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41
341화
승태의 이야기를 들은 장송은 순간 굳어진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그간 방희를 처리하기 위해 고심했고, 그 결과가 지금의 상황이었다.
전장에서 장수가 불의의 죽음을 맞는 일이야 다반사이니, 방희가 죽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혹여 포로로 잡히기라도 한다면, 어차피 수춘후와 순가의 입장에서 역적을 살려 줄 이유도 없었고 말이다.
그러나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수춘후는 지금까지의 고심을 한순간에 모두 파괴해 버렸다. 방희와 원담을 풀어준다는 얘기를 공적인 자리에서 말한 것이다.
장송은 완전히 굳어버린 자신의 얼굴을 숨기기 위해서 고개를 깊게 숙이고 예를 표하였다.
“수춘후의 하해와 같은 은혜, 이루 말할 수 없사옵니다.”
그와 반대로 왕수는 승태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의 의중이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서인듯했다.
그 눈초리에 승태는 피식 웃더니 턱의 수염을 쓸며 말했다.
“역시 쉬이 믿지 못하는 것 같은데, 정말로 풀어 줄 것이오.”
“대가는 무엇입니까?”
“대가? 본 후가 방금 전에 조건이 없다고 하지 않았소?”
“…그 말씀에는 대공자만이 들어 있지 않았습니까.”
승태는 큰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지. 아무 조건 없이 풀어주는 인물은 원담과 방희, 둘 뿐이니 말이야.”
가만히 듣고 있던 방희도 솔깃해졌다. 지금 마초가 동관을 넘어 다시금 홍농을 완전히 장악한 이상, 군세를 돌려받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자신의 군세를 돌려받을 수만 있다면 포로로 잡힌 상황에서도 손해를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으리라.
“패전지장을 풀어주는 것이야 큰 무리가 될 일은 아니지. 그대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승태의 말에 왕수는 순간 말을 잃었다. 승태의 말대로라면, 아무런 대가 없이 원담을 데려온다고 해도 앞으로 패전지장의 졸장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될 터. 반면 장송은 방희가 어찌 되어도 상관이 없어 승태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말했다.
“그러하옵니다. 어찌 하해와 같은 후의 은혜에 토를 달겠습니까?”
“그렇다는군.”
왕수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대공자를 풀어주시기만 한다면, 어찌 제가 후의 말에 이견을 내겠습니까?”
승태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의자에 몸을 뉘었다.
그때, 노숙이 일어나 승태에게 다가갔다.
승태는 일전에 노숙이 한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이만 일어나 자리를 떠나시면, 제가 저들과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끌겠나이다.”
승태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장송과 왕수의 눈을 마주하며 말했다.
“지금은 내가 많이 피곤하니 먼저 들어가 보겠소. 자세한 일은 노 부조와 이야기하고, 후일 정리되면 그때 직접 듣는 거로 하지.”
승태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 왕수와 장송이 무어라 말을 전하기 위해 벌떡 일어났으나, 노숙이 둘을 막아 세웠다.
왕수와 장송은 순간 이를 꽉 깨물었으나, 이내 표정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노숙을 따라 움직였다.
한편, 승태가 회장을 벗어나자마자 유엽과 사마의가 뒤로 따라붙었다. 유엽은 사마의의 모습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으나 앞선 승태를 따라잡느라 신경 쓸 겨를이 없어졌다.
“주군, 저들의 면면을 보면 아시겠지만 큰 이득을 가져올 수 있는 거래입니다. 왕수는 어떻게든 원담을 데려가려 할 것이고, 장송은 분명 방희를 처리하고자 수를 쓸 것입니다.”
또 하나의 계략을 짜내는 유엽의 눈빛은 형형했다.
“그 점을…….”
“이미 그들의 처리는 끝나지 않았습니까?”
사마의가 자신의 말을 끊자, 유엽은 다시 한번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후께서 하신 말을 번복하라는 말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둘의 말다툼은 신경 쓰지 않고, 승태는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문 앞에 선 내관들이 옆으로 다가왔다.
“가 태보께서 기다리십니다.”
“알았네.”
방으로 들어서자 가후가 일어나 예를 표하였고 유엽과 사마의는 입을 닫았다.
“태보께서 외인들이 찾아온 자리에 함께하지 않아 걱정하였습니다. 더군다나 그 이유가 몸이 아프다고 하니 제가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승태도 사실 가후가 오지 않은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가후가 가지고 있는 직위가 더욱 높으니 자칫하면 그 자리에서 자신이 모욕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물론 그러한 일이 발생한다면 가후의 상황도 그다지 좋지 않게 흘러갈 게 뻔하고 말이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 가후를 보며 승태는 상석에 앉았다.
“태보께서 원하는 바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혹여 따로 계획한 바가 있으십니까?”
승태의 말대로 가후가 원하는 그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장합과 장료, 그리고 마초의 능력을 너무 작게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가후가 그들을 과소평가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장수들의 진정한 능력을 발휘할 만한 전장에 나선 적이 없었기에 오판한 것이다. 잘못된 계산 아래 계획을 세웠으니, 원하는 그림을 그리지 못할 만했다.
만일 그가 장료의 합비대전이나 장합의 지휘 능력을 보았다면 좀 더 치밀한 작전을 세웠을 터. 그리고 그 계획대로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자신의 계획대로는 아니지만 원담과 방희를 사로잡았고, 하동의 피해가 크지 않아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드는 가후였다.
게다가 하동에서 뿌리를 내린 채 살고 있는 호족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남기는 효과도 거둘 수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가후는 수염을 쓸면서 가볍게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우선 시간을 끌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시간을 끌다니요?”
“본디 죄인의 판결은 조정의 이야기를 들은 후 내리는 것이 원칙이니, 그것을 핑계 삼으면 될 듯합니다.”
