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402
402화
공융은 극진한 예를 표현하기 위하여 몸을 낮췄고, 옷에 더러운 것들이 묻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엎드렸다.
“천하의 도가 떨어졌습니다. 하여 관중에는 역병이 들고 전란은 끊임없습니다. 부디 전하께서 나셔서 다시금 도를 일으켜 주소서.”
“천하의 도를 떨어트린 것을 우리의 힘으로 어찌 돌려놓겠습니까? 선황 폐하께서도 노력은 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찌 되었습니까? 충신은 없었고 왕으로 끌려 내려갔으며, 그 뒤는 어떻습니까?”
그녀의 말끝은 마치 신하들을 모두 비난하는 듯했다. 동탁이 소제를 독살한 이후 홍농왕비인 당희는 이각에게 몸을 더럽혀지기까지 했다.
그뿐이던가? 홍농왕의 복위와 죽음을 명분으로 삼았다는 이들이 모였지만 정작 홍농왕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또한, 조조는 홍농왕을 죽게 만든 헌제를 황제로 받아들였다. 그것은 원소 또한 마찬가지였으니 어찌 신료들을 믿을 수가 있겠냐는 말이었다.
“천하의 도가 떨어진 것은 누가 그 자리에 올랐는가가 아니라, 권력이라는 칼을 든 자들의 욕심 때문이지요. 그러니 장작대부가 알아서 해결하세요.”
홍농왕비는 그 말을 남기고 몸을 일으켜 돌아가고자 하였다. 그때, 공융이 자리에서 흙을 날리며 일어났다.
이제 나이가 나이인 만큼 한번 몸을 낮추면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잘 일어나지 못하는 그였지만, 지금만큼은 다리가 멀쩡한 사람처럼 일어나 물었다.
“복수는 원하지 않으십니까?”
당희의 몸이 우뚝 서서 잠시 멈추었다. 어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없겠는가? 그저 힘이 없었을 뿐, 힘이 생긴다면 그간 쌓아 두었던 울분을 칼로서 해결했을 것이다. 그러니 불가능한 것을 능히 알고 있어도 공융의 말에 혹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당희가 움직이지 않자 공융이 말을 이어나갔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신에게 천하를 노릴 힘 따위는 없고, 시간도 충분치 않사옵니다. 그러나 소신이 복수를 이루어 드릴 힘은 없사오나, 왕비께서 도움을 주신다면 능히 힘을 모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하늘이 제게 허락한 시간 또한 짧을 터이니, 제가 모은 권력을 왕자 저하께서 능히 모두 차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장작대부, 누구에 대한 복수입니까?”
“그것은 왕자 저하가 결정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소신은 그저 정당한 이에게 칼을 쥐여 드리기 위해 여기에 서 있을 뿐입니다.”
너무나도 달콤한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를 전하는 공융이라는 사람은 그간 충신으로 살아온 인물이었다.
당희도 알고 있었다. 비싼 물건을 파는 이들이 호의적인 얼굴로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쥐여주는 것은 자신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이득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곳을 지킬 수나 있겠습니까?”
“작금의 조정에 반기를 들어 올린 인물이 저희만 있는 것은 아니옵니다.”
“수춘후를 말하는 것입니까?”
“수춘후도 그중 하나입니다. 물론 수춘후 또한 완전하게 믿을 수 없는 위험한 패입니다. 그는 조조의 흉심과 순욱의 머리를 가진 인물입니다. 만일 제게 누가 천하를 지옥도로 만들 것이냐 물으면 그자를 뽑을 것입니다.”
“하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패를 이용하면 될 일입니다. 조제가 필요하면 조제를, 조비가 필요하면 조비를, 유비가 필요하면 유비를 말입니다. 그것이 가장 높은 곳에서 보실 분의 능력이고 힘입니다.”
“그러나 작금의 황제는 그러한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인가?”
“환관에 의하여 세워진 황제가 무슨 힘을 쓰겠습니까? 십상시는 모두 죽었지만, 대를 이은 환관들의 힘이 아직 남아 조정을 주무르고 있습니다. 순가 또한 그 환관들과 자리를 같이하는 인물입니다. 환관들도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 보루인 순욱이 쓰러지면 그들의 힘은 사라진다는 것을 말입니다. 지금 환관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이들이 그들의 손에서 벗어났으니까요.”
