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426
426화
장비의 퇴각은 원래 계획대로 차분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일백 명을 희생하여 남은 병사들을 살리는 방법을 쓴 것이다.
노병들을 중심으로 결사대를 만들었으니, 그들이 목숨을 걸고 조단과 손가병들의 발목을 잡아 둔 것이다. 또한, 좀 더 쉽게 퇴각할 수 있게 도우며, 적의 발목을 끝까지 붙잡는 끈질김을 보여 두려움과 고통을 안겨 주며 자리게 주저앉도록 만들었다.
그러다 보면 결사대의 각오에 더해 장비의 무예가 신경 쓰일 터이고, 계속해서 쫓다가는 크게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품게 만든 것이었다. 거기다가 이미 양번을 차지하였으니 큰 공을 세웠고, 너무 장비에게만 치중하는 것은 도리어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판단을 유도하였다.
“아마 적들은 이리 생각하겠지요.”
“자명하지만, 그런다고 한들 장비를 잡는 것을 우리가 직접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주유는 손권의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장비를 잡는다는 것은 단순히 유비의 분노를 받아 낸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춘후와 저들은 자신들에게 알맞은 방패를 찾고 있습니다. 또한, 그 방패는 철저히 자신들이 이용해야겠지요. 그리고 그 시험이 장비되는 것입니다.”
“유비의 분노를 온전히 받아 내기만 해서 무엇을 하겠는가? 어차피 유비의 분노를 막는 방벽이 될 뿐이네.”
주유는 주먹을 살짝 쥐었다.
“맞습니다. 방벽, 그 방벽을 원하는 것입니다. 조단은 방벽을 고르러 온 것이고요.”
손권은 인상을 찌푸리며 주유를 쳐다보았다. 몇 번 들은 이야기지만 들을 때마다 기분이 나빠지는 말이었다. 자신이 선택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불쾌했다.
“굳이 따라야 할 이유를 모르겠군. 형남을 개척한 것은 이 손가의 힘으로 한 것이네. 과거 원한이 있는 수춘후와 손을 잡은 것은 안전히 진행하기 위함이지, 우리의 안위를 수춘후의 손에 넣어 주기 위함이 아니네. 그리고 지금 저들 또한 장비를 직접 잡으려 하지 않은가? 그냥 돕는 시늉만 내면 충분할 것이네.”
“저들이 직접 장비를 잡는다면…….”
주유가 답을 하기 전에 여몽이 나서 말을 이었다.
“저들이 직접 장비를 잡는다면 저희는 더는 중원의 빛을 볼 기회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저 수춘후 휘하의 양주 일대를 개척하는 무리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하여 저희가 장비를 잡기 위해 복잡한 수를 쓴 것입니다. 누구도… 기회를 잡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맞습니다. 저희가 유비의 원한을 맺는 것이 짧게 보면 큰 피해를 받는 일이지만, 수춘후의 곁에서 승기를 잡을 수만 있다면, 응당 유비가 차지한 세와 힘을 저희가 얻어 낼 명분과 권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손권은 고심하였다. 이번 일을 하겠다고 약조할 때는 조단에게 당당하게 말하였지만, 상황을 보니 얘기가 조금 달라졌다. 이미 적은 힘으로 형주를 온전히 얻어 낼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유종만 처리한 뒤 형주를 차지하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거기다 더하여 혹 장비를 수춘후의 가신이나 장자가 처리한다면, 유비의 분노를 기회로 잡아 칼을 거꾸로 잡고 다시금 양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수춘후는 우리와 원한이 있소. 공근, 그대도 수춘후를 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은가? 우리가 굳이 적을 늘릴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손권의 군막은 순간 시간이 정지된 듯한 분위기가 흘렀다. 손권의 얕은 생각을 모를 주유가 아니었다. 손권이 원하는 바는 자신이 중심에 서서 모든 이득을 차지할 수 있는 계략을 꾸민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의 상황에서 불가능한 일이었다.
“주군께서 원하시는 바는…….”
순간 여몽이 주유의 말을 막으며 나섰다.
“주군, 주군의 생각이 원론적으로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미 주군과 저, 그리고 수춘후의 대리자인 조단이 들은 내용입니다. 주군께서 손가를 위해 그런 판단을 한다고 하면 소신 역시 따르겠으나, 주군께서 혹여나 유비의 분노가 두려워 물러난다면 손가의 무명이 떨어질까 두렵사옵니다.”
