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401
401화
건안 21년(217년).
승태의 개혁이 양주에 바람을 불어넣는 그때, 관중 지역은 다시금 지옥도가 열리고 있었다. 물론 그 방향은 조금 달랐지만. 이전에는 이각과 곽사의 손에서 시작된 일이었고, 지금은 사람의 손이 아닌 역병이 불러일으키는 바람이었다.
역병은 관중에서 아무런 구별 없이 목숨을 앗아 가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 시작은 하층민들에게서 나타났지만, 고관대작이라고 해서 피해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서간, 응창, 진림 등이 역병에 걸려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 버린 것은 꽤 큰 반향을 일으켰다. 건안칠자라 불리며 조정에서 발언하는 힘이 강한 인물들도 쓰러져 나갔다는 것은 즉, 조정의 위아래와 관계없이 휩쓴다는 뜻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줄었군.”
순욱은 비어 버린 조정의 자리를 쓱 바라보았다. 황제가 직접 친람(親覽)하는 조회에서 신료들이 나오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지금 상황이 굉장히 심각해졌다는 뜻이었다. 어차피 올라온 상소들이야 자신이 처리하면 될 일이었고, 황제는 이제 칩거하여 패만 나오는 형국. 이제 형식을 지키는 것도 굳이 집착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지만 영 껄끄러운 느낌이었다.
“금일 회는 파하도록 하겠네. 일에 대한 것은 승상부로 보고토록 하게.”
순욱이 예를 표하자 신료들이 뒷걸음질로 회장을 나갔고 순욱도 자리에서 일어나 승상부로 자리를 옮기었다. 그때 순유와 순심이 달라붙었다.
“승상, 장안에서도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여분의 약은 있는가?”
“약보다는 의원을 보내 달라고 하여…….”
“낙양은 어떤가?”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빠르게 대응을 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 피해를 완벽하게 줄일 수 없는 바였다. 그래서 역병은 이미 퍼져 버렸고 조정이 굴러가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역병을 막는다고 하였으나, 그 피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순욱은 이마를 짚었다.
“연주는 어떻던가?”
혹여 지금 승태와 국지전을 이어 나가는 연주에서 역병이 터지기라도 한다면, 문제가 심각해질 터이니 그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사실 보통 역병이라면 군이 모여 있는 연주와 예주에서 시작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겠지만, 지금은 어째서인지 사주에서 시작되어 옹주로 번지는 형국이라 참람한 상황이었다.
“생각보다 무탈하옵니다. 도리어 관의 문을 막아 오고 가는 것을 막은 것이 연주에 역병이 되는 것을 방지한 듯하옵니다.”
순욱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의 퀭한 눈에 순유는 약간 걱정된 마음을 내비쳤다.
“유종이 다시금 양양성으로 진군 중에서 있다고 합니다. 유 사군의 군세는…….”
“익주를 장악하는 데 여념이 없겠지. 유장이 잡혔음에도 그의 아들이 반기를 들었으니 말이야.”
“이미 성도가 유비의 손에 들어갔으니 이제 곧 끝이 날것입니다.”
순욱은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며 순유에게 물었다.
“끝이라 그러하겠지.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유리한 것은 아닐 것이네. 유비가 근황군으로 올 일은 그다지 없을 터이니. 조비와 마찬가지로 눈치나 보겠지.”
순유는 순욱의 말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빤히 바라보았다.
“조비의 군세가 지금 하내에 집중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네. 사마랑이 서신을 보내오더군. 작금 관동을 노리는 군세가 모이고 있다고 말이야.”
순심은 넌지시 물음을 던졌다.
“그럼 일전 정욱의 말처럼 왕작을 나누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수춘후도 그 정도라면 한발 뒤로 물러나지 않겠습니까? 군자의 복수는 가볍지 않은 것이라 하였습니다. 하니 한발 뒤로 물러나 다시금 기회를 만드는 것이 옳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지금의 조정은 전국의 위나라와 같은 시기이옵니다. 다른 점이라면 진이 아닌 초를 막기 위해 진과 조가 손을 잡았다는 것입니다. 한발 뒤로 물러나더라도 합종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능히 초의 발호를 막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럴 것 같은가? 내 생각은 다른 데 말이야.”
