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30
330화
조비는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승태와 싸울 때는 무슨 짚단같이 우르르 무너지던 원담이 신산묘계를 뽐내며 군세를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비는 지휘탑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들을 뒤로하고, 근위병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세가 불리해진 지금,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이곳을 곧바로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곳을 무사히 떠나기 위해서는 버릴 말이 필요했다.
“조진!”
그때, 조진은 온 힘을 다하여 방진을 지키도록 병사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또한, 높은 지휘탑에서 화살을 맞을 각오까지 굳히며 북을 두들기며 목에서 피가 나올 때까지 외치고 소리쳤다.
그러나 그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원담의 기병은 그들의 목을 조여 오듯이 좌군을 휘감았고, 조진은 겨우겨우 무너지는 진형을 붙잡았다. 다행히 중군을 살리고 버텨 냈으나, 이미 승전은 날아간 상황이었다. 이제는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일 뿐.
이런 상황에서 조비가 부르는 목소리가 조진의 귀에 들릴 리가 없었다. 그는 원담의 호복 기사들을 상대하기 위해 눈이 벌게지랴 사위를 훑고 있었다.
“조진!”
하지만 재차 부르는 소리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제야 조진이 뒤를 돌아보자, 분노에 가득 찬 조비의 얼굴이 보였다. 자신을 무시한 것이라 생각했는지, 온통 붉어진 모습이었다.
그나마 지금 전장을 지휘하는 장수가 누구인지는 깨닫고 있는 듯, 눈에서 불꽃을 튀기며 쏘아보는 정도에서 그쳤다.
조비는 갑작스럽게 지휘봉을 내밀었다.
“군을 책임지게.”
조진은 이미 책임지고 있었다. 그의 온 힘을 다해서 말이다. 두 눈에 지휘봉이 들어오자,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감돌았다. 책임을 미루는 조비의 영악함, 악독한 인성 등등. 조진은 자신도 모르게 이를 꽉 깨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 여기서 뭘 더 어떻게 하겠는가. 어찌 되었든 자신의 앞에서 뻔뻔한 행동을 하는 저자는 미천한 자신의 가문에게 조씨를 내어준 조조의 유일한 적장자였다.
조조에게 받은 은혜가 가히 무거우니, 조씨를 받았음에도 조씨 가문의 노복(奴僕)으로 열심히 일하는 게 도리 아니겠는가.
“명을 받듭니다.”
원래는 하후연이 맡아야 할 일이었지만, 다행이라고 해야할 지 아니면 무책임하다고 해야 할지, 현재 통솔권을 쥔 사람은 조진이었다.
조진이 무릎을 꿇고 지휘봉을 받들자, 조비가 직접 손에 쥐어 주며 말했다.
“원담의 병사들을 붙잡고 무너트리도록 하라.”
짧은 말이지만, 원담과 싸우다가 죽으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종친인 하후연이 있는 자리에서까지 이렇게 말을 던질 정도면 조비도 급한 게 티가 났다.
“명을 받들겠나이다.”
그 말을 듣자마자 조비는 허겁지겁 지휘탑을 내려갔고, 조진은 말없이 지휘봉을 들고 숨을 골랐다.
솔직히 지금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없었다. 아니, 자신의 능력으로 타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맞으리라.
‘명공이라면 분명 모든 것을 타개할 방도를 찾아내셨을 테지.’
목숨만 건져서 살아 돌아가는 것도 영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조진의 옆에 서 있던 부곡들도 먼저 도망가 버린 조비의 모습을 보고, 당황했는지 멍하니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생존.
지금 그들의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오롯이 그것 하나 뿐이었다.
아니, 사실 조진을 살리는 일에 그들의 목숨을 바친다고 한다면, 두려움이 생길지언정 최선을 다해 명을 받들었으리라. 그들의 가족을 지켜주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조진이라면 목숨이 아깝지 않았다.
