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86
386화
허유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곽원의 앞에서 술을 들이켰다. 곽원은 그런 허유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상석에서 바라보는 상황임에도 이유 없는 짜증은 가실 줄을 몰랐다.
그렇지 않아도 곽원은 허유를 좋아하지 않았다. 허유의 배신이 원소를 쓰러트린 데에 큰 일조를 한 것도 있었지만, 사실 곽원에게 그 일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살려면 무엇을 못하겠느냐는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싫은가 하면, 그냥 이 인간 자체가 그의 마음에 들지 않고, 좋아할 수 없는 인간상이었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곽원 본인이 경멸하는 모든 것을 갖춘 인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인간이 지금 자신의 앞에서 술을 들이켜며 웃음을 지어 보이니, 곽원은 가슴 깊숙이 무어라 말하기 어려운 느낌이 치솟는 듯했다. 그때, 허유가 입을 열었다.
“어찌할 생각인가?”
“무엇을 말이오?”
허유는 술을 바닥에 버리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곽원은 주먹을 쥐며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무례한 말과 행동이었다. 곽원이 일어서려는 순간, 다시금 말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을 말인가? 자네도 알지 않은가?”
“배신하란 말이오?”
“내가 그대에게? 허, 내가 그대를 모르는가? 아니면 자네가 이미 흔들리는 것인가?”
곽원은 이를 비웃으며 허유를 빤히 바라보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상대의 앞까지 다가갔다.
위협적인 모습이었지만, 허유는 별 시답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술을 잔에 따르고 나서 그 술을 냅다 곽원에게 뿌렸다.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군.”
곽원은 이내 허유를 죽일 심산으로 목을 잡으려고 했지만, 갑자기 자신의 발아래에 툭 하고 던져진 물건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곽원은 그 물건을 보고 눈이 흔들렸다. 원상이 원소에게 받은 보옥(寶玉)과 똑같은 물건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막내 공자의 것이지. 뭐, 그것은 자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아니면 내 모두 일러 주어야 하는가? 원상이 기마들의 호위를 받으며 수춘후에게 도망가던 중, 잡혀서 얻은 것이네. 내가 잡은 것은 아니라 어찌 잡았는지는 모르지.”
허유는 그러면서 어깨를 으쓱여 상대를 도발했다.
“이노옴!”
쿠당탕탕탕탕!
곽원은 큰소리를 내지르며 일어나 허유에게 달려들었다. 상이 쓰러지고 물건들이 우르르 떨어졌다. 또한 허유 역시 놀라 뒤로 자빠졌는데, 곽원이 빠르게 그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고는 허유를 끌어당겨 곧바로 그의 목을 붙잡았다.
“커허어어억…….”
“이노옴! 주군께 한 치의 상처라도 있다면, 네놈의 목이 멀쩡치 않을 것이다!”
허유는 분노를 토해 내는 곽원을 바라보며 캑캑거리면서도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이가 먹을 대로 먹은 허유였지만 그의 눈만은 참으로 생생하였다.
“무엇이 웃기느냐!”
곽원의 손에서 힘이 풀리며 허유의 입이 열렸다.
“무엇이 웃기냐니? 지금 이 상황이 웃기지 않느냐? 내게 이렇게 할 수 있는 그대의 무모함과 무식함이 웃기지 않은가? 위공은 지금 자네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함이네.”
“은혜?”
“원상을 구할 수 있는 기회이자 은혜이지.”
곽원은 순간 아무 말 없이 허유를 바라보았다.
“그것을 어찌 믿으라는 것이지?”
“믿고 싶지 않다면 마음대로 하게.”
허유는 뻔뻔한 표정을 지으며 곽원에게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러한 허유의 태도에 도리어 곽원이 놀라 한 걸음 물러섰다. 허유는 마치 승기를 잡은 인물처럼 당당히 곽원에게 다가가 귀에다 말을 전하였다.
“하나 이대로 하간에서 버틴다면, 성이 무너지는 그날, 원상과 그대의 목이 같이 걸릴 것이네. 흐음, 자네가 원하는 것이 그것인가? 하기야 마지막 충은 주군과 같이 저승길을 여는 것일 테니 말이야. 하하하하하!”
곽원은 그런 허유의 광오한 태도에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하였다. 혹시나 저 말이 진실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허유는 흔들리는 마음을 눈치챈 것인지, 입꼬리에 비웃음을 매달고 말했다.
