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15
315화
황조는 자신의 침소로 돌아와 작은 갑에 들어있는 물건들을 꺼내었다. 옥 인장과 청동 도끼. 황조는 그것을 바라보며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내게도 삶아 먹을 개가 있지. 하지만 마지막까지 유용하게 써야 하지 않겠는가.”
황조는 이번 사태를 단순한 분노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다만 무작정 화만 낸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뿐이었다.
자신의 필요성을 알리는 것. 그게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었다. 솔직히 황조는 유비에게 당장 칼을 들이밀 생각은 없었다.
‘멍청한 놈들이야 유비같이 위험한 이에게 곧바로 칼을 들이밀었겠지만, 아직 타협을 할 수 있으면 이야기가 다르지. 하나… 협상을 위해서는 나의 중요성을 먼저 알아야 할 터.’
황조는 꺼낸 물건들을 다시 갑에 넣고 일어났다. 침소에서 나오자 문 앞에서 대기하던 그의 아들이 곁으로 다가왔다.
“아버님, 선생께서 저택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황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을 붙이지는 않았겠지?”
“예. 그래도 귀를 심어 두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혹여 무슨 일을 획책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말거라. 그렇지 않아도 문신들이 나를 만나려 하지 않는데, 뛰어난 인물에게 그런 짓을 했다간 내 평판이 더욱 내려갈 테니. 그리고 고작 유 공과 그의 일행 둘이서 무엇을 하겠느냐?”
“혹여 이번 일을 저희에게 알린 것이 유 사군과 저희 사이를 이간하기 위한 작전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유 공이 말인가? 하, 그래서 그가 얻을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혹 수춘후와 연결이 되어 있을 수도…….”
“시끄럽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대체 수춘후가 무슨 이유에서 나나 유비를 노리겠느냐. 이번 전투에서 가장 큰 혜택을 받을 인물이 수춘후일 텐데 말이야.”
“그, 그렇습니까?”
“그렇지. 아들아, 혹여 유비가 허도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이제 여기저기서 반기를 들어 올리겠지. 그렇다면 수춘후의 세력은 어찌 되겠느냐.”
황조의 아들은 입술에 침을 바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패권에 가까워질 것 같습니다.”
황조는 아들의 대답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없이 움직였다.
“아들아, 생각을 하거라. 내 이제 언제 귀천을 하여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다.”
“아버지, 어찌 그리 암담한 말씀을 하십니까!”
황조는 제 아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황가를 이끌어 가기에는 영 어리숙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대안이 없으니 어찌하겠는가.
‘내 그동안 원한을 많이 쌓아 걱정뿐이로구나.’
아들이 나이가 들었음에도 그저 아이로 보이는 황조였다. 그는 속으로 크게 한숨을 내쉬고 다시 움직였다.
* * *
황조가 꺼낸 물건 중 하나가 산월의 부족 부왕의 손에 들려 있었다.
청동 도끼.
그의 눈은 이것이 진짜인가 하는 의구심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의 선대들이 신물이라 여기던 물건이 쥐어져 있으니 아무리 의심을 하더라도 내심 좋아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게다가 그들 부족은 자신들을 백월이라 칭하며 월족 중 가장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니 이런 물건을 얻으면 앞으로 더욱 세를 키울 수도 있었다.
“이 도끼… 정말 진짜인가?”
“황 도독이 가짜 물건을 가지고 어설프게 속일 분입니까?”
왕은 자신도 모르게 끄덕였다. 그동안 꾸준히 황조의 지원을 받은 부족들이었다. 그리고 황조는 그들에게 어떠한 사기도 치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거짓이면 또 어떠한가? 월족의 신뢰를 받는 황조가 인정하는 신물이라면, 거짓이라도 권위를 가질 수 있으리라.
그러나 함께 가져온 죽간을 쭉 읽어 내린 월족의 왕은 한숨을 내쉬었다.
