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437
437화
노숙은 스스로 죽음까지 내보이며 승태의 감정을 이용했고, 승태를 길 위로 올려놓으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 승태 또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물건들이 후대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후대에 남겨 두기로 말이다.
승태가 결정을 내리고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가후였다. 가후는 거동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있음에도 도움을 받아 의복을 정제하여 승태를 마주하였다.
“죽기 전에는 다시 못 볼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닌 가 봅니다. 끝내 결정의 결실을 못 보고 죽을 거라 여겼음에도 이리 저를 찾아보러 오셨다는 것은 제가 생각한 바가 맞습니까?”
이빨이 거의 없어 발음이 새어 나가고 있었지만, 승태에게는 정확하게 들렸다. 아마도 가후에게서 어떻게든 조언을 구하고자 하는 승태의 마음이 뒷받침되어 그런 듯하였다.
“공께서 원하시는 바가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라면 그러할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공께 조언을 구하고자 이리 찾았습니다.”
“그간 제 조언으로 무엇인가 이루는 것은 없지 않았습니까. 한데 어찌하여 제 말을 듣는다고 하십니까?”
가후는 약간 서운하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승태는 고개를 내저었다.
“공의 말을 무시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저 그 길에 올라서기에는 제가 모자람이 많았고, 두려웠으니 말입니다.”
“이해하는 바입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전혀 생각하지 않았을 것인데, 권력의 두려움을 안다는 건 참으로 홍복인 일이지요. 권력의 무게를 아는 분이 권좌에 앉으면 그 힘은 정제되기 마련이니, 그 어두컴컴한 손들이 쉬이 움직이지 않겠지요. 하여 어디까지 가실 생각입니까?”
“일국을 세울 뿐입니다. 천하의 주인이든 패자가 되는 것은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일국을 세워 나의 가족이, 나의 친우들이, 그리고 나의 것들을 천하의 외진 풍파에서 지켜 내고 싶을 뿐입니다.”
가후는 승태의 말에 껄껄껄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순간 기침을 하자 그의 장남인 가목이 천을 가후에게 쥐여 주었고, 잠시 후 기침을 멈추었다.
“몸이 이제 제 말을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다. 자그마한 몸뚱이도 이럴 진데, 천하 모두를 발아래 둔 상황도 아니거늘 남들을 지키기 위하여 천하를 움직이려는 주군의 감상적인 태도를 어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욕심을 위해 더 많은 것을 채우거나 쌓는다면 길이 보였을 것입니다. 지금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옵니다.”
가후의 말은 신랄한 비판이었다. 자신의 몸을 다스리기도 어려운 일인데, 자신의 것들을 지키기 위해 나라를 만들겠다니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나라는 본시 울타리이니 그것이 무엇이 다르단 말입니까? 설령 어렵고 쉽지 않은 것이라 해도, 그 어려운 길에 올라 굳건히 서 있겠습니다. 이것이 나의 욕심입니다.”
가후는 승태의 말에 서서히 웃음을 지어 보였다.
“상고의 제왕들은 본시 왕의 자리에서 마땅한 미덕을 내보였습니다. 주군과 닮은 듯하나 그들에게서는 주군이 원하는 바는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주군께서 봐야 할 일은 고조께서는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어떤 일을 하셨는지 봐야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가족과 가까운 사람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유방이 어찌하여 측신(側臣)들을 팽하였는지 배우셔야 합니다. 소중한 모든 것을 지킬 수는 없는 법이니, 지금 말씀하신 것은 욕심이 아니라 망상이옵니다. 주군께서는 이익 앞에서 모든 이들이 초연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주군의 친분을 이용하여 조금이라도 이익을 얻고자 하는 자들은 많은 것입니다.”
승태는 가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할 것이다. 당연히 사람은 이득 앞에서 연약해지니 이를 무시하진 않았다.
“하면 나의 것 밖에서 이를 빼앗아야겠지요.”
승태의 말에 가후는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승태의 눈에는 과거 자신이 약속하며 숲을 불태워 버린 그 광경이 보였다. 자신의 가족을 노리기 위해 가담한 모든 일을 어떠한 변명도 듣지 않고 공평하게 북망산으로 보내 버린 그때의 눈 말이다. 승태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가후를 바라보았다.
