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90
390화
“전쟁 중에 어려운 점은 백성들을 어우를 수 없다는 것이지만 다른 방도는 있지요. 종(宗)과 직(稷)을 바꾸어 일으키는 일이지요.”
종(宗)과 직(稷)을 바꾸어 일으키는 일은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고래로 종묘와 사직이라 부르는 것은 동아시아의 국가 종교와 같은 것이었으니까.
종묘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윗대의 조상을 숭배하는 것이며, 사직이라 부르는 것은 토지신과 곡식의 신에게 숭배하는 일이었다.
조상을 기리는 것은 혈통에 대한 정통성을 지키는 것이며, 농경 사회에서 토지와 곡식을 지키는 신들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왕조로서의 백성들의 기반인 농경에 대한 권위가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종묘와 사직이 전통으로 자리 잡은 것은 옛 중화권 국가인 고대국가에서 그 개념을 정립하면서부터였다. 주나라 대에 이르러 유교에서 말하는 종묘의 개념이 잡혔다.
주나라식 왕실 예법을 기록한 예기에는 [천자(天子)는 7묘, 제후(諸侯)는 5묘, 대부(가신)는 3묘, 그 밑에는 따로 사당을 두지 않는다.]라고 적혀 있었다.
종묘의 세부 규칙은 더 많지만, 기본적으로 이 문장이 대표적인 규칙이었다. 종묘에 안치된 천자는 묘호와 시호를 올려 찬양한다. 제후와 대부는 천자가 내려 준 시호로만 공덕을 존양(尊揚)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박살 낼 인물이 한 명 있었는데, 그가 바로 진시황이었다. 그래서 묘호가 아닌 진나라의 황제의 시초인 시황(始皇), 이세황제(二世皇帝)로 불린 이유였다.
그러니 승태의 말에 노숙은 눈을 크게 뜨며 식겁한 마음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승태의 말은 스스로 새로운 황조를 열어 황제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말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전의 원술과 같이 말이다.
“주군, 그것은 아직 어려운 일입니다. 비록 많이 흔들리고 있다지만, 천하는 한을 아직 주인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간 많은 이들이 주군께 높은 자리에 오르라 청했지만 소신의 생각은 다릅니다. 주군께서 혹여 왕이라도 오르신다면…….”
“천하가 나를 노릴 것은 알고 있습니다. 나도 아직은 제위에 오를 생각이 없습니다. 지금도 내부에서 장문 형이 얘기한 것처럼 말이 나오는 상황인데, 제가 혹여라도 왕위나 황위에 오른다면 무슨 말이 나오겠습니까?”
노숙은 아직이다는 말에 살짝 놀랐지만 이내 가슴을 쓸어내렸다. 혹여 원술과 같이 제위에 오른다며 천하를 모두 적으로 만들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혹여나 했습니다. 수춘에 역적의 피가 흐른다며 이상한 이들이 제를 올린 적도 있지 않습니까?”
승태가 과거 외후(外侯)의 직을 받고 수춘에 왔을 때, 이곳에 역적의 기가 흐른다며 묘한 일을 하던 이들도 있었다. 또한 자신을 비방하는 도사들도 있었던 것을 떠올리던 승태는 고개를 저었다.
“수춘이 그만큼 풍요롭다는 뜻이지요. 그러니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긴 합니다. 주군께서 만든 농기구와 물을 대기 쉬운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농산이 엄청 늘었으니 말입니다.”
대화하다 보니 조금 곁다리로 빠진 것 같아 노숙은 한마디를 더하기로 했다. 주군인 승태가 말한 것의 어려움을 알려 주는 것 또한 문관의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습니다. 지금의 종주는 한나라입니다. 이전의 진에게 격렬히 저항한 육국의 후예들 중, 항우의 초나라가 천하를 지배한 지 어느새 오래 지났지요. 그리고 한이 천명을 얻어 완전히 마음속에 들어섰는데, 그것이 바뀌기 쉽겠습니까?”
