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45
삼국지 : 미완의 군주 44화
군사부 곽가는 하비에서 올라온 수많은 보고문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죽간들을 보다가 상위에 올라온 하비성의 보고들을 싹 쓸어버리고 앞에 서 있
는 문관에게 물었다.
“내용을 봤느냐?”
문관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럴 일이 있겠습니까? 이 보고는 좨주님과 사공께서만 열 수 있다고 당부하
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감히 저희가 어찌······.”
곽가는 아미를 찡그리며 죽간 서너 개를 던지며 말했다.
“그럼 이건 뭐, 하비에서 이 미친 짓이 매일 일어난단 말이냐?”
문관이 기어서 곽가가 던진 죽간을 훑어보고 답했다.
“누가 건드릴 일이 없으니, 첩자들이 거짓을 고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실이 아
니겠습니까?”
곽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주목이 자리에서 쫓겨나기 전에 행패를 부리는 것 같은데? 상서령은 어찌
괜한 일을 먼저 알려서 일을 엉망으로 만든단 말인가?’
부민들이 각종 비위로 끌려가는 것을 모조리 중죄로 엮어서 참형을 요청하는
상서를 올린다는, 맨 위의 보고에 곽가는 인상을 썼다. 그러다 이내 눈을 크
게 뜨며 웃었다.
“설마··· 이 조그만 꼬마가 다시 돌아올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하는 건가?”
부민들의 공백은 한나라 관리들에게는 군대의 중간 간부가 사라지는 상황과
비슷했다. 아직 봉건적인 관료 체제에 묶여 있는 이들에게는 적응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연주의 부민들을 쓸어버리고, 연주를 관리한 조조의 조정에서 일한 곽
가에게는 빤히 보이는 일이었다.
“외통수네. 이 요물딱지 같은 놈.”
곽가는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봐도 도저히 서주를 맡아서 일할 사람을 떠올리
기 어려웠다.
“일단 싹 갈라서 견제하게 만드는 편이 좋겠지?”
곽가는 무엇인가를 적어 내더니, 문관에게 던져 주면서 말했다.
“이걸 상신하시오.”
문관은 죽간을 잡으려다가 몇 번 공중에서 헛손질했다. 결국 그는 땅바닥에
죽간이 몇 번 구른 뒤에야 잡을 수가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던 곽가는 하잘
것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몸으로 난세에 어찌 살아남으려고······.”
문관은 놀란 눈으로 곽가를 바라보며 억울한 눈빛으로 말했다.
“좨주, 저는 문관입니다.”
“문관은 전쟁터 안 나가나? 자네가 그러면 황궁에서 전령밖에 안 될 거야. 격
검 좀 배우게.”
“그걸 어디서 배웁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어서 가게. 쉬쉬.”
죽간을 들고 사라지는 문관의 뒷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던 곽가는 일어
나서 몇 개의 죽간을 들어 올리고 인상을 팍 썼다.
“서주목 이 인간··· 노의 시위 걸게도 치워 버렸는데? 안전장치도 치워 버리
면 꽤 골치 아픈데······.”
***
하비, 진가 장원
진궁과 진규가 차를 마시며 바둑을 두고 있었다. 진규가 두고 있는 백이 밀리
는 형세였지만, 진궁은 계속 고민하며 착수를 못했다.
“장고(長考) 끝에는 결국 악수일 텐데, 빨리 두는 게 어떤가?”
“장고도 장고 나름입니다. 그리고 직접 나서는 일은 안 하십니까? 이리저리
숨어 봐야 얻는 이득은 없을 텐데요.”
진궁은 그 말을 하고 착수했다. 그러고 나서 진규를 빤히 바라보았다. 진규는
피식 웃고는 바둑판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수(後手)가 의도를 드러내면, 선수(先手)는 후수의 목적 점을 먼저 차지하
지 않겠는가. 쉽게 드러내는 것은 아니 될 말이지.”
“언제 드러내실 요량입니까?”
진규는 클클 웃으면서 진궁을 바라보았다.
“왜? 불안한가?”
“불안하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요.”
“겨우 늙은이 한 명이 뭐가 무섭다고.”
“그 늙은이가 평도후를 무너트릴 계획을 세웠고, 서주를 좌지우지하는 실력을
갖췄으니 문제 아닙니까?”
“그런가?”
진규는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이번 일은 자네가 생각한 것인가?”
“아닙니다. 오롯이 서주목께서 작정하신 일입니다.”
“그런가? 조금 성급한 감은 있지만, 나쁘지 않았네. 그리고 뒤처리도 깔끔하
고. 솔직히 일 년 만에 이렇게 서주를 쥐락펴락할 줄은 몰랐지.”
“상께서 침묵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닙니까?”
