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404
404화
역심? 우스운 말이었다. 태사자는 결코 한조에 충성을 바친 적이 없었다. 그저 지금껏 필요가 맞아떨어져 사용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진정으로 섬길 군주를 찾았고, 그 군주는 자신을 인정하고 존중하였다.
그것을 모를 공융이 아닌데 지금은 마치 노망이 든 것처럼 소리를 질러 대는 게, 원하는 바가 분명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모시는 주인은 수춘후이시니, 후께서 폐하를 섬긴다면 능당 저 또한 예우를 할 것입니다.”
공융은 태사자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숨을 크게 내뱉고는 손을 흔들었다.
“그만 나가 주시게. 내 폐하와 생각할 것이 있으니 말이야.”
태사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유민과 공융을 한번 훑고 예를 표한 뒤 그 자리를 떠났다.
태사자가 그 자리를 떠나가자, 유민은 걱정스러운 말투로 공융에게 물음을 던졌다.
“어찌 우릴 도운 장수에게 그런 말을 한 것입니까? 혹여나 앙심을 품으면 어찌합니까?”
“태사자는 본시 천성이 칼을 든 선비와 같은 인물입니다. 협을 중시하면서도 체면을 알고, 명예를 따지는 인물입니다.”
“그러하니 문제가 아니겠소? 가볍게 그를 욕하였으니 분명 앙심을 품을 것 아닙니까?”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분노는 자신을 위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인인 수춘후를 위해 나타날 것입니다. 그것이 선비의 도리니까요. 특히 수춘후가 이곳으로 오기로 하였으니 더더욱 경거망동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위치가 어찌 될지 모르니 말입니다.”
유민은 그래도 공융의 태도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였다.
“승상.”
“말씀하시지요.”
“태산에 올라 봉선(封禪)의 제를 치렀다고 한들, 그것은 겨우 한 주를 다스리는 이의 발버둥입니다.”
“폐하.”
“승상의 생각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폐하, 아신다면 더욱 강건하셔야 합니다. 소신은 폐하가 수춘후와 같은 권신을 누르고, 구주 제후들의 위에 서서 다시금 한조의 질서를 잡고 천하의 질서를 만들기를 원합니다.”
유민은 공융의 모습을 보고 살짝 고개를 저었다.
“모후를 따라 천하의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높은 곳에 오를수록 질서를 찾고 천하를 말하며 대의를 울부짖더군요.”
“폐하, 무지한 자들이 어찌 옳은 길을 알겠습니까? 그자들에게는 오롯이 욕망뿐입니다. 그저 식량이 그들의 하늘이니, 무엇을 그들에게 바라겠습니까? 높은 곳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무엇을 해야겠습니까? 질서를 세우는 것입니다.”
유민은 그런 공융의 말에 약간 불편한 마음을 보였다. 그러나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공융은 말을 이어 나갔다.
“질서는 혼란을 바로잡고, 그 이후 천하에 안정을 주는 것입니다.”
굉장히 갑갑한 말이었다. 유민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입안으로 집어삼켰다. 어차피 자신의 알량한 지식으로 말을 해 봐야 수많은 책을 읽은 공융을 언쟁에서 이길 순 없었다.
공융의 말은 과거부터 쌓아 온 기록이고, 자신의 말은 한낱 느낌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유민은 거북한 마음을 달래고자 나와 시비에게 물음을 던졌다.
“황태후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승상이 모은 이들과 함께 후일에 관한 이야기를 논하는 중이라 알고 있습니다.”
“그런가?”
유민은 한숨이 나왔다. 장성한 자신이었지만 권력에 대해서는 딱히 원하는 바는 없었다. 그러나 홍농왕비에 대한 효심만큼은 컸다. 고생한 세월을 알기에 더더욱 애틋하고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그러나 가끔 자신을 이리 높은 자리에 올려놓은 뒤, 어머니가 지위를 누리는 것 같은 모습에는 상처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저 어머님과 일세를 지내면 될 뿐이었는데…….”
유민을 쓸쓸히 밤중에 걸음을 옮기며 그저 일이 잘 풀리기만을 생각하였다.