홍농왕비 당씨는 조용히 공융에게 다가갔다.
“이것 하나만큼은 알겠군요. 이번이 아니면 황상으로 선 아드님을 볼 수 없을 것을 말입니다. 장작대부의 말을 듣지요. 그대가 원하는 깃발 역할 해드리겠습니다. 대신 작금의 황제와 선황 폐하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이들이 스스로의 잘못을 뉘우치기 전까지 물러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말이겠습니까?”
공융은 예를 표하고 뒷걸음으로 물러나 당희와 그의 아들인 유민을 모시게 하였다.
공융은 그 후 바로 태사자를 보기 위해 왔고, 태사자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공융을 맞이하였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그대의 주군이 원하는 바대로 되었네.”
공융의 말에 태사자는 느릿하게 찻잔을 내어주며 물었다.
“장작대부께서 원하시던 바가 아니었습니까? 적통의 길, 올곧은 제왕 말입니다. 이제 그 깃발을 잡고 선비들의 선망을 사게 되었으니, 능히 과거의 영화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榮華)? 무슨 영화 말이던가? 이미 이 몸은 이미 늙었는데 무엇을 이룰 수 있겠는가? 청사에는 그저 노욕이 가득하여 천하를 다시 한번 전란의 구렁텅이로 집어넣은 인물로 기록이 되겠지. 천자를 두 명이나 모신 노인을 누가 좋은 글귀를 써 줄까? 내 충도, 의도 저버렸는데 말이야. 아마 지금을 쓴다면 주를 떠받들던 진문왕이 죽고 진(晉)조가 어찌 무너졌는지를 다시 보는 듯하다고 적을 것이네.”
태사자는 그런 공융의 말에 웃음을 지었다. 태사자는 원하는 그림은 이미 끝이 났다. 하니 더는 공융이 필요한 말을 해 줄 이유가 없었다. 그때 공융을 떠났듯, 지금도 필요한 것을 이어주고 가면 될 일이었다.
“진나라가 어찌 무너졌습니까?”
“공신들의…….”
“첫째로 진문공이 충신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진문공은 자신을 수십 년간 보필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싸우게 만들고 명을 어겼다는 이유로 측신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습니다. 이로써 공신들과 공신들의 가문은 이리 생각했을 것입니다. ‘주인을 마음 깊이 따라 보아야 대접을 받을 수 없을 거다’라고 말입니다. 그러하니 신료들은 이를 따랐을 뿐입니다.”
공융은 말이 없었다. 태사자는 씩 웃은 뒤 계속해서 말했다.
“둘째로 주나라의 천자가 진나라의 존망의 때에, 진나라의 왕의 손이 아닌 역모를 일으킨 공신들의 손을 잡아 주었다는 것이지요. 제후가 천자를 지킨다면 천자 또한 제후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진나라의 공신들이 진나라를 찢어발길 때, 주나라가 무엇을 하였습니까? 도리어 제후의 힘이 약해진다고 기뻐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
“진조의 분열이 주나라의 끝을 가져올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가?”
“그저 자책에 빠지신 장작대부의 말에 대답을 한 것뿐입니다.”
태사자는 이제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몸을 돌렸다.
“이제 청주를 떠나려는가?”
“이제는 얻을 것이 없으니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공융은 한걸음 태사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자네가 검리상전(劍履上殿)의 권한을 받아 천자의 계단의 오르고 싶다 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 자리가 그대의 옆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찌 생각하는가? 몸을 옮기기만 한다면 나는 승상, 자네는 군을 총괄하는 대장군이 되어 천하를 노릴 수도 있는 일이네. 예양이 말하길,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신을 기쁘게 해 주는 남자를 위해 화장을 하지 않겠는가, 그리 말하지 않았는가. (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
태사자에게 굉장히 혹하는 말이라고 공융은 생각하였다. 공융이 보기에 언제나 외방에 나와 승태의 옆이 아닌 타지의 일을 해결해주는 일이나 하였고, 제대로 된 공훈을 인정받지 못하는 듯하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태사자가 능히 자리를 옮겨 그들을 따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태사자가 자리에 우뚝 서서 몸을 돌려 공융에게 다가오자, 공융은 설득되었다는 생각을 하였다.
