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54
354화
승태는 저들이 욕심을 낼 것을 알고 있었다. 자본의 비중이 달랐기 때문이다. 작금 하북의 전란은 길어졌고, 그곳에서 양곡은 귀중한 물건일 테니, 불이 나더라도 최대한 구하려고 할 터.
그렇기에 다들 볼 수 있도록 불을 붙인 것이었다. 그저 적과 서주, 양주의 격차를 보여 주고자 했다면, 불을 지르고 도망가기만 해도 충분했다. 그러나 바로 앞에 강이 있으니 물을 구하기도 쉬워 적의 움직임을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었다.
과연 큰 이득이 눈앞에 있으며, 잘못되더라도 만회할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하는데 인명 피해 따위를 신경 쓸까?
게다가 직접 위험을 감수하는 이들 역시 자신이 아니고 병사들일 텐데 말이다. 실제로 두습은 양곡을 챙긴 이에게 절반을 하사한다고 했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는 아무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절반을 얻게 되는 셈이었다.
승태는 하늘에서 뿌려지는 불티를 바라보았다. 불티는 마치 흩날리는 꽃처럼 마구 공중에서 춤을 추다가 내려앉고 있었다. 바람에 꺼지는 불꽃도 있었지만, 무사히 군수품에 안착하자 곧바로 불이 거세게 타올랐다.
승태는 그 모습을 보며 과거 많이 보았던 삼국지 만화가 생각났다. 동시에 낙화의 한 소절도 순간 떠올랐다.
“복숭아나무 생생하니 꽃은 만발하네, 후퇴도 당당하니 기세는 날카롭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청춘들이 꽃답게 죽겠구나.”
승태가 저지른 일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을지는 몰랐다. 그는 그저 미끼를 던졌을 뿐이니 말이다.
옆에서 승태가 읊던 시를 듣던 양수가 감탄하며 놀랐다.
“도(桃 복숭아)와 도(逃 도망치다)가 같은 것을 가지고 말장난을 하다니 대단합니다. 그리고 저들을 안타까워하는 감정까지 들어 있으니 일품이라 할 만합니다. 하나 화공이 효과적이겠습니까? 강가에서 불을 지르는 일이 먹힐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말을 꺼낸 양수의 옆에 있던 노숙이 살짝 웃음을 지었다.
“불이라는 것은 붙기 어렵지만, 붙기 쉬운 것들끼리 모여 있으면 더더욱 잘 타는 법이네. 그리고 저들이 그 불을 더욱 빠르게 옮겨 줄 것이고 말이야.”
“그러나 바로 앞에 강도 있는데 대처만 잘하면 쉽게 꺼지지 않겠습니까?”
승태는 양수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쉽게 꺼질 수 있는 불은 아닙니다. 끄는 방법을 안다고 하면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잠시 후.
파아아아앙!
“으아아악!”
뭔가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이어 비명들이 들려왔다.
양수는 놀란 눈으로 그곳을 바라보았다. 큰 불길과 달리 갑자기 일어난 폭발은 의도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큰 소리에에 민감한 말들도 울부짖었지만, 마초의 수하들이 순식간에 자제시키자 조용해졌다.
물론 말이 조용해졌다고 한들 밖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 * *
퍼어어엉!
터지는 소리가 한군데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폭발음이 들려오자, 늘상 침착한 서황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서황 뿐만 아니라, 말들 역시 놀라 미친 듯이 날뛰고 있어 그의 놀란 모습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그간 말을 타고 다니며 관리하는데 능하다고 자처한 이들도 커다란 소리와 불길로 인하여 흥분한 말들을 진정시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서황은 곧바로 사방팔방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이곳을 벗어나고자 했다.
“물러난다! 말들이 놀라지 않는 곳까지 물러난다!”
서황이 물러나는 것을 본 두습은 인상을 찌푸렸다.
“장군, 그렇게 물러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내 분명 하지 말라고 권했지. 그런데 병사들을 자극한 것은 자네이네.”
“장군!”
서황이 멀리 가 버리자, 두습은 고개를 돌려 불타는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호위병들까지 동원해 양초를 옮기려고 하지 않았던가. 이미 불에 들어가거나,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한 이들이 대다수였다.
