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40
340화
둥둥둥둥!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동시에 해현을 둘러싼 병사들은 사다리를 세우고 성을 위협하고 있었다. 마치 항복하라는 듯이 말이다. 그 모습을 보던 가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도위.”
현위가 가규를 부르자, 그는 눈을 뜨고 현실을 마주했다.
“결국… 이곳까지 왔군.”
“이미 포판이 넘어갔다면, 운 좋게 한번을 막더라도 유장의 군세가 끊임없이 들이닥칠 게 뻔합니다.”
가규는 옆의 현위의 앓는 소리에도 한참 동안 눈앞의 병력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성을 하기에는 조금 모자라 보이기는 했다. 변변한 망루와 당차(撞車)가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저들의 군세를 보아하니, 현의 방책을 넘기는 어려울 것 같군.”
“하나 이곳의 방비는 그리 대단하지 못합니다. 비축한 물건도 그다지 많지 않고 말입니다.”
가규는 계속 부정적인 말만 내뱉는 현위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래서… 조정의 명도 없이 귀부하려는 것인가?”
“그러나 도위, 이미 수춘후가 뒤로 물러났으니, 이는 분명 하동을 지킬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항장(降將)은 가장 일찍 귀부하였을 때 높은 가치를 가지는…….”
“끌고 가게.”
가규가 병사들에게 명을 내리자, 그들은 순간 당황해서 아연하게 가규를 바라보았다. 이에 먼저 현위가 가규에게 언성을 높였다.
“도위!”
그러자 가규는 즉시 칼을 뽑아 현위의 목 언저리에 댔고, 깜짝 놀란 병사들이 달려와 막으려 하자 곧바로 목을 베어 버렸다.
부월이 없는 가규에게는 관리를 그 자리에서 즉결심판 할 수 있는 권리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배반하려는 마음을 가슴속에 품은 자는 처벌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극약 처방이라도 하지 않으면 지금 상황에서 심지가 약한 이들부터 항복하고 싶어 하는 감정이 생길 것은 뻔할 터. 분명 자중지란으로 무너질 가능성이 크리라.
“치워라.”
병사들이 현위의 시체를 끌고 나가자 옆에 있던 독우가 넌지시 물었다.
“분명 동 태수가 이 일에 대하여 말을 할 것입니다.”
“흥, 하동 따위 진작에 던져 버린 인물이다. 뭐, 책임을 지라고 한다면 이깟 관직, 나도 때려치우면 그만이다.”
“도위…….”
독우는 차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가규의 말에 틀린 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전에 두습이 가후의 뒤통수를 친 뒤, 군을 죄다 이끌고 조비를 도우러 가지 않았는가. 물론 그때도 속으로 온갖 욕을 다 했을 테지만, 직접 입밖으로 내는 것과는 분명 다를 터.
물론 조비가 도움을 요청했으니 곧바로 거절하기는 힘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다수의 관료가 유장의 군세가 침입할 수 있음을 근거로 반대했으니, 조금이라도 시간을 늦출 수는 있었으리라.
하지만 결국 하동 대다수 물자와 심지어 부곡들까지 징발하여 데려갔다. 텅 빈 채, 껍데기만 남은 하동은 아마 가후가 승태를 모셔오지 못했다면, 원담과 방희가 강을 건넌 순간 함락되었을 것이다.
승태가 들어와 물자를 공급하고 병을 보조하니, 지금 이렇게 하동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병력은 몇이나 있는가?”
“팔백여 명 정도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가규는 성을 한번 둘러보았다. 좁은 구역을 막는 것이니, 수성을 하기에는 모자람 없어 보이는 숫자였다. 다만, 전투가 길어지면 분명 문제가 생기리라.
병사들의 피로가 누적되어도 교대해 줄 병사가 없으니, 다른 대응은 불가능할 터. 그저 얼마간의 시간 벌기에 불과할 것이다. 잠시 생각에 빠진 가규가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양초는 충분하겠지?”
독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의 수에 비하면 넉넉하긴 합니다. 한데 도위, 진정 이곳에서 저들을 막으려 하십니까?”
가규는 아무 말 없이 현위를 죽인 칼을 가리켰다. 그러자 독우는 침을 한번 삼키더니 고개를 숙였다.
