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19
319화
방통이 말을 멈추자, 주변의 사람들은 어느새 모두 제갈량만 바라보고 있었다. 제갈량은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지금 형주를 책임지는 사람은 제갈량이니 만큼, 이곳에 모인 형주의 호족들을 달래 줄 필요성이 있었다.
그렇다고 이들 모두에게 방통의 말을 들려 주는 것은 굉장한 부담이었다.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제갈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방 공께서 그리 말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저 혼자 듣도록 하겠습니다. 시시비비를 가린 뒤, 유 사군께 보내도록 하지요. 마지막 판단은 유 사군께서 하셔야 할 테니까요.”
형주의 뭇 인물들은 어느 정도 납득했다. 당장 복수를 하지 못하기는 하지만, 유비가 갚아 줄 거라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은 순욱을 꺾기 위해 칼을 뽑아든 상황이었다. 후방에서 혼란을 일으키기에는 부담이 컸다.
만약 유비가 아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면 모를까, 조인을 죽이고 영토를 차지했으니 이번 일로 회군시킨다면 분명 문제가 될 게 뻔했다.
형주의 귀족들이 떠나고 방통과 제갈량도 조용한 곳으로 가려는 그때, 땅바닥에 엎어져 울부짖던 마속이 일어났다.
“저도 알아야겠습니다. 대적과 같은 하늘을 이고 살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지요.”
그 말을 듣고 제갈량은 마속의 어깨를 잡으며 만류했다.
“걱정 말거라. 내 알아서 할 것이니 말이야.”
그러자 마속은 주먹을 꾹 쥐고 부르르 떨며 말했다.
“사람으로 태어나 직접 원수를 갚지 못한다면 어찌 선비라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께서도 복수는 십 년이 지나더라도 이루라 하였습니다.”
제갈량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마속을 토닥였다.
“만일 그 원수를 갚아야 하는 날이 온다면, 자네를 곁에 설 수 있게 해 주겠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학식을 키우면서 그때를 기다릴 수 있도록 하게.”
그제야 마속은 고개를 숙이고 제갈량의 말을 받아들였다.
한바탕 소동이 정리된 뒤, 드디어 제갈량과 방통,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둘 다 아무 말 없이 그저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어차피 이미 서로 대강 파악하고 있는 이야기이니, 어느 쪽이 먼저 얘기하느냐가 문제일 뿐이었다.
방통이 먼저 입을 뗐다.
“만이들에게 당했습니다.”
“당연히 그들밖에 없겠지요. 문제는 그 만이들이 왜 움직였는가 아니겠습니까?”
“만이들을 수족처럼 부리는 인물이 누가 있겠습니까?”
“…혹시 감정적으로 일어난 사태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방통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가 남군으로 가며 공격당한 것도 토벌군이라 지레짐작한 무릉만 때문이니 말이다.
“만일 그렇다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으실 생각입니까?”
제갈량도 그 물음에는 답하지 못했다. 분명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만이들에게 뒤집어씌우면 형주인들이 만족하지 못하리라.
“…그것은 차차 생각해 봐야 할 일 같습니다.”
다시 한번 두 사람 사이에서 침묵이 맴돌았다. 방통은 또 자신이 말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진전되지 않으리라는 걸 눈치챘다.
“그럼 일어나겠습니다.”
그 말에 제갈량이 놀라서 물었다.
“진정 돌아가려 하십니까?”
“물론 당분간은 양번에 있을 것입니다. 공자의 시신을 옮기기는 해야 할 테니까요.”
누가 듣더라도 핑계나 마찬가지였지만, 제갈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방가의 가병들은 어찌 되었습니까?”
“대다수가 죽었습니다. 남군이 많이 바뀌었더군요. 과거와 달리 치안이 굉장히 불안했으니 말입니다.”
제갈량은 이 문제에 대해서도 할 말이 없었다. 지방이 이렇게 변한 게 자신이 황조와 같은 호족들을 다잡으려다가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제갈 공, 호족들을 다스리려는 의도는 알고 있으나 유 사군과 함께 형주를 차지한 뒤에 이곳이 점점 어지러워지고 있습니다.”