승상부 앞에 도착한 순욱은 뒤를 돌아 순심을 보았다.
“승상부에서 일한 모든 이들의 목을 베고 저자에 걸 것이며, 순가는 가문의 문을 닫을 것이다. 그뿐이겠는가? 청사에 우리의 이름이 남을 수 있겠는가?”
순심은 순간 숨을 멈추었고 순유 또한 말을 잃었다.
“그래서 그동안 내 수춘후를 경계했고, 걱정하였으며, 품에 안으려 하였네. 그의 이상은 우리의 이상과 달랐으니 말이야. 그럼에도 힘을 조절한다면 공존할 수 있었을 것이네. 한데 잘못된 생각으로… 이미 둘 다 선을 넘어 버렸네. 나는 그자의 심장 같은 신하를, 그는 나의 심장 같은 아이를 잃었으니.”
순욱은 다시금 승상부의 문턱을 넘으며 물음을 던졌다.
“지금도 그자가 제안을 받아들일 것 같은가? 차라리 황하의 물이 깨끗해지기를 바라게. 당시의 정은 초의 왕자를 죽인 것이 아니고, 초나라의 왕은 정나라를 멸망시키려 들지 않았네. 유비와 조비가 우리를 노린다 하여도 정나라와 같이 할 수 없는 일이네. 나도 수춘후도 물러설 수 없으니 말이야.”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정나라(鄭)는 진나라(晉)와 초나라(楚) 등과 같은 대국의 사이에서 자국을 지키는데 급하였다. 그런 와중에 초나라의 속국인 채나라(蔡)를 침공하여 공자 섭(燮)을 포로로 잡아가 화를 자초하였다. 초나라는 이를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여 자낭(子囊)더러 정나라에 보복하라고 명령하였다.
국가 존망의 갈림길에 몰린 정나라는 항복하여 백성을 위험에서 구하자는 항복론자와 진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자는 주전론자로 나뉘어 양측의 의견이 팽팽히 대립하였다.
그때 자사(子駟)가 말하길, “주나라(周)의 시에 황하의 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사람의 짧은 목숨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한 형편이다. 여러 가지를 놓고 점을 친다면 그물에 얽힌 듯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周詩有之曰 待河之淸 人壽幾何 非云詢多 職競作羅).” 라고 하였다.
정의 왕은 이에 초에 항복하고 전쟁을 모면하였다. 순욱은 지금 상황을 거기에 빗대어 말한 것이었다.
자신의 세가 밀린다 하더라도 초가 정을 놓아준 것과 달리, 지금 초라고 할 수 있는 승태가 멸국을 하고자 하니 어찌 물러나겠냐는 것이었다.
* * *
노숙에게 올라온 보고를 받은 승태는 턱을 쓰다듬고 있었다. 승태의 손을 들어준 가후와 정욱 등을 불러 더는 싸움 없이 하후 가문을 물러가게 만들고 싶었다.
어찌 됐든 자신을 도운 적 있는 이들이었으며, 사사로이 집안의 어른들이기도 했으니까. 후일을 위해서라도 서로 깊숙이 칼날을 휘두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노숙이 보내온 서신들을 천천히 읽는 정욱과 가후는 지금 관중의 상황을 알게 되었다. 또한, 조비의 군세가 모였고, 이제 그가 한 발자국만을 남겨 둔 것도 알게 되었다.
“어찌 될 것 같습니까? 관중은 역병이 돌아 조정의 대신들도 앓아누워 오늘내일하며, 조비는 순욱에게 슬며시 칼을 들었고, 유비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듯합니다. 하니 연주의 하후 가문과 조씨 일가 사람들을 물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승태는 관중에 엄청난 사상자가 나오고 있다는 말에 살짝 웃음을 흘렸다. 사실 역사대로라면 역병은 양주와 서주에서 먼저 터졌어야 했다.
그러나 합비의 전투는 과거와 같은 크기로 일어나지 않았고, 그간 승태가 지원한 의원들로 인하여 체계적인 보건 정책이 만들어지며 산발적인 역병은 있었어도 크게 번지지는 않았다.
그러한 상황이니 쉬이 물러나지 않겠느냐는 말이었다.
가후는 잠시 생각하며 물었다.
