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61
361화
고세주비언이라는 말은 삼략에 나오는 고사이다. 그중에는 토사구팽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천하가 안정된 뒤 신료를 어찌 사용해야 하는가의 답을 알려 준다.
[높이 나는 새가 떨어지고 나면 좋은 활은 상자 깊이 간직해 두게 되고, 적국이 멸망하고 나면 좋은 계략을 세우던 모신(謨臣)은 쓸모가 없게 된다.모신이 쓸모가 없다는 것은 모신을 죽여 없애는 것이 아니라 권위와 지휘권을 되돌려 받고 조정으로 불러들임을 말한다.
불러들인 모신은 제후로 봉하여 신하 가운데 최고의 지위를 누리게 하고, 그의 공로를 널리 밝힌다. 또한, 좋은 영지(中州善國)를 내려 집안이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여 그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어야 한다.
많은 병사를 모아 군대를 편성하고 나면 갑자기 해산시킬 수 없고, 권위와 지휘권을 한 번 주면 갑자기 거두기 쉽지 않다.
그러니 전쟁이 끝나고 군대를 해산하고 장수를 조정으로 불러들일 때가 바로 나라의 보존과 멸망이 결정되는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그러므로 장수에게 중앙의 높은 벼슬을 주되 권력은 주지 않아서 세력을 약화하고, 영지를 봉해 주고 군대의 지휘권을 되돌려 받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패자(覇者)가 신하를 통제하는 책략이다.
패자는 나라를 다스리면서 순수하게 도덕, 명분만을 내세우지 않고 권모술수를 섞어야 한다. 군주는 권세를 은밀하게 운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故勢主秘焉).]
그러나 책 속의 고사가 대체로 그러하듯이, 단순히 전란이 끝난 이후에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지금처럼 천하가 난세에 빠졌을 때도 능히 통하는 수였다.
가후는 지팡이를 짚으며 장수, 학소와 함께 몇 안 되는 호위들 앞에 섰다. 학소는 가후를 마차에 타는 것을 도왔다.
“태보, 지금 여건이 서주에서 조정의 명을 받아 군을 일으켜 기세를 높이고 있다고 합니다.”
가후는 마차에 오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주로 가는 것이 어려울 수 있겠군.”
“그렇사옵니다. 비록 저희를 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없지만, 현재 병력이 적어 서주로 곧바로 가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듯싶습니다.”
“바로 가기에는 어렵다라.”
“관수(官水, 관도 근처를 흐르는 강)를 타고 가는 길은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청주까지 돌아가지 않는다면, 여남을 통해서 지나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관우와 우금이 아직 전장에서 완전히 물러난 것은 아닐 터인데?”
“그렇다 하더라도 순욱의 군이나 적들이 있는 곳보다는 안전할 것입니다. 또한, 우금의 밑에 아직 수춘후의 족인들이 잡혀 있다고 하니 우금은 아직 어느 편에 설지 결정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가후는 지팡이를 잠시 두들기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관우나 우금이 이끄는 병사들이야 약탈을 일삼는 무리가 아니니 다른 곳보다는 안전할 테니까. …문제는 자네로군.”
가후가 손가락으로 장수를 가리키자,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저는 어째서…….”
“당연히 그대의 얼굴이 문제지. 관우와 우금, 두 사람 모두 자네를 알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태보께서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나야 마차를 탈 것이고, 바깥으로 나오지 않을 테니 상관이 없지. 그러나 그대는 말을 타고 가야 할 진데 얼굴이 다 보이지 않는가?”
가후의 장난스러운 말을 듣고 장수는 눈썹을 들썩였다. 가후가 장난스러운 말을 던질 때는, 언제나 숨겨진 의도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원하시는 바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가후는 손짓으로 장수를 불렀고, 그의 귀에 무엇인가를 전하였다. 장수는 이내 인상을 찌푸리다가 가후를 빤히 바라보았다.
“태보, 제가 이 일을 해내는 것도 어렵겠지만, 만일 성공한다 하더라도 과연 무사히 살아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장수의 말에는 약간의 불신과 복잡한 감정을 들어 있었다. 그 표정을 본 가후는 수염을 손등으로 쓰다듬으며 염행을 불렀다.