“나에게 무릎 꿇는 자는 나의 것이 될 것이고, 칼은 든 자는 그 바깥에 있으니, 그들에게서 빼앗아 나의 것들을 배를 불려 서로 싸우는 일을 막고 바깥에서 가져오게 할 것입니다.”
“그것이 천하를 차지하는 일 아닙니까?”
승태는 고개를 저었다.
“나의 것을 늘리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울타리를 넓혀 내 것이 늘어나게 된다면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습니다. 넓은 울타리는 신경 쓸 것이 많으니 우선 울타리 안을 채워야지요.”
“울타리 밖에서 온 이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부에 있는 나의 것을 탐하는 이리와 같은 자라면 응당 처리해야 할 것이고, 견마와 같은 자라면 품어 안을 것입니다.”
가후는 살짝 웃음을 지어 보이며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일이야 주군의 판단일 것이니, 그저 나라의 법도가 굳건하게 유지된다면 그러할 것이지요. 하나 결국은 작금의 한과 같이 될 것입니다. 법도는 무너질 것이고, 바깥에는 적이 있으니 적들이 언제나 호시탐탐 주군의 나라를 원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유지될 것입니다. 자신의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전국(戰國)의 시대에 백성들을 못살게 하려는 이들도 있었지만, 망하지 않기 위해 내어놓는 자들도 있었으니 그때의 도의가 떨어졌다면 나라가 무너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요. 나는 만 년 동안 가는 국가를 원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망상을 품을 정도로 꿈속을 걷는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가후는 계속해서 미소를 지으며 가목의 손을 두드렸다. 붓을 달라는 행동이었다.
“주군께서 말하는 것 또한 꿈 위를 걷는 것과 마찬가지인 말이옵니다. 한데 이리 생각해 보니 주군의 말은 현실의 일과 같으니 참으로 마음이 갈대와 같습니다. 귀가 순해진다고 하여 마음도 순해지면 아니 될 텐데 말입니다.”
그것은 승태에 대한 경고였다. 가후야 이제 오늘내일하는 상황이니 마음이 순해지든 철혈의 마음을 가지던 무슨 상관이겠는가?
“서북 출신의 인물들에게 서신을 전하겠습니다. 그들의 입에서 먼저 주군의 왕위를 논하도록 할 것입니다. 근간이 없는 이들이니 그들을 조금만 어루만져 주신다면, 주군을 위해 마소와 같이 일할 것입니다.”
승태는 가후가 가목에게 전한 서신을 보았다. 무슨 내용이 적혀 있길래 그런 말을 하는지는 몰랐다. 마초의 세력들이 가후의 말을 들을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가후와 친분이 있는 이들을 건드린다는 것 같은데, 량주나 병주 출신의 무장들은 생각이 나는데 문관들이 있었나 싶었다.
가후는 가목을 불러 작은 글귀를 승태에게 전하였는데, 그곳에는 견리사의 견위사리(見利思義 見危思利)라고 쓰여 있었다. 논어에 유명한 말인 견리사의 견위수명이 변형되어 적혀 있는 것이었다.
“이 말을 명심하라는 것입니까?”
“명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한번 떠올리면 될 것입니다. 이익을 볼 때는 많은 신료가 이를 같이하고자 할 터이니 의를 이용하여 그들을 이용하고, 위태로운 일에는 이익을 이용하여 그들을 옭아매라는 것입니다. 의는 이익을 포기하게 하 것이며 이익은 위험을 감수하게 할 것입니다.”
승태가 가후의 조언에 예를 표하자, 가후는 그 자리에서 엎드려 조아렸다.
잠시 후, 승태가 떠나고 가목이 그를 일으키려 하자 가후는 안심한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참으로 먼 길을 돌아왔구나.”
“아버지…….”
“나는 일신의 안위를 구하고자 천하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동탁을 모시고 이각과 곽사의 밑에서 일했다. 이것도 크나큰 죄일 것인데 장수를 죽는 길로 끌어들이기까지 하였다. 한데 끝이 이리 영광스러우니 참으로 두려우면서도 안심이 드는구나.”
