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4
삼국지 : 미완의 군주 33화
조운이 허리에 매어 둔 창을 꺼내자, 앞에 선 단양병들이 바로 대응이 가능할
정도로 자세를 바꾸었다.
“네가 감히 내게 덕을 논하는가!”
조운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사방에 퍼졌다. 그러자 그의
옆에 서 있던 하후란이 다가와 창으로 조운의 창을 아래로 깔게 했다.
“저렇게 어려 보이더라도 이곳 서주의 목이네. 자룡, 그쯤 해 두게.”
그러나 조운은 하후란의 창을 위로 쳐 내며 말했다.
“네 종제가 나의 명예뿐만 아니라, 유 예주의 명예도 더럽힌 것이네.”
승태는 조운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어찌하여 유 예주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생각하십니까?”
조운은 창을 승태의 목에 겨누며 물었다.
“내가 네놈의 목을 못 뚫을 것 같으냐!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내뱉는구나! 나
와 유 예주의 약조를 조롱하는 것이 아니냐?”
조운의 분노가 극에 달한 것인지, 하얀 얼굴이 관우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승
태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분노! 조운이여, 그대도 의심하는군. 하긴 그렇게 마음을 다했는데, 부르지
않는 것은 유비인 것 아닌가?’
승태에게 조운의 분노는 의심이었다. 기저의 의심이 뚫고 나와 그것을 부정하
려는 분노. 그것을 자신에게 풀고자 서신 하나에 기주에서 서주까지 이렇게
온 것이리라.
“내 알기로 조공이 의병을 이끈 이유는 기주에 원가보다는 공손 장군이 더 나
을 것이라 생각한 걸로 알고 있소. 원공을 소홀히 하지 않고 말이요.”
조운은 이전의 자신이 한 속 이야기가 모두 들추어 나오자, 참기 어려웠는지
짧게 팔을 이격시켜 창을 뒤로 빼었다. 하후란이 놀라 그를 막으려 했으나,
조운이 섬광과 같은 움직임으로 손을 앞으로 내질렀다.
승태도 놀란 눈으로 조운을 바라보았다. 젊었을 때 조운의 성격을 책에서 나
온 것과 같다고 여겨 위협만 할 줄 알았으나, 아무래도 도발이 너무 강한 듯
싶었다.
조운의 찌르기에 단양병 다섯이 달려들어 검으로 막아 내었다. 탕탕탕 거리는
소리와 함께 조운의 창이 승태의 명치의 딱 반치 정도 앞에서 멈추었다.
“더 지껄여 보아라. 이번에는 약하게 찔렀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네 목을 뚫
어 주마.”
“자룡! 자네의 행동이 너무 넘치네! 내 분명 하후 가문의 족제이자, 사공의
조카임을 밝혔네!”
조운은 하후란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모욕은 이자가 한 거지, 그대의 가문이 한 것이 아닌데.”
승태는 예상한 바와 많이 다른 조운의 행동에 오금을 지릴 뻔했다. 그러나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며 죽음과 친해져서 그런지, 이전과 같이 다리가 풀릴 정
도로 얼이 빠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분노에 빠진 것 같은 조운이 개인의 일로 만들려는 정치적인 행보에
감탄스러울 뿐이었다.
단양병이 조운에게 달려들려 하자, 승태는 손을 들었다.
“그만! 물러나십시오.”
“하지만 주공, 주공을 공격했습니다.”
“그렇다 하여도 저분은 제가 초청한 분입니다. 제가 보낸 글을 모욕이라 받아
들이면 그리 생각해야지요. 아니 그렇습니까, 조 공?”
조운은 그런 승태를 비웃으며 다시 창을 들어 올리자, 백성들 몇이 나와 조운
을 막아섰다.
“아니 되오!”
시장판의 백성 몇이 나와 조운을 막아서자, 그는 어리둥절하며 말했다.
“비켜라! 이자가 한 모욕을 네놈들이 대신 받을 게 아니라면!”
