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45
345화
고간은 왕수가 전한 이야기를 듣고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수춘후의 의중을 알아온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근왕이라 일어난 자신들과 완전히 척을 지지 않겠다는 의미를 보이는 것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세는 기울었고 근왕군 내부에서 말이 나오기 시작한 이때, 왕수의 조언은 고간을 압박하기에 충분하였다.
원담을 구하기 위한 정치적인 거래라고 한다면, 고개를 숙이는 일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고개를 숙이게 된다면 죽음을 뒤로 미루는 일일 뿐이라는 점이다.
조정은 언제고 이번의 일을 기억하고 자신을 쳐 내기 위해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천하가 더욱 혼란했다면 흔쾌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기회를 노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고간이 바라보는 상황은 점차 굳어져 가는 것 같았다.
그것이 한조의 중심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유일하게 공간이 생긴 하북과 량주, 옹주인데, 왕수는 그것을 포기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지금 자네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아는가?”
“알고 있습니다.”
“지금 하는 말은 지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죽어 달라는 말과 같네. 아니, 뭐 죽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간 원가를 다시 일으키고자 했던 모든 일을 포기하라는 것이네.”
왕수는 잠시 말을 이어나가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원가를 이어 나가는 일이 반드시 원담이어야 하는가?”
“대공자가 아니라면 유주에 정착한 원상을 상대로 원가의 힘을 뺏어 올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몇 번의 유주 진군이 좌절되지 않았습니까.”
조비를 격파한 원담과 고간은 군을 나누어 상대적으로 군이 적은 유주로 진군하였다.
물론 그 속내에는 흑산적 잔당들을 소모하면서 과거 이족들과 연계하기 위함이었지만, 그 결과는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공손찬의 후예들과 흉노, 그리고 강노병 까지 손을 잡고 막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 그 전예라는 놈을 먼저 처리하기 전에는 다시 움직이기 어렵겠지.”
“그렇사옵니다. 하니, 한 번 고개를 숙이고 군을 가다듬는 것입니다.”
“군을 가다듬어? 나를 잡아먹으려는 것이 아니라?”
고간의 걱정은 원담이 돌아오게 된다면 자신의 세력을 차지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라는 점이었다.
사실 확장을 할 때야 밖의 파이를 빼앗는 다는 생각에 서로 손을 잡을 수 있겠지만, 고개를 숙이고 나면 이제 남은 파이를 나누어야 하니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밑에 있겠다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래서 군을 더 남하하실 생각입니까?”
고간은 왕수의 협박과 같은 말에 너털웃음을 지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하하하! 정말 권력에는 혈육도 없고 은인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정말 어이가 없군.”
고간으로서는 솔직히 복합적인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먼저 허탈감이 몰려왔다.
그다음은 자신에 대한 원망이었다.
원가의 힘을 얻고자 원씨들을 살려두었더니, 자신을 집어삼키려 한다니 말이다.
“본시 근왕군은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이전의 선주께서 행한 일에서도 그렇지 않았습니까?”
고간도 잘 알고 있었다.
이번 일이 크게 성공하기에는 힘들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그때와 지금의 상황은 달랐다.
그때는 가장 확실한 명분이 될 인물이 너무 욕심이 없어서 문제가 된 일이었다.
유우만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면, 천하는 원가의 손 아래에 둘 수 있었을 것이다.
원소는 누구나 가진 욕망을 알았지만, 정의로운 인물의 욕망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몰랐던 것이다.
작금은 반대로 정의가 없는 사람만 남아 황제를 위한다면서 싸우는 것이었고, 그 정의가 얼마나 가소로운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서로 욕심과 이성으로 싸우다 보니 상황은 예상도 할 수 없었다.
정변의 주체인 황제가 사로잡혀 다시금 명분이 되었고, 근왕이라 불리는 이들은 도리어 정변의 주체인 황제의 생존을 부정하는 지금의 상황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고간이야 중간에서 그냥 세력을 넓히는데 집중할 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는 그저 순욱의 정권이 무너지면 천하에 공백이 생기게 되니, 이전 동탁의 정권이 무너질 때처럼 되기를 바라며 군을 일으켰다.
그러나 지금 수춘후가 하동에 떡 하고 버티고 있으니 그러한 일도 요원해진 상황이었다.
“하기야 반정(反正)이라는 것이 빠르게 움직였어야 하는 것인데,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되어 버렸으니 이미 성공은 요원한 것이겠지.”
“다른 방안이 없으시다면 고개를 숙이고 원 공자를 구한 뒤, 원가의 번영을 위해 힘을 쓰시면 될 일입니다. 과거에 그래왔듯이 말입니다.”
왕수의 말에 고간은 쓴웃음을 흘렸다.
“내 생각에는 말이네…….”
고간의 행태가 위협적으로 보인 왕수의 인상이 찌푸렸다.
고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왕수도 일어나 허리춤의 검을 잡았다.
“지금 전투를 계속하겠다는 것입니까?”
“굳이 그대의 입으로 전투를 마칠 필요가 있겠는가? 아니, 그것보다 지금의 상황을 굳이 끝낼 필요가 있겠는가?”
왕수는 칼을 뽑아 들고는 주변을 살폈다.
고간이 흔쾌히 이번 일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했으나, 사방이 이미 포위된 상황에서 전쟁을 이어 갈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왕수가 칼을 빼어 들고 주변을 살피자 고간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네 하나 처리하자고 병사들을 부르겠는가. 아무리 내 나이가 있다고 한들 그대 한 명 처리하기에는 문제가 없네. 걱정은 말게나. 내 자네를 죽이고 싶은 마음은 없네.”
