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400
400화
조단의 말에 유정의 눈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합비를 이들과 같이 모두 불태운다니, 그게 무슨 뜻이란 말인가?
“어찌 그런 황망한 말을 한단 말입니까?”
“저들이 부공께 머리를 숙이고 복속할 것 같은가?”
조단이 가리킨 곳에는 조단군을 마치 눈으로 죽일 것처럼 노려보는 이들이 서 있었다.
“제가 복속도록 할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그대가 이끌지 못할 것 같은데 말이야. 저들이 존경하는 것은 그대의 아버지이지, 그대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앙심을 가진 백성을 모두 참한다면, 앞으로 대체 어떤 이들이 후를 위하여 일하겠습니까? 후가 하시는 일에 백성이 없으면 어찌 국가가 이어지겠습니까?”
“국은 말이네, 저런 민(民)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니네. 저들은 분란의 불씨만 될 뿐이지. 그대의 아버지가 부공께 비난의 서신을 남기고 반기를 들었던 것처럼 말이야. 그대의 아버지가 합비를 일으켰다고 하지만, 누구의 토대 위에 세워졌는지 잊어버렸는가?”
유정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조정에서 지원은 없었던 반면, 양주를 차지하기 위한 교두보로 사용하고자 했던 수춘후가 합비에 투자한 비용은 어마어마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 비용을 온전하게 합비의 발전에 이용하여 성과를 이룬 것은 그의 능력이었지만, 그 토대로 사용된 금전이 수춘후의 주머니에서 나오지 않았다면 합비가 지금처럼 성세를 이루긴 어려웠을 것이었다.
“수춘후께서 직접 저희를…….”
조단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그의 어깨를 꾸욱 쥐었다. 아마도 유정은 승태의 관대한 마음에 부채를 지게 해 어떻게든 좋은 결과를 만들고 싶어라 했을 것이다. 시간을 벌려는 의미도 있을 테고.
“하하하! 부공께서 그대를 봐주면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내가 보내는 서신 한 장이면 부공께서도 이 판단을 지지해 주실 것이네.”
조단은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천천히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저들을 진정 살리고 싶다면 말이네. 그대는 머리를 쓰는 것이 아니라 내 말을 듣는 것이 좋을 터.”
“방법이 무엇입니까?”
“자네 아버지를 지우는 일이네. 합비는 방어를 위한 성이 아닌 그저 수춘을 보조하는 도시로 남아야 할 것이네. 자네 아버지가 생각하던 그런 성이 아니게 되는 것이지.”
유정은 아무런 말없이 그저 조단의 눈을 바라보았다.
조단은 그의 어깨를 세게 잡았다. 그러고 나서 유정을 향해 가벼운 협박을 들이밀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의 아버지를 지운다는 말은 유복의 업적을 지워 버리고, 그곳에 다른 것을 덧칠한다는 의미였다.
유정이 쉽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능당 효가 가장 중요시되는 지금의 시대에서 불효를 강요하는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유정의 머릿속에 유복의 진정한 업적은 청사에 남는 청렴함이나 농산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미 항복했음에도 수춘후에게 분노를 쏟아내는 저들. 유복이 남긴 것은 바로 저런 것들이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좋군. 그럼 저들은 내 다른 일을 하는 데 이용하도록 하겠네. 합비의 일은 그대에게 맡기지.”
조단이 일어나려는 순간, 유정이 물음을 던졌다.
“선친께서는 진정 후께서 충의를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수춘후께서는 왕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것입니까? 하여 후께 반기를 든 이들을 모두 지우고자 하는 것입니까? 하여… 충신들을…….”
유정은 유복의 말을 떠올리며 물음을 던진 것이었다. 그런데 조단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내려다보며 물음을 던졌다.
“그대 아버지의 업적을 지우는 것이 부공께서 높은 곳에 오르는 데에 중요할 것 같은가? 그저 가까운 곳에 위험을 두고자 하지 않을 뿐이네.”
조단이 그를 버려두고 일어나자, 곧바로 조충이 옆에 붙었다. 조충은 유정을 보고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이게 후대하는 것도 아니고 대체 무슨 일인가? 차라리 처음의 말처럼 그저 합비를 불태워 버리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오점을 남길 수는 없는 일이네.”
조단의 말에 조충은 웃음을 크게 지으며 물었다. 마치 선물을 받는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니? 설마…….”
