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14
314화
승태는 자신의 손에 놓인 서신을 바라보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자 안 좋은 소식을 가져온 서서가 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까… 지금, 승상을 노리는 이들이 나에게 이러한 서신을 보내왔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누가 보냈는지는 확인해두었습니까?”
“…….”
승태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서서조차 정체를 알아내지 못하다니, 어지간히 조심스러운 자들이 아닐 수 없었다.
“대강 예상되는 이들이라도 말해 보시지요.”
“그것이… 사실 후보가 너무나 많습니다. 물론 승상의 목숨까지 노릴 정도로 깊은 원한을 가진 자는 드물겠지만, 순가와 현 조정에 불만을 품은 자는 두 손으로 세기 힘들 정도입니다. 또, 원한 관계가 아니더라도 승상을 처리한 뒤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야망의 소유자일 가능성도 있어 정확한 답변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그 말에 승태는 곰곰이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많은 이들이 순가를 노린다…….”
사실 상황이 이렇게 변한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순가의 인물들은 가문의 사람들이나 각자의 인맥으로 내각을 모조리 장악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조정을 순가의 사유지로 만들어 버린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비판하기도 힘들었다.
순씨 가문의 인물들이 능력이 부족할 리가 없고, 그들이 뛰어난 안목으로 발탁한 사람들 역시 출중한 인재였다. 그러다 보니 점점 순가의 줄을 잡은 이들이 중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반복되니 순가와 끈이 닿지 않는 이들은 조정으로 진입하기가 어려워졌다.
물론 만총, 서황 등 몇몇 인물들은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으나, 그들은 기라성 같은 인재 중에서도 아주 출중한 이들.
결국, 각자의 고향에서는 천재라고 불리며 추천을 받았는데도 중앙에선 허접스런 잡일이나 하게 되니, 점점 불만이 차오를 수밖에.
그리고 끝내 그 불만의 칼끝은 순욱에게 향해졌다. 이제 누군가 갑자기 순욱을 죽이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어쩌면 순가의 전횡이라는 명분 아래 낙양이 뒤집어질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내게 서신을 보낸 건 자신들의 힘으로는 순욱을 제거하기 힘들기 때문이겠군.’
지금은 거사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어떻게든 명분을 끼워 맞출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자신에게 조력자가 되라고 서신을 보냈다는 건 반란 세력이 힘이 부족하다고 자인하는 꼴이 아닌가.
“하, 누구인지 모르게 서신을 보낸 능력은 인정하지만, 나를 고른 것은 실수지. 원직, 승상께 보내지요. 그분께서 알아서 처리하시겠지.”
승태의 결정은 합리적이었다. 정체도 모를 자들과 손을 잡는 것보다는 순욱과 연대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별 것도 아닌 놈들이 이렇게 서신을 보낼 정도면 조정 안은 더 지옥이겠군. 하긴, 기강을 잡을 이들이 모두 사라졌으니 그럴 만도 하지.’
그동안 순가는 법도를 지키던 최염이나 공융 같은 이들에게 벌을 내리거나, 천도한 낙양으로 부르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을 따르던 파벌의 반발이 조금씩 터져 나오고 있었다. 아마 이 서신도 그런 일파의 소행이 아닐까.
다만 중앙과 거리를 두려고 하는 승태가 걱정할 바는 아니었다.
“제 이름 하나 못 밝히는 이런 놈들이 성공할 거라는 생각은 안 드는군요. 뭐, 진짜 난을 일으킬 작정이라면 내게 서신을 보내는 게 아니라 낙양에 남은 장수들부터 회유했을 테니까…….”
승태는 이제 자신도 꽤나 정치적인 역량이 늘었음을 느꼈다. 오랫동안 여기저기에 치여서 그런지 사태를 읽는 눈이 생겼고, 옆에서 모사가 돕지 않더라도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하긴, 그 고생을 했는데 이 정도는 해 줘야지.’
기분이 좋아진 승태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러던 와중, 유비군을 진압하러 떠난 조창이 떠올랐다.