진규는 진궁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글세? 서주목, 그 사람은 꽤 능구렁이 같아서 내가 둘째를 보내지 않았으면
움직이지도 않았을 것이네. 솔직히 어느 때 보면 조 사공보다 무서워. 그 어
수룩한 얼굴 뒤에 무엇을 숨겨 놓은 것인지 알 수가 없지 않은가?”
진규는 차를 한 잔 마시고, 다시 바둑판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목표도 목적도 알 수가 없어. 말할 때마다 듣는 이들이 현혹되는 말을 늘어
놓고, 이루어 줘 충돌도 일으키지 않지. 그게 참 불가능한 일이거든. 그 사람
을 이미 겪어 본 사람이 아니면 말이야. 그런데 신안을 가진 것인지, 아니면
그런 사람들만 꼬이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참하고 일 잘하는 사람들만 모였어.”
“꼭 그렇지만 않더군요.”
“아, 그 사마 씨 아이를 말하는가 보군.”
“예. 음흉한 것 같으면서 어수룩하고··· 흉심을 알 수가 없습니다.”
“서주목과 비슷한가?”
“그것은 또 아닙니다. 서주목의 음흉함은 뭔가 순수하다면, 사마 씨 아이는
말 그대로 음흉합니다.”
“서주목이 그를 모르지도 않겠지.”
“그런 것 같습니다. 낭고의 상이라고 떠들어 대던 예형을 내쫓았다고 하니 말
입니다.”
“다 쓸 곳이 있어서 데리고 왔을 것이네. 자네나 나 같은 늙은이가 언제나 서
주목 옆에 보필할 수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런 사람도 필요한 법이네. 서주
목 주변의 인물들이 암계(暗計)나 쓸 줄 알겠는가?”
진궁은 고개를 끄덕이며 돌을 두자, 진규가 집들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이 늙은이가 한 집 반으로 이겼군.”
“매번 아슬아슬하게 이기십니다.”
진규는 바둑을 쓸어 담으며 말했다.
“집 차이가 크게 나면, 자네가 눈치채고 두는 방법을 바꿀 것 아닌가?”
“그렇지요.”
“그래야 저번에도 말을 해 줬는데도, 비슷한 전략을 쓰게 되지 않는가.”
진궁은 말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서주목을 어찌할 생각이라던가? 그것 전하려고 진공대가 나를 찾아왔
을 테니 말이야. 이런 건 응이한테 시켜도 될 일인데, 굳이 찾아와서 일하는가?”
“저야 서주목 옆에서 조언이나 하는 늙은이인데, 젊은이들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고 쉬엄쉬엄 이렇게 다니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허허허, 이 사람아. 내 앞에서 나이 이야기를 하는가?”
“그렇습니까?”
승태가 한 말들을 모두 진규에게 전하자, 그는 껄껄 웃으면서 진궁을 향해 말
했다.
“자네, 바둑에서 가장 어려운 상대가 누구인 줄 아나?”
“누구입니까?”
“머리가 안 통하는 인간이 제일 어려워.”
진규는 머리를 두드리며 웃음을 지었다.
“예?”
진궁이 멍하니 진규를 바라보자 말했다.
“자네나 나와 바둑을 겨룰 정도면, 어느 정도 바둑을 두는 사람이지 않겠는가?”
“그렇지요. 그래서 의문을 가지는 겁니다. 머리가 통하지 않는다니요?”
“판을 제 마음대로 끌어가거든. 그리고 내가 한 부분에서 이겼다고 생각하는
순간, 마치 비웃듯이 판을 뒤집는 수를 두지.”
“허허··· 그게 가능합니까?”
“그건 감각일세, 감각. 그리고 더 웃긴 것은 말이지, 이에 머리 쓰는 사람들
이 더 혼란스러워하고, 중심이 흔들리게 된다네. 결국에는 돌을 던지게 되지.”
“그게 지금 서주목이라는 이야기입니까?”
“글쎄··· 나는 잘 모르겠군. 근데 한 가지는 알 수 있지. 서주에 손 뻗은 머
리 쓰는 인간들 모두 정신머리가 없어지는 게 보인단 말이지.”
***
승태는 계속 귓속을 손가락으로 후비면서 이번에 태사자가 데려온 단양병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귀 간지러워 죽겠네.’
역시 단양병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훈련이 잘되어 있었다. 태
사자의 지휘 아래 빠르게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은 꽤 멋지기까지 했다. 그러
나 문제는 언제나 돈이었다.
“허 선생님이 그렇게 돈을 많이 지원하는데도 부족하다는 겁니까?”
승태의 태도가 꽤 고압적으로 보이자, 태사자가 입맛을 다셨다. 마치 태사자
가 듣기에는 ‘그렇게 투자를 많이 했는데 더 필요하냐?’라고 들렸다. 이에 육
손이 나서 말을 이었다.
