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94
394화
승태의 호통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지만, 신료들은 그저 고개를 숙일 뿐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 진궁이 죽은 일은 그들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의문으로 가득 찬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진궁에 대해 원한을 가진 이들은 여럿 있었다. 그러나 이후의 후폭풍이 어떨지가 뻔한데, 가문을 무너트리면서까지 진궁을 죽이고 싶어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또한, 진궁이 그들에게 끼친 피해라고 해 봤자 이권과 권력을 빼앗아 간 정도였다. 분풀이로 진궁을 죽인다고 해서 되찾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또한, 신료들이 그 정도로 무지하지도 않았고.
그렇다면 허자에게 진궁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이 있다는 뜻일 텐데, 유종을 따라 들어온 허자에게 그런 것이 있을 리가 만무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혹여 이상한 말을 했다가 엮이기라도 한다면, 멸문지화 당하기에 십상일 텐데 감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허자는 형주에서 정현의 학문을 이어받았으며, 고문(古文) 연구에 높은 이름을 알린 인물이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관계가있는 형주의 사족들 뿐 아니라 서주와 양주에는 정현의 학문을 이어받은 이들이 대단히 많았는데, 지금 그들은 입을 다문 수준이 아니라 머리도 들지 못하고 그저 어찌해야 하느냐는 생각으로 그저 눈치만 볼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그 모습조차 승태에게는 분노를 일으킬 뿐이었다.
“그대들이 나를 기망하는 것이오! 허자와 친분이 조금이라도 있는 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문책하는 상황까지 가야 하겠는가!”
승태의 말에 눈치를 살피던 괴균이 나섰다.
“허자와 친분이 있는 형주의 신료들조차 지금의 상황을 알지 못하옵니다. 소신들이 어찌 저희를 구원하신 후께 하늘이 노할 일을 저지르겠습니까? 인두겁을 쓰고는 불가능한 일이옵니다.”
형주인들이 먼저 나서 허자와 관계를 부인하고 나섰으니, 이번에는 정현과 관계있는 이들이 나설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오랜만에 등장한 인물을 볼 수 있었다.
최염이 뻣뻣하게 고개를 세우고 승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허에서 고초를 많이 받으셨나 봅니다.”
최염의 날카로운 눈빛은 높은 곳에 앉은 승태가 보기에 참으로 껄끄러웠다. 그런 생각 끝에 옳지 못한 자리에 옳지 않은 일을 위해 최염이 서 있다는 것이 승태에게 실소를 자아내게 하였다. 최염이 제아무리 올곧다고 하지만, 자신의 집이나 마찬가지인 정현의 학파를 무너트리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모두가 보시는 자리에서 친국하시어 그자의 죄를 밝히소서. 허자는 본시 큰일을 하기 어려운 인물이옵니다. 그자의 뒤에 누가 있는지 명명백백히 밝혀 의심이 없도록 하시옵소서.”
최염의 말에 승태는 눈썹을 들썩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친국하라는 말은 자신들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저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유자들을 경시하는 승태가 혹시 징벌이라는 이유로 자신들을 찍어 내려, 연대를 무너트리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는 것이 빤히 보이는 일이었다.
그러나 최염의 이러한 의도가 더더욱 승태를 분노하게 했다. 또한, 뒷배를 꺼낸 이상, 여기 있는 신료들은 더욱 옭아매게 되는 일이었다.
“뒤? 누가 뒤에 있다는 생각이오?”
승태의 말에 답할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목하는 순간, 그자는 지금의 수춘후가 다스리는 양서주를 이룬 기둥 중 하나를 죽인 인물의 뒷배가 되는 것이었다.
최염이야 정현의 학파이며 양서주에 기반이 없으니 쉽게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정전을 채운 대다수는 양서주에 기반이 굳건한 이들이었다. 그러니 그의 말에 호응할 수 있는 이들은 없었다.
그러니 이름 한마디로 멸문의 길 위에 오르게 만들 수도 있는 일을 이곳에 있는 신료들이 꺼낼 리가 만무하였다.
