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414
414화
정욱이 자신의 안위를 걱정할 때, 승태는 그 자리를 떠나 노숙의 거처로 향하였다. 지금은 내무부 장사를 맡고 있는 노숙은 일에 다시 복귀한 뒤 더욱더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승태는 노숙이 거처하는 곳의 문을 직접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산과 같이 쌓인 죽간들과 그것을 정리하는 이들, 그리고 그것을 옮기기 위해 모인 인부들이 보였다.
“형님, 미안합니다.”
“미안해해야지요. 주군께서 분명 쉬게 하겠다며 직을 내려놓게 한 이후로 계절 하나가 바뀌지 않았습니다.”
“하여 가진 보양식이란 보양식은 다 보내지 않습니까? 또 건강이 걱정되어 계절마다 의부에서 가장 실력 좋은 이들을 보내 주기도 하고 말입니다.”
“대우야 이루 말할 수가 없는 법이지요. 군주가 신하에게 이리 했다는 일은 전무후무한 일일 것입니다.”
“하여 쓰러졌던 형님을 살렸으니 그 또한 하늘의 계시지요.”
승태의 말에 노숙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천리를 어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승태는 할 말이 없어 머리를 긁었다. 하기야 원래 역사대로라면 오나라의 저주라 불리는 단명을 그대로 받은 노숙이 이미 죽어야 할 때였다. 그러나 승태의 노력 덕택에 노숙은 지금도 비교적 건강히 살아 있었다.
노숙은 업무를 적은 죽간을 옆으로 치우며 주변인들에게 나가라고 손짓하였다. 그러고 나서 승태는 노숙의 앞에 앉았다.
“내려가겠습니다.”
“뭣 하러 내려갑니까? 이 상태로 대화하는 것이 편합니다. 형님이 제 궁금한 점을 밝혀 주시지요.”
노숙은 잠시 생각하더니 툭 하니 무엇인가를 던져 내었다.
“관우에 대한 일입니까?”
승태는 바로 알아차리는 노숙의 말에 약간 웃음이 흘러나오는 걸 느꼈다.
“하나씩 꺾을 것이라는 생각이 무너졌으니 태도를 바꾸어야 하는데, 가장 앞에 있는 인물이자 상징이 되는 자가 관우인 듯해서 말입니다. 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노숙도 이 점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는 하지요. 물론 저희도 대비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노숙은 옆에 보이는 죽간 더미에 손을 넣어 몇 가지 죽간을 꺼낸 뒤 승태에게 건네었다.
그곳에는 관우와 장비가 이끄는 군에 대한 정보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고 위공과 조정의 반응도 적혀 있었다. 승태는 그것을 빠르게 읽어 내려간 뒤,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런…….’
예상과는 달리 의외로 유비군에 대한 반응은 좋은 편이었다.
“반응이 나쁘지 않지요?”
“동첩부조(서서)가 올린 것입니까?”
“그것도 있고, 이곳저곳에서 올라온 내용을 취합했습니다. 주군께서 연을 쌓은 곳이 많으니 말입니다.”
“이곳저곳 ‘많이도’ 돌아다녔다는 말 같습니다.”
“일군의 주인이 친정도 아닌데 이곳저곳 돌아다닌 것은 맞지 않습니까? 이 사람 저 사람 많이 고생했습니다. 덕분에 이런 것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몸조심하시지요. 지금은 몸 잘못 놀렸다가 어디서 칼 맞습니다.”
승태는 직설적인 노숙의 말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노숙이 이렇게 말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노숙의 눈을 보니 그런 말이 나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람을 더 뽑지 않고…….”
“사람 뽑고 나면 그들을 관리하는 일도 저희가 합니다. 그런 것은 좀 다른 사람에게 넘겨도 될 텐데 말입니다.”
“학부장사(양수)에게 넘기겠습니까?”
노숙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양수는 능력과 충성심은 좋지만, 사람을 보는 눈이 너무나 높았다. 가르치는 것의 기준이 높으면 그것을 따라오는 이들이 최고가 될 수는 있지만, 인사가 너무 까다로우면 쓸 수가 없었다.
“앓느니 죽겠습니다. 제가 해야지요.”
승태는 잡스러운 이야기를 멈추고 본론으로 넘어갔다.
