 우의를 다지려 하셨습니다. 그런데 큰 공자께서 병을 이기지 못하고 졸하였으니, 시신이라도 거둘 수 있을까 하여 제가 온 것입니다.”
제갈량은 방통의 말에 묵묵히 차만 마실 뿐이었다. 유기의 시신을 거두겠다는 걸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비록 유비가 유기의 장례를 치르고 상주를 맡기는 했으나, 그 이후의 후속 처리는 미흡했다.
그나마 상주를 맡은 일도 제갈량의 간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유비는 형주의 호족들에게 보여 주기 식으로 장례를 마친 뒤에는 유씨 일가에게 뒤처리를 떠넘겼다.
심지어 제갈량도 무덤을 만든 이후로는 유기의 일을 잊어버린 상태라 할 말이 없었다.
아마 방통이 오지 않았다면 완전히 기억에서 지웠을 터. 하기야 유표의 흔적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모조리 없애 버린 이가 제갈량 아니던가.
“공명,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예, 마중 나가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방통은 제갈량 주변에 쌓인 죽간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저렇게 많은 일을 처리하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수춘의 소식을 듣기 위해 자신과 만날 정도면 그곳의 상황이 꽤 궁금한 듯했다.
현청을 나온 방통은 자신이 던진 미끼가 불어올 풍랑에 기대감이 생겼다. 호족의 이야기로 제갈량의 마음을 홀렸으니, 앞으로 그가 어찌 움직일지 궁금하기 그지없었다.
그러고 나서 유파의 저택에 도착했으나, 집주인인 유파가 남군으로 향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공명, 정말 재미없는 장난을 치는구려.”
그때, 그의 뒤에서 말을 탄 무인 한 명이 도착했다. 말에서 내리는 사람을 보며 방통이 물었다.
“제갈 공께서 보내신 분입니까?”
“예. 유 공이 남군에 갔다는 소식을 깜박하고 전하지 않았다 하셨습니다. 돌아올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 우선 자신의 저택에서 지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방통은 손을 내저었다.
“아니, 되었소이다. 근처에 방씨 가문의 저택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 전해 주시게.”
제갈량의 명을 받은 병사가 빨리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방통이 재차 말했다.
“그리 중요한 일도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게. 공명이 설마 이런 일로 자네에게 책임을 묻겠나?”
그럴듯하다고 여긴 병사는 고개를 숙이고 다시 말을 탄 채 떠났다. 그도 그럴 것이, 제갈량이 그렇게 막 나가는 인물은 아니지 않은가.
* * *
“완전 막 나가자는 행동입니다. 이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요순은 성벽 밖으로 떨어지는 병사들의 시신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하루나 이틀 정도면 끝날 것으로 생각했는데, 저들은 멈추지 않았다.
게다가 적이 포로를 자꾸 죽여 성 밖으로 던지자, 병사들도 점점 분노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화와 달리 무관 공략에는 진전이 없으니, 그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관우는 요순의 말에도 아무런 반응 없이 그저 무관을 바라볼 뿐이었다.
“우선 병사들을 다독여라. 저들이 하는 짓은 무도한 행동이지만, 우리를 도발하는 게 뻔히 보이지 않나. 어설프게 대응하다가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장군. 저들을 그냥 두실 겁니까!”
그제야 관우는 고개를 돌려 요순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요순, 그럼 네가 원하는 바가 무엇이냐? 무리해서라도 성벽을 넘어 보자, 이 말은 아니겠지? 우리는 지금 무관의 눈을 이쪽으로 잡는 것만으로도 역할을 다하는 중이다.”
“그럼 대체 병사들의 분노는 어찌해야 한단 말입니까? 지금은 분노로 눈이 흐려져 적에게 신경이 쏠려 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분명 큰일이 일어날 게 뻔합니다.”
사실 관우도 같은 생각이기는 했다. 유협들의 대장이 없어지고 구심점이 사라진 이들을 흡수한 뒤 상황이 조금 나아진 듯했으나, 병사들은 점점 길어지는 공성전에 지쳐가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병사들에게 쌓인 분노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분명 처음에는 동료들의 시신을 욕보이는 마초에게 향했지만, 점점 관우에게도 불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관우군은 원래 관우의 무예와 힘에 이끌려 모인 이들이 대다수였는데, 이처럼 지지부진한 상황에 점점 존경심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관평도 조심스럽게 옆에서 말을 꺼냈다.
“아버님, 부관들 사이에서도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고요한 가운데, 관우가 침묵을 깨며 말했다.
“군을 물린다.”
“장군!”
“아버지!”
그러자 관평과 요순, 두 사람은 눈을 왕방울같이 뜨고 관우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관우의 눈은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없었다.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관우의 결정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았으나, 다시 한번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관우는 대답 없이 자리를 떠났다.
* * *
무관에서는 관우의 군대가 철수할 준비를 하자 당황했다. 마초가 세운 도발과 모욕 전략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너무 잘 통했기에 적이 철군을 결정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원래 의도대로 성공하지는 못한 셈이라 마초의 얼굴은 분노에 차 붉어져 있었다. 결국, 전장에서 관우의 수염 한 자락도 보지 못했으니.
곽원이 그 모습을 보며 껄껄거리며 웃자, 마초는 인상을 찌푸리며 성벽을 두들겼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꽁무니를 뺀단 말인가? 관우, 저자는 자존심도 없는가! 더더욱 달려들어도 모자랄 판에!”