그는 염행에게도 귀엣말을 전했고, 곧 염행이 장수의 옆에 섰다. 장수는 염행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서북에서 유명한 장수 염행. 분명 큰 도움이 되리라.
“내가 그대를 버리겠는가? 그대는 마지막 남은 상국의 흔적일세.”
상국의 흔적.
동탁, 장제, 장수로 이어지는 서북의 상징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장수 역시 이제 가후의 한마디에 설렘을 느끼고 모든 것을 맡기는 젊은 시절은 지난 상황.
또한 가후가 제시한 일은 무예로 이름 높은 염행을 붙여 줬음에도 성공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판단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지 않을 것인가?”
가후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통보하자, 장수는 순간 겁을 집어먹었다.
“태보, 제가 말씀을 듣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옵니다. 하지만 소인, 이제 세력을 이끌기도 하오니 걱정이 됩니다.”
동탁의 잔당들과 마씨 가문과 대항하던 서북의 세력이 지금 장수의 휘하에 있었다.
마초가 승태에게 중용받는 지금, 장수로서는 공을 세울 필요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생명의 위기에 몸을 던지는 것도 맞지 않았다.
“세를 걱정하는 것이라면 상관은 없지 않은가? 지금 우리가 따르는 수춘후께서는 공을 위하여 목숨을 내던지는 이를 더욱 높게 여기니 말이네.”
장수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승태가 그간 행한 모든 것을 그 역시 가후와 함께 보지 않았는가.
스스로 느끼게 되었다. 과거에는 그저 어떻게든 천하에 이름을 떨치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제 장수가 원하는 것은, 죽더라도 이름을 역사에 남기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원하는 바가 있음을 알고 있네. 그대 또한 이제 꿈을 꿀 수 있겠지. 조조에게 고개를 숙였을 때 한계는 명확했으니 말이야.”
가후는 손을 쥐며 장수를 보았다.
“후의 비밀을 같이 하였고, 후와 같은 것을 이루었으며, 나아가 그를 도와 공도 세웠으니 그대가 생각하기에 앞길은 탄탄해 보이겠지. 그런데 정녕 그러한가?”
장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후를 바라보았다.
“묻고 있네. 정녕 후께서는 이제 자네가 절실히 필요한가?”
“아니옵니다.”
“공은 마초 또한 세웠으며, 그는 서량으로 돌아가면 능히 일세를 이룰 기반 또한 남아 있네. 그의 족속들이 아직 삭방과 량주까지 넓게 남아 있으니 말이야. 그리고 원래 여포의 휘하는 북방의 이족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양주의 인물들은 각자 강남의 세력을 두고 있네. 그대와 나는 어떠한가?”
동탁의 세력은 모조리 불살라졌고 남은 이들도 이각과 곽사의 분열로 무너졌으며, 장제만이 강건했으나 그 세력은 돌아갈 고향을 잃어버렸다.
마초가 없었다면 마초의 세력과 대립하며 세를 일구었겠지만, 지금의 마초는 승태의 곁에 딱 붙어 복수라는 기치를 들어 올리며 수춘후의 창이 되었고 지금껏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고 도독이 죽은 지금, 장수들은 더더욱 후의 마음에 들기 위해 공을 세울 것이네. 후의 마음속에서 그와 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와 견줄 만한 위치에는 설 수 있을 테니까.”
“그 말은…….”
“지금의 혼란은 오롯이 후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장수들이 실력을 뽐내는 장이 될 것이란 말이지. 그러고 나서 누군가는 멀어질 것이고, 또 누군가는 가까워지겠지.”
그것은 가후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였다. 동탁을 받들던 세력을 유지하는 방법은 장수의 손에만 달린 것이 아니었다. 가후와 같은 인물이 지금 직접 몸을 움직이며 조바심을 내는 것도, 지금의 상황이 모사들과 관료들 모두에게 중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노신들은 죽었고, 의지하던 순욱은 적이 되었지. 옛것들이 모조리 불살라지고 있는 지금, 불타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무엇인가 해야 할 것이네. 이제 우리는 시험대에 든 것이네.”
