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56
356화
밖에서 여포의 나이 먹은 부곡들이 날뛰는 그때, 진궁이 이제는 눈도 뜨기 힘든 몸을 유찬의 도움을 받아 이끌고 내성의 성문에 도착하였다. 여혜는 조심스럽게 진궁에게 의자를 내어주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진궁의 흐린 눈으로 성 아래의 풍경이 들어왔다. 거의 멀어 버린 귀에는 적들의 비명조차 들리지 않았다.
“괜찮으십니까? 오신다고 하시니 소녀가 매우 놀랐습니다.”
진궁은 힘겹게 예를 표하였다.
부들부들 떨리며 힘겹게 올라오는 진궁의 팔을 보고, 여혜는 안절부절못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에 진궁은 살짝 웃었다.
“부부는 닮는다고 하는데, 후의 부인이 되어 오랜 시간을 같이하시니 정말 닮아 가십니다. 과거 선주를 괴롭힌다고 호통을 치시던 것이 어제 같은데 말입니다.”
여혜는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다가 진궁의 팔을 조심스럽게 잡아 그를 의자에 앉혔다.
그 조심스러운 모습이 마치 효성이 깊은 손녀가 늙은 할아버지를 모시는 모습이었다. 진궁이 여혜의 도움으로 앉고 나서 입을 우물거리다가 말을 꺼내었다.
“후께서도 어렵고 힘든 일, 그리고 목숨이 오가는 일에는 덤덤하셨지만, 사람을 대하였을 때는 언제나 어려워하셨습니다. 선주와는 다른 사람 다루는 방법이겠지요. 그런 모습과 후의 능력에 반한 이들이 모여 지금의 세를 이루었으니, 뛰어날수록 어리숙해 보인다는 말 그대로인 것이지요.”
그러고 나서 진궁은 여혜의 손을 토닥이며 말을 이어 갔다.
“하여 이 진 모는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부인께서 능히 천하를 떠받들며 가장 존귀한 자리에 오를 분을 닮아 간다는 것이 말입니다. 부인께서도 능히 기지를 발휘하여 위기를 타개하였으니 역시 부부라 할 만 하옵니다.”
“아니옵니다. 노사.”
흐뭇하게 웃던 진궁은 잠시 무엇을 생각하더니 슬픈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주군께서 많이 힘들 것입니다.”
고순의 죽음은 이미 빠르게 수춘에 전달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순이 졸하였다는 것 자체는 알게 된 상황이었다.
그 소식은 많은 이들을 흔들리게 하였고, 슬프게도 했으며, 누군가는 빨리 움직이게 하였다.
“슬퍼하심에도 굳건한 모습을 보이겠지만, 이곳에 와 의지하였고 믿었으며 부인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같이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주군께는 부친의 대신이며 믿을 수 있는 친족과 같은 인물이 도독이었으니 말입니다.”
여혜는 진궁의 말에 불안한 듯한 목소리를 꺼내었다.
“노사께서도 그러하십니다. 이제 칩거를 깨고 도우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분명 후께서 도움을 청하실 것입니다.”
진궁은 살짝 웃음을 지었다.
“소신은 이제 노쇠하여 눈이 좋지 않아 영 흐리게 보입니다. 귀도 이제 잘 들리지 않습니다. 젊고 명민한 이들의 생각과 결단에 따르지도 못하니, 뒷방에 앉아 외손들의 세상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없었더라도 지금의 위험은 쉬이 타파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온 것도 부인께서 간곡한 부탁 때문이었습니다.”
여혜는 진궁의 말에 고마움과 약간의 안타까운 마음이 같이 들었다. 승태나 조단이 일이 끝나고 자주 진궁의 집에 가서 조언을 들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진궁이 얼마 전 몸이 크게 아파 피객패를 올리자, 그 둘의 표정은 정말 볼만했다.
“단이도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일 것입니다. 오랜 시간 조부처럼 지내 왔는데 말입니다.”
진궁은 여혜의 말에 더욱 짙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소신의 낡은 판단이 아닌, 이제 젊은 붕우들이 더욱 도움이 될 것입니다. 도리어 말이 나올 테니 부르지 않는 것이 좋지요.”
