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72
372화
오찬의 말 대로였다. 도적들을 소탕하는 일은 시시함의 연속이었다. 거대한 함선에 겁을 먹은 이들은 앞에 서기도 전에 사라지기 시작했고, 큰 배가 들어오기 힘든 곳으로 사라지거나 아예 배를 버리는 자들도 있었다.
이를 바라보는 조단은 우월감을 느낄 만도 했다. 그러나 그는 어찌하여 저들이 도적으로 변했는지, 그리고 다시금 백성으로 만들 수는 없을지에 대한 생각을 먼저 했다.
“저들이 어찌하여 도적이 되었는지 알겠는가?”
그 물음에 조충은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하다가 곧 조단을 바라보았다.
“이유를 알면 저들을 다시 백성으로 받으려고 하는 것인가?”
“그러해야 하지 않겠는가.”
“좋지 않은 생각이네.”
“어찌하여 그런가?”
“우선 가장 큰 이유로는 도적이 된 자들의 심성을 바꾸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네. 물론 후께서도 감 도독을 중심으로 수적을 모은 부대 하나를 창설하긴 했지만, 그들에게 연대의 책임을 지우고 아주 철저하게 관리하였지. 본디 한 번 쉬운 길로 든 자는 다시 정도를 걷기 어려워지는 법이니 말일세.”
“그렇다 하더라도… 저 정도로 도적의 수가 많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지금 우리가 여기에 서 있지 않은가? 쉬운 길로 든 자들을 벌하기 위해서 말이야.”
“벌이라…….”
조단이 무어라 말을 하려는 순간, 조충이 이를 막아버렸다.
“만일 천하가 전란에 빠져서, 이런 말을 할 거면 그냥 아무 말도 말게. 천하의 전란 속에서도 정도를 걷고 옳은 일을 하는 자들에 대한 모욕이니까. 당장 후께서 품을 내주자, 곧바로 죄를 뉘우치고 곧은 길로 나서서 일하는 자들도 있지 않은가?”
조충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어 조단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였다.
“또한, 저들에게 기회가 없던 것도 아니지. 양주 전역이 홍역을 치를 때, 후께 감화된 자들도 많이 나왔네. 한조에 충절을 지키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도적이 되기로 선택한 것도 저들이네.”
잔혹한 말이었지만, 더는 조단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도적들을 옹호하는 일이 자신이 영웅이라고 생각한 오찬 같은 인물을 모욕한다는 말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실로 그러하다면 내 고민을 해 보겠네.”
조충은 조단의 말을 듣고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난세에 자네 같은 인물이 천하의 높은 자리에 서면, 그곳이 바로 지옥이 될 것이네.”
조충의 악담에 조단은 살짝 웃음을 지었다.
“자네도 있고, 진실로 나를 따르는 이들이 많은데 지옥이 되겠는가? 나는 부공을 넘어 천하를 손안에 가지겠다는 꿈을 꾸지도 않네. 그저 부공께서 이루어 놓은 세상을 이어 나가는데 연연할 것이야.”
“어찌 그러는가? 청사에 이름 한 줄 적히는 것으로 끝내려는가?”
“한 줄씩이나 남기는 것이지. 부공의 치적을 지키고, 그분이 한 것처럼 지혜를 나누는 것만큼 큰 사명이 없네.”
“하… 분명 자네가 후께서 하신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말라고 하지 않았는가? 혹시 그게 몇 해 전의 일이었나? 아니지, 내 알기로 고작 며칠 전의 일이네. 자네 혹시… 거죽을 덮어쓴 간자인가? 하하하하!”
시원한 웃음소리와 농지거리에 조단도 장난스런 미소를 지었다.
“무슨 그런 말을 하는가? 내가 간자라면, 곁에서 붙어있는 자네는 무엇인가?”
“그도 그렇군? 하여튼 그런 소리랑 말라는 것이네. 헛소리로라도 그런 말이 나오면 열심히 싸우는 장수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알겠네. 부공의 의지가 담긴 토벌인데, 토벌에 집중하여 움직이는 것이 옳은 일이겠지.”
“잘 아는군.”
