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34
334화
장료가 방락을 베어 버리고 방희의 군진 깊숙이 들어오자, 진지는 쑥대밭이 되었다. 방락의 군세에서 방패 역할을 하던 병사 하나가 크게 외쳤다.
“자, 장군! 적…적병이! 커어어억!”
그것이 그의 유언이 되었다.
장료는 자신보다 앞서 들어간 방락의 목을 벤 일 따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포판진을 휘젓고 있었다. 처음 침입을 알리던 기마병들까지 전부 죽이자, 포위하기 위해서 움직이던 병사들도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버티던 이의 목에 극을 박아 넣은 장료는 쓰레기를 치우듯 휙 던져 버렸다.
털푸덕.
사람의 목숨이 벌레같이 취급되는 모습을 보며 방희군은 순간 얼이 빠졌다. 장료는 이 상황을 즐기듯 중얼거렸다.
“역시 학소의 말은 아직 이르군. 일신의 무예로 전황을 바꾸는 시대는 끝났다라…….”
주춤거리는 병사들이 학소가 누구인지 알겠는가. 그들은 그저 지금 움직였다간 눈앞의 기병들에 의해 죽음을 맞이할 거란 생각에 꼼짝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개중에 용감한 이들이 어떻게든 장료와 수십의 기병을 포위하기 위해 나섰다.
그러나 장료는 방락의 말을 이용한 것처럼 죽은 기병의 말을 다시 한번 자극했고, 보병뿐이던 병사들의 진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이 장면을 보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군.”
그 순간, 여기저기서 적병이 나타났다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깡깡깡깡!
긴급한 종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장료와 그의 수하들은 병사들을 휘저으며 길을 만들었다.
그래도 명색이 근왕군이라 자칭하는 익주병들은 훈련이 잘 되어 있어, 진지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빠르게 대응하였다. 창병들이 우르르 달려 나와 장료의 앞을 가로막았다.
게다가 평범한 무장도 아닌 장료와 마상 무예의 달인인 수하들이니 만큼, 창병들이 진을 만들기도 전에 몰아붙였다.
게다가 장료가 자극한 방희군의 전마들 때문에 전장이 더욱 혼란스러운 게 문제였다. 몇몇 병사들은 흥분한 말의 발굽에 짓이겨지기 까지 했다.
아무리 훈련이 잘 된 정병이라고 해도 이미 날뛰는 기마를 제압하기는 쉽지 않을 터.
“말을 죽여선 아니 된다!”
심지어 저런 말까지 들려오니 더욱 손쓰기 어려웠다. 이상한 모습이기도 하지만 전마의 가치를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었다. 병사 열댓 명이 죽더라도 전마 하나를 살리면 이득일 테니 말이다.
과감히 대처해도 힘든 상황에 저따위 말까지 들려오니 창병들의 사기도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그들의 뒤에서는 병사들의 안위에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전마를 잡기 위해 노력할 뿐.
장료는 그런 그들 사이로 들어가서 도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잘 막던 창병들은 이내 우르르 쓸려나갔다.
장료는 더욱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점점 적의 숫자가 늘어났지만, 그의 기세는 무너지지 않았다.
지치지도 않는지, 극의 움직임도 가속했다. 방희군은 그런 장료의 모습에 덜덜 떨며 창을 놓고 싸울 의지가 없다는 것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부우우우!
그때, 원담이 데려온 병사들이 있는 곳에서 나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전진한 그들은 두려움이 없다는 듯, 장료와 기병들에게 창을 내질렀다. 물론 가장 앞에 서 있던 이들은 순식간에 짓밟혔지만, 동료의 죽음에도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었다.
묘한 목소리로 불경을 읊는 그들의 옆으로 기마병이 보였고, 장료는 재빨리 말고삐를 고쳐잡고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쉬이 짓밟을 수 있던 창병들의 움직임이 너무나 치밀했다. 장료가 흘낏 기병들을 보자, 흔히 아는 모습이 아니었다.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자신을 포위하려는 병사들을 피해 낸 장료는 뒤로 물러나 정비하기로 움직였다..
그러자 갑자기 기병들 사이에서 눈이 파란 인물이 앞으로 나와 장료에게 어색한 예를 취했다. 그러고 나서 어색한 한어로 말을 걸었다.
“동격라가의 아들인 타도가(陀闍迦)이오. 누란의 왕자이며, 누란군의 대장군을 맡고 있소.”