* * *
계속해서 위협했음에도 가규가 끝끝내 자리를 지키자, 동주병과 서역의 병사들이 성을 넘기 위한 준비를 했다. 사실 그들이 보기에도 성안의 병력이 얼마 되지 않아 보였고, 또한 방희와 이미 한패가 된 인물이 있다고 해서 안심하고 있었다. 기껏해야 사다리와 당목밖에 없으나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말이다.
“의로써 간신들에게 복역한 이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가져 항복을 권유했음에도 끝까지 버틴 죄, 참으로 크다! 내 너희를 토벌할 것이나, 혹여 적장의 목을 가져온다면 그자는 죄를 사하여 줄 것이다!”
그러나 해현의 병사들은 잠시 고개를 돌릴 뿐, 어떠한 미동도 없었다. 그것을 본 동주병의 대장인 우곽은 분노를 뿜어냈다.
“이놈들!”
그러나 우곽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눈앞의 성벽은 말이 뛰어넘기 힘든 높이. 그는 그저 말고삐를 움켜쥐고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들어 방희가 자신들을 버리고 파촉의 인물들과 가까이 지내는 바람에 열이 뻗쳤는데, 겨우 수백이 지키는 작은 성조차 항복시키지 못하자 분노가 폭발한 것이었다.
“내 저곳을 연다면 성안의 모든 살아 있는 놈들을 죽인 뒤, 목을 내걸고 반기를 들면 이렇게 된다는 사실을 알리리라.”
둥둥둥둥!
진군을 알리는 북소리와 함께 병사들이 사다리를 들고 성벽을 향해 달렸다. 방패와 당목을 든 이들은 성문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때, 후방의 고원에서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깃발은 없었지만 동주병과 서역의 병사들은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맨 앞에서 화극을 들고 있는 인물의 갑주와 말이 그들의 기억 속에 아주 깊은 인상을 심어 놓았기 때문이다.
“자…장료다!”
우곽은 그 말에 놀라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수에 그는 기마들을 모조리 불러 말했다.
“보군들은 성을 계속 노리고, 기마들은 저들을 쫓아 처리하라!”
장료는 그들을 내려다보며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가진 기병의 숫자는 기껏해야 사백 남짓. 그는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적병을 보며 곰곰이 생각했다.
“고순은 언제나 이런 상황에서 싸웠다는 건가? 정말 겁이 없나 보군.”
언제나 수천의 병사를 이끌고 적병을 상대하던 그였다. 그러다 보면 흥이 올라 자신의 부하도 신경 쓰지 않고 적을 뭉개버린 적도 여러 번. 그러나 지금, 적은 숫자임에도 너무나 차분한 장료였다.
사람이라면 으레 느끼기 마련인 공포조차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이 감정에 이름 붙인다면 기대감이 아닐까.
“아니, 함진영은 기마 보병이니 또 다른가?”
“뭐가 더 다르겠습니까?”
“말 위에서 바라보는 모습과 직접 걸음을 옮겨서 저들을 뚫는 건 다르지 않은가.”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와중, 적의 기마가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장료가 손을 들었고, 방금까지 떠들썩하던 병사들은 조용해졌다. 그러고는 뒷줄의 기마는 활을, 앞줄의 기마는 각자 무기를 준비했다.
“그래도 그들은 지랄 맞은 말을 몰지는 않지 않습니까. 전장에서 이놈들 다루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말입니다.”
장료는 그의 부관의 말에 크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기야 그렇지!”
피슈슈슛!
그 순간, 장료가 손짓했고, 곡사로 쏘아진 화살들이 적병에게 명중했다. 장료는 엉망진창이 된 적을 보며 화극을 다잡았다.
푸른 길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고, 장료는 웃음을 지었다.
“온통 푸르구나.”
* * *
곽원은 눈을 크게 뜨며 앞을 바라보았다. 함진영의 위력이 어떠한지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적인 서역의 기마들은 평범한 말보다 두 배의 크기였고, 병사의 힘 또한 한족과 비교해 대단히 강했다.
그런 신체 조건은 고순의 함진영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 손에 들려 있는 짧은 도끼가 적의 머리에 박힌 순간, 마치 호랑이가 양민들을 휩쓰는 것만 같았다.