“내 알아서 할 것이니 모두 물러가게.”
승태의 말에 모두 눈치를 보다가 이내 우르르 몰려가자, 정전(政殿) 안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원직을 불러오게.”
잠시 후, 서서가 안으로 들어오자 그는 자신이 정리한 내용의 죽간을 올린 뒤 자리를 잡고 예를 표하였다. 승태는 피로한 목소리로 물음을 던졌다.
“전말은 다 파악하였습니까?”
“묘하옵니다. 독살이라 불리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숨기려는 노력도 없었을 뿐 아니라, 스스로 범행을 자백하였습니다. 반대로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한 바도 아니었습니다.”
“하여 고문도 받지 않았군요.”
“고신을 하여도 알아낼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그런 듯싶습니다.”
“신료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 듯한데, 그럼에도 고문이 없었다? 작금 치안을 담당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엄준이옵니다.”
“부르지요.”
얼마지 않아 엄준이 내관의 안내를 받아 들어왔고, 그는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허자를 잡았다 들었습니다.”
“그렇사옵니다. 잡았다 하기는 어렵고 스스로 나와 자백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찻잔에 독을 검출하였습니다.”
“노사께서도 음독의 징후는 있었소?”
엄정은 잠시 말을 하지 않다가 이내 입을 떼었다.
“소신의 의견을 말해도 되겠습니까?”
“말해 보게.”
“소신 생각으로는 노사께서 음독으로 졸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옵니다.”
승태는 눈썹이 들썩였다. 음독이 문제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 때문에 허자가 이런 일을 벌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시끄러운 사건을 일으켰으면 무언가 얻어야 할 게 있는데 그 의도를 알 수가 없었으니까.
“어찌하여 그런 생각을 한 것인가?”
“본시 음독이라 하면 그 증후를 보여야 합니다. 독의 강도가 세면 셀수록 더욱 그 증후는 크게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노사께서는 그러한 증후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 음독을 하셨다고 한다면 변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해당하는 게 아니니 장담할 수 없는 바입니다.”
승태는 엄준의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점점 더 아파 왔기 때문이었다. 당장 무슨 이유로 이러한 일을 일으켰는지도 모르겠는데, 심지어 지금 잡혀 있는 건 사실상 없는 죄를 가져왔다는 뜻이었으니까. 자신의 마음속이 더 복잡하게 변하는 걸 느꼈다.
“하면 그자가 어찌하여 자백을 하였는지가 문제로군.”
엄준은 약간 걱정스러운 듯한 말을 이어 나갔다.
“후께서 허자를 직접 친국(親鞫)하신다 하여도 그 의미는 크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도리어 이것을 원하는 바였을 수도 있습니다. 허자의 입에서 나온 말 하나로 모두가 흔들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거기다가 스스로 죄를 뒤집어쓴 것이라면, 이는 그 의도가 명확해지기 전까지 조심해야 합니다. 다른 이들이 보는 자리에서 친국하는 것은 도리어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어처구니가 없군. 죽을 이의 입이 누구의 입보다 중요해졌으니 말이야.”
“소신, 허자의 일 보다는 관내에 일어난 반란이 더욱 중하다고 생각하옵니다. 허자의 일이야 의뭉스러운 일이고, 관내의 반란은 명백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노사의 일이 중하기는 하지만 관내의 반란을 먼저 처리하심이 중요 할 것이옵니다.”
엄준의 말에 승태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진궁의 죽음에 그 일만 집중하였는데 그보다 큰일이 묵혀 있었던 것이었다.
“배후는 모두 밝혀졌는가?”
이에 엄준은 죽간들을 내관에게 건네었고, 승태는 이를 살피며 어이가 없는 듯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명사들의 이름이 꽤 많이 나오는군. 이들이 반란군들의 뒤를 봐주었다는 것인가?”
“장담하기는 어렵습니다. 그저 만나기만 한 이들도 있을 것이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건넨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확한 것은 여기 적힌 이들이 모두 반군의 입에서 나온 이들이라는 것입니다.”
