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79
379화
언젠가 조단이 유엽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아버지를 볼 때마다 저는 정말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제 것을 누군가 빼앗아 가면 감정이 타들어 가고 분노가 치미는데,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것을 내어주고 천하의 안정을 위해 희생을 하니 말입니다.] [더 큰 것을 보는 것이지요.] [더 큰 것이 무엇입니까?] [천명입니다.] [천명이란 무엇입니까?] [사람의 마음입니다. 천하의 뭇 의인들과 협사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지요. 굽히고 내어주면서 얻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부당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미 부공께선 의무를 다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 끝이 없는 욕심 때문에 작금의 무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어찌하여 그것이 마음을 얻는단 말입니까?] [천명은 본시 용의 눈에만 보일 뿐입니다. 인간이 볼 때는 그저 어리석고 잃는 것으로 보이지만, 용의 눈에는 거대한 성이 쌓이는 것이 보일 것입니다. 공자, 돌아보시지요.]유엽은 그러면서 하비성 아래의 수많은 사람을 가리켰다.
[주군께서 모든 위험이 생길 때마다 앞에 서서 진심으로 백성을 대하니 그들을 감화시켰고, 그로 인해 조조의 악행으로 서주와 양주를 뒤덮었던 백성들의 원망과 분노조차 잠시 묻어 두고 주군을 따랐습니다. 그 결과, 지금 아래 보이는 하비는 어떻습니까?] [절망을 딛고 부강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작금에 이르러 천하의 인재들이 주군께 고개를 숙였고, 주군이 어루만진 양주와 서주는 타지에서 전란을 피해 안온함을 찾는 지역으로 변모하였습니다. 아니, 예주의 사족(士族)들을 넘기 위해 새로운 학문들이 개조(開祖)하였습니다. 작금의 영광이 단순히 우연으로 생긴 것이겠습니까?]조단은 순간 머리에서 번개가 치는 것 같았다. 유엽은 그런 조단의 작은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러나 굳이 용을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용에게는 용의 길이 있는 법이고 범인에게는 범인의 길이 있는 법입니다.]조단은 오찬을 바라보며 말했다.
“감정에 솔직하라 하셨지. 그것이 옳은 길에 있다면 능히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이라고 말이야.”
오찬은 조단에게서 빛이 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옳은 길에 올라선다면 능히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고 하였는데, 이미 오찬은 조단에게 홀린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찬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이 올바르게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 군주(軍主)는 무거워야 합니다. 지금 군의 주인인 공자께서 가벼이 움직이다가 몸이 상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조단은 그런 오찬의 말에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런 사람이 배에 사람이 가득 찰 때까지 사람을 구하는 것인가?”
오찬은 순간 조단이 습격당하여 배들이 좌초하는 그때, 자신이 목숨을 돌보지 않고 병사들을 구하던 때를 떠올렸다. 당시 주변의 인물들은 오직 자신의 목숨만을 구하기 위해 바다에 빠진 이들이 올라오려고 하면 마구 칼질을 하였다.
또한 사람들을 더 구하기 위해 노력하자 병사들은 혹여나 배가 침몰될까 두려워하기도 했는데, 오찬은 그들을 마구 꾸짖었다. 조단의 군세와 함께하게 된 것도 그 이후가 아니었던가. 오찬이 아니었다면 진정 조단이 죽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것은…….”
“그런 것이네. 사람이라면 그러한 것이야. 그리고 내 사람이라면 더욱 각별해야지.”
오찬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고, 조단은 다시금 부월을 고쳐 잡았다. 비명을 질러 대며 주변의 병사들을 치우며 앞으로 달려오는 주태의 추한 모습에 조단이 부월을 바닥에 찍었고, 순간 병사들이 멈칫하였다. 그 순간, 부월을 든 조단은 빠르게 주태에게 달려들었다.
주태는 잘 되었다는 듯 조단을 향해 돌진했다. 창을 던지며 방패로 찍어 누를 것처럼 달려드는 주태를 보며 조단은 인상을 찌푸렸다.
“힘으로 찍어 누르려고 하는군.”