원담은 절망한 얼굴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좁은 길목이라 앞, 뒤 어느 곳으로도 쉬이 빠질 수 없었다. 커다란 기마는 도리어 그들이 나아갈 길을 막는 장애물이 되었다.
“어디로든 돌파해야 한다!”
퇴각할 수만 있다면 다시금 고간의 도움을 받아 일어날 수 있었다. 방희에게 맡긴 병력만 해도 충분히 한 세력을 일굴 수 있을 터.
원담의 절규하듯 외치는 모습을 보던 장합이 곽원에게 말했다.
“함진영이 길을 열도록 깃을 올리게.”
곽원은 눈을 크게 뜨며 장합에게 물었다.
“지금처럼 계속 싸우면 적들을 괴멸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길을 열어 주라는 것은…….”
“타산이 맞지 않습니다.”
멈칫.
타산이라는 말에 곽원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이미 승기가 자신들에게 쏠린 순간에 타산 같은 걸 생각할 겨를은 없다고 느꼈다. 그가 반론하려는 순간, 장합이 다시 말했다.
“원담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함진영도 사람이니 저들 모두를 베는 건 무리입니다. 제아무리 공포에 절어 있다고는 하나, 작금 후방에 있는 병사들의 두께는 얇으니 분명 저들이 죽음을 피하기 위해 각오를 다지고 돌파하는 순간 무너지겠지요.”
“그럼…….”
“곽 장군이 저 정도로 저들을 쓸어버릴 수 있다면 끝까지 싸우도록 하겠습니다.”
불가능이었다. 그도 고순과 함진영이 해낸 일을 자신의 수하들이 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곽원은 그대로 깃을 들어 올렸고, 고순이 이끄는 함진영의 일익이 물러가기 시작하였다. 원담은 살았다는 듯 재빠르게 군을 몰고 나아갔다.
“퇴각하라! 적들의 진이 무너졌다. 저곳을 향하여 나아가라!”
원담이 급히 전진하며 빈틈이 생기자, 장합은 곽원에게 명을 내렸다.
“저들의 뒤를 잡으십시오. 다만, 멀리 가지 말고 강이 보이면 물러나십시오.”
곽원은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뒤 곧바로 나아갔다.
그리고 얼마 후.
“대공자, 공자가 아무리 이전보다 성장했다고 한들 상황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주군께서 직접 전장에 나온 이상, 모든 것은 그분의 손바닥 안에 있는 것입니다.”
원담은 장합의 말을 들으며 멍하게 불타버린 부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너머에서는 조운과 창희의 군세가 깃을 꽂고 불을 지르고 있었다.
그와 함께, 방희의 군세 또한 포판을 넘은 마초의 등장에 모두 분쇄되었다는 급전이 도착했다.
* * *
며칠 후, 하동 안읍에서 장송과 왕수가 승태를 보기 위해 도착하였다. 그들은 방희와 원담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둘의 신형을 받아 내기 위해 온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방희와 원담을 받기 위해 온 것이오?”
승태는 빙빙 둘러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이 아까운 지금, 그들의 생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장송도 마찬가지였다. 왕수와 달리 장송은 차라리 방희가 죽기를 바랐다. 앞으로의 일에 어차피 도움이 되지 않을 인간이니 말이다. 그래도 보는 눈이 있으니 죽여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그렇사옵니다. 방 공은 유 익주께 중요하신 분이니 반드시 돌려주셔야 합니다.”
포로를 되찾으러 온 사자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말투였다. 장송은 굉장히 아니꼽다는 얼굴로 승태를 바라보았다. 반면, 함께 온 왕수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풀어주지. 어려운 일도 아니니 말이야.”
승태의 말에 모두가 놀라 승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모습에 조운이 주먹을 쥐며 경고를 하려 했지만, 승태는 바로 말을 이었다.
“둘 다 풀어주겠으나, 이번에 잡은 나머지 포로 모두는 노예로 끌고 갈 것이다.”
장송이 무슨 말을 하려 하자, 승태는 손을 들어 막았다.
“조건 따위 없다.”
장송은 지금의 일이 어떤 파문을 일으킬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승태의 노림수 또한 알 수 있었다.
‘이자가 혼돈을 만드는 인물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