며칠 후, 승태가 제남국 동평현에 도착하자 태사자가 직접 그를 마중하기 위해 움직였다. 창희는 이미 승태와 함께 하겠다며 달려나가 승태의 옆을 꿰차고 있었다. 허정은 그런 창희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며 인상을 쓰고 있었다.
승태는 태사자를 보고 그와 포옹을 하였다.
“수고 많았습니다. 청주에 남아 갑작스러운 일도 잘 처리해 주시니 본 후가 걱정이 없었습니다.”
“이를 말이겠습니까? 어려운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도리어 소신은 청주의 난 때문에 혹여나 서주에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었습니다.”
“이 창희가 태산에서 버티고 있는데 어딜 넘보겠습니까? 주군의 명만 없었다면 반란군 놈의 자식들… 그놈들은 제가 태산병을 몰고 가서 모가지를 다 따 버렸을 것입니다. 역적놈의 새끼들!”
승태는 순간 현대에서 봤던 유명한 장면이 생각나 속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이내 마음속에서 그 생각을 가라앉히고 창희의 어깨를 두드렸다.
“믿지요. 제가 안 믿겠습니까? 수춘에서 제가 발을 뻗고 누울 수 있게 된 것이 누구의 덕인지 알고 있지요. 아, 추천해 준 물건은 정공(定公 여대의 자)에게 전했습니다.”
“좋아하지 않습니까? 바둑을 두는 인간이라면 눈이 돌아가지 않을 수 없는 물건이었을 것입니다.”
“눈이 돌아가긴 하더군요. 제가 앞에 있는데도 예를 제대로 표하지도 않고 눈이 바둑판에만 있었으니 말입니다.”
“하하하하! 이거 정공이 점수를 잃었으니 제가 조금 더 주군께 가까운 장수이지 않겠습니까? 하하하하!”
창희도 자신의 능력이 조운, 태사자, 장합, 허정과 같은 이들에게는 밀리고 마초나 장패처럼 거대한 세력을 끌고 오지도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승태도 창희에게 웃음을 살짝 지어 보이며 그를 격려하였다.
“꾸준히 도와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보물을 골라 줄 수 있는 가까운 분이 장군밖에 없습니다.”
“태산을 버리고 갈까요?”
진심이 담긴 말에 승태와 태사자는 어이가 없는 웃음을 살짝 흘렸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승태가 좋아할 일이지 군이 아니라는 것이 빤히 보였기에 차마 싫어할 수가 없는 승태였다.
“장 장군과 연결해 주실 분이 그래도 장군밖에 없으니 후에 부탁하겠습니다.”
둘의 대화가 끝나자 다시 태사자가 말했다.
“바로 공융을 보시겠습니까?”
승태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공융을 볼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번에 하늘이 된 분을 한번 보러 가지요.”
“모시겠습니다.”
태사자는 앞장을 서며 유민이 머무는 곳으로 향하였다. 공융을 먼저 볼 것으로 생각한 유민의 내관들은 승태가 왔다는 소리에 놀라 빠르게 이리저리 움직이고 자리를 만들고자 하였다.
유민은 움직이는 이들을 보곤 손을 내저었다.
“그 정도만 하시게. 어차피 제 둥지도 못 지켜서 의탁한 황족인데, 꾸며서 권위를 높여 봐야 우습지 않겠는가?”
“폐하.”
“그대들이 나를 어찌 생각하는지는 알고 있네. 십수 년간 나를 키우고 지킨 그대들인데 어찌 모르겠는가?”
“폐하…….”
“상대는 스스로 일어나 서주와 양주를 쥐고 천하를 흔드는 인물이네. 과거 숙부가 조조를 만났을 때보다 더 대단한 인물이라는 소리이네. 아니 그런가?”
“그러하니 더욱 격식에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조조가 어찌 되었습니까? 당장이라도 그자를 짓눌러 권신이 되지 못하게…….”
“그것이 권위의 문제겠는가? 힘의 문제일 것이네. 숙부도 스스로가 힘을 만들지 못하고 힘에 기대었기에 그런 것이네.”
“폐하.”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은 다른 법이네. 결국, 태후마마께서 원하는 것을 이루어 줄 사람이 아니던가? 필요하다면 응당 무릎이라도 꿇어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나는 도리어 수춘후에게 고맙네. 승상이나 태후마마가 먼저가 아니라, 나를 택하여 준 것이니.”