조운의 말에 대부분 겁을 먹으며 움츠러들었다. 그런데도 앞을 비키지 않고
있었다. 관병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려오자, 승태는 백성들을 일으키며 말했다.
“다들 물러나세요. 제가 풀어야 할 일입니다.”
“아이고, 어르신. 고리대를 모두 탕감해 저희 하비 놈들이 살았는디, 어찌 모
른 척하겠습니까? 저희가 관군을 불렀으니, 얼른 도망치십시오.”
조운의 주변을 둘러싸듯 한 백성들이 조운을 욕하자, 그는 말에서 내려 그들
에게 말했다.
“저자가 유 예주께 모욕을 저지른 인물이오! 어찌 하비의 백성들이 유 예주를
모욕한 자를 감싼단 말이오!”
조운은 백성들에게 항변하듯 말했다. 아마도 자신이 아는 유비라면 인심을 샀
을 것으로 생각했을 터였다. 그러나 유비가 인심을 살 때는 자신이 필요할 때
이다. 서주자사에 있을 때는 백성을 긍휼(矜恤)하게 여긴 적이 없었다.
오히려 서주에서는 호족들과 결탁하여 세를 불리는 일을 했다. 그런 이유 때
문인지 유비가 여포에게 당했음에도 백성들이야 어차피 무서운 조조를 막을
사람이면 되니 반발하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유비가 물러남에 기뻐했지. 미가의 고리대가 어마어마하게 서
주 전역에 걸쳐 있었으니 말이야.’
유비라는 인물이 경제에 대하여 무엇을 알겠는가. 그간 군을 굴린 것은 다 자
발적 협조라고 쓴 협박으로 군대를 굴렸다. 그 앞에 선 것이 바로 미가와 결
탁한 상인 세력과 호족이었다.
‘그 협박의 대상은 뭐, 백성들이고.’
승태는 그 부분부터 잘라내기 시작했다. 원금 이상의 고리대를 모두 감할 것
을 명했으며, 반발은 모조리 철퇴로 내리쳤다. 진응의 말대로 서주 진가가 빠
진 반발은 해 봐야 성하나도 차지 못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도
승태를 지지하는 이들도 있었다.
‘산발적으로 나오는 게 조금 귀찮긴 하지만.’
반기를 든 호족들의 땅은 모조리 직접 농사를 짓고 있는 이들에게 임대의 형
식으로 넘어갔다. 갑작스럽게 좋은 땅을 얻은 서주의 백성들은 승태를 적극
지지하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조운의 말에 승태의 앞에서 두려움에 덜덜 떠는 사내가 악을 지르듯이 말했다.
“그게 뭐 어떻다는 말인가! 그 귀 큰 놈은 어차피 조조와 여 공(여포)이 무서
워서 도망가 조조의 휘하에서 호의호식하고 있는 사람 아니야! 우리를 버리고
말이야!”
조운은 눈에 불이 뿜어지는 듯 안광을 그 백성에게 쏟아 내고 창을 들려 하
자, 승태가 외쳤다.
“자룡! 진정 그대의 창이 백성에게 향하는 것인가! 이제 덕도, 인도, 충도 없
는 한낱 무부(武夫)에 불과하구나!”
조운은 승태의 말에 몸이 휘청이며 창을 바닥에 꽂고 나서 쓰러졌다.
“아아······.”
조운은 그간의 기다림이 허망하게 흩어지는 것 같았다. 공손찬을 떠나 인의를
위하여 서주를 구원한다는 유비의 말을 듣고, 조운은 멀리서 그를 응원하였
다. 그리고 자신을 언젠가 불러 줄 것을 생각하며 무예와 병법을 갈고닦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어느 순간 조운의 가슴 한편에 의심이 자라났고, 유비가
조조의 휘하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조운은 현실을 부정하며 유비에 관한 변명들을 만들고 이를 굳건한 신념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조운의 거짓된 신념은 서주에 와서 모두 깨부숴졌다.
