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403
403화
승태는 흑돌을 옮기며 여대에게 물음을 던졌다.
“서신이 왔다고 들었습니다.”
여대는 희끗희끗 난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조정의 환관들에게서 서신이 왔습니다. 저희에게 몸을 의탁한 이들이라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작은 소동으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여대가 백돌을 옮겨 승태의 작은 집을 부숴버리자 승태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무엇을 시켰는데 그럽니까? 어지간한 일로는 그런 말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날 때도 걱정이 없던 정공이 맞습니까?”
“그때야 뭐 이래저래 기댈 사람이 많았지 않습니까? 고 도독도 주군의 곁에 딱 서 있는데 무엇이 걱정이겠습니까? 지금은 솔직히 주군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극의에 다다른 무인이 없을 것 같아서 걱정한 것입니다.”
여대가 말하는 극의의 표본은 분명 고순일진데, 그와 비교한다면 누구라도 모자람이 있을 것이었다.
“조 장군도 있고 허 장군도 있으니 이래저래 많습니다만.”
여대는 백돌로 다시금 승태의 내부를 휘저었고, 승태는 돌을 내려놓지 못하고 장고를 하기 시작했다.
“고 도독 같은 인물은 없지 않습니까? 비견 될 만한 인물이야 조 장군이 있긴 하지만… 글쎄, 잘 모르겠습니다. 근래에는 주군의 곁이 아니라 전장에 서서 공을 세우기 위해 일하지 않습니까?”
승태가 돌을 내려놓자 이번에는 여대가 인상을 찌푸렸다 흑돌의 대마가 백돌을 찍어 누르기 시작하였고, 백돌이 미친 듯 집을 부수기 위해 움직였으나 그것을 허무하게 만들었다. 흑돌은 집을 내부에서 갉아먹는 것이 아니라, 이무기가 된 것처럼 무너트려 버리며 집을 차지해 나갔다.
“장군이 공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무엇이 나쁘겠습니까?”
대마가 한번 움직일 때마다 여대의 집들이 무너져 내려가자, 그는 한숨을 내쉬며 돌을 던졌다.
“졌습니다. 공을 세우는 것을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저 주군의 몸을 생각하라는 것이옵니다.”
“그럼 정공이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제가 고 도독의 한 끗 정도의 무예만 있었어도 했을 것입니다. 지금은 주군의 집안을 지키는 개만 되어도 충분합니다. 뭐… 제가 주군의 가문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 또한 큰 공임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작은 소망 정도는 있습니다만.”
“알고 있지요. 알고 있으니 이리 직접 와서 같이 바둑도 두고 있지 않습니까? 바둑알과 판도 드리고요.”
여대는 그 말에 놀란 눈을 하며 승태를 바라보았다.
“이… 이것을 주신다는 것입니까?”
“사실 가치를 알아보는 인물이 정공(定公)밖에 없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여대는 바둑의 결과에 관한 관심이 사라졌는지 바둑판을 만지면서 물었다.
“은행! 은행나무로 만든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둑알도 좋은 것만 들어 있으니 바둑을 둘 맛이 날 것입니다.”
여대는 감동한 눈으로 승태의 앞에 엎드리며 연신 머리를 바닥에 찧었고, 승태는 그런 여대를 일으키며 말했다.
“뭐 그리 놀랍니까? 정공의 말대로 매번 저를 걱정하는 신하를 챙기는 일이 어렵겠습니까? 또 바둑을 좋아한다고 하니 이리 가져온 것입니다. 하면 그 환관들이 보냈다는 서신의 내용을 알 수 있겠습니까?”
여대는 품에서 서신을 꺼내어 승태에게 건넨 뒤에도 계속 바둑판과 바둑알을 만지작거렸다. 그러고 나서 계속해서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바둑을 둘 때는 느끼지 못한 바둑알이 바둑판에 내려앉을 때의 청아한 소리가 여대의 귀를 즐겁게 했다.
물론 바둑판이나 알에 신경 쓰지 않는 승태에게는 그냥 조금 소리 좋은 탁탁거림 뿐이었다. 집중이 안 되니 그만해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여대가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니 쉬이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승태는 서신을 조심스럽게 내어주었다.
“원직에게 전해야 할 물건 같은데 어찌 생각합니까?”
“필요하다는 생각은 합니다. 분명 저희에게만 온 것이 아니라, 환관들의 손에 닿는 이들 모두에게 오지 않았겠습니까? 아마 탁류라 불리는 이들이 지역의 큰 성세를 자랑하니, 손을 쓰기 좋았을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작금 청류라 불리는 이들도 저희를 그리 좋게 보고 있진 않지 않습니까?”
승태는 약간 어이가 없다는 듯 여대의 말을 들었다. 언제 적 청류 탁류인가? 당고의 금이 일어난 지도 50년이 지나고 한 대가 넘었을 것이다. 그리고 천하가 전란에 빠졌는데 환관들의 전횡 문제를 꺼내며 편을 가르는 것이 정상적이냐는 생각이었다.
“아직도 그런 식으로 편을 가르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
“이미 갈라놓은 무리지 않습니까? 귀찮은 것도 있고, 이미 골이 깊도록 서로 싸웠으니 다시 이리저리 섞이고 싶지 않아 그런 것입니다.”
승태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음을 던졌다. 자신이 던진 패가 똥패로 바뀔 것이라는 생각을 하자 영 갑갑한 마음이었다.
“거짓된 황제를 지지하는 이들을 참하여 한조의 정통을 지키자는 것이 참으로 우스운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이각의 자식이라… 하기야 삼보의 난에서 당한 게 많은 이들의 마음에 불을 던지기엔 좋을 것 같지만요. 그러나 동탁이 세운 황제인 본인이 어찌 이런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순욱이 원했을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승태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여대도 같이 일어나 예를 표하였다.
