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22
322화
장비는 그 말만 툭 던져 놓고 자리를 떠나갔다. 그러자 묘한 공포가 순유군을 감돌았다. 역적이라는 말에는 그 정도의 힘이 있었다.
단순히 자신만 죽는 게 아니라, 집안 자체가 연루될 수도 있다는 공포가 그들 사이에 자리 잡았다.
누구도 입을 떼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사실 그들도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낙양성이 불타는 지금, 그 원흉이 바로 황제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부관들과 병사들이 동요하는 그때, 순유는 여전히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걱정치 말라! 승상께서 이미 난을 예상하시고 수비군이 난을 진압하기 위해 움직였을 것이다!”
확신 어린 순유의 말에 부관들은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지금 동소와 만총이 낙양의 수비군을 책임지고 있으며, 그들의 능력을 생각하면 별일 없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는 그저 방어만 충실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만일 저자의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명이 떨어진 후에 너희가 나를 포박하면 된다. 그러니 걱정치 말라.”
순유의 말에 부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병사들을 다독이기 시작하였다. 물론 소요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순유의 단호한 모습과 부관들의 호언장담에 병사들은 이내 차분하게 변했다.
당당한 겉모습과 달리, 순유도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순욱을 호위하는 장수와 관리들이 아무리 든든하다고 한들 황제의 참전이라는 변수 하나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순유는 순욱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승상, 순가의 중앙군이 나간다면 내부가 어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역당들의 군세가 관을 넘었다는 말은 내부에서 내통을 한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그러나 자신의 반대에도 순욱은 너무나 담담한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낙양에서 벗어나야 하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달리 운용할 군병이 있단 말입니까? 외성을 지키는 만 교위의를 믿는 것이라면, 재고해 보시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만일의 사태가 일어나면,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습니다!] [걱정하지 말게.] [승상!] [내 약조하지. 자네의 눈으로 한조의 몰락을 보게 하지는 않을 것이네.]순욱은 그 말을 끝으로 군을 지휘하고 벌할 수 있는 지절을 내려 주었다. 순유는 지절을 만지작거리며 그때 순욱이 마지막으로 한 말을 읊조릴 뿐이었다.
* * *
황제가 일으킨 난.
후일 정변(政變)과 동란(動亂)으로 기록될 테지만, 분명 황제는 자신의 힘을 되찾기 위해 일어난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이번에는 다른 이들의 뒤에 숨지 않고 유협이 직접 군을 이끌었고, 가장 앞에 서서 난을 진두지휘하였다.
그리고 승상부를 불태우면서 승기를 잡는 듯했다. 아니, 분명 궁내에서는 승기를 잡은 것이 맞았다. 빠르게 각부를 들이쳐서 관리들을 겁박한 덕에 주도권을 잡았으니 말이다.
유협은 순욱과 순가의 대다수가 승상부에서 분사(焚死)한 것으로 생각했다.
“하남윤(동소)와 사례교위(만총)에게 명을 전달하여라. 직접 와서 무릎을 꿇는다면 죄를 사하여 주겠다고 말이다. 허나 내가 궁을 나가는 순간, 더 이상 자비는 없을 것이다!”
유협은 자신만만하게 관리를 보냈지만, 전령이 가져온 답은 너무나도 차가웠다.
“황송하오나 작금 외부에 적이 있어 움직일 수 없다는 말을 전하였습니다. 후일 적이 물러나면 죄를 달게 받겠다고…….”
그러자 유협은 답신을 가져온 전령의 목을 베어 버리며 노기등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분노에 가득 찬 눈빛으로 데굴데굴 굴러가는 관리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과거, 자신을 향하여 조조가 호통을 치던 때의 기억이 떠오르며 유협은 이를 갈았다.
“이제 자비는 없다. 역적은 그 자리에서 참할 것이다!”
원독에 가득 찬 목소리에 헌제를 뒤따르던 관료들은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그러나 이미 황제의 편에 선 이상, 어찌할 방법은 없었다.