* * *
장패는 승태에게서 온 선물을 바라보며 이마를 긁고 있었다. 관녕은 그를 보고는 살짝 웃음을 보이고는 일어나 장패의 상석 아래에 놓인 선물을 자신이 직접 풀어 보았다. 이는 굉장한 무례로 여길 수 있는 일이었지만, 장패를 따르는 이들 중 누구도 관녕에 대하여 말을 꺼내지 않았고, 도리어 장패에게 눈치를 주었다.
“형님, 선생께서 저것을 풀게 하려고 그런 것입니까?”
“내가 받을 물건이 아니니… 선생께서 푸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
“그러다 혹여 나쁜 물건이나 이상한 것이 들어 있으면 어찌하려 합니까?”
“싸우시지들 마시지요. 후께서 하사한 물건인데 나쁜 물건이나 좋지 않은 것이 들어 있겠습니까? 게다가 직접 감사함을 표하는 글까지 적어 보내지 않았습니까?”
관녕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선물을 풀어 보았다.
“호오오…….”
그 안에 들어 있던 것은 아름다운 검은색 방패였다. 관녕은 그것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감탄을 터뜨렸다. 그러고 나서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장패에게 가져갔는데, 그는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한숨만 내쉬었다.
“실로 부담스러운 선물이로군.”
“무슨 의미이기에 그런 말을 하십니까?”
“고 도독이 들고 다니던 방패와 같은 것입니다. 선생.”
관녕은 놀랍다는 듯이 그 방패를 바라보았다. 관녕도 고순이라는 이름과 명성이 높은 장수에 대한 것은 들은 적 있었다. 승태의 곁에서 가장 가까이 지냈으며, 가장 많은 공을 세우고 패배를 모르던 인물 아닌가.
그런데 그가 쓰던 것과 같은 방패가 지금 여기 있다는 것은 분명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으리라.
“무거운 물건입니다.”
관녕의 말에 사위는 조용해졌다. 그저 말 위에서 쓰기 위해 가죽과 나무, 얇은 철판으로 정교하게 만든 방패 하나이지만,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너무나도 깊은 의미가 담겨 있었으니까.
“내 이것을 받들기에는 염치가 있어 못하겠습니다.”
장패의 말에 다른 이들이 무슨 말을 하려 하자,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내 사실 후의 뒤를 치려 했다는 것을 너희도 알지 않느냐. 선생이 없었으면 여건을 도와 후의 뒤를 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형님, 그것은 형님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 아니더냐?”
“저 높은 곳에서 내려온 일 아닙니까? 옥새가 떡하니 찍힌 칙령을 어찌 어기겠습니까? 후께서도 그 정도는 이해했을 테고, 결국 여건을 돕지는 않았습니다.”
그 말에 관녕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입니다. 장수로서 충의를 따른다는 것이 어찌 나쁘겠습니까? 그저 그 대의를 숭상하기에 한발 뒤로 물러나 후를 따른 것입니다. 충의란 어디에 섰는지가 아니라 이룰 수 있는가, 그리고 더 많은 이들이 따르게 할 수 있는가이기에 저희는 그 길에 따른 것일 뿐.”
관녕의 말에 장패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의 앞에 놓인 방패를 받을 수 없다는 듯 외면하자, 관녕이 선한 눈으로 말했다.
“과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지금은 공을 세우고 있습니다. 장군께서는 전장에 나와 적들을 막고 있지요.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악함을 담습니다. 순자는 본시 인간은 악에 기우는 법이니 이를 치우치지 않기 위해 예를 닦고 의를 행한다고 합니다. 이를 지금 공께서 행하였습니다. 또한, 도독이 이룬 충과 의를 본받을 수 있으며, 배울 수 있는 물건이 곁에 있다면…….”
관녕은 방패를 집어 몸을 낮추어 건네었고, 장패는 허둥지둥 자리에서 내려와 그것을 받았다.
“충과 의의 표본이 될 것입니다. 후께서도 이를 알기에 도독과 같이 묵묵히 일한 이들의 공을 기리고 감사를 표하기 위해 보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