상대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 방패는 꽤 좋은 무기였다. 방패는 상대의 공격을 막아 낼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거리를 좁히며 하는 공격은 창처럼 기다란 무기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마지막에 가까워진 적을 방패로 찍어 후려치면 그만한 둔기가 없었다.
조단은 그런 주태의 판단에 갈채를 보내고 싶었다. 순간 호승심이 들어 부월로 방패를 후려쳐 쪼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과거 고순이 보여준 괴력 정도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임을 직감했다. 만일 방패를 쪼개는 데 실패한다면, 무기를 잃고 적이 원하는 대로 힘 대결이 벌어질 테니까.
조단은 달려오는 주태의 공격을 흘리기 위해 살짝 빗겨 섰다. 그러나 주태 역시 본능적으로 방패를 조단 쪽으로 들이밀었다. 조단은 이를 막기 위해 옆으로 몇 발자국 뒷걸음쳤다.
‘…팔이 저릿저릿하군. 과거 고 도독의 힘이 생각나는구나.’
분명 그때도 억지로 공격을 막으려다가 손목이 부러질 뻔하였다.
“허벅지가 베였는데 이 정도면, 기술은 부족하지만, 힘 하나만큼은 충분하긴 한 것 같은데.”
주태는 방패가 꽤 잘 먹힌다는 것을 느끼고 음침한 웃음을 흘려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는 조단은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고작 한 번의 승기로 이렇게 좋아하다니…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조단은 어깨를 한번 돌리고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힘 좋은 자를 한두 번 겪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단순히 힘 좋은 자 뿐만 아니라, 기술이 뛰어난 사람도 승태의 주변에 많았다. 그러다 보니 주태를 상대하는데 딱히 어려움을 느낄 필요는 없을 듯했다. 저 앞에 보이는 짐승이 고순이나 조운보다 뛰어나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조단이 먼저 움직였고, 주태는 이에 방패를 꽉 잡고 달려들었다. 주태는 조금 전처럼 방패로 적을 밀어버리려고 했는데, 순간 무엇인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아까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이번에는 어찌 움직일지 알고 있으니 더욱 큰 이득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힘으로는 자신을 이길 수 없었다. 만일 갑주를 믿는 것이라면 도리어 갑주가 찢어져 몸에 틀어박힐 테니까.
팡!
주태는 속도를 더욱 높였고 조단의 움직임에 집중하였다. 바로 대응하여 조단을 때려눕히거나 그대로 넘어트려 대응하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나 어떠한 변칙적인 모습도 없이 달려오는 조단의 모습에 주태는 약간 이상함을 느꼈다. 그것도 잠시, 아무런 상관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대로 밀어버리면 자신의 발아래에 눕힐 수 있을 테니까. 어린놈이 실력은 충분하지만, 자만심이 강하다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이는군.’
조단은 흉측한 미소를 지켜보다 살짝 각도를 틀어 마치 기마병을 상대하는 것처럼 창을 잡았다. 이를 지켜보는 주태는 더욱 찢어져라 미소를 지었다. 지금 상황에서 대체 왜 기마를 막는 방어 자세를 취하는가, 역시 경험이 부족하다는 그런 생각을 하며 말이다.
오만과 흥분에 맛이 갔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전쟁이 광기로 가득 찬 곳이지 않겠는가. 이제 이겼다는 생각에 주태는 적의 한심한 얼굴을 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예상과는 달랐다. 주태는 조단에게서 기묘한 기운을 느꼈다. 포악하고, 그 어떤 것이든 뜯어 발길 수 있는 무엇을 말이다.
“우아아아아아아!”
주태는 이를 극복하기라도 할 것처럼 우렁찬 소리를 내지르며 강하게 부딪쳤다. 그는 조단이 창을 꽉 잡고 방패 부수기를 시도할거라 생각했지만, 상대방은 창을 놓고 재빨리 자신의 뒤로 향했다. 아무런 무기도 없이 말이다.
멀리서 지켜보던 오찬은 갑작스런 주군의 돌발 행동에 눈을 크게 떴다.
“짐승을 잡는데 거리를 벌릴 무기가 필요하겠는가?”