제갈량이 묵묵히 있자, 방통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제갈량이 무거운 입을 열었다.
“그러하니 공께서 힘을 써서 다시금 형주의 안정을 되찾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하!”
한차례 크게 웃어 젖힌 방통이 말했다.
“어떻게 말입니까? 형주에 몰려든 만이들과 월족들을 저렇게 내버려 두는데 말입니다. 제가 어찌 장수들처럼 저곳을 경략하겠습니까? 저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갈 공, 물러설 때는 물러설 줄 알아야 합니다.”
방통의 말에 제갈량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유비가 돌아오는 그때, 형주를 온전하게 하나의 이름 아래 묶은 상태로 만들어 두고 싶었다. 그러나 이번 황조의 일로 인하며 방통의 말대로 한발 물러서야 할 듯했다.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방통은 그 자리에서 물러났고, 제갈량은 잠시 죽간에 무엇을 적어 내려갔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황조에게 제갈량의 서신이 도착했다. 그것을 받아 본 황조는 기쁜 마음을 가지고 직접 유파의 저택에 들렸다. 늙은 몸에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마차에서 내린 황조는 집 안을 뛰어다니며 유파를 찾았다.
“선생! 선생! 다 이루어졌소! 그대 덕에 제갈량이 물러났단 말이오! 하하하하!”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황조를 유파가 직접 나와 맞았다. 그러고는 객을 맞이하기 위해 저택을 안내했다.
“그대의 말대로 제갈량이 항복했소.”
“아버지, 항복이라는 말은…….”
함께 따라온 아들이 걱정 어린 말투로 말하자, 황조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갈량이 직접 서신을 보내며 사과를 한 뒤 자신이 계획하는 일을 물리겠다고 했다. 이것이 항복이 아니면 무엇이겠냐?”
“아버지, 그렇다고 해도 혹여 말이 제갈량에게 들어가면…….”
“되었다. 여기 유 공이 있으니 제갈량 따위가 무슨 상관이더냐? 하하하하! 그렇지 않소이까?”
유파도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제갈량이 항복했다면 이제 월족과 만이들을 불러들이실 겁니까?”
“그리해야지 않겠소? 내 이미 그들에게 서신을 보내 두었소이다.”
그 말에 유파가 미소를 지었는데, 지금까지 보던 것과 달리 왠지 모르게 섬뜩했다. 그러나 황조는 미처 그 미소를 보지 못했다.
“잘 되었습니다.”
“그렇소, 그렇소! 아 참! 내 이리 기쁘게 왔는데, 빈손으로 오다니 큰 실례를 저질렀구려!”
“이리 직접 찾아 온 것만으로도 큰 선물입니다.”
“하하하, 유 공이 내 얼굴에 금칠하는구려! 어찌 그것이 선물이 되겠소이까?”
“선물이 맞습니다.”
순간, 황조는 이상함을 느끼고 한발 물러서서 제 아들을 불렀다.
“착아! 이리 오너라!”
황조는 노인의 몸에도 무슨 힘이 있는지 칼을 직접 뽑아 들었다. 유파는 이미 그에게 멀리 떨어진 상태였다.
황조의 아들은 황조가 어째서 자신을 불렀는지 의문을 품었지만, 그 말에 따라 그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퍽!
화살이 그의 머리를 꿰뚫었다.
“유파!”
“그대가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어 주었소이다. 그러니 이제는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질 것이오.”
“네놈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데 이러는 것이냐!”
아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황조가 부르짖었다.
그때, 유파의 뒤에서 진궁과 손권, 주유가 걸어 나왔다.
“네놈의 목이 목적이다.”
황조는 침침한 눈으로도 손권의 얼굴에서 누군가가 겹쳐 보였다.
“손견의 자식인가?”
허망한 눈길로 셋을 바라보던 황조가 분노 섞인 눈초리로 유파를 노려보았다.
“그래, 손가 놈들과 연이 닿아 있던가? 크크크, 네놈들 아비이자 역적 놈이 죽을 때는 참으로 대단했지.”
그 도발에 손권은 분기를 참지 못하고 검을 뽑아 들고 황조에게 달려들었다. 그런데 황조는 어느새 감정을 다스리고 차분하게 변해 있었다. 그의 눈은 아직 삶을 포기한 기색이 없었다.
