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435
435화
하얀 소복을 입은 관우는 지휘소에 앉아 인상을 찌푸리며 지도 위에 서 있는 말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슬며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잠시 가만히 있다가 살며시 입을 떼는 관우의 음성에 반가움과 어찌 모를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우금이로군. 집요하고도 집요해. 참으로 집요하기 그지없어.”
관우는 그런 말을 하면서도 웃음을 흘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웃음에 약간 묘한 느낌을 받은 관평이 다가와 술을 내어 놓으며 물었다.
“아버지, 어찌 그리 웃음을 보이십니까?”
장비의 죽음에 마음이 많이 쓰였는데 그래도 이렇게 약간이라도 웃음을 지어 보이니 다행이라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관우의 웃음을 듣는 순간 걱정과 불안이 드는 걸 막을 수 없었다.
“그리운 친우가 전장에 노구를 이끌고 나왔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느냐? 그리고 우금이 순욱과 다른 길을 걸으며 이제는 죽기 전에 만나지 못할 것을 걱정하였는데, 얼굴을 보며 서로 전장에 서 있을 수 있을 테니 어찌 기쁘지 않겠느냐?”
“우금이라면 조조의 군에서 크게 승리를 가져오던 인물이 아니겠습니까? 응당 조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관우는 관평의 말에 다시 한번 웃음을 지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우금의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과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던 와중, 관우의 얼굴이 수심에 잠겼다. 우금을 상대함에 있어 의제 장비가 있었다면 기지를 발휘하였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구나. 너의 말이 맞다만, 나이가 드니 다른 감상만 머릿속에 떠오르는구나. 한데 우금이 전장에 나오니 과거 천하가 어지럽던 시절 내 머리가 푸른빛을 띄었을 때가 저절로 생각나는구나. 그때는 의형이 결정하면 의제가 길 방향을 가리키고, 내가 나아가 실현시켰지. 그때는 참으로 행복했다. 우리는 덕을 세우고, 공을 세우며, 행으로 바른말을 남기었다.”
관우는 춘추의 말을 인용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다가 이내 얼굴을 굳히고 일어났다. 그가 월도를 직접 들고 나오자, 병사들은 모두가 하던 것을 멈추고는 관우를 바라보았다. 관평 역시 재빨리 뒤따라 나갔다.
“아버지, 아버지답지 않으십니다. 의관을 정제하고 나가시지요. 보는 눈이 많습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풀어헤친 머리 사이로 관평을 바라보는 관우의 눈이 꽤나 위험해 보였다. 마치 모든 것을 불살라 버릴 것 같은 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잠시, 이내 원래대로 돌아오고 나서, 관우의 눈은 다시 관평이 존경하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응당 전장에 나감에 있어 사사로운 마음은 없어야 한다만, 비워 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로다.”
관우가 월도로 바닥을 두드리자 쿵 하는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울지 않았지만, 병사들의 눈에는 마치 관우가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아 보였다.
쿵!
다시 한번 관우가 바닥을 두들기자, 병사들의 가슴에 마치 무엇인가 파문이 일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관우의 감정이 자신들에게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쿵!
세 번째의 울림에 병졸들은 파문에 동참하며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찰박거리는 갑주의 소리와 가슴을 두드리는 소리, 그리고 잡음들이 사라지고 침묵으로 가득찼다. 그러자 누군가는 훌쩍였고, 누군가는 눈시울을 붉혔으며, 누군가는 고개를 숙였다.
병사들도 자신이 깊이 존경하는 관우에 대하여 잘 알았다. 병사들에게 언제나 근엄하고 따뜻한 관우는 권위만 내세우는 이들과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었다.
병사들이 원하는 바를 잘 아는 만큼, 그를 가슴 깊숙이 모시는 이들이 많았다. 성인(聖人)과 민중이 바라는 바가 같다는 춘추의 말처럼 관우는 병사들과 같이 웃고 떠들었으며, 관대하며 선하였다. 낮추고 양보하며 도리에 맞는 말을 하는 관우에게 감화하여 병사들은 스스로 방종을 버리고 따랐다.
오기가 고름을 입으로 빨아 병사들을 굴복시켰다면 관우는 스스로의 행동으로 병사들을 굴복시켰으며, 자신에게 스스로의 심장을 뽑아낼 정도의 충성과 의기를 가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새로 들어오는 병사들에게도 각자의 마음이 덧입혀져 전해졌고, 관우는 병사들에게 신이 되어 갔다.
그런 그들의 신이 하얀 옷을 입고 월도로 종을 치며 자신만의 장례를 치르는 것처럼 보였다.
쿵!
마지막으로 관우의 월도가 바닥을 내리쳤을 때 병사들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그제야 관우는 월도를 들고 춤을 추듯이 월도를 휘둘렀다.
휘리릭!
관우만의 장례가 시작되는 것 같았다. 병사들은 감정이 격해져 바닥에 엎드려 우는 이들이 나타났고, 곡소리와 바람 소리가 관우를 감쌌다. 관우가 마치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 날아갈 것 같아 보였다. 병사들은 그러한 관우를 보낼 수가 없었다.
“군자께서 여기로 오시네. 하얀 옷에 얼굴은 붉은 듯하시다. 하얀 수염은 휘날리니 오래 사시고 죽지 마소서.”
그 말이 조용한 가운데 퍼져 나가자, 사방이 관우에게 매달리는 것처럼 휘감았다. 병사들이 이를 따라 외치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바람은 노래가 되었고 노래는 다시금 그들의 심금을 흔들어 놓았다. 관우와 병사들이 하는 노래는 마치 하늘에 기도를 올리는 것 같았고, 관우는 그런 기도를 받아들여 하늘에 올리는 제사장과도 같았다.