“쏘아진 화살은 다시 돌릴 수 없는 법입니다.”
“무슨 뜻이옵니까?”
“작금 어떤 이가 주군의 복수를 멈추라 한다면 멈추시겠습니까? 이는 순가도 마찬가지고 순가가 발탁한 이들도 마찬가지며, 순가를 작금 승상으로 올린 하후가와 조씨 일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조비가 아무리 욕망이 크다고 해도 그의 휘하에는 순가가 추천한 사람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유비는 또 어떻습니까? 일전에는 조정에서 반적 취급을 받았으나, 순욱에 의하여 다시금 정당한 종숙으로 인정받아 유장의 세력을 집어삼키고 있습니다. 저들이 제아무리 서로를 잡아먹으려 한다고 한들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정욱은 그런 가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를 두들기며 말했다.
“순욱이 죽지 않으면 저들도 칼을 뒤로 꽂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승상이 어찌 그 작은 땅을 가지고도 우리를 막아 내고 있겠습니까?”
“하면… 불가능하다는 말이로군요.”
“그럴 것입니다. 저들의 목적은 순욱이 아니라 낙양에 들어간 주군의 칼들일 것입니다. 주군께서 낙양에 들어가 순욱의 목을 베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조비의 속내야 뻔한 것이었다. 길어진 보급이라는 약점을 이용해 승태의 본대가 낙양을 점거한 순간, 하내에 모인 병사들을 움직여 승태의 군세를 포위, 섬멸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어찌해야겠습니까?”
“황제의 권위를 긁어내서 협천의 힘을 줄이는 방도를 사용하거나, 순욱을 무도한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황제의 권위를 떨어트리는 게 무엇이 중요하단 말입니까? 어차피 허수아비가 아니겠습니까?”
“무지한 이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지금이야 큰 세력들을 보며 쉬이 나서는 이들이 없겠지만, 황제의 자리는 참으로 매력적이게 보이지 않겠습니까?”
승태는 진규의 선물 중 하나를 풀기로 결정 내렸다.
진규의 선물 중 하나는 바로 소제의 죽음을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홍농왕비가 살아 있음을 알리고, 지금 홍농왕비가 청주 땅에 있다는 것도 퍼뜨렸다.
후폭풍은 꽤 대단했다. 앞으로 어떤 취급을 받을지 아직은 알 수 없었지만, 홍농왕비의 아래 소제의 아들이 있다는 내용이 함께 퍼지자 점점 걷잡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특히 청주에서 칩거 중이던 공융이 몸을 일으켰고, 그가 태사자의 도움을 받아 소제의 소실을 찾아내기 위해 움직였다.
그뿐 아니라 저잣거리에 유변이 동탁을 시켜 홍농왕을 사사하였다는 이야기와 홍농왕비의 아이가 이각의 아이라는 말 등, 혼잡한 이야기들이 미친 듯이 휘몰아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소신 공융, 왕비 전하를 뵈옵니다.”
마침내 공융이 그들을 찾아냈다.
“우리는 더는 관여하고 싶지 않네. 선황께선 친족의 추잡한 행동에 죽임을 당하였고, 나는 동적 휘하의 짐승과 같은 이들에게 더럽혀졌네. 이제 바라는 것은 그저 천하의 전란이 잦아들고 평화롭게 지내는 것뿐이네.”
그러나 공융은 완강하였다.
“그러하더라도 적통(嫡統) 황실의 핏줄이 지금 계시는데 어찌 그런 말을 하나이까?”
“내 선황의 명도 어기고 지킨 아이이네. 불허하네!”
과거 소제가 그녀에게 왕비의 몸이니 다른 관리나 백성의 아내가 될 수는 없다며 자신을 따라 죽어 달라는 말을 하고 독약을 마신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때 당희는 죽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당희를 다른 사람에게 시집보내려 했는데, 그녀가 거부한 배경에는 이러한 일이 있던 것이었다.
혹여나 재가하게 되면 핏줄에 의심이 갈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생각해 보면 당희도 언젠가 다시 조정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한 것이었고, 공융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
“천하의 도가 떨어졌습니다. 하여 관중에는 역병이 들고 전란은 끊임이 없습니다. 부디 전하께서 나셔서 다시금 도를 일으켜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