“조창은 어디쯤 도착했겠습니까?”
“아마 지금쯤이면 여남 일대를 지나 하후 장군 부대 휘하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흠… 처신을 잘할 테니 걱정은 안 해도 괜찮겠지요. 아, 그리고 관우가 무관에서 물러났다고 하던데 덕조(德祖 양수의 자)가 이번에 큰 공을 세운 것 같습니다.”
“예. 게다가 무관에서 물러난 관우를 연수까지 밀어냈다고 합니다. 다만 저항이 거세 연수를 넘지는 못했다고 소식을 전했습니다.”
관우를 상대로 큰 수확을 얻은 셈이었다.
“추가적으로 관우의 아들을 생포했다고 합니다.”
“음? 혹여나 죽인 것은 아니겠지요?”
승태는 순간 가슴이 덜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삼국지연의에서 관우 부자가 죽었다가 얼마나 큰 파문이 발생했는가.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는 그의 은인이지요. 거의 죽어가던 인물을 거두어 살렸으니 말입니다.”
승태는 서서의 말에 마음을 놓고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이네요, 정말 다행이야. 혹여나 죽는 일 없도록 신경 쓰시지요. 관우의 분노를 덮어쓰고 싶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그 부분은 걱정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그래도 죽어가는 인물이니 혹시 모를 일 아니겠습니까.”
“후발대가 복귀하며 아마 관우의 아들도 데리고 올 것입니다.”
그 말에 승태는 눈을 반짝였다. 거래할 수 있는 패가 하나 늘어나는 건 언제나 기쁜 일이었다.
“맞이할 준비를 해 두어야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 형주로 간 방 선생에게는 아무 소식 없습니까?”
진궁을 모셔오라는 부탁을 받고 떠난 방통이 묵묵부답하니 승태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생겼다.
“진 선생께서 남군으로 가셔서 일의 진행이 더딘 것 같습니다.”
“하아, 대체 무엇을 꾸미시는지…….”
* * *
유찬은 황조가 내어 준 저택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분명 황조가 귀를 심었을 거라는 의심 때문이었다. 다행히 유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인지 아무 이상 없었다.
유찬이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내자, 진궁은 주불의를 바라보며 물었다.
“형주의 만(蠻)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 것 같은가?”
“그놈들이 원하는 것은 결국 곡식을 얻을 수 있는 땅이 아니겠습니까?”
“땅과 곡식이라… 하기야 그들은 복파 장군께 옥토를 모조리 빼앗기고 밀려났으니 당연한 이야기겠군. 그런데 어째서 만의 세력이 남군까지 위협할 정도가 되었을까. 그것도 아는가?”
“황 도독께서 강하에 머무는 동안 이들과 친분을 유지한 게 세력 확장에 도움이 된 것 아니겠습니까.”
“그건 강하의 이야기지, 남군을 노리는 이유가 될 순 없어.”
“그동안 오나라를 자칭한 손씨 일가를 무너트리기 위해서 같은 배를 탔는데, 이제 공동의 적인 손가가 무너진 상태입니다. 그러니 서로의 이권을 다투는 게 당연합니다.”
“주불의, 그건 산월의 이야기가 아니었나? 설마… 무릉만도 황 도독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는 말인가?”
“사실 돌아가신 유 형주를 대신해 여러 오랑캐를 관리하던 분이 바로 황 도독이었습니다.”
진궁이 진정으로 궁금한 것은 어떻게 형주와 산월의 만을 수월히 손발처럼 이용했냐는 것이었다.
‘가만히 있던 그들이 반발하는 이유가 분명 있을 터. 아마 약속한 것을 받지 못하거나, 그동안 받던 원조에 문제가 생겼겠군.’
“노사, 형주의 만을 이용하려 하십니까?”
주불의의 물음에 진궁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우선 자네가 말한 일을 처리한 뒤에 생각할 문제이네.”
황조를 죽일 수단. 분명 주불의는 그 방법이 있다고 말하였다.
