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85
385화
곽원의 수비는 두꺼웠고, 조비는 원상의 세력이 이제 고작 하간만 남은 상황에서 정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곳 모두가 자신의 손에 넘어왔는데, 하간이 아직 버티고 있는 것을 본 조비는 마치 하간의 장수가 자신을 조롱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조비는 회장에 나와 의자에서 내려와 분노를 토하고 있었다. 각지에 보이는 군세에 대한 보고를 받으며 분노가 쌓여 갔고,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을 향하여 무능함을 성토하였다.
그럴 만한 것이, 눈앞에 보이는 하간은 수성에 좋은 성도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원상이 대군세를 상대하기 위해 준비한 곳이 아니다 보니, 전쟁 준비 또한 미비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온 군세가 달라붙고 밀어 제아무리 달라붙고 밀어붙여도 성은 빈틈이 없었다.
조비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간 자신의 모사들이 원상의 곁에 붙어 있던 이들을 다 털어 내었는데도 아직까지 저런 인물이 남아 있다는 것에 분노가 머리까지 차올랐다.
“하간을 담당한 장수가 누구라 하였는가?”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사실 원상 진영의 내부 사정을 잘 들여다본다고 하더라도, 이름을 크게 알린 인물이나 함께 동문수학한 이들이나 알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하간을 지키는 곽원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에 누구도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사실 조비군의 책사들은 모든 것이 무너진 뒤에도 원상에게 극렬한 충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 정도의 능력이 있는 인물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조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하면서 소리를 지르려는 그때, 누군가가 예를 표하며 일어났다.
“명공.”
조비는 얼핏 생각나는 얼굴이었기에 눈을 살짝 가늘게 뜨며 그자를 빤히 바라보았고, 허유는 살짝 웃음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원상의 상장인 곽원일 것입니다.”
허유가 웃음을 지어 보였는데, 조비는 그의 대답에 신경 쓰기보다는 그저 어디서 보았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원가의 배신자이시군.”
허유는 조비의 말에 순간 표정 조절을 못 할 뻔하였지만, 이내 웃음을 지어 보이며 자신의 감정을 꾸욱 눌렀다.
아마 가까운 과거였다면 생각도 못 할 일이었을 것이었다. 안하무인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며 원소와도 각을 세우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허유는 과거 원소와 처음 만나 천하를 얻을 것이라 확신하던 그때의 마음가짐처럼 자신의 감정을 씹어 삼키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조가 죽고 순욱이 권세를 잡은 이후 허유는 도무지 중앙에서 기를 펼 수가 없었다. 조조나 원소, 원술이 가장 높은 위치에 있을 때에는 그들과의 친분을 무기로 삼아 일을 처리했는데, 지금의 조정은 죄다 순욱이 뽑아 온 인물이 아니던가. 영천 출신의 인물들이니 허유의 장기인 밑 사람을 짓눌러서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어려워져 버렸다.
그러면서 허유는 조조가 과거에 내준 관직에 매여 더 뭔가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가 가진 허영심을 채워 주는 것 역시 불가능해졌다.
그런 허유에게 하북의 전란은 다시금 자신의 의미를 만들어 낼 기회였다. 하북 하나만큼은 자신의 손 위에서 놀게 만든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선주께서 기회를 주었기에 이곳에 들게 되었지요.”
조비는 콧방귀를 한번 뀌고는 그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곽원이라, 들어본 일이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원가에서 일하던 이들 중에서도 딱히 아는 사람이 없고, 그에 대해 말이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다지 뛰어난 인물이 아닌 것 같은데 어찌 생각하오?”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스스로의 공을 세우는 인물은 아니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충심으로 원상을 계속 따랐으니, 그 충심 하나 만큼은 대단한 인물입니다.”
조비는 그런 말을 들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게 원상이라는 나무를 털어 댔는데도 버티는 열매가 있었다는 것에 기분이 나쁘기도 했고, 그런 인물이 남았다며 허유가 질책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허유는 마치 조비의 마음을 알아맞힌 것처럼 말을 툭 하니 던졌다.
“곽원은 그 충심으로 흔들 수 있을 것입니다.”
“충심으로 흔든다?”
“곽원이 이곳에 있다는 것은, 원상이 여기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원상이 여기 없다? 지금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고 말하는가?”
“하북의 전투가 쉬이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겠지요.”
조비는 수염을 쓰다듬었고 오질을 바라보았다. 이에 오질이 마치 발작하듯이 나와 허유를 향하여 소리를 치듯이 말했다.
“정확히 알고서 하는 이야기더냐! 원상이 없는데 어찌 저들이 저렇게 굳건하게 버틴단 말이더냐! 원상이 없다면 분명 먼저 위공께 머리를 조아렸을 것이다!”
허유는 고개를 살살 저었다.
“곽원은 원상의 밑에서 상장(上將)자리에 오래 있었습니다. 그러하니 곽원이 자리를 지키는 것을 보고 이곳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요. 병사들은 희망을 품었고, 곽원은 그 희망을 가지고 지금 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병사들이야 큰 그림을 못 본다 하여도 휘하의 장수들은 흔들 수 있지 않겠는가?”
“공을 내세우지 않고 그 자리에 굳건한 바위에는 흔들리는 잡초가 자라지 않는 법입니다.”
“하지만 나무나 꽃들 또한 자라기 어려운 법인데, 그의 옆에 있는 것은 내 보기에 대단해 보이는군.”
“굳건한 바위에 끼는 이끼는 화려하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약이 되기도 하며 쉬이 떨어지지 않는 법입니다.”