그러나 조비는 아니었다. 그들에게 조비를 살리고 싶은 마음이 있겠는가? 조씨에 충심을 가진 인물은 이 자리에 오직 조진 뿐이었다.
“주공…….”
“어찌하겠느냐?”
“퇴각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명을 받았는데 어찌 물러가겠느냐?”
대답하는 조진의 눈동자도 약간 멍했다. 도망치는 조비의 군세는 지리멸렬했다. 조비는 휘황찬란한 말과 대장기조차 버리고 달아난 것이다. 땅바닥에 버려진 갑주를 보고 그는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 *
하후연은 나이와 달리 뛰어난 무예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적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게다가 점점 중과부적의 상황에 몰리기 시작했다.
하기야 지금 상대하고 있는 적이 평범한 도적은 아니었다. 천하에 널려 있는 도적이나 북적이었다면 뛰어난 무용을 보고 한발 물러났을 터.
“빌어먹을…….”
“장군, 물러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완전히 포위됩니다!”
하후연의 눈에 멀리 원담의 대장기가 보였다.
“빌어먹을, 바로 앞인데…….”
뿌우우우!
둥둥둥둥!
“장군! 대장기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후연은 인상을 찌푸렸다. 대장기가 움직이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팔 소리는 분명 퇴각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전진한다는 이야기인데 제 목숨을 그렇게 아끼는 조비의 행동이라고는 믿기 힘들었다.
“미쳐 버린 것인가?”
대장기가 꿋꿋하게 앞으로 나오자, 어려운 상황에 빠진 하후연군의 사기가 다시 올라왔다. 그것을 의식했는지, 마구 휘몰아치던 기마들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기마들이 빠져나가자, 다시금 숨을 고른 병사들은 환호를 지르며 대장기를 향하여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하후연도 회군하여 대장기가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그는 휘황찬란한 갑주를 입은 자에게 다가간 순간, 입을 열지 못했다.
조비가 아닌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누구더냐.”
“종숙, 자단(子丹)입니다.”
“공께서는 어디 가시고 네가 그 갑주를 입고 입느냐?”
“…공께서는 먼저 퇴각하셨습니다.”
휘청.
하후연은 이마를 붙잡았다.
“그러면 그렇지, 잠시나마 희망을 품은 내가 바보로군. 그래서 앞으로 어찌하려 하느냐? 저들이 한발 물러났다고 해도, 승기를 잡기는 어렵다. 종형이 주둔한 곳까지 물러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병사들은 어찌합니까? 강을 건너기도 전에 군세가 무너질 것입니다. 아니, 우리가 후퇴하려는 기미만 보여도 적은 들이칠 게 분명하고, 군은 버틸 수 없겠지요.”
시기의 문제였다. 그렇지 않아도 기마에 농락을 당한 지금의 상황에서 군을 퇴각하겠다고 돌린다면, 그 순간 군은 완전히 와해될 것이었다.
“그리고 위공께서 내린 마지막 명령이 저들의 다리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라는 것이었습니다.”
“하, 명에도 걸러서 들어야 할 게 있는 법이다.”
하후연의 말에 조진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종숙께서는 퇴각하시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미쳤느냐? 보병만으로 기병을 상대하겠다고? 지금 여기 있는 보병들이 원소가 의종을 상대할 때 쓰던 대극병 수준의 실력을 갖춘 병졸인 줄 아느냐? 개죽음이다.”
조진은 숨을 크게 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개죽음이 맞을 수도 있지만, 어찌하겠습니까?”
하후연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조진의 부곡 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물었다.
“네가 갑주를 대신 입어라.”
“장군!”
“닥치게, 지금 전황을 이 만큼 버티고 있던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지. 감상에 젖어서 이상한 짓 하지 말고 내 말 듣게. 자네가 쓰러지면 위공의 주위에서 누가 멀쩡한 정신이 있겠는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생각하게.”
“종숙들이 있지 않습니까?”