왕수는 고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빠르게 달려 문을 발로 차 버렸다.
고간은 왕수가 이런 험악한 일을 할 줄은 몰랐는지 당황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이내 부서진 문을 뒤로하고 빠르게 달려나갔다.
“서역까지 가서 살아남는 방법은 꽤 잘 배웠군.”
고간이 피리를 불자 병사들이 우르르 뛰어나왔다.
왕수는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이내 끌려왔고, 고간은 자리에 앉아 숨을 내쉬었다.
“그대를 죽일 생각은 없다 하지 않았는가. 그대와 원담은 수춘후가 아닌 승상과 대화할 수단이니 말이야.”
* * *
법정은 장안을 포위한 주둔지에 유(劉)자가 높게 걸린 마차와 호위병들과 함께 도착했다.
가장 앞에 있던 마차에서 향도한 맹달이 먼저 내리며 법정에게 다가왔다.
“효직, 드디어 도착하였네.”
맹달의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았지만, 법정은 그를 한 번 껴안고는 이내 그의 손을 두들겼다.
“고맙네. 수고가 많았어.”
“무슨 수고인가. 그저 마씨 놈들 피해서 오느라 조금 힘들었지.”
“그것이 힘든 것이 아니던가? 홍농을 다시 차지한 그놈들을 피해 이리 왔으니 말이야.”
“자네가 알아주니 다행이군. 맞네, 많이 힘들었지. 길이 아닌 곳을 피해 이리 왔으니 말이야.”
“임기응변이 좋은 자네밖에 못하는 일이겠지. 그렇지 않은가?”
법정의 말에 맹달은 콧김을 한 번 내뿜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콧수염을 만졌다.
“그럼, 그럼. 역시 자네는 나를 알아주는군. 하하하!”
“그래, 옷도 갈아입고 자교(子喬 장송의 자)와 함께 오게나. 그동안 그렇게 기다리던 손님이 온 것이 아니던가?”
그 말에 맹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리나케 사라졌고, 법정은 뒷짐을 진 채 마차에 다가갔다.
그때, 호위병의 도움을 받아 마차에서 내린 제갈량을 향해 법정이 예를 표하였다.
법정은 자신의 앞에 보이는 제갈량을 보며 살짝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상황이 이루어진 것이었으니까.
잠시의 침묵이었지만, 서로 간에 원하는 것이 빤하였다.
법정은 유약한 유장을 밀어내고, 유비가 커져 버린 세력을 다스렸으면 하였다.
그리고 유비 또한 양번을 잃고 새롭게 둥지를 틀 안전한 곳이 필요했으니, 지금의 만남은 서로가 가장 필요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유 사군을 대신하여서 온 공명입니다.”
“방 태수를 대신하여 군 대장을 맞은 효직입니다. 제가 앞서 안내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일군의 대장께서 몸소 이렇게 저를 환대해 주시니 말입니다.”
막사에 도착하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가운데, 제갈량이 먼저 일 이야기를 띄웠다.
“내용은 들었습니다. 주공께서도 일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생각하셨으나, 방도를 어찌할지 물으셨습니다. 같은 일을 도모하는 동지이며 유가의 인물이니만큼, 좋지 않은 상황은 피하고자 하셨습니다.”
제갈량의 말에 법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이기도 하였고, 그것에 대하여 별 무리가 없다는 태도이기도 하였다.
그러한 법정의 태도에 제갈량이 도리어 당황하였다.
법정이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한 생각으론 제갈량은 어느 쪽이 어렵다는 말을 들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사실 제갈량은 속으로 유장을 모략으로 처리하는 편이 가장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유장이 살아 있어 봐야 유비에게는 결국 짐이 될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그렇게 확답을 하는가?”
“장안을 함락시키면 모든 것이 바뀔 것입니다.”
법정의 말에 제갈량은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껏 장안을 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넘지 않은 것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법정의 말은 정확했다.
장안이 함락된다면 마음만 먹으면 한나라를 반으로 나누는 것이 가능했다.
만일 그것만 가능하다면 기울어진 상을 만들어 유비에게 쏠리게 하고자 했던 제갈량의 생각이 순식간에 이루어질 것이었다.
“우선 장안을 함락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장안을 얻는 것이야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미 장안 안은 제 손안에 넣었으니 말입니다.”
법정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며 말했다.
“결정해주시면 장안까지 마차를 타고 가실 수 있게 하겠습니다.”
제갈량은 법정의 다짐에 살짝 웃음을 지어보였다.
“내 결정으로 장안을 돌아볼 수 있다면, 이 촌놈이 어찌 거부하겠습니까?”
법정은 제갈량의 말에 서신을 적어 병사에게 건네었다.
그때, 맹달과 장송이 막사 안으로 들어와 제갈량과 인사를 나누며 자리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장안이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는 것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장안이 떨어진다는 말에 맹달은 약간 놀란 눈으로 법정을 바라보았다.
반면 장송은 그저 차분하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
“덕분에 서주와 형주만 보았던 촌놈이 천하의 수도를 걸을 수 있다면, 그대를 높이 쓰도록 건할 것입니다. 아니, 일이 생겨 그대가 죽을 고비에 처하더라도 내 그대를 위해, 주공을 위하여 모든 것을 내놓겠소.”
마치 다짐과 같은 제갈량의 말에 법정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당연한 일이고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으로 제가 중용된다면 성 하나에 너무 큰 것을 바라는 이가 많아질 것입니다. 모든 것이 끝나고 유 사군께서 직접 논공하여 주신다면 마소처럼 일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