그때, 한 관리가 뛰쳐나와 직언을 올렸다.
“폐하, 통촉하소서! 사례교위와 하남윤을 모두 처단한다면 분명 문제가 일어날 것입니다! 또한 순가에 고개를 숙인 자 중에서도 능히 정국을 운영…….”
서걱!
유협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만총의 옹호한 인물을 목을 베어 버렸다.
“한조의 황제를 능멸한 기군망상의 죄인이다. 그런 자를 옹호하는가? 그자 또한 한조를 모욕하는 대역 죄인이다! 또 누가 더 있느냐!”
헌제를 따르는 이들은 그저 고개를 숙일 뿐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여기서 입을 열었다간 목이 달아날 거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광기에 찬 황제의 얼굴에 순간 과거 조조의 편린이 보였다.
“내 역적들을 벌할 것이다! 군의 북을 쳐라! 직접 군을 움직이겠다!”
황제의 선언에 관료들은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좁은 궁내에서 일어나는 전투와 달리 성으로 움직이는 것은 복잡한 문제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까 전의 상황이 그들의 입을 틀어막게 하였고, 결국 아무도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유협이 말을 타고 앞으로 나아가자, 궁의 성문이 열렸고 보병들이 뒤따랐다. 그는 이제 낙양을 온전히 자신의 도시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빠져 순간 행복감을 느끼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드디어 나의 세력, 나의 군을 가지게 된 것이다. 짐이 드디어 한조의 주인이 되어 만백성을 다스릴 수 있음이다.’
슈슈슈슈슉!
그러나 그의 생각은 앞장선 기병들이 화살에 맞아 쓰러지며 어지러이 흩어지는 것으로 끝이 났다.
멀리서 갑옷을 입은 순욱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협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승상부에서 순욱이 죽지 않았고, 만총과 동소는 이 사실을 알고 있기에 항복을 거부한 것이라면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그러나 의문이 생겼다. 어째서 궁을 내어 준 것인가. 자신의 계획을 알았다면 미리 막아낼 수 있었을 터. 조조처럼 굴욕감을 주며 무릎 꿇리고 조롱할 수도 있었다.
유협은 칼을 잡고 부르르 떨었다. 도저히 순욱의 생각을 읽을 수가 없었다. 대체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인가.
그러니 유협에게 남은 것은 오롯이 분노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누가 죽게 될 것인가?’
동귀인의 얼굴이 다시금 유협의 앞에 나타났다.
“끝낼 것이다. 이 고리를 내가 끊어 낼 것이다!”
또 유협의 눈에 복황후의 마지막도 떠올랐다. 언제나 자신이 일어나기를 바라며 노력하던 그녀였다. 복가가 풍비박산될 것을 알고 있음에도 꿋꿋이 노력하던 그녀가 급작스럽게 병이 깊어지자, 마지막에 부탁한 일이 있었다.
[폐하, 더는 물러설 곳이 없사옵니다. 폐하의 손으로 한조의 명맥을 끊고 싶은 마음이 없으시다면 칼을 들어야 합니다. 황자님들을 맡긴다는 말 따윈 하지 않겠습니다. 어차피 한조가 무너지면 같이 스러질 황가의 핏줄입니다. 폐하, 폐하께서 굳건히 일어나 진정한 황제가 되셔야 합니다.]그 말을 남기고 떠난 복황후 덕에 유협의 성격은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언제고 고개를 숙이면 순욱, 그대는 조조와 달리 황조를 위해 일할 것이라 생각했다. 조조가 두렵고, 조조의 힘 때문에 억지로 따른다고 여겼다. 그러나 네놈도 결국 간웅이더구나.’
위기의 순간, 유협은 직접 앞장섰다. 순욱도 생각이 있다면 분명 자신을 건드리지 못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황제의 마지막 수는 통하지 않았다.
지금은 수도인 낙양 앞에 장비의 군이 주둔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다.
“포박하라. 폐하께서 광증이 나셨다.”
광증.
