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31
331화
조비가 평양현에서 대패했다는 소식은 얼마지 않아 천하에 퍼져나갔고, 이내 기주와 연주 곳곳에서 반기를 들어 올린 이들이 나타났다. 그들 모두가 원가를 지지해서 군을 일으킨 것은 아니었지만, 깜짝 놀란 조비가 군을 물리기에는 충분하였다.
조비의 본대는 상당까지 물러나 기주에서 일어난 반란을 막는데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하기야 호관과 상당만 지켜 낼 수만 있으면 원담이 쉽게 기주를 넘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한 상황.
나쁘지 않은 생각이기도 하였다. 원담이 기주를 노린다고 하더라도 병주의 상당만 지키면 기주를 넘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되면 남은 것은 하동과 하내로 이어지는 낙양과 장안으로 향하는 길. 오직 그곳뿐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하동이 최우선적인 목표가 될 게 뻔했다. 하동 일대만 차지한다면 하내의 군세는 왕옥산에서 견제할 수 있고, 이후 홍농까지 점령하면 사례의 형세가 완전히 근왕군에게 넘어오게 될 테니 말이다.
그런 내용이 담긴 서신이 승태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가후가 보낸 죽간을 바라보던 승태는 그것을 함에 넣고는 눈앞의 곽원에게 물었다.
“조비의 군세가 패했다고 한들 하동에 주둔하고 있는 가규와 하내의 두습은 여전히 군세를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원담의 군세라면 충분히 남하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뒤에 있던 장수들은 원담이라는 말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미 세를 완전히 잃고 멀리 도망간 지가 오래인 원담의 이름이 갑자기 튀어나오자, 승태 역시 어리둥절해졌다. 원가의 힘이 무너져 사라진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홀로 하동과 하내, 심지어 낙양의 군세를 상대하려고 하다니, 어리석은 자거나 정말 그 정도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거나 분명 둘 중 하나이리라.
“원담이 세력을 얻은 것 같군. 그것도 우리를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정도로 큰 군세를 말이야.”
승태의 말에 사마의가 나섰다.
“원담이 도망간 곳은 병주와 량주 일대의 황무지입니다. 그곳에 안정적인 군세를 얻을 수 있는 세력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기껏 해 봐야 북적들을 이리저리 모은 것에 불과할 테니, 그들 중 일부만 설득하더라도…….”
“아직 체계화된 군세가 남아 있는 곳이 있소.”
그때, 마초가 사마의의 말을 끊고 나섰다. 갑작스런 방해에 사마의는 속으로 짜증이 났으나, 꾹 누르며 반문했다. 그러나 설마 자신이 모르는 세력이 남아 있겠는가라는 자만심이 말투에 묻어 나왔다.
“대체 어디에 그런 군세가 있소이까. 강족? 저족? 아니면 흉노? 흉노는 이미 후께 고개를 숙였으며, 강족과 저족은 지도자가 없어 흩어진지 오래요. 그것은 마 공이 더욱 잘 알지 않소?”
“월지의 구자국과 선선 같은 서역 삼십육국이 남아 있소이다. 그동안 한조에 복속되어 있다고 한들, 언어와 민족이 완전히 다르니 언제나 독립을 바라고 있었소. 그런데 주변의 세력들이 저절로 무너지니, 지금이 기회라 생각하였을 게 분명하오.”
서역 36국.
한조 초기, 서역과 개통할 당시 단순하게 36국이 있어 그런 명칭이 붙었다. 그러나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좀 더 복잡했다. 거국(居國) 과 행국(行國)을 나누어 정주 국가와 유목국가를 나누었고, 또다시 지역에 따라 나누었다.
마초가 그 세력에 대하여 운을 띄우자 사마의가 기가 찬다는 듯이 쏘아붙였다.
“서역의 거리가 얼마나 먼데 이곳까지 군을 데려온단 말입니까? 그것도 수천의 병력을 이끌고 말입니다.”
마초는 손을 내저었다.