“군을 일으키기는 어렵지 않으나, 문제가 있소이다. 우리는 수춘후와의 약조가 있어 병력을 모으기 전에 이들에게 먼저 알려야 하오. 그러다 보니 조금 염려스럽군.”
원래 역사였다면 이미 황개에게 토벌당하고 사라져야 할 운명이었으나, 승태가 패권을 잡은 뒤 월족에 대한 무리한 토벌은 없어 세력을 키울 수 있었다.
하기야 이들도 승태 세력의 강대함을 이전의 일로 여실히 알았고, 굳이 대적하지 않았기에 서로 협력하는 사이로 남은 상태였다.
그런데 양 세력 간의 교류가 생기며 월족의 귀족들이 큰 부유함을 얻었는데, 만일 승태와의 조약을 어긴다면 손해가 발생하니 분명 거부할 터.
게다가 그 귀족들은 사실상 수춘후의 눈이 된 상태라 몰래 병사를 일으키는 것도 힘들었다.
그러한 사정 때문에 계속 고민을 하자, 신물을 가져온 이가 왕을 설득하였다.
“만일 왕께서 이번 일을 승낙하신다면, 능히 진정한 월족의 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도끼는 분명 월족의 신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네. 진정한 왕이라니…….”
“월나라 인수입니다. 또한 주나라에서 내린 구석도 있습니다.”
곧바로 왕의 눈이 왕방울처럼 커졌지만, 이내 평온을 되찾았다. 그러다가 와락 얼굴을 찌푸렸다. 분명 자신에게만 이 조건을 알리지는 않았으리라.
“다른 부족장들에게도 같은 제안을 했는가?”
그러자 상대는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이런 선물까지 전해 드리면서 제안한 건 백월왕 뿐이옵니다.”
그러자 왕은 눈을 질끈 감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신의 멱살을 잡았다. 사신은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하면서도 자신을 해치지 못할 거라 확신하는지 큰 소리로 외쳤다.
“당장 놓으시지요! 제가 죽는다 하여도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다른 이들에게 넘어갈 것입니다!”
“나야말로 월족의 정통이다. 그 물건은 응당 나의 것이 되어야 한다.”
“필요하시다면 저희를 도우면 될 것입니다. 크흐흐흐!”
그 도발에 백월왕은 곧바로 사신을 내던졌다.
우당탕탕탕!
백월왕이 이토록 흥분한 이유가 있었다. 스스로를 백월이라고 칭하며 월족의 정통이라고 떠들지만, 딱히 내세울 만한 증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가장 강대한 세력으로 다른 이들을 찍어 누른 뒤 억지로 따르게 할 뿐.
그러니 다른 부족장이 월나라의 인과 주나라에서 내린 물건들을 보이며 자신들이야말로 월나라의 진정한 후예라 말한다면, 그간 그들의 아래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들이 모두 들고일어날 게 뻔하였다. 만약 그들이 힘을 합친다면 패배하는 쪽은 백월족이리라.
“군을 모으겠네.”
* * *
제갈량은 위로 올라온 죽간들을 쓰윽 훑었다. 무표정한 제갈량의 얼굴이 갑작스럽게 찌푸려졌다.
“황조가 머리를 쓰는 게 보이는군.”
제갈량은 자리에 앉아 죽간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작금은 유비를 따라 대다수의 능력 있는 장수들이 움직였기에 황조의 행동에 대응할 수 있는 이들이 없었다.
황조는 산월과 무릉만이 크게 도발을 하고 있으며, 강하도 위태롭다는 보고를 올렸다. 그리고 각지에서 군을 뽑을 수 있는 권한을 내려 달라는 요청을 했다. 심지어 각 현의 가문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무기도 지원해 달라는 말까지 적혀 있었다.
“정확한 실태를 알 수 없으니…….”
지금 남군으로 내려간 유파에게 물어봐도 괜찮겠지만, 그가 움직인 이후에 황조가 이러한 일을 벌였으니 믿을 수가 없었다.