“…증좌는 없으나, 전언과 기록은 있으니 나쁜 물건은 아니겠군.”
승태는 죽간을 서서에게 넘기고 고심하였다. 반군에 대한 것이야 이미 일단락된 일이었고 여기서는 얻을 것만 있었다. 그간 껄끄러웠던 이들을 묶을 수도 있었고, 거래를 통하여 무언가를 더 받아 낼 수도 있었다.
“주군, 허자의 일이라면 그와 친분이 있는 자를 보내어 무슨 마음을 가진 것인지 알아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승태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내 직접 가지요. 좋은 음식들과 같이 그를 보러 가겠습니다.”
* * *
“다 죽여 버릴 것이다! 내가 이런 곳에 있을 것 같은가! 으아아아아!”
옥사에 내려온 승태는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욕이 들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소리 가운데는 욕도 있었지만, 살려 달라는 소리와 자기는 아니라는 말이 들려왔다.
“살려주시오. 내 그런 것이 아니오. 그냥 소금을 실어 주었소!”
하기야 반정을 저지른 이들이 여기 가득한 상황이었고, 그들이야 목이 잘려 거리에 효시 될 것이 거의 확정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기간이 꽤 길어지자 스스로 무너지기 시작한 이들이 넘쳐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 이들의 외침은 무시하고 천천히 걸어갔다.
승태를 알아보고, 구속되어있음에도 승태에게 달려들려는 인물도 있었다. 물론 그런 이들은 승태에게 손가락 한 개도 닿지 못했다. 그들이 난리를 칠 때마다 허정의 주먹이 작렬해 모조리 바닥에 드러눕게 만들었으니까.
승태는 허자가 있는 옥사에 도착했고, 즉시 간수가 예를 표하며 문을 열었다. 그러고 나서 허자의 꼿꼿하게 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옥사는 그래도 혼자서 쓰고 있었기에 꽤 괜찮은 상황이었다.
“편한 듯 보입니다.”
“누가 오기에 유난을 떨었는지 궁금했는데, 후께서 오셔서 그 유난을 떨었나 봅니다. 갑자기 옥사를 바꾸는데 참으로 당황했습니다.”
아마도 승태가 온다는 이야기가 들리자마자 옥졸들이 바로 이에 대응한 것으로 보였다. 하기야 이곳의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인물이 사람이 득실득실한 곳에 있을 수 없을 테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여기에 반란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죽인 흉악한 이들이 가득 들이쳤는데, 어찌하여 그곳에서 만나겠습니까? 거기다가 맛있는 음식 또한 드시기 어려울 것이니, 병사들이 배려해 준 것이겠지요.”
허자는 승태가 가져온 도시락통을 보고 웃음을 흘렸다.
“아비와 같다고 말하던 인물을 죽였는데 속이 없는 인물이오이다. 도시락을 가져오다니… 허허허.”
승태는 거친 허자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도시락통을 열었다.
“꽤 신경을 쓴 물건인데 그럼 내가 먹겠소.”
승태가 정말로 그 앞에서 음식을 꺼내어 먹자 그 냄새가 옥사를 가득 채웠다. 허자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승태는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이 고기 전을 입에 넣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맛있게 보여 허자는 순간 혹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였다.
“왜 그랬습니까?”
승태의 말에 허자는 순간 자신의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진궁은 그대의 기둥과 같은 인물이니, 그가 무너지면 그대가 무너질 것으로 생각했소.”
승태는 허자의 말에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노사께서 이미 업무에 모조리 손을 뗀 것을 모르는 인물이 없는데, 그런 행동이 이곳을 무너트린다는 생각은 틀린 것 같군요. 어찌 생각하는가?”
허자는 승태를 빤히 바라보며 웃음을 흘렸다. 마치 얻을 것을 얻었다는 듯한 그의 모습에 승태는 인상을 찌푸렸으나, 허자가 말을 꺼내었다.
“그대가 이렇게 여기 나와 이야기하게 되지 않았는가? 내 목숨 하나를 가지고 더 큰 것을 이룰 수 있게 되었는데 무엇을 걱정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