“아버지.”
“너희들은 어찌 서려 하느냐?”
“아버지의 뜻에 거스르지 않으려 합니다.”
“나의 뜻에 거스르지 않는다?”
“그렇사옵니다.”
“잘 되었구나. 그렇다면 능력은 보이되 뽐내지 말고 왕자가 될 분들과는 친분을 가지지 말거라.”
그러나 가목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미 친분이 있는 인물이 있구나.”
“둘째 공자님께서 성인의 이름을 받으시기 전부터 친분을 쌓았습니다.”
“하기야… 여씨의 풍모를 더욱 많이 가져 서한의 황제가 온 땅을 부탁하며 여씨의 가문을 이어 달라는 말을 할 만한 인물이지.”
“그렇습니다.”
“진정 그리하겠느냐? 무를 통해 명성을 얻으면 응당 사람이 모일 것이고, 그리된다면 분명 다른 것을 꿈꿀 것이다. 사람이 모이게 되면 그로 인한 욕망이 생길 테니 말이다.”
가목은 아무런 말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주군의 나라가 한 대를 못 넘고 무너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어찌해야겠습니까?”
“계속 붙어 있거라.”
“세작… 노릇을 하라는 것입니까?”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너의 결정이다. 하지만 둘째 공자께서 그릇된 길을 가는 것은 막아야 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 * *
청주의 황도는 시끌시끌해지기 시작하였다. 승태가 지금 전쟁 중임에도 청주의 황도가 된 임치에서는 많은 소리들이 오고 가는 중이었다.
“작금 저들을 상대하는 수춘후를 왕의 자리에 앉히자는 것이오? 한조의 기풍을 무너트리겠다는 뜻인데, 어찌 그런 말을 쉬이 꺼낼 수 있단 말인가?”
“말은 바로 하라고 지금 서한의 가짜 황제가 유비와 조비를 왕으로 세울 것이라는 것은 다들 아는 사실 아니오? 심지어 눈치만 보고 있다는 것도 말이오. 유비야 쉬이 할 수 있으나 조비는 어려운 일이니, 이리저리 많은 상소들을 받아 얼마 후에 수춘후의 군을 꺾고 나서 하늘에 제를 내리며 할 것이라는 얘기 말입니다.”
“그것이 사실이오? 말도 안 되는 소리!”
화흠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무슨 말이 안 되는 소리요? 조비가 공의 자리에 오른 것은 말이 되는 소리였소? 그냥 작금의 황실은 순가의 꼭두각시나 다름없는 상황이니, 그런 와중에 한조의 전통이 어떻고 예법이 어떻고 그런 걸 따질 수가 있겠소.”
“그들이 그런다고 한들, 우리가 같이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공융의 말에 다른 신료들은 순간 말을 이어나가지 않고 그저 웅성거리는 소리를 낼 뿐이었다. 그들의 사직은 승태의 깃발 아래 있는 것과 다름이 없는데, 깃발의 위상을 살려 주지 않는다면 어찌 될지는 빤히 보이는 것 아니겠냐는 생각이었다.
유민은 손을 내저으며 신료들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숙여 자신에게 예를 표하기는 했으나 저들은 분명 수춘후의 신하이리라. 수춘후의 권위가 부족하다면 내어주면 될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필요한 것을 얻으면 될 일이고 말이다.
“고례에 따르자면 한조에서 공과 왕의 자리는 오직 유씨의 것이야 함이 맞겠지만, 이미 세를 빌려 나라를 이어나가는 것을 이 자리에 앉은 나조차 모르는 바가 아니오. 그러하니 내 수춘후에게 그대들이 원하는 바를 내리고 황가의 권위를 세우고자 하니, 그대들이 여기에 맞게 해 주시오. 공의 자리를 원한다면 내줄 것이고, 왕의 자리를 원한다면 그것 또한 내줄 것이오.”
공융은 그 말에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돌렸으나 이미 유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폐하!”
“내 조회를 파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