조운의 눈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 뒤에 말을 타고 서 있던 하후란이 승태를 바라보자, 그는 조운에게 다가갔
다. 단양병들과 백성들이 그를 말렸으나, 승태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조 공은 의가 높은 무장으로 적이 아닌 저를 죽이지 않을 것입
니다.”
그리고 몇 걸음을 걸어 조운의 앞에 선 승태는 그의 앞에 섰다. 승태의 부름
에 조운은 그를 바라보았다. 흐르는 눈물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조운은
그저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덕은 누군가에게 맡겨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나와 같은 무부가 어찌 덕을 이룬단 말이오? 무부는 충과 무로 주인을 도와
덕을 이루는 것이 아니겠소?”
승태는 조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조 공, 이들을 보십시오. 이들 모두가 덕을 행하는 이들입니다.”
조운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승태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승태
를 바라보며 안절부절못하는 이들이 보였다. 이 모두가 그의 안위를 걱정하는
이들이었다. 진궁, 노숙, 단양병, 마부, 조운을 막은 백성 모두가 말이다.
“덕은 본시 직심(直心)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곳에 조금씩 걷는 척(彳)자를
얹은 것입니다. 덕에는 현명함(玄)도, 힘써서(孟) 하는 덕도 없습니다. 그저
우직한 마음으로 나아가 만민의 기쁨을 받드는 일(承泰)입니다.”
승태의 말은 굉장히 뼈가 있는 말이었다. 진궁과 노숙은 그의 말을 알아듣고
흠칫했다.
조운은 웃음을 지었다. 어찌 웃지 않겠는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원하는 이가 자신에게 매달려 있으니 말이다. 자신을 죽이
려 한 사람임에도 용서하고, 모욕도 용서하며 옳은 길을 가라고 말하는데, 걷
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운은 자신보다 어린 승태에게 절을 하며 말했다.
“이제야 진덕(眞德)을 찾았습니다. 소인을 이리 일깨워 주셨는데 이를 갚을
방도가 없으니, 소인은 평생 주인의 창과 칼이 되고자 합니다.”
승태는 조운을 향해 고개를 저으며 손을 뻗고 말했다.
“조 공, 주종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저 곧은 마음을 같이 하는 동지 아니겠습
니까? 하여 한 가지 청을 하고자 합니다. 저와 함께 조 공의 꿈을 이곳에서
펼쳐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조운은 승태의 손을 잡고 일어나 예를 표하였다.
“그리 말씀하신다면 상산 조가의 꿈에 제 꿈을 모두 걸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승태는 웃음을 지으며 그를 보고 같이 예를 취하며 말했다.
“저 또한 부탁드립니다. 제가 잘하지 못하거나 엇나간다면 말씀해 주시고, 세
평을 먼저 들어 알려 주시며, 제가 언제나 법도에 맞는 일을 하며 굴하지 않
도록, 혹 허물이 없도록 도와주십시오.”
자신이 따를 사람을 찾은 듯한 조운이 눈을 반짝였다. 그렇게 주인을 찾은 조
운과 자신을 공격했음에도 가슴으로 그를 품은, 대인의 풍모를 보이는 승태의
모습은 퍽 아름다워 보였다. 하지만 한 발 뒤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인물
들은 약간 멍한 느낌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숙은 승태를 바라보다가 진궁에게 물었다.
“진 선생님, 저는 이 상황이 잘 이해가 안 되는데··· 혹시 이해가 가시는지요?”
“모욕으로 분노한 무사를 주공이 주변 백성의 행동과 말로 감화시켜 무릎을
꿇린 일이죠.”
노숙은 진궁을 바라보며 ‘그걸 말하는 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며 한숨을 내
뱉고는 승태를 바라보았다.
“말은 잘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을 후벼 파는 말을 잘하니, 세객이 되었다면
아마 천하를 들고 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진궁을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는 노숙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얼굴에 감정이 다 드러나는 분입니다. 아마 세객이 되었으면 거짓을 말하지
못했겠지요. 그리고 그것은 바로 죽음으로 이어질 것이고요.”