“그래서 어찌해야겠습니까?”
“정 공에게는 무슨 이야기를 들었습니까?”
“차가 좀 식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들었습니다.”
노숙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승태를 보았다.
“주군께서는 차가 식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고 했겠습니다. 바람을 불든, 어떻게 하든 말입니다.”
노숙의 예측이 너무 잘 맞아 순간 승태는 사레에 들러 기침을 하였다. 그러나 노숙이 옆에 있던 찻물을 내어 승태에게 건네었다.
“어찌 알았습니까?”
“같은 생각이니 어찌 모르겠습니까.”
“정 공은 어찌 그런단 말입니까? 뭔가 아는 것 같은데 그것을 말하지 않고, 그저 뒤로 물러서는데 섭섭하게 그러는지…….”
“그럴 수 있는 일입니다. 정 공의 의지는 높았으나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 이유가 힘이 없다고 믿을 수도 있는 바 아니겠습니까?”
“저는 중앙과 다르다고 몇 번이나 말했을 텐데도 그런단 말입니까?”
노숙은 살며시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손에 무엇인가 쥐여 주어야 할 일입니다. 능력이 있는 자의 능력을 빌리는 일 아니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이 움직이게 하는 것은 도둑의 심보입니다. 혹여 주군의 뜻을 모두가 알아 볼 것으로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아니겠지요.”
“하면 다시 부탁하십시오. 어차피 연주에 발을 밟고 서 있기 위해서는 그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이곳에서 징발하더라도 사정을 잘 아는 인물들이 필요하니 말입니다.”
승태는 약간 싫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머리를 긁었는데, 노숙이 승태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를 지키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정 공의 자손들도 품어 주신다면 응당 연주가 주군의 품 안에 들어올 것입니다. 현재의 정욱과 같이 노회한 인물이 아니라, 과거 정 공의 모습을 닮아 검박하니 충분히 주군께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노숙의 걱정 어린 눈에 승태는 마음을 풀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숙의 걱정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승태였다. 지금 정욱과 척을 져 봐야 손해를 볼 쪽은 승태 본인과 군세뿐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한데 관우의 군세가 관에서 나왔다는 소식은 따로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아무래도 관우가 군을 움직이는 그때가 전력전의 시작일 것 같은데.”
“관우의 움직임은 아직 없습니다. 관직과 작위를 받고 움직이지 않겠습니까? 그보다는 형주에 있는 손가의 인물들이 문제입니다.”
“어째서요? 장비가 움직였다고 하지만 형주의 군세와 손가병이 합쳐진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터입니다. 게다가 보급도 문제없이 지원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은 대체…….”
* * *
조단은 지금 이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여몽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끝까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주장하고 있었고, 손권도 머리를 긁으며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손권의 옆에 서 있는 능통은 얼굴을 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문빙은 유종에게 고개를 숙이며 죄를 청하고 있었는데, 그것과는 꽤 다른 모습이었다.
짜악!
백발의 주유가 악다구니를 치는 여몽의 뺨을 후려쳤다. 자신의 스승과 형이나 다름없는 주유가 자신을 이렇게 대하는 것이니 더더욱 분기가 차오를 수밖에 없었다.
“세 번의 패전이다. 아니, 큰 것만 세 번이지 병력의 반수를 날린 일인데 진정 네 잘못이 없다는 것이냐?”
양양을 노리는 전투에서 장비에게 패배한 게 끝이 아니었다. 퇴각하면서도 계속 패전을 거듭하였고, 군은 괴멸이라고 불릴 정도로 피해를 보게 되었다. 이에 손권이 직접 봉림관 까지 온 상황이었다.
“없습니다! 도독, 저는 손가병을 지켰을 뿐입니다. 한데 어찌 제가 벌을 받아야 한단 말입니까? 형주군인 저자가 손가병을 죽이는 것을 봐야 한다는 것입니까? 저들 또한……!”
이번에는 손권이 여몽의 멱살을 잡았다. 손권의 눈은 흔들리고 있었는데, 여몽도 이를 바라보며 자신이 하려는 말에 대한 문제점을 떠올렸다. 제아무리 손권의 총애를 받으며 자신의 성격대로 하는 여몽이라고 하지만, 지금 유종을 적으로 돌려 봐야 좋을 것은 하나도 없다는 걸 말이다. 저들과 칼을 맞대는 것은 형주를 온전히 차지한 뒤일 것이었다.