“하나 태보. 조정에서는 역적들이 살아남는 것을 절대 원치 않을 것입니다.”
갑자기 끼어든 사마의의 발언에 가후는 형형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러니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이지요.”
사마의는 순간 가후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해 입을 열지 못했다.
“적들의 목표가 다르지 않습니까? 왕수는 빨리 원담을 되찾길 원하고, 장송은 방희의 죽음을 바라니 말입니다. 또한 저들을 이간질 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각 세력의 내부에 금이 가게 만들 수도 있겠지요. 그러니 시간을 끌면 끌수록 저희에게 좋은 일입니다.”
시간을 끌수록 좋다는 것은 서로가 다른 입장에서 나온 결정이 문제가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한쪽에서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빨리 받아내고자 할 것이고 어떤 세력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받고자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자경(子敬) 형님은 대강 아는 일인 것 같은데, 먼저 귀띔을 주신 것입니까?”
승태는 한번 충격을 주고 물러서서 다른 이들과 대화를 하라고 조언을 준 노숙을 떠올렸다.
그러자 가후는 고개를 저었다.
“전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노 부조는 본능적으로 어떻게 해야 지금의 상황에서 더 많은 것을 얻어 낼 수 있을지 느끼는 것이겠지요. 분명 주공과 모사들이 새로운 방법을 찾아낼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일 겁니다.”
그 말에 다른 이들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특히 유엽은 자신의 어수룩한 친우가 이렇게 능숙하게 정치적인 일을 해냈다는 것에 더욱 놀란 듯싶었다.
“그러면 시간을 늦추기로 하지요. 그런데 승상께 서신을 보내는 것은…….”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유엽이 먼저 나서 이야기하자, 사마의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사옵니다. 가 태보께서 말한 이유를 제외하고도 이번의 일에 대해서는 보고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승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불타오르는 황도.
결국 순욱의 힘으로 궁이 함락되었고, 병사들이 들이닥쳐 황궁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들은 구석구석에 숨어 들어간 이들까지 모조리 잡아내고 있었다.
“끄아아아! 살려 주시오!”
여기저기서 들리는 비명소리와 눈앞의 상황을 보며 유협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이 마치 과거 십상시의 난, 삼보의 난 때보다 더 심각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천하가 무너지는 것만 같았는데, 지금과 비교하면 이해할 수준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순욱은 그런 유협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직접 처리하셔야 합니다.”
“…어찌 내가 직접 처리할 수 있겠소?”
유협은 순욱의 맑은 눈동자가 어째서 이토록 두렵게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
“폐하, 그렇다면 어찌 승상이 감히 황실의 인물들에게 자결을 명하겠습니까? 제가 황족의 생사를 논한다면 그만한 불충이 어디 있겠습니까?”
유협은 순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앞에 묶인 이들을 바라보았다. 태자와 이번 일에 연루된 이들이 모조리 사로잡혀 온 상태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도와 순욱을 죽이기 위해 노력하던 신하들이었다. 그런 이들을 자신의 손으로 처리하라니.
물론 눈물을 머금고 제거할 수는 있었다. 결국 궁지에 몰리자 감히 자신을 버리고 황태자를 봉대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황태자를 비롯한 몇몇 황자들을 죽이는 건 도저히 따를 수 없었다. 진정 아비의 자리마저 버리라는 말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그때, 황태자의 옆에 있던 환관이 소리쳤다.
“용군(庸君)이여! 결국 이런 일이 왔소이다! 동탁도, 이각과 곽사도, 조조도, 결국은 순욱까지! 하늘의 자리에 앉아 있음에도 그들을 관리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잘라내지도 못했으니, 결국 권신이 되어 황실을 넘보지 않았소이까! 용군 유협이여! 이미 그대는 태자 전하께 자결을 명하지 않았소? 그때와 같이 행동하면 될 일이오! 아비가 아들을 죽이고, 도가 바닥에 떨어지며, 천리는 역행하는 지금! 반드시 그대는 걸(桀)과 주(紂) 같은 잔적이 될 것이오!”
목의 핏대를 세워 가며 환관이 긴 외침을 마치자, 유협은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라 칼을 들고 그자의 목을 베어 버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는 광기에 물든 것처럼 사로잡힌 포로들 에게 마구 칼을 휘둘렀다.
“커어억!”
“흐아아악! 폐, 폐하……!”
순욱은 그 참사를 말리지 않고 무심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반면 공융은 유협에게 달려가 엎드리며 말했다.
“폐하! 고정하소서! 고정하소서!”
“허억… 허억…….”
간신히 약간 진정한 유협이 주변을 둘러보자, 칼에 여기저기 베인 인물들이 보였다. 그들은 몸을 웅크리며 연신 쿨럭대고 있었다. 그는 살기 어린 눈동자로 공융에게 말했다.
“장작대부.”
“예, 폐하. 고정하소서!”
“그대도 나를 무시하는가? 용군과 같다고?”
“아니옵니다. 그저 때가 맞지 않을 뿐이옵니다. 폐하께서는 능히 성군의 자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가… 그러한가……?”
“폐하. 그러니 부디 천자로써 위엄과 유학의 도리를 이루소서.”
“유학의 도리?”
유협은 자신의 칼에 베였지만 아직 살아 있는 이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광기가 어린 웃음과 함께 그의 목을 내리쳤다.
“맞네. 대부의 말이 맞아. 능당 충이라는 가치를 잊은 자를 처단해야지. 나는 성군이니 말이야… 으하하핫!”
공융조차 더는 유협을 말리지 못했다. 한참을 날뛴 유협은 마침내 칼을 들고 자신의 큰아들 앞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