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28
328화
장송이 군막 안으로 들어오자, 법정은 퀭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눈길을 받은 장송은 흠칫했다. 법정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상용을 거쳐 형주를 들렀다가 장안을 통해 전장을 빠져나온 장송의 모습이 더 나아 보일 정도였다.
“자네, 얼굴이 왜 그 모양인가?”
법정은 힘겹게 입꼬리를 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뭐… 나는 그동안 전장에 있지 않았는가.”
장송은 그런 법정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누가 보면 전장에서 직접 한바탕 싸운 사람으로 여기겠군.”
퉁명스러운 말투였지만, 장송은 걱정스런 눈길로 법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직접 나가지 않고 탁상 위에서 이루어지는 전투지만, 지금 법정의 옆에 쌓여있는 죽간의 양을 보면 수천, 아니, 수만 번의 싸움이 그의 머릿속을 오갔으리라.
“하하하, 차라리 쓰러졌으면 좋겠다고 하루에 몇 번이나 생각한다네.”
“…잠은 얼마나 자는가?”
“잠? 글쎄, 기억이 가물거리는군.”
“한숨 푹 자고 일어나서 일하게.”
장송은 빈자리의 먼지를 탁탁 털어 내고 앉았다. 그러고는 품에서 말린 열매들을 꺼내 입에 넣고 우두둑거리는 소리를 연신 내기 시작했다.
“유 사군은 뵈었는가?”
“직접 뵈지는 못했네.”
“자네 생각과는 일이 다르게 진행되는군.”
“솔직히 만나 줄 거라는 생각은 안 했네. 형주가 안정적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세력이 무너지기 직전이지 않은가.”
장송이 잠시 대답을 기다렸는데, 법정은 아무 말이 없었다. 고개를 들어 법정을 살피니, 살며시 눈을 감고 미동도 없는 상태였다. 그러자 장송이 그를 자리에 눕혀 주었다.
그러고 나서 장송은 법정이 살펴보던 죽간들을 이리저리 정리하며 내용을 읽어 갔다.
거기에는 한중과 장안, 그리고 장안을 넘어 홍농과 낙수, 동서의 모든 지리가 그려져 있었고, 군이 어디에 모이고 어떻게 가야 하며, 몇 명이나 움직여야 할지가 적힌 상태였다.
그것을 한 번에 훑어본 장송은 한숨을 내쉬었다. 방희의 군세가 낙양으로 움직이는 길목에 놓여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무지한 자가 욕심은 많아서 친우를 고생시키고 있군.”
장송은 방희가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솔직히 능력도 없는 놈이 중앙에서 내려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언의 친우가 되고 유장과 사돈이 되었다.
물론 그가 아무런 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큰 공을 세웠다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이 능력이 부족한 이를 버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기용하고 있는 이유였다.
194년, 유언이 마등과 한수의 편을 들어 이각과 곽사를 처단하고 그들과 같이 장안을 도모했을 때, 암살을 시도한 유범이 죽고 차남 유탄은 처형당할 위기에 빠졌다. 그때, 방희가 유장의 아들들을 데리고 촉으로 들어가 그들을 구하게 된다.
그 일로 익주에 자리 잡은 유언의 집안이 방희에게 거대한 은혜를 지게 되었다. 게다가 유언은 슬픔을 못 이기고 결국 그해에 죽어 유장이 뒤를 잇게 되었고, 익주 최고 권력자의 자식들을 구해 준 방희의 힘은 더더욱 커졌다.
하지만 또 얼마 지나지 않아 한중의 장로가 유장의 모친과 동생을 죽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유장은 방희를 시켜 장로를 공격하게 하지만 매번 패할 뿐이었다. 결국 방희는 파서 태수에 임명되어 장로의 공격을 방비하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시간이 흘러 일련의 사건으로 인하여 결국 한중의 장로가 토벌되었다. 그리고 법정의 능력 덕분에 마등까지 처리한 뒤 장안으로 향하게 되자, 그의 권력은 지금 정점을 달해 있었다.