순욱은 유협의 처절한 싸움을 단 하나의 단어로 정리해 버렸다. 병사들은 곧바로 황제를 포박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들의 손놀림은 전혀 친절하지 않았다.
마치 죄수를 다루는 듯했다. 그들은 병사를 묶을 때 이용하는 줄로 헌제를 마구잡이로 포박했다. 그가 격렬히 저항하자, 날뛰는 말을 포박하는 것처럼 강하게 옭맸다.
“커어억! 컥컥…….”
한실의 황제가 백성들의 손에 질질 끌려 내려와 붙잡힌 상황이었다. 헌제는 그렇게 포박되며 궁을 바라보았다. 그때, 두 눈에 자신을 따라오던 관리들이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도리어 순욱이 난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처벌하지 않을까 슬슬 눈치만 보고 있었다. 오직 자신의 안위만 위하는 모습이었다.
‘…나 또한 저런 눈이었겠구나.’
음흉하게 속을 숨기며 권좌를 차지하려 했지만, 언제나 저런 눈으로 주위를 살필 뿐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
“으아아아아아!”
그렇다 하더라도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었다. 어떻게 잡은 기회던가. 절대 놓칠 수 없었다. 젊은 사인들을 미끼로 삼아 순욱의 눈을 돌리고, 유비를 끌어들여 낙양 앞까지 군세를 들어오게 했다.
장안은 유장의 군세에 포위되어 함락 직전의 상황인 데다가 고간은 군을 일으켜 병주를 차지할 게 분명했다.
유협은 이런 절호의 기회를 잡은 뒤, 사방에 명령을 내려 순욱을 공격하게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외부에서 순욱을 흔드는 것은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자신이 실패하고 말았다.
“아니 된다! 아니 돼!”
유비도 유장도 아니 되었다. 자신이 힘을 가져야 했다. 그래야 먼저 간 복황후와 동귀비가 편히 쉴 수 있으리라.
“짐은 질 수 없다!”
꽥꽥거리는 유협에게 순욱이 천천히 걸어오며 말했다.
“폐하께서 다치시지 않게 입을 막아 드려라. 목이라도 상하면 어찌하겠느냐?”
“으으으읍, 으으읍!!!”
굴욕적이었다.
의대조 때보다 더한 치욕과 굴욕이었다. 그래도 조조는 황제를 직접 건드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순욱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을 그저 광증을 가진 암군으로 만드는 행동에 굴복해야 한다니,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순욱은 그런 황제의 옆에 서서 병사들에게 명했다.
“폐하를 마차에 태워 모셔라.”
그러고 나서 순욱은 아직도 궁성에서 움직이지 않는 고관들을 보며 말했다.
“폐하께서 정신이 온전치 못하니, 대책을 논하기 위해 신료들을 다시 모아야겠군.”
순욱의 말에 관료들은 눈치를 보기 시작하였다. 책임을 황제에게 모두 떠넘기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아니, 다시 한번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까지 하는 자들도 있었다.
만총이 순욱의 옆에 서서 물었다.
“승상, 저들을 용서할 것입니까?”
“글쎄요, 구할 이들은 모두 구했는데 말입니다.”
그러자 만총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놀랐습니다. 공 장작(공융)이 저희의 손을 잡을지는 몰랐으니 말입니다.”
그러자 옆에서 순심이 웃음을 흘리며 답변을 해 주었다. 그의 손은 황제가 나온 내궁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곳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어째서 저희를 선택했는지 말입니다. 또한 내란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분이니 말입니다.”
순심의 말에 만총은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하기야 저런 이들을 믿고 낙양에 군을 불러들인 폐하의 어리석음도 한몫했겠지요.”
순욱은 마차 안으로 구겨지는 유협을 바라보았다.
“이렇게라도 마지막을 붙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분명 공 장작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네. 이대로 놔두면, 흔들리는 한조의 멸망을 막을 방도가 없을 터이니…….”
순욱은 여러 복잡한 고민을 하다가 일어났다.
“이젠 모르겠군. 정말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