“봉림관은 아버님이 돌아가신 곳이네. 자네를 걱정하여 여기까지 한달음에 달려왔지. 그런데 지금 이런 모습을 보이게 만든 것인가? 진정 나를 이곳까지 부른 것도 모자라서 여기를 손씨의 무덤으로 만들려는 셈인가!”
“주… 주군…….”
“물러가 있게! 모든 직을 다 돌려받을 것이니, 후에 다시 부르겠네.”
여몽은 순간 입을 닫았고, 유종은 그런 손권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고 나서 조단을 바라보았는데,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차라리 이럴 것이라면 공자께서 군을 이끌어 주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손가의 사람들이 군권을 쥐고 있다고 하지만, 이대로 간다면 형주를 그대로 내주는 꼴밖에 되지 않습니다. 양양성에서 내란을 일으킬 이들과 손을 잡고 군을 일으켰는데, 이렇게 만들어 버린다면… 방도가 없습니다.”
유종이 억울할 수는 있었다. 자신이 가진 몇 안 되는 패를 꺼내었는데 결과가 이 모양이니, 책임을 아예 넘겨 버리고 싶은 마음으로 던진 말이었다.
솔직히 보급을 책임지는 조단이 직접 전군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지 않겠는가?
그러나 조충이 생각하기에는 조금 달랐다. 조충은 조단의 곁으로 다가가서 속삭이는 말로 조단에게 말했다.
“받아들이게.”
조단은 인상을 쓰고 옆에선 조충을 보았다.
“그게 무슨 말인가? 기껏해 봐야 보급을 위한 군을 움직이는 게 다인데, 무엇을 책임진다고 하는가?”
“뭐, 우리의 군을 움직여 장비를 꺾을 수 있겠는가? 그냥 받아들이기만 해 보라는 것이네.”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이네. 또한, 부공께서 손가와 이야기해 둔 것이 있는데 말을 그렇게 쉽게 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될 것…….”
조충이 앞에 나아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하기야 명령 체계가 통일되지 않으니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분명 문 장군이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면 장비를 잡았을 터인데, 손가와 유 형주가 원하는 바가 다르니 어쩔 수 없으니 말입니다.”
조충은 그들의 마음을 살살 긁으며 물음을 던졌다.
“유 형주, 진정 공자께서 군을 통솔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유종은 조충의 도발에 손권과 주유를 바라보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당연한 일 아니겠소? 작금 대사마가 원하는 바가 형주를 차지한 뒤 익주와 사주를 공격하는 데에 뒷받침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일 터. 그런데 지금 이런 식이면 가능하겠소?”
유종의 행동은 빤하였다. 군권이 손가에 집중되어 있으니, 그것을 조금이라도 가져오기 위한 행동이었다.
지금 장비와의 전투에서 패장을 꼽으라면 문빙과 여몽 두 사람이겠지만, 그중 책임이 더 큰 것은 분명 여몽이었으니 말이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손가 측의 잘못을 집중해서 이야기하려는 수작이었다.
조단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유종을 보았다.
“진정 그리 생각한다면 상소를 올리겠네.”
조단이 진짜 그렇게 말하자 유종의 눈이 살짝 크게 뜨였다.
“아, 아니… 그…….”
“진정으로 그리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소?”
조단이 무게를 잡고 진지하게 말하자, 도리어 조충이 인상을 찌푸리며 옆구리를 찔렀다. 조단이 고개를 돌리자 조충이 연신 고개를 흔드는 것이 보였다.
“우선 보급을 챙겨야 하니 물러나겠소이다.”
조단은 그 자리에서 나간 후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받으라 하지 않았는가?”
“누가 그리 진지하게 받으라 했는가? 그냥 저들이 긴장할 정도로 압박을 주라는 것이었네. 손가의 콧대는 좀 꺾어 놓고, 유 형주의 어깨를 키워 줘야 무시는 하지 않을 것 아닌가? 아니면 차라리 한곳에 몰아주든가.”
조단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뒤를 돌아보았다.
“굳이 머리 아프게 이러고 있을 것이 아니라, 말 안 듣는 놈들을 미끼로 던져 버리고 싶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