노숙의 말이 정론이었지만, 승태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아닙니다. 자잘한 가지를 바꾼다고 하여 마음가짐이 바뀌겠습니까? 더욱 크게 바꿀 것입니다. 가지가 아닌 뿌리부터 말입니다. 이곳에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하나의 군주가 나타날 것입니다.”
승태가 나치 독일의 표어를 읊었으나, 노숙은 그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뿌리부터 바꾼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 민족이라는 단어가 생겨나지도 않았으니까. 지금의 중원에서는 그저 연, 제, 등 출신 지역 정도나 따질 뿐이었다.
“그들이 나를 붓으로, 칼로, 정으로 공격하였으니 나는 그들에게 더 깊은 악을 던져 줄 것입니다.”
노숙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으나, 승태는 약간 쓸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승태의 가슴속에서 흘러가는 역사의 수레를 자신의 지식으로 엉망을 만들지 않을 거라고 다짐한 노력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승태의 눈에 그때 불태웠던 숲이 나타났고, 이제는 그 숲이 천하를 뒤덮는 생각이 들었다.
* * *
저수는 전예가 이끄는 군세를 뒤돌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못해도 기천 정도 되는 기마병들이 먼지를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들을 쫓거나 막는 병사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들을 모두 이끌고 남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가? 내가 보기에 이 정도 되는 군세를 유주를 넘어 모두 데리고 온 것도 기적이라고 느끼는데 말이야.”
전예는 그런 말을 하는 저수를 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그렇게 끔찍이 싫어하시는 인물의 말대로 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 모든 것은 감군의 선택이셨습니다.”
“내가 살려면 어찌할 수 없는 것 아니던가? 내 주군의 부탁으로 유주에 머무는 동안 큰일이 벌어졌으니 말이야.”
“주군께 그러한 일이 터졌는데 먼저 찾아뵈었어야 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먼저 내려가더라도 무엇이 바뀌었겠는가? 조정의 인맥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내가 말이야. 그리고 나는 순욱이라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고는 전혀 몰랐네. 물론 승상 또한 그런 것을 노렸을 것이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허옇게 쇠한 저수의 모습에서는 과거에 걱정이 많아 퀭한 눈동자가 느껴지지 않았다. 언뜻 형형한 기운이 보였다.
“그 결과가 다시금 천하가 전란의 구렁텅이로 들어간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란? 정립되는 것이겠지. 승상은 그 정립을… 뭐라고 할까, 조정하는 듯하고 말이야. 그리고 그 정립된 상황을 꽤 잘 이용하는 것 같군. 유비도, 조비도, 고간도 아무런 말이 없지 않은가. 이후의 일은 잘 모르겠으나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보이니. 거기다가 유종이나 원상 같은 이들이 주군에게 매달리게 되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거머리가 달라붙는 것이지.”
그 둘은 형주와 하북의 인사들의 중심이 될 것이 자명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내부에서 다른 생각을 하게 부추길 수도 있지 않겠는가?
“다행이라 해야 할지, 승상이 유종이나 원상의 각지의 지배권을 불인정하여 그들이 이를 갈았었지. 당연히 승상을 우선으로 적이라 생각할 것이네. 물론 조정에서도 언제든지 다시금 그들의 지배권을 인정하여 분열시킬 수도 있을 것이고.”
저수의 아들인 저곡이 이를 받아들였다.
“아버지, 천 리 밖에서 천하를 휘어잡으니 협천(挾天)의 힘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 힘도 이제 점차 무너지는 중이다. 협천의 도리야 제후들의 힘이 서로를 견제하고, 서로가 서로를 감시할 때나 가능한 일이니 말이야.”
전예는 그런 저수의 말에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서 주군을 향해 말도 안 되는 수를 쓰며 압박하고, 주군을 견제할 힘을 각 제후에게 쥐여 주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수는 전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멀리서 몇의 기마가 그들에게 다가오며 예를 취하였다.
“조진의 군세가 얼마나 되는 듯하던가?”
“못해도 기만(幾萬 몇 만)은 되어 보였습니다.”
저수와 전예는 꽤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조진이 단순히 배를 징발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님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작금 치평의 장수와 원상을 구하는 일도 쉽지는 않게 보였다.