손권의 눈썹이 순간 움찔하며 깜박거렸다. 손권에게 남은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손가의 이름을 지키는 일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그런 손가의 이름을 더럽힐 것이라는 말에 약간 감정이 욱하고 올라왔다. 곧장 손권의 표정이 변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가의 명성을 지키는 일이라면 감수해야 하지 않겠는가? 병사들도 응당 이해하겠지. 먼저 일어나겠네.”
딱 보아도 기분 나쁜 모습의 손권이 일어나 막사에서 사라지자 주유와 여몽만 남아 자리하고 있었다. 주유는 안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여몽은 불안한 듯 계속해서 서성거렸다.
“어찌하여 그리 편안하십니까?”
“뭐, 일은 이미 진행되었고 주군께서 허락하였는데 무엇을 걱정하겠는가? 그저 나는 일이 어찌 진행될 것인지만 생각할 뿐이네. 게다가 최초의 계획은 잘 되어 가고 있지 않은가? 전장에서 장비를 분리하여 다른 이들이 혹여나 공을 세울 일을 막았고, 이제는 장비가 자신의 계획이 모두 성공해 완벽한 퇴각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품게 했지. 그러하니 다음이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도독, 단순히 그런 의미가…….”
“넓게 보면 다르다는 말인가?”
“그렇사옵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주군께서 수춘후의 뒤를 노리는 일을 계획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글쎄… 그것이 맞는 방법일 수도 있지 않은가? 자네도 수춘후를 꺾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 않은가? 그때의 일이 그냥 연기가 아니라 본심이 어느 정도 포함이 된 것이 아니던가?”
“그렇다 하여도 지금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주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런 것이지.”
“도독, 어찌 그리 무심하단 말입니까? 도독께서 지키고자 하는 손가입니다. 백년의 대계를 세워 응당 천하를 오시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여몽의 패기 넘치는 말에 주유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이 차이는 크지 않으나 경험의 차이는 꽤 있었다. 아니, 차라리 그러한 경험이 없는 편이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책의 옆에 서서 손가를 천하의 대가로 만들고자 했던 자신의 과거 모습이 여몽에게 보였기에 주유는 계속해서 미소를 띨 뿐이었다.
“나는 대계를 세우기에는 이미 머리가 굳었네. 그대가 후대의 계를 짜 보도록 하게. 내 자네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지지할 테니 말이야.”
“도독…….”
“나의 뜨거웠던 시기는 선주와 함께 떠나갔네. 지금의 주인을 쫓아야 하는 일이야 수춘후가 내주는 먹이를 어찌 잘 사용할지 밖에 없었네. 그것이 너무 익숙해졌어. 다른 이들을 가르칠 때 가슴은 뜨겁더라도 머리는 식히라 하였는데, 나는 이미 가슴도 이미 식어 버렸네. 그래서 이제는 잘 보이지 않네. 그저 익숙해진 일밖에 하지 못하는 것이지.”
여몽은 주유의 한탄에 고개를 숙였다.
“도독, 이 일로 모든 것이 바뀔 것입니다. 도독께서 생각하신 대로 익주를 차지하고 남해와 남만의 길을 장악하여 곳간을 채운 뒤 독립하여 도독과 제 손으로 일국을 세우는 것입니다.”
주유는 쓴웃음을 지어 보이며 여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하게. 그 일은 우선 장비의 죽음이 전제로 되지 않는가? 이상은 없는가?”
“장비가 대단하다고 하지만 사람인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여포의 때를 복기하여 보시지요. 단순한 배신으로 쉬이 처리가 안 되는 인물이 있다는 것을 배우지 않았습니까. 장비는 저 스스로 여포만큼 대단하다고 하였으니 응당 거기에 대해 응대를 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 * *
장비는 군을 이끌고 산도를 지나 방릉으로 갈 길목에 접어들었다. 방릉 일대에 난이 일어났다고 하지만 본인이 직접 나타난다면 그러한 난 따위는 금방 수그러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방릉이 아닌 상용으로 가시는 것은 어떠하십니까?”
장달의 물음에 장비는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의 결정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지금 네놈이 나의 판단을 의심하는 것이냐?”