“오르고자 하는 천자의 계단은 제가 정하는 것입니다. 천자의 계단이라 하더라도 모두가 같은 천자의 계단이 아니니 말입니다. 나를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것을 보답하는 것은 관직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익을 좇으며 자리를 옮겨 가장 높은 곳에 올랐던 선인(先人)들이 어찌 죽음을 맞이했는지 생각해 보십지요.”
공융은 떠나가는 태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인상을 쓰고는, 고개를 돌려 왕비와 왕자를 모시기 위해 움직였다.
* * *
청주에서 공융의 지지를 받아 홍농왕비가 왕자 유민과 함께 깃발을 올려 봉천의 제사를 올린 뒤 진정한 황제임을 알렸고 이에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지금의 황제는 동탁이 세운 거짓 황제이며 적통의 황제가 정당하게 이를 받아야 한다는 말을 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원소도 할 수 없었던 일을 공융이 일으켰고, 지금 황제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는 건 단순히 역적이라고 부를 수 없는 노릇이었다.
공융은 작금 선비들의 귀감이며, 공자의 자손으로 능히 유자들의 여론을 주도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순욱이 유자들에게 권력을 쥐어 주며 그들의 힘을 받는 것을 공융은 자신의 핏줄만으로써 이룰 수 있음이었다.
또한, 소제의 아들인 유민은 하진의 혈족이기도 하여 조정 내부에서도 하진의 후대 세력들이 덩달아 엉덩이가 가벼워지고 있었다. 그런 이들뿐만 아니라 정당한 명분이 없어 순욱의 밑에 엎드린 이들도 이번이 기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유종은 형주에서 왕을 자처하였고, 청주에서는 적통 황제를 논하는 인물이 섰으며, 서주와 양주는 강한 제후가 들고일어났으니 조정에서는 순욱에 대한 비판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대가 강한 이들은 아예 순욱의 이름을 들먹이며 예와 의가 떨어져 이러한 일을 맞이한 것이라 하며 순욱을 죽여야 한다는 말도 나왔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승상부의 내밀한 곳. 순욱은 그곳에서 차를 내리고 환관의 옷을 입은 몇을 만나고 있었다.
“승상께서 이리 고생을 하는데 신료들이 참으로 문제입니다. 거짓 황제를 옹립하려고 하는 역적들이 넘쳐 나니 말입니다.”
“다른 분들도 순가의 손을 잡아 주시는 것입니까?”
“이를 말이겠습니까? 황상께서 순가가 없다면 어찌 황실을 지키겠습니까? 지금처럼 궁내는 저희가, 궁 밖은 순가가 지킨다면 능히 한조의 명맥을 무구하게 지켜나갈 것입니다.”
“홍농왕비의 일은 어찌 풀어야겠습니까?”
“폐가입진의 말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저들이 황상의 아이라 말하는 인물이 누구의 아이인지 어찌 알겠습니까? 당비는 선황 폐하의 명을 거부한 역적입니다. 후에 이각에게 몸을 더럽혔으니, 그 아이가 유씨인지 이씨인지 어찌 알겠습니까?”
환관들이 그리 말한 것을 들은 순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민이 진정 소제의 아들인지 아닌지 상관이 없다는 것이었다. 환관들이 당비의 자식이 소제의 아들이 아니라 이각의 아이로 만들어 내는 것이야 어렵지 않을 것이니, 조정 내부의 분란은 쉽게 잦아들 것이었다.
또한, 유자들의 공융에 대한 지지도 줄어들 테고 말이다.
“하지만 공융이 죽지 않는다면 가짜는 계속 저희를 위협할 것입니다.”
“그들을 모시던 이들에게 말을 전해 보지요. 수춘후 때처럼… 주인을 몰라보는 이들이 나오면 아니 되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