진궁이 끝까지 선을 긋자, 여혜는 어쩔 수 없이 한발 뒤로 물러났다.
“소녀는 이제 신료들을 진정시키겠습니다.”
“조심하시지요. 저들의 손이 꽤 음습하고 독하니 말입니다.”
“소녀, 온후의 딸이옵니다.”
여혜의 말에 진궁은 다시 한번 힘겹게 클클 웃었다. 궁녀들과 함께 여혜가 자리를 떠나자, 진궁은 의자를 끌어 성문 가까이 다가갔다.
휘이이이익!
유시(流矢)가 진궁에게 날아왔고, 유찬이 가죽을 덧댄 나무 방패를 들이밀어 이를 막았다.
파각!
날아온 화살을 부러트리자 진궁이 유찬에게 손을 내밀었고, 유찬은 부러트린 화살을 진궁에게 건네주었다.
“뒤에 계시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유시가 꽤 많이 날아다닙니다. 또, 혹여 노사를 노리는 이들도 있을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그런데 진궁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성벽에 가까이 다가갔고, 유찬은 깜짝 놀라 진궁을 보호하기 위해 그의 옆에 섰다.
“잘 보이지 않는군. 흐릿하게 흐름만 보이는데 전황을 알려 주겠는가?”
“노사, 후의 부인께서 부르신 여씨 가문의 무사들이 적들을 상대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으로는 아마 전멸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진궁의 말에 유찬은 전장의 상황을 자세히 전했다. 그러자 진궁은 화살을 들고 가택 일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곳은 가지 말라고 전하게. 저들이 흩어지는 모습이 심상치 않으니 말이야.”
유찬은 설마 무슨 일이 생길까 하는 마음이었으나, 진궁의 말에 따라 명을 내렸고, 기마들이 그곳을 지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궁병들이 좁은 길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진궁은 성벽에 서서 보이지 않는 눈으로 유찬에게 일일이 명을 내렸다. 기마들은 진궁의 명에 따라 움직였고, 이곳저곳에서 나타난 위협을 교묘하게 피해 가게 했다. 그 교묘함이 너무나 능수능란하여서 위협을 가하려던 역당들이 튀어나오게 하기까지 했다.
“이제 보군을 이용하여 포위하고 조이도록 하게.”
진궁은 갑자기 피곤이 몰려온다는 듯 자리에 앉아 이마를 붙잡았다.
“신경을 썼더니 골치가 매우 아프군.”
“수춘의 성내도 이렇게 어지러운데, 부인께서는 괜찮겠습니까? 사실 지금 가장 위험한 것은 주군의 자택과 부인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부인께서는 호위도 없으시니 말입니다.”
진궁은 그런 유찬의 말에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이러한 웃음은 유찬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자네가 이리 말하는 것 보면 부인께서 잘 숨기신 것 같군. 부인이 누구의 딸이던가? 그리고 주군께서는 여인이라 하여 칼을 못 잡게 하는 성정도 아니지. 자네 정도의 실력이 아니면 부인의 손끝도 못 댈 것이네. 그뿐 아니라 부인께서 데리고 다니는 여인들 모두 무예 솜씨가 상당히 뛰어난 이들이네.”
“하나 그리 보이지 않…….”
유찬은 말을 잇지 못했다. 잘 생각해 보니, 시녀들은 전부 몸의 선을 가릴 정도로 큰 옷을 입고 있었다. 보통 많은 궁인이 자신을 뽐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궁인이 아니라 이는 사병이나 마찬가지일진대, 주군께서 허하셨단 말입니까?”
“뭐, 가족을 지키는 일이니 나쁜 일이 아니지 않겠는가?”
밖에서 우렁찬 환호성이 들려왔다. 조성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성의 내란은 어느 정도 처리가 된 듯싶었다.
“남문에서만 군을 주둔하지 않았을 것이네. 조 도위에게 말을 전해서 이들을 처리해야겠지. 지금 놓치면 분명 숨어서 일을 키울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말이야. 참… 몇 번을 걸러내어도 참으로 어려운 것 같군.”
“몇 번을 걸렀기에 이 정도에 그치지 않았겠습니까?”