“차라리 당당히 나를 노리지 그랬나. 이리 계책을 쓸 생각이었다면 내 아들이 아니라 가장 먼저 나를 노렸어야지.”
순간, 저택에 만이들로 보이는 병력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자 순식간에 황조는 자신의 몸을 이끌고 다른 곳으로 향하였다.
“쳐라!”
난전이 시작되었고, 피 튀기는 전투가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진궁은 혈전의 장소에서 한 발짝 떨어진 채 도망가는 황조에게도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교토삼굴이라는 고사를 모르지는 않을 테고… 그대가 내놓을 계책은 무엇인가?”
“뭐, 별것이 있겠습니까? 그냥 토끼 굴 모두를 막으면 될 일이지요.”
주유의 말이 끝나자마자 바깥에서 손가병들이 괴성을 지르며 황조를 쫓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황조의 마차에 창을 던져 댔다.
“일이 너무 커지는 것 아닌가?”
“도리어 좋은 방향이 아니겠습니까?”
진궁은 주유를 빤히 바라보며 잠시 숨을 크게 쉬었다.
“자네를 위험한 사람이라 평하신 주군의 말이 옳군.”
진궁의 말에 주유는 고개를 내저었다.
“패배자가 어찌 승자에게 비견하겠습니까? 그저 남들보다 머리가 조금 좋을 것일 뿐입니다.”
“하하하! 그 자신감, 나쁘지 않군.”
그때, 황조가 탄 마차가 부서지며 옆으로 쓰러졌다. 황조는 상처를 입은 채 기어 나왔다.
피투성이인 노인의 모습이었지만, 손가병 중 누구도 동정심을 품지 않았다.
“내 명도 여기까지인가 보군.”
황조는 그렇게 중얼거리곤 커다란 도를 든 이에게 말했다.
“네놈 이름은 무엇이냐?”
“알아서 무엇 하려고 그러오?”
“염라대왕 앞에서 날 죽인 사람의 이름은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풍칙이오.”
“풍칙이라… 그래, 네놈은 손가의 밑에서 크게 쓰이겠구나. 불구대천의 원수인 내 목을 바칠 터이니 말이야.”
“공은 주인의 것일 뿐이오.”
그러고 나서 풍칙은 그대로 황조의 목을 베었다.
어느 정도 혼란이 수습되자, 유파는 곧바로 황조가 죽은 남군의 정국을 안정시켰다. 그러고는 은밀하게 황조의 죽음에 대한 소문을 퍼트렸다. 제갈량이 마량에 대한 복수로 이번 일을 벌였다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그 여파는 남군에서부터 점점 소용돌이처럼 커졌다. 황조의 죽음을 제갈량이 획책했다는 소문은 뭇 가문들의 힘을 빼앗기 위함이라고 받아들여졌다.
결국 마량을 희생시켜 호족들을 약화시키려 들었다는 소문이 커지자, 형남은 불신을 드러내며 제갈량의 말을 듣지 않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황조가 거주하던 곳은 월족이 습격하여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황조의 보물을 노린 그들은 황씨와 주변의 가문들을 완전히 휩쓸어 버렸다.
무너지는 형남을 보며 진궁은 웃음을 지어보였고, 노구를 이끌고 유파와 함께 다시 양양으로 돌아왔다.
양양와 번성은 아직 아주 조용했다. 다만, 치안이 좋아서 조용한 것이 아니라 언제 사건이 터질지 모르는 터질지 모르는 폭풍전야의 분위기였다.
제갈량의 법치는 아직 지켜지는 듯했으나, 언제 깨질지 몰라 불안해 보였다.
주불의는 진궁을 모시고 나서 물었다.
“이제 노사는 어찌하실 것입니까?”
“그대가 원하는 바와 같겠지.”
그러자 주불의는 악동 같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유 사군의 세력을 밀어낼 수 있으시겠습니까?”
“겨우 그것만으로 끝낼 생각은 없네. 하나의 계략으로 하나의 결과를 내는 건 내 성미에 맞지 않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