조단은 그 말을 하면서 과거, 승태가 보여 준 수춘 지하의 비고(祕庫)를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곳의 지식만큼은 지키고 이어 나갈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과거 고제가 진나라의 수도인 함양에 입성했을 때 소하만은 진나라 승상부에 보관되어 있던 여러 문서와 어사부의 율령도서(史律令圖), 그리고 지적도 및 호적부 등의 문헌들을 수집하여 깊숙한 곳에 감추었다고 하였지. 부공께서 수춘의 지하에 모은 것 역시 하늘 너머에서 가져온 진리다. 비록 내가 지금 당장 그것 모두를 이해하고 따르기는 어려우나, 대대로 이어 나갈 수 있게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조단은 언제나 승태를 신격화하는 조충에게 비판했지만, 정작 그의 마음은 비슷했다. 아니, 어쭙잖게 우상을 따르거나 그저 말뜻을 가지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는 그런 제자백가의 사람들 같지는 않았다.
인신(人神).
그가 생각하기에 승태는 이미 신화시대, 농사를 알려 주며 직접 수많은 풀을 맛보아 의학(醫學)에 대한 기초를 만든 신농과 같은 반열에 오른 것 같았다. 수춘은 보고의 지식을 얻은 곳이고, 그 영향이 점차 나타나고 있었으니 말이다.
특히 자신과 가장 가까운 조충이 감화된 가장 큰 이유도 과거 크게 앓던 병세를 화타와 의원들이 치료하면서가 아니었던가.
조단은 아버지의 자취와 지혜를 담은 보고에서 어떤 것을 가져와 알려야 할지, 또 어떻게 지켜 나가야 할지 생각할 뿐이었다.
그런 거대한 지식을 지키고, 안전하게 퍼트려야 한다는 생각만이 조단에게 가득할 뿐이었다.
하늘의 지식에 비하면, 천하라는 땅이나 대의라는 하잘것없는 것들은 얼마나 하찮은가?
조단은 거선에 타고 있는 병사들을 스윽 바라보았다. 병사들은 굳건하게 주변을 지키고 있었고, 배의 노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가?”
“그저 아군이 얼마나 강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해 보았네. 그리고 그것이 혹여 내부를 망가트리는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말이야.”
조단의 말에 조충은 무슨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래. 자네의 말이 맞는 것 같아.”
* * *
장흠은 주태와 같이 자신들을 따르는 잔존하는 세력들을 모아 군을 만들었다. 태사자가 떠난 예장에는 지금 고람이 책임을 지고 있었는데, 고람의 능력으로는 부유해지는 예장에 도적들이 늘어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개척하는 이들과 부가 각지에서 늘어나니 필요한 것이 많아졌다. 그러하니 이곳에 물자를 공급하기 위한 상인들이 늘어났고, 자연스럽게 매달리는 도적들이 생긴 것이었다.
특히 물이 닿지 않는 곳. 즉, 배가 닿지 않는 곳에서는 호위할 수 있는 병사들이 더욱 많이 필요하였다. 이는 표국의 활황을 가져오게 하였지만, 반대로 어두움을 만들기도 하였다.
아무리 표국의 인원들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모든 상행에 대동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표국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도적의 표적이 되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기만 했다.
장흠과 주태는 그것을 호재로 여기고, 그들을 흡수했다. 결국에는 그들이 개척현을 공격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쾅! 콰작!
“히익!”
우당탕탕!
고람은 겁먹은 병사 따윈 신경도 쓰지 않고 책상을 후려쳐 박살 냈다. 그러자 위에 있던 물건들이 쏟아지며 완전히 엉망이 되어 버렸다.
“이번이 몇 번째이더냐? 뭐? 태불의병(太佛義兵)? 도적놈들 주제에 무슨 의병이라는 것이냐!”
“한조에 반기를 든…….”
“이런 미친놈들이! 그것이 무슨 상관이더냐? 순가 놈이 폐하를 끼고 패악질 부리는 것을 욕해야지. 뭐? 후께서 반정(反正)하는 것더러 씨부렁거리고 있는 게 뻔하지 않으냐! 당장 군을 모아 그들을 쳐야 할진대, 그들의 본거지는 찾았느냐?”
고람의 말에 병사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워낙 신출귀행(神出鬼行)하여… 병사들 사이에서도 말이 나오는 중입니다. 귀신의 병사들이라고…….”