“손가 놈들의 배가 근처를 지나가지 않았는가?”
조충이 듣지 못했던 일이었다. 손가의 배가 지나간 일은 딱히 비밀이랄 것이 없어서 보고가 올라가지 않았고, 시찰하던 조단이 직접 본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손가의 배야 자주 오지 않은가? 우리에게 도움을 받아가려고 말이야.”
“주씨의 배였네. 손가도 이제 형남 사군, 그다음이 필요할 터이니 정통성을 가진 유씨를 쓰기 위해 온 것이 아니겠는가?”
조충은 웃음을 쓰윽 흘렸다. 그를 보는 조단은 손을 흔들었다.
“고 도독이나 진 노사, 장문 숙부 일로 아버지께서 이제 완전히 결심이 선 듯싶네. 그런데 저들을 모조리 죽여 오점을 남길 수는 없지 않은가. 후환을 남기지 않는 방법은 유정, 저자가 자신 아버지의 업적을 덮는 일이지. 하면 합비의 민들 사이에 앙심을 가지고 그들끼리 싸우게 될 것이네.”
조충은 순간 고순과 진궁을 꺼내는 조단의 말에 눈꼬리를 파르르 떨며 다른 물음을 던졌다.
“자네는 도독과 노사께서 떠나셨는데, 슬프지 않은가?”
조단은 또다시 미소를 지었으나, 이번에는 살짝 처연해 보였다. 그런데도 목소리는 흔들림 없이 강건하였다.
“무엇이 슬프겠는가? 고 도독은 부공을 살리다가, 그리고 노사는 끝까지 부공의 일을 도우며 가셨을 것이네. 세상에 태어나 이름을 알리고, 죽을 자리에서도 이름을 떨치고, 후대에 빛나는 명성을 얻는다면 그게 안타까운 일이던가?”
“하기야 그렇긴 하군.”
“내 고 도독과 노사의 자제들을 가까이 쓸 것이네. 그들이 원치 않는다고 하더라도 말이야. 고 도독의 가문은 양서주의 존귀한 가문이 될 것이네.”
“존귀한 가문? 그것이 쉬이 되겠는가?”
“쉬이 되지는 않겠지. 그러나 그들을 키우며 조씨 아래에서 칼을 뽑아 반적들을 막고, 왕가를 보좌하는 가문으로 만들 것일세. 그것이 왕가를 만들어주는 현실의 기둥이 될 것이네. 충성이라는 허울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 보이니 말이야.”
그날, 오찬이 갈현의 제자인 장공과 함께 돌아왔다. 조단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그들을 맞이하였다.
“돌아왔군. 또 다른 기둥이 될 것이라 하던 이들 아니던가?”
오찬은 조단의 앞에 달려와 그가 한 일들을 전 하려 했다. 그의 옆에 선 장공도 예를 표하며 고개 숙였다.
오찬은 그간의 일들을 적은 서를 내었고, 조단은 그것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그러고 나서 서를 조충에게 건넸다.
“호오…….”
서에 적힌 내용은 이러했다.
우선 오찬과 장공은 갈현을 구한 이들의 뒤를 쫓으며 점조직으로 되어있는 황건의 잔당들을 잡아낸 뒤 그들을 장공의 산하로 천천히 집어넣었다. 그러고 나서 갈현과 그를 구한 이들은 가장 마지막에 잡아들여 갈현이 승태를 지지하였으며, 승태에게 유리한 내용이 적힌 도참이 들어있는 사서를 꾸며 냈다고 하였다.
장공이 예를 표하며 죽간 뭉치를 내놓았다.
“만들라 하신 도참을 넣은 것들입니다.”
“수고하였네. 그대가 나를 도왔으니, 교를 모조리 무너트리는 것을 다시 생각할 것이네.”
“저희를 지켜주신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우리에게 계속 협조하면 지켜 줄 것이라 말이야.”
장공은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하였고, 조단은 그들을 물린 뒤 죽간을 조충에게 건네었다. 조충은 죽간을 풀어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건 너무한 것 아닌가? 잘 보이지도 않는 글자들이니 누가 이를 알아본단 말인가?”