“그것이 아니옵고 방릉은 난이 일어난 곳이니 그곳을 피하여… 으악!”
쨍그랑!
장비가 던진 술병에 맞은 장달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소리는 크게 울렸지만, 진심으로 던진 건 아닌지 그리 아프지는 않았다.
“감히 상장의 말에 토를 다는 것은 어디의 법도인 것이더냐? 내가 결정하면 너는 이를 수행하면 될 일이다. 일전에 명하여 주변의 군민을 각출하는 것은 어찌 되었는가?”
머리를 쥐고 있는 장달을 보며 장비는 그에게 다가가 다시 한번 외쳤다.
“내 물었다! 각출한 것은 어찌 되었느냐고!”
“최대한 많이 모아 보았습니다. 하온데 병사 중에 형주 출신이 많기도 하고 홍수가 크게 나서…….”
“하여?”
장달은 무슨 말을 하려 하였지만 이내 장비가 그의 목을 잡았다. 그러고는 그를 메다꽂고 나서 말했다.
“분명 한 달을 먹을 정도의 양초를 구하라 하였다. 그런데도 그것을 못 구하여 내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이더냐!”
장달은 고통에 바닥에 뒹굴며 버둥거렸고 장비는 그의 위에 발을 올려 두며 말했다.
“분명히 말하마. 사흘 내에 나머지를 채워 놓거라. 그렇지 않다면 군법으로 네놈들을 처결할 것이다!”
장비가 장달을 몇 번 발길길 하였고 장달은 그저 바닥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었다. 주변의 병사들은 장달을 보며 수군거렸고, 오로지 범강만이 장달에게 다가와 그를 일으켰다.
장달은 굳은 얼굴로 이를 갈면서 장비를 바라보았다.
“어찌할 것인가? 저자가 방릉을 계속 고집하면 일이 어그러질 수도 있네.”
“어차피 큰 얼개는 다른 것이 없네. 병사들은 얼마나 끌어들였는가?”
“형주 쪽 애들은 이번 명령을 듣고 나서 완전히 우리 쪽으로 돌아섰네.”
“나머지는?”
“노병들의 자식들이 문제이네. 유주 놈들이야 군영에서 원체 대우해 주는 분위기 아니던가? 돌아설 분위기도 풍기지 않네. 도리어 그놈들은 복수심을 품고 있으니 어찌해야겠는가?”
“뭘 어찌하는가, 같이 보내 버려야지. 군사들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장비의 생사가 더욱 큰 문제이네.”
“그놈을 살려서 데려갈 수 있겠는가?”
장달은 말이 없었다. 장담할 수는 없는 바였다.
“술이나 많이 마시게 하게.”
“알겠네.”
“너무 형주 놈들만 포섭하지 말고, 내 몰골을 보고 겁을 먹은 놈들, 그놈들 한 번 만나 보게. 이번 일에 목숨이 간당간당한 놈들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불평을 조금 털어놓으면 그놈들도 동조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사흘 후, 장달이 다시 돌아온 날 밤. 장비는 술에 진탕 취해 있었지만, 바깥에서 들리는 말소리에 장달이 돌아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장비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사모를 지팡이 삼아 나아갔다. 그러나 장비는 곧바로 분노를 뿜어내었다.
마차는 가벼웠고 도리어 거적을 덮은 이들을 이끌고 왔으니 분노가 더더욱 폭발하는 것이었다.
“장달! 네 이놈! 내 말을 어찌 생각하였기에 그런 짓을 하는 것이냐! 거기다가 무지렁이들을 이리 데려와? 내 직접 모두 참할 것이다!”
장달은 아무런 말 없이 손가락으로 장비를 가리켰고, 불화살들이 순식간에 대장기가 있는 곳을 향하여 날아들었다.
“죽는 것이 두려워 이제 이런 짓을 한단 말이더냐! 네놈을 패 죽이겠다! 모두 나와 장달을 잡아라!”
장비는 범강과 다른 수족들을 찾았으나 이미 범강이 장비가 술을 마시고 뻗은 사이 모두 처리하고 병사들을 물린 상황이었다.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 진영을 바라보며 장비는 실소하였다.
“어처구니가 없군.”
장비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차피 겁을 조금 주고 이들을 이끄는 놈들 몇 명만 죽인다면 끝날 일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장달의 목을 베는 것이리라.
삼국지 : 미완의 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