“원직을 보아야겠습니다.”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정공은… 알겠습니다.”
여대가 일어나 승태에게 예를 표하면서도 그의 고개가 계속 바둑판에 꽂혀 있는 것을 보고, 승태는 입술을 한번 핥으며 일어나 자리를 벗어났다.
허정은 승태가 별관에서 나오자 그 뒤를 따랐다. 그러고 나서 승태의 말을 들었는지 살짝 몸을 가까이 붙이며 말했다.
“도독께서 얼마나 강하였는지는 모르지만, 소인도 충분히 주군을 지킬 수 있습니다.”
승태는 피곤한 듯 눈을 문지르며 허정을 바라보았다.
“알고 있습니다. 그저 도독의 강함은 개인의 용맹뿐만이 아니었으니 저리 말한 것입니다. 그의 수하들 또한 사람 아닌 것 같은 이들이었습니다. 수춘에 남은 함진영을 보면 알지 않습니까?”
허정은 코를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춘에서 함진영의 철두철미함을 모르는 이들이 없었다. 그들은 술도 마시지 않았고 훈련 또한 극악하였기 때문에 경외하지만 차마 가까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여튼 지금은 백강 공이 제 안전을 지키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허정은 가슴을 두들기며 고개를 끄덕였고, 한발 뒤로 물러나 승태의 뒤를 따랐다. 승태가 서서에게 가는 그때, 서서가 급히 승태에게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승태가 손을 흔들자 호위들이 빠르게 벽을 만들었다.
“어찌 그리 급히 움직입니까?”
“주군께 일을 고하기 위해 급히 움직였습니다. 시급한 일이옵니다.”
“무슨 일입니까?”
“청주에서 난이 일어났고 청주의 황제와 공융이 북해에서 벗어나 태사 장군이 주둔 중인 제남에 도망 나와 의탁하였다고 합니다.”
승태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청주 황제 유민과 공융이 자신의 사람인 태사자에게 의탁하였다는 것은 골치 아픈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승태는 직접 누구의 손을 잡지 않고 그 사이에서 이득을 취하려 했다. 그런데 이렇게 되어 버린다면 무언가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어찌해야 할 것 같습니까?”
“…결정을 내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위험한 일이었다. 원소가 봉대를 하기 싫어서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조조가 봉대하여 암살의 위협을 몇 번이나 받았던 것처럼 안에서 분열을 일으킬 요소가 다분하였기 때문이 아니던가.
“내가 황제를 봉대하면 단순히 복수로 끝내는 것이 되지 않을 것이네. 패공과 같이 될 것이지.”
서서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마 이것까지가 돌아가신 한유 공이 남긴 선물이자 시험일 것입니다.”
“귀천하신 서주의 진씨가 천하를 움직이니 이거 참 대단합니다.”
승태는 수염을 만지작거리다가 말했다.
“장군.”
지금 장군이라 불릴 수 있는 사람은 허정 뿐이기에 허정은 빠르게 서서의 옆에서 예를 표하였다.
“지금 수춘에서 움직일 수 있는 군이 얼마나 됩니까? 원직의 말대로 군을 움직여 이번 일을 해결할 생각입니다.”
“수춘은 마땅치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몇 번 내전이 있기도 하였고 함진영이나 단양병, 청주병들도 지금 전장에 모두 나가 있으니 어렵습니다. 하지만 태산의 병사들은 움직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랜만에 듣는 이야기였다. 태산의 병사들은 장패와 그의 수하들이 다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창희는 승태를 열렬이 추종하는 인물이니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우선 창희에게 서신을 보내고 일단 호군만으로 움직이도록 합시다.”
“하면 부인과 대공자께는 먼저 말씀을 전해야지 않겠습니까?”
승태는 순간 말을 하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단아에게는 수춘의 방위를 맡기고, 부인들에게는… 끄으으응.”
승태는 일전에 집에서 쫓겨나 몰래 등청하여 집무를 했던 것이 생각이 나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아도 집에서 쫓겨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다시 말하면 난리가 날 것 같은데…….’
서서는 승태의 모습을 보고 조심히 말했다.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더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부인이 단이를 도와 수춘을 지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부탁을 전하기로 하지요.”
서서는 고개를 숙이고 예를 표한 뒤 빠르게 사라졌고, 승태 또한 몸을 빨리 움직였다.
수춘에서 승태가 호위병과 함께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유민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황제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손에는 어떤 권한도 아무것도 없었고, 무엇인가를 하기도 전에 북해에서 난이 일어나 이렇게 의탁을 하고 있으니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태사자가 공손히 그를 대우하기는 하였으나, 황제로 대우한다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그저 일군의 군주를 대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현실을 마주한 것이었다. 그러나 분노로서 그를 대하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 귀족이라 보기에도 어렵게 살아왔으니, 그저 잠시 맞지 않는 좋은 옷을 입고 즐겁게 지냈으니 되었다는 생각을 하였다.
“수춘후께서 말씀이 없었습니까?”
“수춘후는 아랫사람입니다. 폐하께서 말을 높이시면 능히 그자는 폐하를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작금 복수를 한다며 역심을 품은 인물이니 강하게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공융이 유민의 말에 약간 눈치를 주자, 말을 바꾸어 다시 말하였다.
“수춘후는 말이 없습니까?”
“이곳에 온다는 말을 전하였습니다. 폐하께서 위기에 빠졌으니 능당 폐하가 바로 설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또한…….”
“그만하시지요. 주군께서 이곳에 오는 것은 정해진 일이지만 봉대에 관한 일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태사 장군! 폐하의 앞이네! 감히 자네가 역심을 드러내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