뜬금없는 자기소개였지만, 그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빤히 보였다. 분명 시간을 끄는 것이리라. 작금 장료가 군영 깊숙이 들어왔으니, 시간만 충분하다면 사로잡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하는 게 틀림없었다.
“하하하, 먼 곳까지 와서 고생이 많군. 내 이름을 알고 싶으면 한번 잡아보시오.”
그러고는 말고삐를 돌려 달아났다. 마치 잡아보라는 듯한 도발이었다.
타도가는 자신을 놀리는 것 같은 장료의 모습에 분기가 차올랐다.
“감히!”
그는 얇은 직도(直刀)를 들어 올리며 장료의 뒤를 쫓고자 하였다. 장료는 타도가를 비웃듯이 화극을 머리 위로 들고 휘휘 돌렸다. 그것을 보던 타도가의 눈에 핏발이 섰다.
“이노오오옴!”
적진 깊숙이 들어올 때 장료가 가장 앞섰기 때문에 후퇴할 때는 그가 가장 뒤였다. 장료는 타도가의 상태를 지켜보며 수하들을 호위했다.
어차피 방희의 군세들은 혼란에 빠져 감히 기마대에 맞설 생각 따윈 없는 상황. 그러니 기마의 선봉에는 굳이 자신이 설 필요는 없다. 장료는 그리 생각했다.
더불어 저 누란국의 왕자라는 놈을 유인하기 위해서라도 그가 가장 뒤에 설 수밖에 없었다.
‘참… 아무리 왕자라고는 하나, 너무나 도발에 약하군. 저런 자가 대장군이라니…….’
뭐, 높은 지위에 있으니 이런 일을 당할 기회가 거의 없긴 했으리라. 그러나 그것을 감안해도 너무나 분기에 찬 모습에 속으로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타도가는 기마를 타고 미친 듯이 따라 달려가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장료를 잡기 위해 활을 쐈지만, 현란한 기마 솜씨 때문에 오히려 아군에게 오사를 하고 말았다. 게다가 군영이 혼란에 빠진 상황이라 거치적거리는 게 너무 많았다.
마상 사격의 자세를 잡느라 속도가 줄어들자, 타도가는 활쏘기를 포기하고 다시금 말고삐를 강하게 잡았다.
“으우아아아아아!”
타도가는 장료를 쫓으며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부숴 버리겠다는 듯한 괴성을 질렀다. 실제로 그는 아군조차 자신의 앞길을 막으면 죽여버렸다.
추격전이 어느 정도 진행되자, 장료와 병사들은 포판진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타도가와 그의 병사들은 그럼에도 계속해서 뒤를 쫓았다.
물론 타도가에게도 아무 생각 없던 것은 아니었다. 장료의 무위가 대단하다고는 하나, 지금 아군의 숫자가 훨씬 많으며, 한족의 기마술을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봉대로 나간 이이와 방락은 무능했기에 죽은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또한, 기저에 붓다를 향한 신앙심이 자리하고 있어, 두려울 게 없다고 믿고 있었다.
장료를 거의 다 잡았다고 생각한 그때, 갑자기 앞의 말이 느려졌다.
‘지쳤구나!’
타도가는 웃으며 직도(直刀)를 휘둘렀다. 그때, 자신의 시야에서 장료가 사라지는 게 아닌가.
순간, 목으로 다가오는 예기에 놀라 급히 몸을 틀었고 그게 그의 목숨을 살렸다. 장료가 말 옆구리를 잡고 누워 화극을 내지르고 있던 것이다.
“이게 무슨…….”
장료는 거의 묘기나 다름없는 모습을 보이더니, 다시 제대로 말 위에 올라타서 어깨를 한바퀴 돌렸다.
“오랜만에 하려니까 영 어색하군.”
“이놈!”
저런 것은 친선 대결때나 보이는 모습이 아닌가. 말 그대로 묘기였다. 자신을 한 수 아래로 보지 않고서는 사용할 수 없는 기술에 타도가는 분노했다.
“으으으음…….”
장료는 타도가와 그의 수하를 보고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다시 한번 만지작거렸다.
“내 오랜만에 마상 기예를 선보였는데 몸 상태가 옛날 같지 않군.”
“이놈!”
“서역 놈들은 이놈밖에 할 줄 모르는가?”
“…내 너를 포를 떠서 죽일 것이다.”
