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13
313화
관우는 마치 무소와 같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병사들을 쓸어버리며 나아가고 있었다. 피에 젖은 월도는 도라고 불리기에는 무겁기 그지없었다. 길고, 무겁고, 두껍고, 날카롭지도 않았다. 그것은 그야말로 철퇴나 마찬가지였다.
“크아아아악!”
“으아아아아, 살려 줘!”
그러니 관우를 맞상대하는 이들은 편히 죽지 못하고 머리가 으깨지거나, 사지가 부서진 채 쓰러질 수밖에.
그러나 그들을 쓰러트리는 관우의 눈에는 어떠한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보통 이러한 살육을 하게 되면, 본능적으로 광기에 휩싸이기 마련인데 말이다.
염행은 그런 관우의 모습을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코를 살살 긁으며 무예를 감상하는 모습만 보면, 이 상황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리라.
사실 염행은 가후의 명을 받아 군을 움직였다. 사례가 무너지면 곧 하북도 무너진다는 말에 급히 남하했지만, 본래 자신의 싸움도 아니니 조금 위기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괜히 왔나.”
일견 무식해 보이는 관우의 공격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염행이었다. 저 기세가 얼마나 이어질까 하는 생각으로 지켜보고 있다가, 한참 동안 흔들림 없는 관우의 모습을 보며 부관에게 말을 걸었다.
“네가 볼 때는 어떤 것 같나?”
“저대로는 큰 손해가 날 게 분명합니다.”
“…끝인가, 학 도위?”
그러자 학소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관우는 장군 정도의 실력자가 붙어야 막을 수 있는 장수입니다. 게다가 저들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격하는 중이니, 우리가 나서봐야 피해만 볼 뿐입니다.”
“그래도 사방에서 군을 이끌고 나가면 충분히 저들을 포위하여 공격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학소는 고개를 내저었다.
“지형이 영 좋지 않습니다. 궁수들이 다시 자리를 잡을 때쯤이면 적을 놓칠 가능성이 큽니다.”
염행도 주위를 스윽 훑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깎아지른 듯한 절벽은 아니지만, 궁수들이 자리 잡기에는 어려운 지형이었다. 자칫 실수하면 지금 위치가 들통나거나, 난전이 벌어지는 곳 앞까지 밀려갈 수도 있었다.
“그렇긴 하겠군. 그래도 이렇게 가만히 숨어서 미끼로 내놓은 놈들을 버려두는 것도 좀 아니지 않은가.”
학소는 관우의 월도에 쓸려나가는 이들을 바라보며 별 감흥이 없는 표정으로 말을 꺼내었다.
“병주와 사주 일대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놈들입니다. 자신들을 임협이라고 칭하며 멋대로 칼을 휘두를 뿐만 아니라, 적장인 관우를 흠모하는 자도 있습니다.”
“그래서 관우와 싸우게 놔두었다는 말인가?”
“그들이 좋아하는 대로 해 줄 뿐입니다. 관우의 앞에서 자신의 무예를 뽐내고 싶어라 하였으니, 소원을 들어주었습니다.”
“흠, 그런가…….”
염행도 처음에는 학소가 군대 안의 임협들을 회유해 모조리 고기 방패로 만든 일에 대해 꺼림칙하게 여겼으나, 자세한 설명을 듣자 곧 이해할 수 있었다.
또, 어차피 학소의 냉혹함보다 가후가 염행을 더욱 두렵게 만들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건 그렇고, 고간이 우리가 없어졌다고 냉큼 군을 일으킬지도 모르겠군.”
학소는 멀어지는 관우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유비의 진군으로 하북의 군세가 꽤 많이 중원으로 움직였습니다. 만약 고간에게 야망이 있다면, 아마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가… 그런데 자네는 걱정되지 않나? 고간이 반기를 들어 올린다면, 고향이 위태롭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지 않은가.”
그러자 학소는 별것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가족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이주시켜 두었습니다.”
그런 학소의 말에 말문이 막힌 염행은 입술을 혀로 핥았다.
“그래, 그렇군.”
염행은 관우가 그들을 지나치는 것을 바라보며 학소에게 물었다.
“그런데 양 종사가 원한 것은 관우를 막는 것이 아니었나?”
“정확히 말하면 ‘관우의 발목을 잠시 잡았으면 좋겠습니다’였습니다. 저희는 활도 쏘았고, 병력을 동원해 시간도 끌었지요. 관우가 이곳을 지나가지 못하도록 하라는 말은 없지 않았습니까?”
너무 빡빡하게 따지는 학소의 말에 염행은 순간 귀를 막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런 놈 밑에 들어가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지. 믿을 수 있는 상관은 되겠으나, 밑에서 일하면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게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니.’
“그렇지. 뭐… 양 종사가 자네를 모르지도 않고, 가 노사께서 칭찬한 인물이니, 자네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겠나. 화살이나 한 번 더 쏘아서 방해하면 될 테지.”
양수는 멀리서 쏘아지는 화살과 관우에게 학살당하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정말 시킨 대로만 하고 있군.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좀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뭐, 그 정도는 아닙니다. 어차피 이번 계책으로 관우를 죽이려 한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양수의 말을 들은 마초가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내게는 관우를 죽일 것이라 하지 않았는가! 내게 거짓을 고한 것인가!”
“저는 분명 잘만 하면 관우를 죽일 수도 있다고 말을 올렸습니다.”
양수는 마초의 앞에 서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장군께서 가면을 더욱 잘 쓰고 퇴각하는 관우만 쫓지 않았다면 충분히 잡을 수 있었을 거란 말입니다.”