“늦어지면 어찌 될지 이미 이야기는 끝낸 상태이지. 혹여 아직 못 믿겠다면 손가락이나 팔 하나를 잘라 보내면 되겠는가?”
허유의 말에 곽원은 이를 앙다물며 그에게 다가갔다.
“내 성질을 돋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허유는 그런 곽원의 옆에 서서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네가 나를 벌레 보듯 싫어하듯, 나 또한 자네 같은 위선자를 싫어해서라네. 나는 말이야… 자네 같은 인간들이 잘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어. 아니, 혐오하네. 내가 한 발자국 위로 오를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는 것이 맞는데, 그 본성을 숨기는 것이… 아니, 그저 무능한 것인가? 여하튼 내가 자네를 싫어하기에 이러는 것이네. 하하하하!”
허유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한 번 털어 주고는 그 자리를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럼에도 곽원은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고 그저 이를 갈 뿐이었다.
허유가 사라지자 남은 부관들이 곽원에게 달려왔다.
“장군, 무슨 일입니까! 저 벌레가 무슨 말을 하였기에…….”
부관 중 하나가 떨어져 있는 보옥을 바라보았다. 원상의 것인 줄 모르는 부관이 말을 툭 내뱉었다.
“이런 보화로 대장을 사려 한 것이오?”
“아니, 모두 죽일 생각인 것 같구나.”
“무슨 소리입니까?”
“주군께서 잡힌 듯하네.”
부관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는 곽원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쩔 것입니까?”
곽원은 쉬이 말을 꺼내지 못하였다. 벌레 같은 허유의 말을 믿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고, 빨리 가나 늦게 가나의 차이일 것인데 무엇이 그리 걱정이오?”
“증평.”
“왜 부르십니까?”
“네가 병사와 성민을 몰래 밖으로 빼돌려라. 어차피 문을 열 것이라면 병사들까지 죽을 이유는 없으니 말이다.”
증평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곽원을 빤히 바라보았다. 곽원의 뜻을 눈치챈 것이었다. 여기 죽음을 각오한 이들 중에서 가장 어린 부관이자 가장 의기가 강한 인물이었다.
“왜 나를 보내려는 것이오?”
증평은 이제 예의도 무시하고 곽원을 마치 남을 대하듯이 말했다.
“네놈이 가장 복수심을 오래 가지고 있을 것 같아서이네만… 아닌가?”
“그렇다면 나를 남겨 두어야 할 것 아니오? 혹여 저들이 거짓을 말하면 바로 튀어 나갈 터이니.”
“그것이 복수가 되겠느냐? 헛된 죽음일 뿐일 것이다.”
“헛된 죽음이라고! 만일 허유의 말이 사실이면 이미 내 가족들은 모두 죽었을 것이오! 남은 것은! 장군과 형님들뿐인데! 어찌 나는 장군과 같이 누울 자격도 되지 않는 것이오! 내 무엇을 위해 노력했는데!”
곽원은 자신의 허리춤에 매여있는 패검을 그에게 내주었다. 증평은 패검을 받아 들고 곽원을 보았다.
“우리 중 가장 무예가 뛰어나기에 맡기는 것뿐이다. 최소한 허유만큼은 이 패검으로 죽이거라. 하면 내 손으로 죽인 것이라 생각하고 후일 저승에 같이 갈 것이니. …아니구나, 그저 그 검으로 주군을 지켜 주어라.”
“그놈의 주군!”
“그래서 들어주지 않을 것이냐?”
“…알았소이다.”
며칠 동안 곽원은 결정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고 공세를 늦췄고, 원상을 직접 보여 준다면 진정으로 문을 열 것이라고 전했다.
조비는 이러한 성과에 허유를 가까이 두었으며, 허유 또한 조비에게 자신의 모략을 가감 없이 뽐내었다.
“이번 일은 어찌할 것이오?”
조비의 말투는 약간 문책하는 듯했지만, 허유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원상의 얼굴을 직접 보지 않은 상태라면 이렇게 시간을 끌리라는 것 정도는 쉬이 예상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대책도 있었고 말이다.