“제길, 겁쟁이 놈! 나아가 싸울 줄이나 알지, 이런 일에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단 말이냐! 네놈의 병사가 아니라 그런 것이냐!”
두습이 분노를 터트렸지만, 그 목소리는 폭발음에 묻혀 버렸다.
퍼어어엉!
히이이이이잉!
그때, 다시 한번 폭발이 일어났고, 두습의 말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하였다. 이에 그가 급히 말고삐를 잡았지만, 크게 놀란 말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순간, 말 위에서 휘청거리다 두습은 떨어지고 말았다.
“끄으으으윽…….”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눈을 떴을 때 그는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불이 그가 있는 곳 까지 번져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불길을 막기 위해 구덩이를 팠음에도 이를 넘어서 오고 있는 것이었다.
“으아아아아!”
두습은 급히 일어나려고 했으나, 자신의 다리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그때, 주변에서 소리를 지르며 뛰어나오는 불붙은 병사들이 보였다.
두습은 재빨리 창을 잡고 내질러 뛰쳐나오는 병사를 불 속으로 처넣었다.
두습은 스윽 주변을 훑었다.
병사들은 자신에게 붙은 불을 끄기 위해 바닥에 구르기도 하고, 손을 털기도 했지만 불은 그대로였다. 심지어 양곡에 모래를 뿌려도 불길이 잦아들지 않았다. 도리어 무엇인가 새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며 폭발이 일어났다.
그제야 완벽히 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두습은 크게 소리쳤다.
“모두 물러나라! 포기한다! 불이 붙은 모든 것을 버린다! 불이 붙은 자는 강으로 뛰어라!”
두습의 말에 불을 끄기 위해 물을 퍼 나르던 이들이 그 자리에서 빠르게 벗어났고, 불이 붙은 자가 물로 뛰어드는 모습도 보였다.
두습 역시 재빨리 피신하려 했으나, 그에게 달려드는 불붙은 병사들이 보였다.
“너… 네놈 때문에……!”
원망 서린 눈으로 두습에게 달려드는 이들은 창을 맞았음에도 함께 죽고자 무작정 달려들었다.
그중 한 명은 두습이 찌른 창을 잡고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전신이 불탔음에도 미소 짓는 것이 보였다. 창에는 이미 불이 옮겨붙어 잡을 수조차 없었다.
“아, 안 돼!”
두습은 이어서 자신에게 달려드는 이들을 바라보며 절망하였다.
휘이이이― 퍽! 퍽!
그 순간, 서황의 대부가 병사들을 모조리 날려 버리고 두습의 옆에 섰다. 그러고는 손을 내밀었다.
“나가지.”
두습은 손을 부르르 떨면서 서황의 손을 붙잡으며 말에 올라탔다. 서황은 통제가 안 되는 지금의 상황을 바라보며 고개를 잠시 젓더니 떠나갔다.
하루 하고도 반나절 뒤.
겨우 불이 잦아들자, 조비가 서황의 안내를 따라 참사가 일어난 곳에 도착했다.
난장판이었다. 매캐한 매연의 향기와 사람 타는 냄새가 지역을 뒤덮고 있었다. 두습은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어 가지 못했고, 조비는 끔찍한 냄새에 코를 막고는 즉시 자리를 벗어나고자 했다.
“사죄드립니다.”
조비는 손을 휙휙 내저었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오. 어차피 정예병도 아니고, 고작 징집병 따위 몇 죽은 걸 가지고 내가 그대를 뭐라 하겠고? 그보다… 역적 조제 놈이 사용한 화공이 무엇인지는 알아내었소?”
두습은 고개를 내저었다.
“역청을 쓴 것 같기는 하오나 폭발하는 것은… 거기다 그 폭발한 것도 불이 붙고 오랜 시간 뒤에 일어난 것이라 알지 못하였습니다.”
“알겠소. 본시 심성이 악한 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이것은 너무하군. 병사들이 먹을 것을 모조리 태우면서까지 이리 하다니 말이야. 도망가면서 말을 먹을 작정이던가?”