사실 양수도 그렇게 말을 하면서 확신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정말로 관우가 죽으면 유비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최대한 병사의 숫자를 줄이는 데 집중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나 양수의 거짓말에 속은 마초는 고개를 푹 숙였다. 온현에서 나왔을 때는 자신만만하게 모든 목적을 이룰 수 있으리라 믿었다. 실제로 세운 계획도 나쁘지 않았다. 눈앞에 보이는 양수도 자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는가.
‘언제나 나는 마무리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구나.’
용두사미라는 말이 마치 자신을 칭하는 말 같았다. 순간 의욕이 모두 꺾인 마초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다음은 어찌할 것이오.”
“관우가 물러날 것이니, 유비가 점한 곳을 위태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마초는 양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군을 나누겠다는 건가? 내 족인들이 그렇게 당했는데, 아마 소용없을 것이네. 그저 관우에게 각개 격파당할 뿐이지.”
“그건 유비가 승승장구할 때의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 * *
조인의 복수전을 하겠다며 나선 하후돈과 하후연, 조홍이 군을 이끌고 여남에 도착하였다. 막사에는 그의 휘하에 배속된 우금, 이통, 서황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마 조조가 살아있다면 조조가 상석에 앉아 그들을 지휘했을 테지만, 지금은 하후돈이 상좌에 앉은 상태였다.
그러고 나서 하후돈은 지휘봉으로 지도를 툭툭 건드렸다. 섭현과 노량현이 유비군에게 넘어간 상태였는데, 하후돈은 지난번 전투에서 당당히 나선 이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제 어찌할 텐가?”
하후돈의 물음에 두 현을 내어 준 장수들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장비의 계책에 노량현이 넘어가고 뒤이어 섭현에서 기습을 받자 속수무책으로 내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패장인 하후가의 인물들은 말이 없었다.
그와 달리 하후씨 일파가 아닌 우금이나 서황 같은 이들은 이번 일에 빠져있었기에 그저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하후돈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후 가문에 충성하는 이들이 참패하였으니, 다시 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게다가 곤양에서까지 밀리게 되면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인 것과 다름없으니, 무조건 막아 내야 했다.
하후돈은 손을 내저으며 모인 이들을 물러가게 하며 말했다.
“모두들 나가 보게. 내 나중에 부를 것이니. 아, 그리고 한 장사는 남도록 하게.”
잠시 후 모두가 물러가고 한호만이 자리에 남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드릴 말이 없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려고 내가 자네와 독대하겠는가?”
한호는 잠시 입을 우물거리더니, 이내 결심한 듯 말했다.
“순가나 수춘후와 친한 이들을 기용해야 합니다. 이렇게 뒤로 둘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지금같이 위태로운 때에 사람을 가려 쓴다는 것 자체가 미친 짓입니다.”
하후돈은 한호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하기야 미친 짓이라는 직접적인 비판을 들었으니 기분이 상할 만도 하였다.
물론 하후돈도 그들의 능력이 출중한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고 있는 상황에서 공을 세울 수 있게 군권을 내어준다는 게 영 마뜩잖았다. 그러나 이전에도 이런 마음가짐 때문에 패배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장군, 지금 눈앞에 닥친 일을 해결해야 미래도 있는 것입니다. 저들이 군권을 가져간다 한들 장군의 영향력에 미치지 못합니다. 대저 많은 군졸이 장군을 존경하니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제야 하후돈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일단 그리하도록 하지. 이번에 패퇴한 이들은 후방으로 빼고, 예전 명공께서 기용한 이들을 전면에 내세우겠네.”
한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후돈에게 대례를 올렸다.
“현명하신 판단이옵니다. 장군께서 걱정할 만한 일들은 소신의 손으로 치우도록 하겠습니다.”
이윽고 하후돈이 내린 명령에 따라 우금과 서황, 허정 등이 전장으로 나서게 되었다.
가장 앞에 서 있는 허정은 커다란 몽둥이 같은 철퇴를 들고 있었는데, 그것을 이용하여 연신 어깨를 두들겨 댔다. 그러다가 말의 속도를 줄여 같이 나아가고 있던 우금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서 중랑장의 말대로 정말 이번에는 저희가 군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똑똑한 양반입니다.”
우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하니 승상이 곁에 두지 않았겠는가?”
“그렇겠지요. 보아하니 무예도 꽤 뛰어날 것 같습니다.”
우금은 그런 말을 하는 허정을 위아래로 훑었다.
“서로 싸우면 아니 되네. 언제 장비가 급습 할지 모르니 말이야.”
“알고 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수춘후께서도 이번 일에 군을 보낸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언제 오실지 참으로 기대됩니다.”
물론 원군이 오는 건 기뻐할 일이지만, 예상외로 너무나 기대하는 허정에게 우금은 한마디 던질 수밖에 없었다.
“왜 그리 좋아하는가?”
“하하하,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동안 수춘후께서 참전한 전장에서 이렇다 할 패배가 없었으니, 분명 이번에도 승리할 테니 말입니다.”
우금은 그런 허정의 말에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적들의 상황은 언제나 복잡해졌지… 승리든 패배든 말이야.’
우금은 승태가 이번에는 수춘에 남아 움직이지 않을 거라는 서신을 받았다. 대신 조조의 후예들이 움직일 테니, 혹여 그들에게 나쁜 마음을 가지지 말아 달라는 이야기까지 적혀 있었다.
‘분명 이번 전쟁도 승자와 패자, 모두가 복잡한 상황에 빠지겠지.’
우금은 뒤에서 따라오는 서황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서황을 굳이 보낼 필요가 있던가?”
“무슨 생각을 그리하십니까?”
우금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네. 그저 사소한 잡생각을 했을 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