그러자 마초의 옆에 서 있던 양수가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무관이야 어차피 미끼일 뿐이었을 테니, 저들의 처지에서야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방책이겠지요.”
“혹시…….”
“불허합니다.”
양수는 마초의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곧바로 거절했다.
“어째서 그러는가? 적들의 퇴로를 습격하면 전공을 세울 수 있지 않겠나?”
“함정일 가능성이 더욱 큽니다. 뒤를 잡는 게 아니라 덫에 걸리는 셈이지요.”
“설마, 저들이 함정을 만들 정신머리가 남아 있겠는가?”
“하하하, 장군. 지금껏 관우가 계책에 당했다고 무시하면 안 됩니다. 이번에야말로 직접 나올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더욱 좋군.”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방덕은 한숨을 내뱉었다. 지금 양수의 말 때문에 마초의 추격 의지는 더욱 굳어졌으리라.
“공자, 뭐가 그리 좋습니까? 관우가 함정을 파고 기다린다면, 우리라고 멀쩡하겠습니까?”
“무서운가?”
“어찌 그런 말을 하십니까? 아니, 공자를 막으려면 차라리 무섭다고 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공자께서 무사히 돌아가는 게 제가 마가에 받은 은혜를 갚는 일입니다. 부디 제가 은을 갚을 수 있게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나를 지키시게.”
그러고 나서 마초는 빠르게 내려가 군을 준비했고, 방덕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홀로 남은 방덕에게 양수와 곽원, 두 사람이 다가갔다. 그러자 방덕은 예를 표하며 고개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마 장군이 이 정도로 무식하게 움직이지 않는 분인데, 친족과 족인들이 관우의 손에 죽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두 분께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사실… 뭐, 이런 일은 예상한 범주 안이었습니다.”
양수는 이전에 방덕과 이야기하던 것을 떠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돌발적인 사태에 방책을 세우는 것이 제 역할이니 대비해 둘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방덕이 빠르게 내려가자, 곽원이 양수의 옆에 서서 물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적을 속이기 전에 아군을 속이라는 말이 있으니, 대어를 낚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요.”
그러자 곽원이 피식 웃으며 양수를 바라보았다.
“어째 점점 가 노사를 닮는 것 같습니다.”
“곽 장군이야말로 고 장군을 따라 하시는 것 같고요.”
“저는 그저 흉내에 불과하고, 양 책사는 정말 가 노사를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둘은 엄연히 다르지요.”
“그렇습니까?”
“하하하, 보십시오. 그 얼버무리는 대답. 정말 가 노사가 오신 줄 알았습니다.”
다음날, 마초는 해가 뜨기 직전 야음을 틈타 무관을 떠나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모닥불 몇 개만이 있는 관우군의 숙영지에 마초와 기병들이 들이닥쳤다.
마초는 초병들을 베어 버리고 적의 주둔지를 빠르게 돌파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득 너무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하의 관우가 이렇게 무방비하다는 말인가?’
마초는 함정임을 눈치채고 재빨리 그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속도를 올렸다. 그러나 그의 눈앞에 관우가 떡하니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눈이 돌아간 마초가 외쳤다.
“관우! 목을 내놓아라!”
그때, 관우가 손을 들어 올리자 사방에서 창병들이 나타났고, 순식간에 마초는 포위될 위기에 처했다.
방덕은 그런 모습을 보며 마초에게 말했다.
“공자, 함정입니다!”
“나도 알고 있어!”
마초는 말에 매인 활을 꺼내 들고는 관우를 향하여 화살을 쏘았다. 그러나 관우는 날아오는 화살의 궤적을 보다가 손쉽게 월도로 쳐 내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시작으로 관우도 자신의 수하들과 함께 마초에게 달려들었다. 여러 차례 화살이 날아들었지만, 어느 것도 관우의 몸을 건드리지 못했다.
타아아아아악!
관우와 마초가 부딪치는 것을 시작으로 양측의 기병들이 엉키기 시작하였다.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고 말에서 떨어지는 병사들도 보였다.
“장군, 관우에게만 신경 쓰면 아니 됩니다!”
방덕의 외침에 마초가 주위를 둘러보려는 순간, 관우의 월도가 목을 향해 날아왔다. 겨우 막아낸 마초가 물러나려고 할 때.
“어디를 도망가는가?”
그 도발을 참지 못한 마초는 지금껏 참은 분기를 쏟아내듯 관우를 향하여 창을 내질렀다.
“젠장, 이럴 줄 알았지! 양흥! 병사들을 이끌고 뒤로 길을 열게!”
“영명, 그대는 어찌하려 하는가?”
“공자를 구해야지.”
“알았네. 살아서 보도록 하지.”
비록 함정에 빠졌지만,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관서의 병사들은 날래고 강했다. 적의 창병들이 진을 세우고 이들을 압박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상대하고 있었으니. 이 모습에 안심한 방덕은 병사들을 지휘하는 대신, 마초를 구원하기 위해 움직였다.
“죽어라, 관우! 동생들의 복수를 하겠다!”
마초는 현란한 솜씨로 관우를 몰아붙였다. 그러나 관우는 그 모든 공격을 한 점의 흔들림 없이 받아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