진궁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 * *
조단은 육손과 조충을 부관으로, 하제를 대장으로 삼아 합비로 향했다. 합비의 일군이 반기를 들어 올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복이 이들과 같이 난을 일으킨 것인지, 아니면 유복이 붙잡힌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합비는 꽤 굳건하게 만들어진 성입니다. 수춘의 마지막 보루라는 의미도 있고, 양주의 뭇 수적들이 언제 수춘으로 올지 모르니 아버지께서 많은 신경을 쓰시기도 했지요. 합비가 넘어가는 바람에 도리어 우리가 양주에 손을 쓰기 위해서는 합비를 돌파해야 한다니… 거, 참.”
“적들이 그것을 노린 게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분명 오랜 기간 준비를 해 두었을 것입니다. 주군께서 오욕을 당하시자마자 이런 일들이 터져 나왔으니 말입니다.”
하제는 그런 육손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오랜 기간 손을 써온 것이 고작 이 정도라면, 이 계획을 짠 이들이나 조정의 머리라고 하는 이들은 머리가 텅텅 비어 버린 것이로군.”
하제의 말에 육손은 순간 욱하는 마음이 들었다. 육손 또한 전장에서 오랜 시간 있었으며, 그간의 일로 자신의 식견을 꽤 믿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조금 전의 비난이 자신은 물론이고 그간 따랐던 이들을 모두 욕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단은 그런 것이 거의 없으니 하제의 충고를 듣고자 하였다.
“어찌하여 그렇습니까?”
“우선 기반이 다르니 그런 것입니다.”
“기반이라 하면…….”
“현제 수춘후 휘하에 있는 이들은 딱히 조정에 빚이 없는 이들입니다. 막말이기는 하나, 주군께서 진정 역적이고 황제에게 칼을… 흠, 이건 좀 다를 수 있겠군요. 아무튼, 역적 짓을 했다고 하여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제의 말에 육손은 멍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오의 대가문 출신인 그가 듣기에 하제의 말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대가들이야 위로 올라가면 한나라의 기둥이었던 이들이 많으니 유감을 표하겠으나, 작금 주군께서 기회를 준 이들은 대다수 가문이 한미한 이들이지요. 아니, 도리어 성이라도 있으면 다행인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외부의 욕을 의식하겠습니까? 도리어 단단히 뭉칠 이들이 대다수일 것입니다.”
“그럼 곳곳에서 난이 일어났다는 것은 무슨 일입니까?”
“손권의 잔당이 남아 있다는 것이겠지요.”
“손권이 뒤에 있다는 것입니까? 손권은 우리의 도움으로 장사로 넘어간 이인데?”
하제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이 아닙니다. 손가를 돕던 이들은 대다수 손책의 부곡 출신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대로 손권을 따라 장사로 넘어가지 않고, 양주 곳곳에 숨어들었지요.”
손책의 죽음의 원인은 수춘후와 연관이 깊었다. 여포와 수춘후, 두 사람과의 전장에서 결국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에 손권 휘하의 많은 이들은 여포와 그의 후계자나 다름없는 승태에게 모든 원한을 쌓아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양주 깊숙이 숨어들어 언제든지 승태의 목을 노릴 수 있도록 칼을 갈았고, 조정에 연이 깊은 이들이 뭉쳐 반기를 들어 올린 게 지금의 일이었다.
“그럼 큰 문제이지 않습니까? 양주 일대에서 반기의 불꽃이 피어오를 텐데 말입니다.”
“이미 그간 많은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 방점이 공자께서 이룬 허가제였고 말입니다.”
하제의 말에 조충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곳곳에서 난이 일어난다고 하여도 역당들이 뭉치기 전에 각개격파 될 것입니다. 허가제 뿐만 아니라 이번의 공으로 더 큰 기회를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뿐이겠습니까? 과거 진 대리가 진 광릉(진등)일 때 일군 광릉을 중심으로 적을 토벌 하고 있습니다. 또한 남방의 태사 장군이 세력을 이룬 곳도 있으며, 장강의 감 도독도 건재하니 결국 과거처럼 산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급할 것이 없겠습니다.”
하제는 승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많이 남은 것이지요.”
육손은 하제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하제를 인정한 것이었다.
“이번 일로 도리어 쭉정이들이 걸러지는 효과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