“하, 다 늙은 우리가 참 잘도 조씨 집안을 지킬 수 있겠군. 종가의 인물들, 종형의 아들들, 그리고 내 아들들도 능력이 그리 뛰어나지 못한데 말이야.”
조진은 하후연의 말에 차마 달리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도 하후가의 후대들의 악명이 얼마나 높은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닥치고 오거라.”
조진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부곡들 중 하후연에게 지명을 받은 인물이 조진의 옆에 서서 위를 바라보았다.
“주군, 가시지요. 다만… 제 아이를 반드시 장군으로 만들어주시면 죽어서도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조진은 자신에게 당당히 말하는 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부곡 중에서는 꽤 나이가 많은 인물이었다. 눈가의 주름을 바라보던 조진이 말에서 내려 투구를 벗어 주었다.
“내 맹세하지. 반드시 장군으로 만들어주겠네.”
“호준입니다.”
“그 이름, 기억하겠네. 나와 같이… 아니, 나보다 더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겠네.”
조진의 다짐에 다른 이들도 나섰다.
“저희도 따르겠습니다. 호가 노인네 가문이 홀로 공을 세우는 걸 보기만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홀로 있는 모습을 보였다가 가짜라는 게 들키면, 병사들 내에서 분란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부곡들 중 나이가 많은 이들이 먼저 나서서 죽음을 각오하자, 조진은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때, 하후연이 고개를 내저었다. 원담의 본대에서 북소리가 들려왔고, 군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빨리해라, 시간이 없다.”
“어서 가시지요.”
“내 하늘에 대고 약조하겠네. 그대들의 집안은……!”
조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호가 늙은이는 갑주의 끈을 칼로 끊어 내고 대충 걸쳤다. 그러고는 말을 달려 사라졌다. 조진과 하후연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곧 자리를 떠났다.
“안정의 촌놈이 이런 말과 갑주, 훌륭한 투구를 썼으니 이렇게 죽는 것이야말로 호상이 아니던가?”
그러면서 크게 웃음을 짓자, 부곡 중 하나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하후 장군에게 뽑혔어야 하는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렇기에는 장군의 분위기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하하!”
밖으로 나온 그들은 그저 깃발과 함께 앞으로 진군하였고, 함께 나온 부곡들이 명을 전했다. 중군에서 조비의 대역이 굳건하게 버티자, 병사들도 희망을 품었다. 장군이 도망가지 않는다는 것은 승산이 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원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멀리 조비의 군세가 보이는 모습이 영 부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저 놈들은 군을 저렇게 움직이면서 이길 거라 생각하는 건가?”
왕수는 그런 원담의 옆에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미 기병들이 두어 번 돌파했는데 군을 물리지 않는 것은, 지휘하는 장수가 무능이 극에 달한 자거나, 이미 대장이 없다는 뜻일 테니 말입니다.”
“대장기가 아직 굳건하니 전자이겠군요. 게다가 기병들도 건재하니… 제기랄!”
그동안 원담은 하후연이 이끄는 기마병을 조심하고 있었다. 좌익이나 후방을 노릴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인데, 갑작스럽게 방향을 틀어 버리는 게 보였다.
“예비대를 움직여 뒤를 쫓아야…….”
그러자 왕수는 고개를 저었다.
“따라간들 큰 이득을 취하기는 어려울 테지요. 어쩌면 저들 또한 함정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본대를 무너트리는 것만 해도 큰 이득이니 무시하기로 하지요.”
원담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앞에서 대놓고 상을 차려 줬는데 굳이 버리고 갈 필요는 없겠지요. 도망가 봤자, 또 이런 선물이나 남겨 줄 테니… 하하하!”
원담은 한바탕 크게 웃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런 모습을 보는 왕수의 입가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드디어 제왕의 풍모를 품으신 듯합니다.”
“하하하, 귀찮음이 많이 늘어난 것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