“입은 살아 있군.”
장료는 화극을 고쳐잡고, 극으로 타도가를 가리켰다.
“그 섬뜩한 주둥이를 찢어 놓아야 정신을 차리겠지.”
“큭큭큭큭…….
타도가는 당당한 장료의 모습을 보며 비웃었다. 속도를 줄이려 한 합을 겨룬 장료와 달리 저자의 수하들은 도망간 상태였다. 분명 장료를 미끼 삼아 도망갔으리라. 그런 생각에 타도가는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느꼈다.
“내 너를 육시를 하여 씹어 먹으마.”
“참… 입은 정말 살아 있는 놈이군.”
“무섭다면 여기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박아라! 그렇다면 내 한 번 봐줄 수도 있음이다.”
“내가 할 말을 자네가 대신하는군.”
“이놈!”
타도가는 빠르게 직도를 들고 장료에게 달려들었다.
* * *
한편, 방희는 호위병들과 함께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포판진의 재건에 성공한 듯했다.
그런데 지금, 엄청난 노력을 들인 곳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장료의 기병 중 일부는 불을 질러, 많은 곳이 타버렸다. 다시금 처음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는 이곳을 하동을 점거하기 위한 첨병으로 삼을 생각이었다. 원담의 힘까지 빌렸으니 분명 성공하리라. 그런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하동이 단단한 벽처럼 느껴졌다.
그가 장로를 물리치려고 했을 때 같았다. 동주병을 모아 상대하려 했지만, 언제나 잔도를 태워 새로 시작하곤 했다. 그때 느낀 패배감이 다시금 그의 마음속에 깃들었다.
“빌어먹을…….”
유장을 도와 어떻게든 장로를 무너트리려 했으나, 그자는 무너지지 않고 굳건하게 버텼다.
방희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굳건하던 장로도 내부의 분열로 인해 무너지지 않았는가. 아직 운은 자신에게 있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강하던 마씨 일족도 무너졌고, 순가도 무너졌다. 지금도 그럴 것이다. 순가의 인재가 왕좌지재라 하던가? 난 황좌지재의 그릇을 받았으니 말이다!”
방희는 겨우 마음을 다잡았다. 몇 번의 실패고 움츠러들 필요는 없었다. 자신에게 위기는 언제나 찾아왔지만, 결국에는 잘 이겨냈으니 말이다.
그때, 전령이 멀리서 빠르게 달려왔다. 방희는 방금 장료의 술책이 생각나 곧바로 호위병을 세웠으나, 이번에는 진짜 전령이 맞았다.
“장군! 급전이옵니다!”
“무슨 일이냐? 지금 전쟁 중인데, 이것보다 더 큰 일이 있느냐?”
“수춘후가 군을 물렸다고 합니다. 안읍에 있던 군이 홍농을 따라 물러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뭐라고? 그게 사실이냐? 어째서 수춘후가 갑자기 군을 물린다는 말이냐!”
정말 방희조차도 깜짝 놀랄 수밖에 없는 소식이 맞았다.
“허나 안읍에서 많은 수의 병력이 뒤로 물러나고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병사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다량의 물자 또한 함께 이동한다고 합니다.”
그 말에 방희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 역시 내 앞길에는 대운이 따르는구나!”
참을 수 없는 기쁨에 한참 동안 웃어 젖히던 그는 겨우 진정하고 명을 내렸다.
“군을 정비하거라! 바로 안읍까지 진군할 것이다. 곧바로 하동을 차지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수춘후조차 군을 뒤로 물렸으니, 이제 그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빠르게 하동을 차지하고 낙양까지 군을 보낼 수만 있다면… 머릿속에 망상이 가득 들어찼다.
“이제 기세에 올라탔구나. 내 유 익주를 낙양에 오를 수 있게 만들 것이다.”
방희는 이제야 자신의 손에 이미 모든 것을 움켜쥔 듯했다. 황금빛의 무언가가 가득 보이는 것만 같았다.
* * *
“상책은 한발 물러나는 것입니다.”
“물러나라니요. 모두를 버리라는 말입니까?”
가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뜻이 아니옵니다.”
“그러나 여기서 군을 물린다면 다른 이들을 버리자는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둘 다 이룰 방법입니다. 혹시 검사들이 칼을 휘두르기 전에 뒷발을 살짝 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으십니까?”
가후의 얼굴에 계략을 꾸미는 미소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