“역시 옛것이라고 속이기에는 죽간만 한 것이 없지 않은가? 또한, 글자가 너무 명료하다면 어찌 옛 물건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정도는 되어야지. 그리고… 이렇게 생겨야 다들 보고 싶어서 하지 않겠는가?”
조충은 약간 인상을 찌푸리며 도참이 적힌 죽간을 보며 물었다.
“내용이 틀리면 머리가 아픈 일이 아니던가?”
“상관없는 일이네. 사람이란 것이 제아무리 이성적이라 하더라도, 이 중에 몇 가지가 맞는다면 마음대로 해석하며 틀린 것을 옳다고 할 터이니. 게다가 글이 이리 조악하니, 알아먹기가 힘들지. 그냥 그렇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생길 것이네. 조악하고 모호한 내용이 바탕이 되어 우민들이 조씨 가문에 충의를 바치게 하는 것이 될 것이네. 이 얼마나 그들에게 맞는 처사인가?”
“후께서 바라는 것과는 조금 다르지 않은가? 후께서는 민중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쓰게 하며, 부를 늘리는 데 집중하시는데…….”
조충의 말에 조단은 손을 내저었다.
“상민(常民)은 대가와 보상으로, 우민(愚民)은 괴력난신으로 지지를 얻어 내는 것이네. 배우고 익히는 의미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기회를 주었음에도 계속 어리석고자 하는 이들까지 등에 업고 갈 수는 없는 법이네. 부공께서는 너무 높은 곳에서 민중을 바라보시지. 그러하니 민중을 안타깝고 따뜻한 시각으로 바라보네.”
조단은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말을 멈추었다. 조충의 의문 섞인 눈동자가 자신을 향하자, 그제야 씩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부공의 눈에 현명한 인물로 비치려면 적어도 진 노사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아래서 그저 하늘만 바라보며 비를 바라는 이들이니 어찌 가엽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들 중에서는 그저 아버지에게 무언가를 바라기만 하는 이들도 있고,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네. 두 무리가 같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아. 아니, 나는 민중을 믿지 않지.”
조충은 죽간을 다시 말아 정리하며 물었다.
“그래서 자네는 민중을 이리 대하고 싶은 것인가?”
“백성(百姓)들이란 본시 성씨를 가져 전장에 마차를 탈 수 있는 이들이네. 공맹이 말하던 그런 백성은 글을 알며 처지와 세를 아네. 그런데도 이성적이지 않은 일이 많은데, 민중은 더욱 짐승처럼 다스려야 할 것이야.”
조단의 군세는 강동의 반란을 깔끔하게 처리하였으며, 마지막은 수춘 앞에 칼로 보이던 합비까지 무릎 꿇리고 그들 스스로 성문을 헐어 길로 만드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공을 세운 것을 알렸다.
물론 그것이 집안에서는 약간 다르게 나타났지만 말이다.
“나가! 이 어미가 죽는 꼴을 보고 싶어서 생사를 숨겨!”
“그것이…….”
“당신도 집에 들어올 생각하지 말아요! 장남이 전장에 나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집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 놓고 뭘 그렇게 당당히 들어와!”
“그것은…….”
“다들 내가 속이 가라앉을 때까지 들어올 생각도 하지 마!”
“부인, 그럼 그것이 언제일지는…….”
여혜는 눈치 없이 말하는 승태를 빤히 바라보며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을 지었다.
“내 나중에 사람을 보낼 것이니 묻지 말아요.”
“아하하하…….”
쾅!
문이 닫히고 승태와 조단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가장 먼저 조단이 크게 예를 표하며 말했다.
“걱정을 끼쳐 죄송합니다.”
“내 걱정치 않았다. 네 능력과 주변의 사람들이 있거늘 어찌 쉬이 무너지겠느냐? 그저 네가 얼마나 많이 고생했을지 안타까울 뿐이로구나.”
승태의 걱정 어린 모습에 조단은 그간 힘들었던 일이 모두 싹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들이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다시금 처소로 돌아가는 그때, 저자에서는 낙양의 황조는 더는 유씨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들렸다. 또한, 황룡이 장강에 내려앉아 건업과 합비, 그리고 머리를 수춘에 뉘었는데, 적룡의 후예인 유방이 허리를 끊었지만, 조씨가 이를 다시 이었다는 노래가 흘러 퍼졌다.
마치 도조(度祖)가 용 싸움에 끼어들어 백룡을 도와주었다는 이야기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