“수춘후 드옵니다.”
문이 열리고 승태가 저벅저벅 들어오자, 유민 또한 당당히 수춘후를 맞이하였다. 승태는 주눅 들지 않는 유민의 모습을 보고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예를 표하기 위해 몸을 낮추고 고개를 숙였다. 물론 몸을 숙였다고는 하지만, 황실의 법도와는 영 맞지 않는 행동이었다.
“신 수춘후, 폐하를 뵙니다.”
“예를 취할 필요 없습니다. 내 그대가 오길 오매불망 기다렸습니다.”
유민이 승태를 일으키자 승태는 대단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열 살 차이가 나는 어린 황제가 자신을 보고 당당히 서 있는 것이 재미있었다. 솔직히 분개하거나 겁을 먹을 것으로 생각한 승태의 예상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승상께서는 지엄한 권위를 보여 주라 하였지만, 이곳은 후의 땅이고 우리는 의탁을 하기 위해 온 손님이나 다름없지 않겠습니까?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고 한들 손님이 주인이 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유민의 말에 승태는 크게 웃음을 뱉어내었다.
‘상식적이군’
승태가 보기에 유민은 상식이 있어 보이는 존재였다. 오랜만에 자신의 사람이 아닌 이들 중 상식이 있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었다.
“좋습니다. 폐하, 힘을 보태 드리지요.”
“대가는 무엇입니까?”
“대가라니요? 무슨 말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승태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유민을 빤히 쳐다보았다.
내관들은 주먹을 쥐고 무례를 저지르는 수춘후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생기가 넘치는 유민의 모습에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빤히 바라보았다. 유민이 입을 열 때마다 그들은 가슴이 뛰는 것을 막기 힘들었다.
“대가가 없는 선물은 없을 테니 말입니다. 후께서는 무슨 이득이 있습니까? 이각의 더러운 핏줄이라며 욕을 먹기까지 하는 이 별 볼 일 없는 황제를 도와서 말입니다.”
“이득이라… 글쎄요. 이득보다는 우선 큰 손해를 막기 위함입니다. 작금 두 명의 황제가 있는 것이 저에게는 훨씬 이득이니 말입니다. 또한, 작금의 황제께서는 저보다는 순가의 말을 들어 줄 테고요.”
“알겠습니다. 명확하니 좋습니다. 그럼 도움을 받겠습니다. 청주에서 저를 위협한 이들을 처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잠시 기다리시지요.”
승태가 일어나려는 그때, 유민은 잠시 생각하더니 서에 일필지휘로 무엇인가를 써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그러고 나서 승태에게 쥐여 주며 말했다.
“부월은 없지만, 명분은 드리겠습니다. 후의 이름이 아니라 제 이름으로 그들을 벌하시지요. 후의 칼을 이것으로 사도록 하겠습니다.”
승태가 그것을 펴 보자, 유민이 가황월을 대신하여 이를 내린다는 서를 쓰고 자신의 인을 남긴 것이었다.
승태는 웃음을 빙그레 지어 보이며 일어났고, 예를 표하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승태가 나가자 유민은 진을 다 뺐다는 듯 뒷걸음질 치다가 바닥에 앉아 숨을 내쉬었고, 내관들이 놀라 유민에게 다가왔다.
“죽는 줄 알았습니다. 사람에게서 바람이 분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었구려. 그래도 나 역시 좀 멋있었지요?”
유민은 웃음을 보였지만 방을 벗어난 승태는 얼굴을 살짝 굳혔다. 꽤 신선하였지만, 승태가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인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태사자는 조용히 승태에게 말을 전했다.
“쉬운 인물은 아니겠습니다. 무엇에 매달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처음 보는 자리에서 뭇 신료들의 생살여탈권을 쥐여 준다니…….”
“매달리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모를 뿐이지요.”
“공융은 어찌하시겠습니까?”
승태는 유민에게 받은 가황월을 내린다는 서신을 바라보았다.
“굳이 얼굴을 볼 필요가 있겠습니까? 공융과 말을 섞는다고 한들 제약이나 늘어나지, 도움이 될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후일 분명 좋은 말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상관없습니다. 이제 그늘에서 벗어나기 직전입니다. 고 도독의 복수만 끝나면 한조와 완전히 갈라서는 것입니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