가히 천운이 따르는 사내라 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운이 언제까지 그를 지켜 줄지 모른다는 것이었지만.
“단순히 유 사군께서 움직이는 게 문제는 아니겠군.”
장송은 하내라고 표시된 위치에 적혀있는 수춘후(壽春侯)를 바라보았다. 굉장히 거슬리는 이름이었다. 다른 이들은 전장에서 그리 명성을 얻지 못해 나쁜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지금은 약간 달랐다.
“젊은 한사(寒士)들의 지도자이자 위청의 영혼을 물려받은 자…….”
물론 그를 비꼬는 이야기도 있었다. 위청의 영혼을 물려받았다는 말은 윗사람들의 눈치나 살살 보며 고개를 숙이며 기는 인물이라는 뜻도 숨겨 두고 있었다. 거기다가 그 자신의 뛰어남보다는, 휘하의 장수들이 얻어 온 승전을 이용하여 높은 곳으로 나아간다는 의미까지 담겨 있으니 기분이 나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편에는 그런 한사들과 장수들을 지원할 수 있는 거대한 물량을 가진 인물로 보여주며 어떠한 이는 광무제와 같은 지원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유씨였다면…….”
그때,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법정이 일어난 듯싶었다.
“그가 유씨였다면 어떻게든 모시려 했겠지. 우리만큼 수춘후가 행한 일을 자세히 본 자들은 없으니 말이야.”
장송은 그런 법정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한조를 망가트릴 인물이네. 지금의 행보는 왕망이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
“초왕이 주나라의 구정의 무게를 묻는 것이야 주나라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이라면 할 수 있는 것 아니던가? 문제는 주나라의 힘과 권위, 그리고 정통성이지 않겠는가?”
장송은 법정의 말에 이마를 부여잡았다.
“…그럼 지금은 누가 황제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인가?”
그러자 법정은 고개를 내저었다.
“누가 되어도 이상할 것은 없지만, 제후들 끼리 서로 눈치만 보는 상황이지.”
“태자는…….”
“상관없네. 유씨이지 않은가? 정통성도 탄탄하고 말이야.”
“그렇다면 감히 이성(異姓)의 황제가 개천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 누가 쉬이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장송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장송이 우려할 만한 것이, 한 고조의 유훈이자 백마지맹(白馬之盟)의 약조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라는 영원히 존속하며 후예들에게 은혜를 베푼다. 유씨가 아닌 자가 왕이 되면 천하가 함께 그를 친다. 공로 없는 자가 후(侯)에 오르면 천하가 그를 죽인다.’
이 맹약은 고조가 한나라를 일으키며 건국 공신들에게 한 것이기에 돌과 철에 적힌 글귀처럼 굳건해 보였지만, 그가 죽자마자 여후에 의하여 바로 무너졌다.
그런데도 유방의 유훈이라는 상징성은 강력해서, 뭇 인물들이 왕에 오르려는 자를 죽일 명분이 되었다. 결국, 여 씨 일가조차 여후의 죽음 이후 몰살당하지 않았던가.
왕망이 완전히 뒤엎기 전까지 뭇 사족과 호족들에게 족쇄가 되었지만, 동시에 공을 세울 기회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법정이 그것을 건드릴 거라는 선언을 한 것이다.
“그 정도가 아니면 누구도 쉬이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네.”
“…그 시작을 우리가 열 것인가?”
그러자 법정은 잠시 생각을 해 보다가 장송을 바라보았다.
“물론 우리가 시작하기에도 쉽지 않은 일이겠지.”
“그럼 어찌할 생각인가?”
“이제는 시간문제일세. 이미 한조의 권위가 바닥으로 떨어졌으니, 누군가가 왕에 오를 것이고 또 그자는 제위에 욕심을 내지 않겠는가?”
법정은 그렇게 말하며 수춘후라는 글씨에 시선을 주었다. 수춘, 대대로 역당의 땅이었던 곳. 현재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큰 지역이었다.
“그를 높이, 아주 높이 띄우면 스스로 한계를 모르고 날뛰지 않겠는가?”