“쉽지 않은 일이 되겠네.”
“가능한 일이긴 하겠습니까?”
저수는 말이 없었다. 아마 현명한 판단을 내린다면, 지금 당장 군을 빼 낙안으로 향해야 할 것이었다.
전예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내 저수에게 말했다.
“지금 저들의 군을 상대할 방도는 없습니다. 차라리 저들의 주목을 다른 곳으로 쏠리게 하는 방도 밖에는…….”
그때 또 다른 기마가 미친 듯이 뛰어와 그들의 앞에 섰다. 그러고 나서 말에서 내려 글과 그림을 내며 말했다.
“감군! 지금… 창정에서 조가의 군세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숫자는 일만이 넘어 보입니다.”
저수와 전예는 순간 의문을 던졌다. 조비의 군세가 총동원하지 않았다면, 지금 말한 군세가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북을 통일했던 원소도 만 단위가 넘어가는 군세를 움직일 때는 어려움이 많았는데, 하물며 기주도 온전히 얻어내지 못한 조비가 그럴 수는 없는 바였다.
“하후 가문의 지원이 아니겠습니까?”
“하후 가문이라면 차라리 하남(河南)에서 지키는 편이 나을 것이네. 태사 장군이 언제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니 말이야.”
“그렇다면 그 군세는 무엇이란 말입니까?”
저수는 아무리 생각하여도 잘 모르겠기에 직접 말을 몰아 그들을 보기 위해 움직였다.
저수의 눈에 진짜 조(曹)라고 적힌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저수는 이를 보며 저들의 말머리가 조진을 바라보는 것을 보고는 곰곰이 생각했다.
‘아!’
그는 조조의 자식 중 승태를 지지하는 인물이 나타났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들이 우금에게 잡혀 있던 것을 생각해 보면, 그들이 풀려났다는 뜻은 우금이 움직였다는 말과 같았다.
멀리서 우(于)가 적힌 깃발을 본 저수는 크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드디어 우금이 움직인 것인가! 드디어 바위가 움직인 것이야!”
저수가 환호를 내지를 때, 우금은 묘한 표정으로 가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확실한 모습을 보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습니다. 또 원가의 씨앗을 구하는데 군을 쓰는 것은 말이 아니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직접 군을 이끌고 나왔지 않습니까?”
“선주의 자제들과 가문이 서로 싸우며 칼부림이 날 것 같아 그런 것이지요.”
“이러든 저러든 조비의 행사에 칼을 들이밀었으니, 조정과 함께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제 한쪽의 손을 잡아야지요.”
우금이 눈을 감으며 잠시 생각을 하자, 가후는 그것을 보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길은 없을 것입니다. 혹여 수춘후의 머리라도 가져가지 않는 한, 순가에 머리를 숙이더라도 들어주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길이 있기는 합니다.”
“길이 있더라 하더라도 더는 군을 이끌 수는 없을 것입니다. 주인을 죽이기 위해 그 밑으로 들어간 전적이 있는 인물에게 무엇을 내주겠습니까?”
우금은 가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지었다.
“그렇겠지요. 그건 제가 풀어야 할 것이니 그렇다고 하고, 이번 일은 어찌할 것입니까?”
“무엇을 어찌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조가의 인물들끼리 잘 하겠지요. 바라만 봐도 될 것입니다. 우리들의 역할은 그들이 잘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지요.”
조진은 조창의 모습을 보고 말을 타고 앞으로 나왔다.
“황수아, 네가 어째서 여기에 서 있는가?”
조창은 그런 조진의 모습을 보며 낄낄거렸다.
“형님이라는 인간이 동생과 큰어머님, 그리고 가문 사람들을 모조리 내쫓았는데 그대가 이곳에 서 있는 것을 보니 자네는 조가의 사람이 아닌 것 같군… 아! 사람이 아니라 조가의 개이던가? 잘못 말했군. 형님이 부리는 개이던가? 라고 물어야 했나?”
가후와 우금이 생각하는 일이 처음부터 와장창 부서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