조비는 허유의 말장난에 숨을 크게 내쉬더니 손을 내저었다.
“그래서 그 굳건한 돌이 흔들릴 만한 이야기를 들어 보지. 어찌하라는 것인가?”
“별것 없습니다. 진실과 거짓을 섞어 적을 속이고 성문을 열게 하면 될 일입니다.”
조비는 인상을 찌푸렸다. 거짓이면 거짓이고, 진실이면 진실이지 이것과 저것을 섞는다는 말이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그러자 허유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원상이 갈 곳이 어디겠습니까?”
좌중이 순간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솔직히 모사들은 원상이 어디로 갈지는 알고 있었다. 유주에는 그의 기반이랄 것도 없었고, 작금 조비와 척을 지고 있는 인물이 누구이겠는가? 그러나 조비가 가장 싫어하는 인물의 이름을 던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조비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내 허유의 입에서 나온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수춘후겠지요. 작금 이 천하에 누구에게 의탁하겠습니까? 계절존망(繼絶存亡)의 희망을 걸 수 있는 인물은 오롯이 수춘후 뿐일 것입니다.”
자신의 적이었던 손가를 살려 손권이 조정에서 벌을 받고 다시금 가문을 이어 갈 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유비가 마씨 일가를 몰살시켰을 때 마초의 원한을 받아 준 것도 수춘후였다.
그러니 이러한 일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수춘후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춘후에게 향한 이들을 쫓으며 그들을 잡을 것이라 전해야지 않겠습니까? 아마…….”
허유가 품에서 몇 개의 죽간을 올리자, 그의 옆에 서 있는 오질이 뛰어가 허유의 죽간을 빼앗아 들고 한 번 펼쳐 이상을 확인한 뒤에 조비에게 올렸다.
일전의 기병 무리에 대한 일에 대한 설명이 적힌 게 있었고, 많은 무리들이 전란을 피해 남으로 내려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조비는 처음 보는 일이었다. 하기야 원상을 끝내기 위해 만들어 두었던 대응에서 뚫렸다는 이야기를 올리는 것이 어떻게 말할 수 있었겠는가.
어차피 일이 잘 풀려나갔고, 하간에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한 원상을 완벽하게 포위하여 무너질 일만 남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하니 추가적으로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남으로 피하는 피란민들은 도리어 그 주변에서 징집을 못하게 하는 이점을 가질 수도 있으니, 부추긴 면도 있었다.
그런데 이 일이 이렇게 돌아오고 있는 것이었다.
“누가 이런 일을 만들었는가?”
이에 순간 오질은 눈을 깔며 눈치를 보았고, 고개를 숙이며 빠르게 대답하였다.
“일선의 장수들이 보고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소신이 장군 출신이 아니니 참으로 많은 무시가 있는 것 같사옵니다.”
오질이 눈물을 쏟으며 말하자 조비는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들겼다. 그런 모습에 조비의 옆에 서 있는 이들은 순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여기에 반박을 하게 되면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오질의 말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모든 보고가 조비의 친우인 오질과 주삭에게 한 번 거치고 나서야 보고가 되었다.
그들은 그 정보를 자신들의 유능함을 뽐내는데 사용하였는데, 원래의 역사에서는 진군이나 사마의가 이를 제지하였을 터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들을 제지할 수가 없었다.
조비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별 거지같이 무능한 이들이 이런 일을 만들다니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믿을 자가 없다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어찌 네놈들이 그러고도 장수들인가! 일선의 장수들이 문제가 있으면 이에 곧바로 대처했을 것 아닌가!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전장에 나와 있으니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 장수들이라는 것이 상관의 흠이나 잡으려 하다니 말이야! 네놈들이 그러고도 장수인가!”
장수들은 조비의 말에 억울함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과거 조조가 있었을 때는 자신들을 대변할 이들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조조는 충분히 군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기에 장수들의 고충과 그에 대한 상벌이 뚜렷했다.
그러나 지금의 조비는 자신이 마치 이전에 조조와 같이 일을 해 보았기에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하지만, 정작 그 능력은 전체적으로 좋지 못했다.
그런 모습을 보던 허유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신이 원하는 상황이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도 쉽게 말을 하지 못하고, 책임은 자신이 지지 않으려 하는 상황 말이다.
‘이러한 곳이야말로 내가 최고의 기량을 발 휘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겠는가!’
“괜찮습니다. 소신, 이 일을 넘을 방법이 있습니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조비는 허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네, 그대에게 기회를 주지. 그 일에 큰 공을 세우면 내 그대가 부공에게 받지 못했던 신뢰까지 합쳐서 그대에게 줄 것이네. 그대가 떠나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허유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숙였고, 허연 수염 사이로 간사한 웃음이 머금어졌다.
다음 날, 허유는 청주로 갈 수 있는 길들에 빠르게 서신을 보내어 난민들을 모조리 처리하라는 말을 보내었고, 또한 여유를 부리며 공격을 멈추라는 명을 내렸다.
허유는 조비에게 곽원의 항복을 권유하는 서신을 요청하며 말했다.
“이미 원상이 잡혔다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다고 생각을 하면 저들이 아무리 확신을 가져도 의심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정보가 이미 통제된 저들이 무엇을 더 알아보겠습니까? 그저 객기를 부리고나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객기를 부리면 어찌 되겠는가?”
허유는 씨익 웃음을 지어 보였다.
“객기도 부려본 인간이 부리는 것입니다. 곽원은 올바른 인물이니 이 또한 별 볼 일이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