“자네는 황조와 유비, 둘의 사이를 이간질시켜 황조의 목을 얻겠다 말했지. 그게 가능하겠는가?”
“불가능했다면 노사를 여기까지 모시지 않았지요. 제갈량이 발의한 정책을 황조에게 알린다면, 그는 분명 반기를 들 것입니다.”
그 자신만만한 태도에 진궁은 강렬한 눈빛으로 주불의를 쏘아보았다.
“그 정책… 거짓은 아니겠지?”
마른 고목나무 같은 진궁이었지만, 그 위압감만큼은 대단해 순간 주불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누구 앞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다만 제갈량은 황조라는 거물이 죽은 뒤에 실시할 계획이겠지만, 저희가 미리 알려 줄 뿐이지요.”
그제야 진궁은 미소를 지었다. 그도 제갈량이 펼칠 정책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간단히 말하면 호족들의 부곡을 빼앗는 법안이었다. 유협들이 유비에게 반기를 든 일도 있으니 명분도 충분했고, 형주의 뭇 사족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황조를 필두로 한 강하와 남형주의 장수들에게는 큰 반발을 살 수밖에 없는 정책이기도 했다.
“하지만 황조가 반기를 들 거라 확신할 수 있는가? 중요한 건 그것이지.”
그러자 주불의는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말입니다… 손가에 연이 닿은 인물 하나를 미끼로 쓰려 하는데 노사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손가와 관련된 인물이 내 손안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진궁의 물음에 주불의는 미소를 지우고 냉담하게 말했다.
“노사, 여기까지 와서 저를 시험하지는 마시지요. 선생님의 손안에 모든 패가 있지만, 그걸 주도한 인물을 찾으려고 하신 것 아니었습니까?”
“그대가 이번 일을 맡을 역량이 된다고 생각하나?”
진궁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자, 주불의는 다시 한번 키득거리며 말했다.
“제가 모든 걸 이끌지는 못해도, 주도하는 인물의 옆에 설 정도는 될 겁니다.”
* * *
한편, 황조에게 초대받은 유파는 술자리에 참석해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갑자기 주불의가 제갈량의 정책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다.
뜬금없는 화제에 유파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을 본 황조가 웃음을 띠며 주불의에게 물었다.
“그것이 무슨 말이니?”
어린아이인 데다가 유파의 제자인 만큼 상대하는 황조의 목소리가 상냥했다.
“제가 스승님과 이야기 하던 내용이라 도독께서는 어떤 생각인지 궁금하여 말한 것뿐입니다.”
그러자 황조는 고개를 끄덕이고 아들을 불렀다. 곧 황조의 아들이 주불의와 함께 술자리에서 물러갔다.
“선생, 방금 한 말이 사실입니까?”
하지만 유파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겨우 입을 뗐다.
“내가 여기 온 것도 도독과 이 사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가병들을 중앙군으로 넣는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도독도 어느 정도 깨닫지 않았습니까? 이제 손가가 사라졌으니, 강하와 형남의 위협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하… 선생께서는 나를 설득하려고 오신 것이구려.”
유파는 끄응 하는 소리를 내었다.
“이건… 휴우, 사군이나 제갈 군사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니 제가 알려 드린 건 비밀로 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나 황조는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에 자신의 감정을 참기 어려운지,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이를 갈았다. 어색한 침묵이 한창 이어졌다.
“내 선택이 틀렸나 봅니다.”
마침내 황조가 한마디 꺼냈지만, 어쩐지 분노가 서려 있는 듯했다.
“황 도독, 분명 사군께 직접 말을 하면, 생각하는 바를 바꿀 것입니다.”
황조는 가만히 듣다가 자리에서 떠났고, 홀로 남은 유파는 차분한 눈초리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황조는 완전히 일그러진 얼굴로 걸음을 옮기며 입을 이죽거렸다.
“사냥개는 나였던가? 유비여, 유비여. 그대의 뒤를 지켜 주는 나와 어찌 적대하려 하는가? 내가 힘을 보여 주어야 생각을 바꿀 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