두습이나 서황은 승태의 거대한 함선을 생각하며 먹을 것이 부족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지금은 조비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우선일 테니,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어차피 역적 놈들을 도망가게 만들었으니 일은 되었소이다. 조정에 장계를 올려 원상 놈도 여기에 관여되어 있다고 전하면 되겠소이다. 그럼 온전히 기주를 차지하고 하북을 손에 넣을 수 있지 않겠소이까?”
조비의 말에 두습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이번에 쉬이 도망갈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원상이 배신한 탓일 겁니다. 원상의 수하인 곽원이 역적의 휘하에서 일하였으니, 능히 역적을 도운 것이지요.”
조비는 두습이 빠르게 말귀를 알아듣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떠나기 직전에 말했다.
“혹시 양곡을 구한 것은 없습니까? 역청이야 잘 씻으면 양곡은 다시 쓸 수 있을 터인데 말입니다.”
두습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불이 붙기 전에 가져온 것들이 좀 있습니다.”
“그럼 그것을 좀 씻어서 가져갑시다.”
“위공, 혹 이번에 죽은 병사들의 시신은…….”
조비는 서황이 말끝을 흐리며 묻자, 인상을 팍 찌푸리며 말했다.
“어차피 불타서 누구인지 알아보기도 힘들고, 강에 빠져 죽은 이들도 많지 않소? 하나하나 골라내는 것도 시간이니, 그냥 일 만들지 말고 지나갑시다. 뭐 중요한 이들이라고…….”
조비는 그대로 서황의 말을 무시하고 그 자리가 불쾌하다는 듯이 사라졌다. 두습도 조비를 따라 사라졌고, 서황만 덩그러니 그 자리에 남았다.
“장군.”
“괜찮다. 그저 생각이 많이 드는구나. 승상과 대장군께서 위공을 도우라 하셨지만, 영 마음이 따르지 않으니 말이야. 오늘따라 선주의 굳건하시고 병사들을 생각하시던 그 모습이 참으로 그립구나.”
“…장군.”
* * *
우금은 자신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방통을 바라보았다. 그는 의뭉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방통은 이상한 분위기에 말을 이어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사위가 침묵으로 찬 가운데, 우금이 먼저 입을 뗐다.
“그러니까 지금 나를 협박하는 것인가, 아니면 부탁을 하는 것인가? 결국, 족인들을 보내 달라는 소리인데, 아직 관우가 떡하니 저곳에서 버티고 있는 상황에 병사를 빼라는 건…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말인가?”
“결코 장군을 곤란케 하려는 뜻은 아니옵니다. 하나 작금 후께서 좋지 않은 상황이라…….”
“좋지 않은 상황이라. 하기야 황제를 끼고 계신 승상께서 수춘후를 역적으로 삼았으니, 좋지 않기야 하겠지.”
방통은 진정 죽을 자리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금이 이렇게 비꼬는데 쉬이 돌아갈 수 있을 리가. 어떻게든 말을 이어 가려는 순간, 우금이 손을 내저었다.
“되었네. 수춘후의 의지는 잘 알겠으니, 물러가 있게.”
방통이 그 자리를 나가자 우금은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러고는 혼잣말을 하듯 조용히 물음을 던졌다.
“어찌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그 자리에서 포소와 포훈이 나와 우금의 앞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장군의 의지에 따라 바뀌지 않겠습니까?”
“의지라… 제가 바라는 것이야 그저 가문과 포가의 영명을 바랄 뿐입니다. 하나 지금 선택을 하면 분명 큰일을 겪을 것입니다. 승상께서 수춘후의 역린을 건드렸으니 말입니다.”
“장군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제 생각이 뭐 있겠습니까? 하나… 앞에 관우가 떡하니 있는데 지금 저들을 뺀다면, 군의 일익을 크게 잃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뿐 아니라 수춘후의 지원까지 잃는 것인데, 전장을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허를 버리고 연주로 물러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승상의 근거지인 영천이 허와 가까워 버리지 않은 것인데 괜찮겠습니까? 이대로 허에서 물러나는 것도 승상은 좌시하지 않을 게 분명합니다.”
포소의 말에 우금은 눈을 감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책상 위의 전쟁에서 죽어나는 것은 우리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