노숙은 진궁의 의도 모를 말에 짧은 수염을 쓸다가 말했다.
“저 무사, 어떨 것 같습니까?”
진궁이 조운을 가리키며 물었다.
“주공께서 모은 인물입니다. 무명(武名)을 들은 적은 없지만, 분명 뭔가 있는
인물이겠지요. 그대와 나를 불러 모은 주공 아닙니까?”
노숙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궁의 말에 동의했다. 그리고 아까의 창격과 여포
휘하에 있던 장수들과 비교를 해 보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군. 진 선생님, 마차에 타시지요. 감동적인 장면이 좋긴 한데··· 약간
그렇습니다.”
진궁이 수염을 쓸고 마차에 올라타자 노숙은 그를 따라 올라탔다.
조운은 예를 표하며 자신과 함께 온 상산 병들을 인도하겠다고 했고, 승태는
단양병을 붙여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보내었다. 그 모습을 모두 보고 있던 하
후란이 승태에 다가와 물었다.
“자룡이를 알고 있었느냐?”
종형인 하후란의 말에 승태는 턱을 긁으며 말했다.
“하북에서 꽤 무명을 날렸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승태의 말에 하후란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나도 들어 보지 못한 무명을 네가 들었단 말이냐?”
동향 사람인 하후란이 조운의 명성을 듣지 못했다면 말을 다 한 것이지만, 승
태는 뻔뻔하게 말했다.
“유 예주가 연주를 떠날 때 아쉬워한 인물 둘이 조 공과 전국양(國讓, 전예)
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을 제가 설득한 것일 뿐입니다.”
하후란은 승태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네가 현(玄)과 맹(孟)을 부정하는 것을 내 곡해하는 것이 아닌지 묻고 싶구나.”
승태는 하후란의 말에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 말을 이었다.
“그저 말을 그대로 해석할 뿐입니다. 종형, 저 또한 조가의 인물이며 백부이
신 조 사공을 위해 서주에서 힘쓸 뿐입니다.”
하후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다고 하자꾸나. 나 또한 딱히 가문을 맹렬히 따르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단지 내 친우에게 한 말은 지켰으면 한다. 좋은 친구이니 말이다.”
승태는 당연하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한 침대라도 못 쓸까요. 하하.”
하후란은 약간 징그러운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자, 승태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농담입니다, 농담. 그리고 야전에 들어가면 그럴 수도 있지요.”
“그래, 그렇다고 하자.”
하후란이 말에 타자, 승태는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종형, 이리 어려운 부탁을 들어주셨는데, 여독이라도 풀고 가시지요.”
“되었다. 하후 장군이 뭐라 하신다. 네 일을 도와준다고 해서 내 받은 녹봉도
많이 썼다.”
“그러니 같이 가시지요. 제가 조금이라도 챙겨 드리겠습니다.”
솔직히 승태는 하후란에게 뭐라도 챙겨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조운을 데려온 형님인데, 뭘 퍼 줘도 아깝지가 않지. 없는 돈이라도 창고를
긁어서 줘야지.’
하후란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돈으로 저 친구 밥이나 한 끼 해 줘라. 그리고 네가 평도후의 부를 물려
받았지만, 휘하 장수를 부리기 위해 많이 썼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후란은 말고삐를 잡으며 말했다.
“그래도 네가 쓸 부는 모아 두어라. 언제나 숨긴 뭔가가 있어야 하니 말이다.”
승태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종형의 충고, 깊이 새기겠습니다.”
승태는 웃음을 지으며 하후란을 보내주고 나서 뒤를 돌았다. 그리고 마차로
가는 길에 얼굴을 굳히면서 생각했다.
‘이제 장패만 휘하에 들이면, 유비와 진짜 한바탕 해 볼 수 있다.’
승태는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 유비의 그림자를 하나하나 벗겨 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