고람은 잠시 그를 보다가 이내 어깨를 잡았다. 그의 불타오르는 눈동자를 본 병사는 차마 고람에게 더는 말을 하지 못하였다.
“벌써 상행을 나선 이들이 열 번 넘게 당하였다. 그뿐이더냐? 그들이 지금 개척하는 지역들도 공격하는데, 정녕 형체가 없는 귀신에 비교하더냐? 그리고 사람의 피를 그만큼 맛본 귀신이라면 어떻게든 잡아서 처단해야 할 것이 아니냐?”
“그것이… 고제께서 다루던 장강의 용이 후께서 한조에 반기를 들자 분노한 것이라고…….”
퍼억!
병사의 헛소리에 고람은 곧바로 정강이를 후려쳤다. 병사는 잠시 휘청거렸지만, 끝내 쓰러지지는 않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부들거리는 병사에게 고람이 스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런 헛소문을 누가 이야기하더냐? 그렇다면 장강 위에 떠 있는 감 도독이나 주 도독이 먼저 죽음을 맞았을 것이다. 그러니 헛소리하는 놈을 잡아서 누가 퍼트렸는지 확인하거라.”
“예, 알겠습니다.”
고람은 부서진 책상을 바라보았다. 지도 위에 번지는 먹을 바라보며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고람은 더러워진 지도를 집어 화로에 던져버리고는 떨어진 서신 가운데에 노란 끈으로 묶인 것을 풀어 읽기 시작하였다.
근래 급하게 이리저리 군을 움직이느라 올라오는 서신을 풀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꽤나 많은 양이 쌓여 있어 처리할 일이 많았지만, 고람은 느긋한 태도만 보일 뿐이었다. 본디 장군이었던 그는 일의 대다수를 휘하에 파견된 문관들에게 맡겼다. 그러다 보니 최종 결재만 계속해서 올라오는 상황이었다.
현대로 치자면, 회사 내에서 별것 없는 메일만 올라오는 게 지금 고람의 상황이었다.
“뭐 별것 없겠… 이런!”
고람은 바로 서신을 던져버리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내관들이 집무실에서 뛰어나온 고람의 뒤를 따라나섰다.
“망했다, 망했어! 내 진작 서신을 좀 볼 것을 그랬다!”
고람이 뒤를 돌아보며 내관들을 보았다.
“손님 받을 준비를 해 두어라. 대공자께서 오신다.”
내관들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빠르게 사라졌고, 고람 역시 잽싸게 자신의 일을 대신하고 있는 군리부로 향했다.
군리부 앞에 도착한 고람을 본 병사들이 군례를 취하려고 하자, 그는 손사래를 치면서 외쳤다.
“지금 자리에 있는 군리들은 전부 다 모이라고 하여라!”
“충!”
허둥지둥 움직이는 병사들을 보며 고람이 따라붙었다.
군리부의 회의장에 도착한 고람은 의복도 정제되지 않은 관료들을 한심한 눈초리로 흘겨보았다.
“대공자께서 오신다.”
군리부의 관료들은 벙 찐 표정으로 고람을 바라보았고, 굳은 눈빛에 그게 사실이라는 걸 깨달은 이들은 의복을 정제하고 고람을 향해 물었다.
“언제쯤 오시는 것입니까?”
군리 중 하나가 인상을 찌푸리며 무슨 기억을 하더니 입을 틀어막았다.
“예측상으로는 금일이나 내일 도착할 것이라 하고 올라왔던데, 아닌가?”
고람이 입을 떼자마자 군리들은 얼어붙었고, 입을 틀어막았던 군리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것을 지금 저희와 논하면 어찌하자는 것입니까? 저는 그저 도독께서 이를 잘 처리하여 다른 곳으로 오시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내가 말을 하지 않았다면 알아서 처리했어야지. 그래, 견도 그대는 나를 하북에서 부터 봤으니 알지 않은가. 내가 이런 걸 놓친 게 한두 번이었나? 엉?”
견도라 불린 군리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때는 장 장군께서 옆에 계셔 모르는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빌어먹을, 그렇구먼. 여하튼 준비는 해 두어야 할 것 아닌가?”
군리들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견도는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가 이내 물음을 던졌다.
“그럼 대공자께서 어찌 오시는지는 알아야 할 터인데, 도독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