* * *
승태는 온현의 현청에 앉아 술을 마시다가 걸리적거리는 수염을 만지며 밀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가로운 시간을 즐기는 그때, 양수의 말 한마디가 귓가에 들어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왕작을 탐내는 게 아니냐고?”
“그렇네. 만일 자네가 천하의 혼란을 막아내고 순 승상은 폭정을 벌인다는 명분으로 끌어 내리면 누가 감히 자네의 권력을 무시하겠는가?”
“…내가 왕작을 탐내는 것 같은가?”
“이미 수춘과 양주, 서주가 그대의 발아래 있는데 두려울 것은 없지 않겠는가?”
승태는 고개를 저었다.
“다른 이들이 나를 왕처럼 여길 수는 있으나, 황실에서 왕작을 내리지 않는 한 직접 왕이라 칭하지는 않을 것이네.”
그러자 양수는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고, 자리에 함께한 다른 이들도 납득하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승태도 양수의 물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어차피 내왕외후의 상황을 숨길 이유도 없었고, 숨길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매를 가장 먼저 맞는 이가 제일 세게 맞는 것이야 당연하지 않은가?’
언제나 그러했다. 학창 시절, 겨우 몇 분 지각했음에도 체벌을 당했는데, 아주 늦게 지각한 녀석들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아 굉장히 분노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행이로군.”
평대하는 양수의 행동을 보고만 있지 못하겠는지, 옆에 있던 고순이 주먹을 꾹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위협적인 광경임에도 양수는 여전히 승태에게 친우를 대하듯 편하게 얘기했다.
승태는 두 사람의 행동에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격식을 버리고 술을 마시자고 만든 자리가 아니던가.
“장군, 제가 허락한 자리입니다.”
“…허나 그렇다 하여도 선이 있는 것입니다. 감히…….”
“아닙니다. 이러한 자리가 없으면 저에게 쉽게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가끔은 이러한 일도 필요하지요.”
그럼에도 고순은 참을 수 없는지 고개를 숙였고, 그 모습을 보던 양수가 한숨을 내쉰 뒤 일어났다.
“장군.”
“말씀하시지요.”
“말씀 편하게 하시지요.”
“작금 양 공의 직위가 저보다 높으니 어찌 말을 낮추겠습니까?”
“하아…….”
양수는 딱딱한 고순의 태도에 크게 한숨을 쉬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지금의 술자리는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푸는 자리입니다. 물론 고 장군께서 맡은 일이 호위이긴 하지만, 그런 태도로는 후께서 바라는 일을 망치는 격입니다.”
양수는 손가락으로 연회에서 술을 즐기며 서로 대화하는 이들을 가리켰다.
“후께서는 저들의 마음을 사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수춘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온 이들, 서량에서 근거지를 잃었다가 이곳에 온 이들, 후께서 내려주신 은덕에 감사하는 이들까지 말입니다.”
양수는 술잔을 옆에 두고 자신의 이마를 때리며 말했다.
“그런 이들이 지금 장군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고순은 순간 양수의 말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어찌 보면 승태에게 지금의 자리는 꽤 중요하다고 할 수 있었다.
마초와 방덕의 수하들, 그리고 온현에 파견된 관리들, 마지막으로 사마 가문까지 모인 큰 연회였다. 분명 승태가 주인공이건만 고순의 엄한 모습 때문에 쉬이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마 공과 방 공이 자리하지 못하는 바람에 량주의 인물들은 기가 죽은 상황입니다. 거기에 장군까지 그런 눈으로 있으면 저들이 어찌 마음을 놓겠습니까?”
격해지는 언쟁에 승태가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장군 덕에 제가 이렇게 모르는 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습니까? 혹여 고간이 올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물론 가후가 있는 하동도 넘지 못한 고간이 이곳에 올 리는 없었다. 가볍게 농담을 던졌지만, 아직 분위기는 풀리지 않았다.
양수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승태가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장군께서 쉬이 즐기지 못하니 수박희를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남아란 본디 서로 싸움을 해야 친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