“할 수 있소이다. 내 알기로 서역의 서른여섯 국가 중 이미 패권을 쥔 이들이 나왔으니 가능한 일일 것이오. 지금 누란과 구자국의 세력이 강성하니, 세를 불려 일대를 장악했다고 들었소.”
“이미 서역의 패권을 얻었는데 어찌하여 원가에 군을 보낸단 말이오? 차라리 그곳에서 힘을 모으는 것이 좋지 않겠소?”
“당연히 그러기 위해 군을 보내는 것이지. 사마 공, 원담이 한조를 굳건하게 일으킬 사람이오?”
전혀 아니었다. 분명 원담이 패권을 쥐게 된다면 스스로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할 게 뻔했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당연히 한조의 마침표가 될 터.
양수는 감탄하는 표정으로 마초를 바라보았다.
“그러한 판을 짜고 절묘한 포석을 놓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대체 한 번의 계책으로 서역의 인물들이 얻는 이득이 몇 가지입니까?”
원담을 도우니 적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양수는 기꺼이 상찬했다. 그러나 사마의는 여전히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그들의 포석이 저희에게 무슨 영향을 미치겠습니까? 그저 서역의 독립이나 바라는…….”
순간, 사마의는 자신의 옆에서 느껴지는 마초의 기운에 말을 멈추고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사마의는 자신을 압박하는 마초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 이곳은 다함께 자신의 의견을 내는 회장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뛰어난 통찰과 계책을 세우는 지에 따라 능력이 입증되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 곳에서 간접적이지만 무력을 사용하려 하다니, 단순히 기분이 나쁜 것에서 그치지 않고 분노까지 치밀어 올랐다.
굉장히 오랜만에 승태의 회의에 참여하는 사마의로서는 참을 수 없는 폭거였다. 그동안 조비를 따르며 그의 기분에 맞추고 측근들의 알랑방귀에 맞장구치지 않았던가. 드디어 그곳에서 벗어나 신성한 회의에 참여하는 데, 방해를 받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사마의는 자신을 압박하는 기세를 이겨 내고 더욱 강하게 나왔다.
“우리가 상대하는 이들의 강약과 조직력, 그리고 약점만 알면 될 일입니다. 어디서 온 자들인지, 숫자는 얼마나 될지, 그런 것은 첩자와 척후대가 알아내겠지요. 혹시 마 공은 그들의 강함에 대해서 아시는 것이 있습니까?”
마초 또한 호락호락한 자가 아니었기에 그 도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분기를 쏟아 내려는 순간, 승태가 손을 뻗어 둘을 제지했다.
“중달의 말대로 서역 삼십육국의 생각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후일 우리가 량옹주나 사례, 유병주를 얻는다면 모를까, 지금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요. 원담이 이끄는 병사가 어떠한지는 나중에 생각합시다.”
승태 또한 사마의의 말을 긍정하자, 마초가 발로 바닥을 쿵 내리쳤다. 위협적인 언행에 승태의 옆을 지키는 고순의 눈동자가 불쾌한 빛을 띄었다.
“아닙니다. 그들의 출신을 알아야 그들의 생각을 알 수 있으며, 상대하기도 더욱 쉬워집니다.”
옳은 말이었다. 강족의 피가 흐르는 마초가 느끼기에 그들의 행동은 일전의 황건적과는 달랐다. 황건적은 자신이 궁핍함을 이겨 내기 위해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이들이었다면, 서역인들은 그 기저에 맹목적인 광신이 있었다.
“그들의 종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목숨을 바치면 후일 도래할 세상에서 대접받는다고 생각하니…….”
“황건적 또한 태평도를 믿던 이들이지 않습니까. 괴력난신을 따르는 이들이야…….”
사마의와 마초의 대립은 점점 극으로 치달았다. 마치 기름과 물을 얹어 놓은 것처럼 말이 통하지 않자, 마초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때, 승태가 인상을 찌푸리며 외쳤다.
“그만!”
사마의와 마초는 순간 조용해졌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 둘을 내려다보며 승태가 말했다.
“그들이 믿는 종교가 이미 양주에 들어왔소이다. 마 장군이 염려하는 바 역시 알고 있지요. 불교에서 내세가 올 것을 믿으며, 장수들마저도 굳건하다는 사실 말입니다.”