관우의 움직임은 더더욱 격렬해졌고 그의 온몸에서 열기가 뿜어지듯 김이 피어 올랐다. 관평을 비롯한 자식들은 걱정스러운 듯 관우를 보았다.
관우의 모습과 병사들의 분위기에 차마 움직이지 못하는 그들은 그저 바라만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쿵!
월도의 뒷부분이 다시금 바닥을 후려치며 땅을 울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관우의 춤이 끝나는 그때, 그가 자리에 멈추어 서서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근엄한 얼굴로 병사들을 바라보던 관우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바람 소리에 들려오는 어떤 목소리를 들으며 숨을 내뱉었다. 병사들은 관우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숙였고, 관우는 하얗게 센 수염을 휘날리다가 이내 들어가려는 순간 병사들 사이에서 외침이 흘러나왔다.
“장군께서 원하는 바대로 하소서!”
“장군께서 원하는 바대로 하소서!”
관우는 그들의 말에 몸을 세워 목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관평은 급히 관우를 따라 들어가자, 눈을 감고 월도를 꾹 잡고 서 있었다. 놀라서 달려가니 관우가 곤을 내밀어 그를 말렸다.
“호들갑 떨지 말거라. 병사들이 흔들린다.”
“아버지…….”
“이번의 전쟁은 과거와 다르다.”
“어찌 그리 말하십니까?”
“많이 다르다. 과거 대의명분 위에 서서 전장에 나섰을 때는 병사들 스스로가 의로움을 느끼니 결코 물러나지 않았다. 하나 이번은 어떠하더냐? 그저 사전(私戰)일 뿐이다.”
“숙부의 죽음이 어찌 사전…….”
“사전이다. 의제의 죽음은 전장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하면 의제의 죽음을 누구를 탓해야겠느냐? 의제가 스스로 전장에 나서려 했으니 의제를 벌해야겠느냐, 아니면 이를 허한 의형을 탓해야 하느냐. 아니면 이를 방조한 이들을 벌해야겠느냐?”
“아버지, 어찌…….”
관우는 월도를 관평에게 넘기며 물었다.
“내가 전장에서 죽으면 어찌 해야겠느냐?”
“응당 복…….”
“너는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를 죽인 자를 원수로 삼지 말 것이며, 도리어 그자에게 고개를 숙여 병사들을 온전히 보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네가 할 일이다.”
“…….”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관평을 바라보던 관우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나의 시대는 낙양을 얻어 내는 것으로 다한 것이다. 의형께서 드디어 한조를 받들어 올리는 자리에 앉았고 우리는 그 옆에 섰으니, 청사에 가장 아름다운 위치에 적힐 것이다.”
“아버지께서 천하를 일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관우는 아직 어리게 보이는 아들의 등을 두들기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부의 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러한 말을 듣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아마 이렇기에 춘추에서 각 선현들이 이를 주의하라 말하는 것이었으리라.
“월도도 무거워 들지 못하는 노인을 어디까지 몰아 세워야겠느냐?”
* * *
조비는 하후무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후가에서 독단으로 움직여 일을 이상하게 만들 뻔 하였으니, 하후무가 고개를 들 수 없는 일이었다.
“혹여 일이 커졌으면 어쩔 뻔하였는가? 어찌 가솔들을 다스리지 못하여 내 마음을 쓰게 만들어? 중달이 알아서 저들을 속여 이 일을 처리한다고 하니, 동생은 일에 대한 반성으로 자숙하도록 하게나.”
“명심하겠습니다.”
“이번 일이 그대의 동생 때문에 틀어졌다면 가벼운 징계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네.”
조비가 불편하다는 듯 입안에 포도를 집어넣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원담이 지금 세를 키워 나가며 병주를 건드리고 있었고, 북방에서는 동이들이 준동하면서 군을 움직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그렇기에 둘 간의 전쟁이 더욱 깊어지도록 사마의의 행동을 지원하는 명을 내렸지만, 중간에 하후 가문이 이 일을 낚아채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그래도 일이 잘 끝나지 않았습니까? 유비의 출병에도 흠집을 내었고, 사마의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수춘후는 이번 일을 유비의 소행으로 알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조비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사실을 수춘후가 그리 아는 것이 아니라, 그리 말하게 하는 것이네. 계중 그대는 생각을 하는 것인가?”
주삭이 오질을 바라보며 웃음을 짓자 오질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엇이라! 네놈이 그리 말한다면 직접 군을 이끌고 나아가 저들을 상대하면 될 일 아닌가?”
“하?”
싸움이 날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조비가 손을 한 번 들었다.
“그만. 싸우는 것은 이제 재미가 없군.”
그 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개를 바닥에 박으며 예를 표했고, 하후무는 그런 두 사람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서 그 다음은 어쩔 것인가? 자네 집안에서 문제를 일으킨 것이니 끝맺음은 해야 할 것 아닌가?”
“온현의 사마 가문에 먼저 사과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조비의 표정은 묘하게 변하였고 하후무는 살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조정에 사죄를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말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상처가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조비는 하후무의 말에 약간의 웃음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리 알고 있지. 이만 물러가게. 물건을 준비하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이니 말이야.”
하후무는 예를 표하며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갔다. 그가 표정 관리를 하며 그 자리를 벗어나자, 뒤로 시종이 따라붙었다.
“동생 놈들은 어디 있는가?”
“가택에 연금해 두었다고 들었습니다.”
하후무는 자리에 우뚝 서서 뒤를 돌아 시종을 바라보았다.
“들었습니다는 무슨 뜻인가?”
“그것이…….”
근신하라고 한 놈들이 뛰쳐나간 것이 뻔히 보이는 일이었다.
“난리 났군. 뛰어가서 말을 가져오게! 그리고 사람을 보내서 그놈들 잡아오게 만들어!”
“예,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