굉장한 속도로 주태의 근거리에 붙은 조단은 빠르게 품속의 무기를 꺼내었다. 숨기기 좋은 단도가 조단의 품에서 마법처럼 튀어나왔고 그 칼은 마치 소의 뼈를 발골 하는 것처럼 주태의 몸을 빠르게 훑었다.
뼈가 긁히는 소리가 두 번 들렸고, 주태는 입에서 피를 뿜으며 조단을 노려보았다. 이미 장기가 쏟아지기 시작한 주태는 회생의 가능성이 없었다. 그의 힘든 여정이 마무리 짓는 순간이었다.
주태는 느릿하게 입을 떼었으나, 어차피 혀가 없는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조단은 그의 입 모양을 보며 무어라 말하는지 유추할 수 있었다.
‘너 또한…….’
“무엇이 나 또한 이라는 것이지? 한심하군. 그저 저주를 내리고자 한 것인가?”
주태는 땅바닥에 엎어졌는데, 눈앞에 손책의 환영이 보였다. 주태는 자신의 선망이자 마지막까지 따르고자 했던 손책에게 물었다.
“어찌 하늘이 주공의 복수를 막는단 말입니까? 아니, 주공께서는 어찌 저를 돕지 않는단 말입니까? 이 태를 어찌!”
“태, 그대는 인걸이었네. 만적(萬敵)이 다가와도 흔들림이 없었고, 내 명이 떨어지면 지키고자 하는 인물을 지켰지.”
“그런 저를 어찌! 언제나 주공의 복수를 꿈꾸는 저에게!”
주태의 말에 손책은 고개를 저었고, 주태가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권아는 어디 있는가? 나는 그대에게 권아를 지키라 하였네. 그대가 주태였다면 옆에 권이가 있었겠지. 그대는 내가 아는 인걸이 아니니…….”
퍽!
주태는 더 이상의 환영을 보지 못했다.
다가온 조단이 머리와 목을 분리해 버렸으니까.
건안 14년.
손책의 복수를 천명하던 마지막 인물이 사라졌다. 그리고 조단은 서주와 양주, 형주 곳곳에 뻗은 좌자와 우길의 후예들을 찾을 수 있었다.
* * *
찰박거리는 소리와 함께 병사들이 장흠이 본거지로 삼았던 곳으로 들어왔다. 이곳은 육손이 문을 열려고 하던 이들을 잡아 그들이 숨은 곳을 찾아낸 것이었다.
고람이 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진정 저들과 협상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본보기가 필요한 법입니다.”
“무슨 본보기 말인가?”
“어떤 개인이든, 집단이든 주군의 가족을 노린 자는 이렇게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글쎄… 그것이 단순히 이런 방법으로 해결될지는 모르겠군. 지금까지 몇 번이나 주군의 가족을 노리고 일을 벌였는지도 알 수 없으니 말이야.”
“그러니 더더욱 아니 될 말이지요. 그 대가가 처절하다는 것 정도는 보여야 자제할 것입니다.”
고람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숨을 크게 쉬었다.
“그리하지. 어차피 공부를 많이 한 이들과 싸워 봐야 남는 것이 없다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으니 말이야. 뭐, 딱히 틀린 판단도 아니라 생각하고. 그런데 저들이 이미 알아차리지 않았겠는가? 이미 마을도 포섭한 것으로 보이는군.”
“그래서 모조리 가두어 두지 않았습니까? 물자만 팔았다고 하니, 정확한 사실은 이후에 알게 되겠지요.”
“만일 그들에게 협조했다고 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어찌할 것 같습니까?”
“불태워 버리거나 그런 것인가?”
“불필요합니다. 이 정도의 노동력을 그렇게 날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대신, 가장 오지로 밀리게 되겠지요. 아니면 수로 작업 중 가장 위험한 일에 투입될 수도 있을 테고요.”
그러고 나서 육손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리고 저기 보이는 전쟁 사관에게 빌미를 주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이 일은 다시 주군의 귀에 들어갈 테고, 기록으로써 후대에 남을 것이니 말입니다.”
고람은 사관을 빤히 보며 살짝 웃음을 지었다.
“참으로 희한한 방법으로 군과 관을 통제하시니, 거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