승태는 과열된 분위기를 진정시키듯 잠시 말을 골랐다.
“서역의 왕들이 자신을 붓다와 동일시하며, 그 안에서도 여러 종파가 갈리는 게 가볍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지금 그것을 얘기한다 해도 이곳에 모인 신료들이 단박에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지. 결국, 전장에서 만나지 않는 이상 확실한 사실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승태는 이전에 가후가 보낸 서신을 함에서 꺼내 들어 사마의에게 건넸다.
“누란과 구자국이 주도한 군세가 원담의 세를 이루고 있음은 진작에 알고 있었습니다.”
마초와 사마의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이미 모든 것을 아는 처지에서 조금 전의 소동을 바라봤다면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을까.
고개를 떨군 마초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는 사이, 사마의는 큰 절망을 느끼고 있었다.
가후는 앉은 자리에서 적의 모든 것을 후벼 파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마초에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한 모든 것이 적혀 있었다.
원담의 군세를 이루고 있는 게 누란과 구자국이 주도한 군세라는 것.
그들이 먼 서역에서 어떻게 이곳까지 왔냐는 것.
마지막으로 두 나라가 원담과 어떤 협약을 나누었는지까지…….
그중에서도 눈에 가장 잘 들어오는 게 구자국의 현 상황이었다.
구자국, 또는 쿠차 왕국.
구자국은 고대 서역의 36국 중 하나였고, 장건(張騫)이 이곳을 지나가며 교류하였다. 한나라 선제(宣帝)때에는 조공을 바쳤으며, 서역도호부(西域都護府)를 설치하면서 한나라에 귀속되었다. 후한 말, 한나라의 서역에 대한 지배력이 약해지면서부터 구자국은 완전한 독립국가로 자리 잡았다. 또한 불교 문화를 받아들이며 한나라와 다른 국가 체계를 만들었던 왕국이다.
가후는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마지막에 누란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덧붙여 놓았다.
선선, 혹은 누란이라 불리는 그들은 작금 비단길을 장악하여 엄청난 부를 쌓아 올렸는데, 교역을 해야 할 한조의 부유한 이들이 무너지자 불안감을 느끼는 듯했다. 안정적인 수입을 유지하면서 독립성도 보장받고 싶어 하는 마음 때문에 원담과 밀약을 맺었다고 했다.
일목요연하게 서역의 상황을 정리해 놓아 잘 모르는 사람도 알아보기 좋았고, 설득력도 높았다. 게다가 근거까지 충실하니 완벽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단순히 서역에서 안정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비단길의 패권과 지금껏 쌓은 부를 더욱 늘리기 위해서 원담과 연합한 것이다.
사마의는 떨리는 목소리로승태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후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본 후의 생각 말인가?”
“그렇사옵니다. 후께서 지금 소신에게 이러한 서신을 내어 주신 것은…….”
“그냥 참고하라는 것이오. 적혀 있는 내용이 맞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믿을 만하다는 점은 충분하니 말이네. 다만, 조금 전에도 이야기했듯이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지. 우리는 고간과 원담이 손을 잡고 일으킨 지금의 사태를 정리하면 될 뿐.”
사마의는 이제는 입을 열지 못했다. 승태는 그를 지나쳐 마초의 앞에 섰다. 사마의 때와 달리, 살짝 미소를 띤 상태였다.
“내 장군이 원하는 바를 들어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지요.”
따뜻한 말이었지만 마초는 승태와 자신의 사이에 큰 벽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다시 세력을 일구어야 하는 자신과 천하를 노리는 승태, 너무나 벌어진 격차였다.
게다가 눈을 옆으로 돌리자 굳건히 승태를 호위하고 있는 고순이 보였다. 또한 그 뒤에는 장합, 장료처럼 기라성 같은 장수들이 있었다.
마초는 조용히 눈을 감고 예를 표했다.
* * *
수춘후의 깃발이 하동의 안읍에 올라오자, 그 모습을 확인한 원담의 척후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