제갈량은 고민하다가 병사를 불렀다.
“방 사원(士元)을 불러주겠는가?”
얼마 지나지 않아 방통이 도착했고, 제갈량은 죽간을 건네며 말했다.
“사원, 이곳에 가 주겠습니까?”
방통은 죽간을 받아 주르륵 읽더니, 제갈량을 바라보았다.
“분명 이곳의 일을 도울 수는 없다고 전하였는데, 제 말을 귓등으로 들으셨습니까?”
방통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진궁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어 머리가 복잡한데, 이런 일까지 떠맡을 생각은 없었다.
“내 유 공이 어디로 갔는지 알려 주겠습니다.”
“장난하십니까? 남군으로 간 것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왜 갔는지 이유는 모르지요? 누군가를 만나러 갔습니다.”
방통은 순간 제갈량이 누구를 말하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분명 죽간과 연관이 있을 터. 어차피 유파를 찾아간다면, 저 일과 겸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공명, 그대에게는 당해 낼 수가 없군요.”
방통이 웃으며 승낙하자, 제갈량은 작은 표를 내주며 말했다.
“병사를 부릴 수 있는 표를 드릴 테니, 부탁 하나 들어주면 좋겠군요.”
방통은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죽간에 있는 내용을 넘어서 병사까지 이끈다면 일이 굉장히 복잡해질 게 뻔했다. 아무리 남군이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도 피해야 할 상황이었다.
“죽간에도 나와 있지만, 그곳은 지금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그런데도 군을 받지 않을 것입니까?”
“제 집안에서 이끄는 병사가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남군에 내려가 사실 확인 정도는 해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방통은 곧바로 저택으로 돌아와 서신을 보내었다. 그때, 그의 집안에서 누군가가 나와 물었다.
“이제 출발하는 겁니까?”
“예. 목적지는 남군입니다.”
볕이 밝게 비추는 곳에서 연무하고 있던 붉은 수염을 가진 인물이 웃음을 지었다.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진 노사의 위치가 정확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장사에서의 일은 잘 되어 가고 있습니까?”
“장사의 무릉만 일부를 얻었습니다. 기회만 되면 장사 지역을 수복할 수 있겠지요. 공근 형님께서 이미 발판을 모두 만들어 두었습니다.”
그러자 방통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에게 가는 것입니까?”
“황조입니다.”
순간 붉은 수염의 인물은 얼굴이 굳어졌다.
“황조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함께 가게 해 주시지요.”
방통이 정면으로 쳐다봤지만, 그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 눈으로 그놈을 보고 싶습니다.”
“황조의 얼굴을 보고 가만히 돌아설 수 있겠습니까?”
손권은 말이 없었다.
“죽을 날을 앞둔 노인에 불과합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진 노사의 복귀와 손가가 다시 장사에서 일어날 기반을 탄탄하게 만드는 것 아니었습니까?”
“황조가 죽는다면 더 빠를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반대로 일을 그르칠 수도 있지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손권의 눈에 깃든 불꽃은 꺼지지 않았지만, 방통은 신경 쓰지 않고 손가에서 지원받은 군세 중 몇을 뽑아 곧바로 움직이고자 하였다.
그때, 누군가가 방가의 문을 두들겼다. 방통은 인상을 찌푸리며 문을 나갔고, 손권은 손가병들 사이로 몸을 숨겼다.
방통이 급히 나가 문을 여니, 그 자리에 눈썹이 흰 인물이 병사 몇과 함께 웃음을 지으며 서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군사의 밑에서 일하고 있는 계상(季常 마량의 자)이옵니다. 방 공에 대해서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군사께옵서 걱정이 깊으셔서 저희와 동행을 하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거절하기 힘든 제안에 방통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긁었다. 제갈량의 음흉한 속이 뻔히 보였기 때문었다.
‘그저 노사만 모시고 가면 끝날 일에 목숨을 바치게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