“협박을 하면 될 일입니다. 이미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곳에 원상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인이 원상과 가장 비슷한 손을 찾아 보내면, 알아서 문을 열 것입니다. 아니면 원상과 닮은 이를 장대에 매달아 저들이 얼굴을 확실히 알아볼 수 없는 곳에 두시지요.”
조비는 허유의 말에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비정한 인물이 아니던가! 한때 따르던 주인의 아들인데 말이야!”
“주인도 아니고 주인의 아들 아니겠습니까? 또한, 이렇게 난세에 어울리신 위공을 보았으니, 어찌 공을 세우기 위하여 사심을 거론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위공께서 큰 공을 세워 능히 천하를 빛내기를 바랄 뿐이옵니다.”
조비는 허유의 아첨에 기분이 좋은지 연신 웃으며 무릎을 쳤고 고개를 까닥였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다른 신료들을 나가게 한 뒤에 허유의 앞에 묘한 모양의 바둑판을 두게 하였다.
“탄기(炭氣)나 한번 하지. 서쪽의 포도가 들어 왔는데 자네가 공을 세웠으니, 내 이를 같이 먹는 게 좋지 않은가?”
“소인,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 * *
곽원이 성문을 열지 않자, 조비는 허유의 말대로 원상과 닮은 이에게 거적을 입혀 대에 고정하여 세웠고, 멀리서 알아보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에 곽원은 문을 열 것이라는 서신을 보내었다. 허유의 계책이 들어맞자, 조비는 그를 상찬하며 곽원을 어찌할지에 대하여 물었다.
“위공의 아량이 넓으신 것은 천하가 아는 일이오나, 위공께 반기를 든 인물입니다. 또한 원상의 일이 거짓인 것을 알면 원한을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차라리 군을 먼저 보내어 그들을 먼저 잡으소서.”
“옳은 이야기다.”
성문이 열리는 그 즉시 곧바로 병사들이 밀고 들어갔으며, 곽원과 그의 일당들을 포박하였다. 곽원은 그들의 손에 순순히 잡혀 주면서 걸음을 옮겼고 조비의 앞에 섰다.
“주군을 살려 주시오.”
조비는 곽원을 바라보며 연신 웃음을 지어 보였고 허유는 그런 조비의 옆에 서서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있었는데, 누가 봐도 웃음을 참고 있는 자의 표정이었다.
곽원은 그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모든 것이 거짓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 한숨은 어찌 보면 안도의 한숨이기도 하였다.
“끝은 어차피 지금과 같을 것이니…….”
“무어라고 씨불이는 것이지?”
평온한 태도에 허유가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지만, 곽원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러자 허유가 그의 앞에 서서 말했다.
“강을 건널 모든 길을 막도록 하였다. 하늘을 나는 능력이 없다면, 아마 원상도 곧 처리될 것이다.”
곽원은 순간 얼굴이 붉어지며 허유에게 달려들었다. 병사들이 빠르게 막는다고 하였으나 곽원의 이빨이 허유의 귀에 닿았고, 그대로 귀를 찢어 버렸다.
“끄아아아아아!”
곽원은 질겅질겅 귀를 씹더니 곧바로 내뱉었다.
“퉤! 더러운 피라 그런지 살이 맛이 없구나. 하하하하!”
허유가 귀를 붙잡고 뒹굴고 있음에도 조비는 그저 웃음을 띠며 곽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저놈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군.”
조비는 허유를 슬쩍 보고는 이내 손을 휘저었다. 허유가 치워지고 조비의 곁에 주삭과 오찬이 달려와 옆에 섰다.
“소인이 저놈의 입에서 살려 달라는 말이 나오며 주군의 가랑이를 기도록 만들겠습니다.”
“소인이 그리 만들겠습니다.”
조비는 자신의 옆에 고개를 숙인 이들의 머리를 두들기며 웃음을 흘리고 일어났다.
“그럼 그때 다시 보도록 하지.”
* * *
장수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뒤에서 쫓아오는 병사들을 처리하고 나루에 도착하였는데, 원래 약조되었던 배들이 모두 사라진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장수는 얼굴을 만지작거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원상과 그의 뒤로 꽤 많은 수의 사람들이 보였는데, 이 때문에 진군 속도가 아주 느릿느릿했다. 그런데 이제는 갈 길마저 잃어버렸으니, 나아갈 방향이 암담했다.
“이럴 것 같아서 내 이곳에 오는 것을 염려한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