“결국 단양과 예장을 정벌하기 위해서는 배가 필요하므로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전선을 갖출 수 있어야 합니다.”
승태는 곰곰이 생각하며 물었다.
“전선을 만들 주실(舟室, 배를 만드는 곳)은 있습니까?”
육손도 승태의 말에 답하지 못하고 눈치를 살폈다. 승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어디서 배를 사들여서 단양을 차지하겠다는 겁니까?”
“그것이······.”
승태는 손을 들며 말했다.
“우선 단양에 상륙하고 점령하면 다음에 어쩌고저쩌고하는 말은 하지 않는데
좋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주실을 만들어서 건설하는 시간, 새로 배를 건조하
는 시간, 다 시간이 문제 아닙니까? 자의 공도 시간이 급해서 저희에게 말한
것 아닙니까? 양주자사이던 유 공도 지금 예장에서 불안한 대치를 지속하고
계시니 말입니다.”
“예, 주목.”
“저도 급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자의 공을 지원해 줄 수 있는 시간도 짧을 것
이니, 단기간에 빠르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태사자와 육손이 반짝거리는 눈으로 바라보자, 승태는 코를 긁으며 말했다.
“원술이 아직 여강에 있으니, 한조의 기치를 들어 그들을 처리하면······.”
승태가 미약한 말을 던지자, 육손은 손뼉을 치며 대단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
어 보였다.
“아! 현명하십니다. 원술이 손책을 이용하여 양주를 공격하게 했을 때 이용한
배들과 배를 만드는 기술자들이 있을 겁니다. 그러니 원술을 쳐 그들을 얻어
내고, 호택과 유수를 통해서 예장과 단양에 진입한다면··· 능히 두 곳을 한꺼
번에 노릴 수 있을 겁니다. 아, 그래서 술자리에서 그리 말씀하신 것인데···
이 육모가 어리석었습니다.”
승태는 눈을 껌벅이며 육손을 바라보았다. 솔직한 말로는 승태의 생각은 딱
원술의 돈을 모조리 빼앗아 주실을 짓고 배를 사면 되지 않겠느냐는 단순한
것이었다. 하지만 강동을 훤하게 알고 있는 육손의 머리에 실마리가 쥐어지
자, 어마어마한 계책들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자의 공이 여강을 공격하여 원술의 목을 벨 수 있다면, 제가 책임을 지고 자
리를 만들어 오겠습니다.”
이에 태사자가 예를 표하였고, 승태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이미 자의 공의 명성이 높아 작금의 조정에 상신만 하여도 단양이나 여강의
태수의 자리는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태사 장군이 더 큰 자리에서 활
약할 수 있으려면 조정에 충격을 주는 편이 나을 겁니다.”
승태가 태사자의 손을 잡으면서 이렇게 말하자, 태사자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주목께서 이리 저를 높이 대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승태는 잠시 생각했다. 아마 이미 유양주는 사망했을 것이고, 이 일이 알음알
음 강동에 퍼지고 있을 것이었다. 강동의 정보통이라 해 봐야 허탐 하나인 승
태로서는 정확한 내막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 단양에서 활동하던 태사자가
정확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유양주가 작금에 병으로 작고하였다는 소문이 있는데, 혹 부곡들이 예주에
남아 유양주의 어린 아들을 어찌 대하는지 알 수 있겠소? 또 혹시 자의 공 휘
하로 귀부할 자가 있을지 모르니, 한 번 확인하는 것은 어떻겠소?”
원래 역사에서 손책과 거의 비슷한 말에 태사자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주목의 생각이 옳은 것 같습니다. 소장은 그저 유양주의 병세가
위독하여 예장이 위태롭다고만 생각하고 왔으나, 유양주가 작고하였다면 화자
어를 중심으로 예장을 방비하고 있을 것입니다. 화자어는 장수가 아니라 홀로
유표를 막기 어려울 것이니, 힘을 가진 이에게 분명 귀부할 겁니다.”
태사자는 승태의 앞에서 명을 받드는 듯한 모습으로 청했다.
“여기의 단양병들은 중 일백만 이끌고 예장으로 가 보겠습니다. 원술을 토벌
하는 것은 예장을 확인하고 하여도 충분할 것이니, 소장에게 명을 내려 주십쇼.”
태사자의 말에 승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럴 일까지야 있겠습니까? 혹여 유양주가 졸하여 자의 공께서 예장으로 가
서 스스로 태수를 칭한다면 누가 이를 막겠습니까? 강남의 정세를 아는 것은
여기 육가의 인물뿐이니, 막을 수 없습니다. 하니 명이 아니라 그저 바라며
자의 공이 돌아오길 바랄 뿐입니다.”
태사자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 자의를 믿어 단양의 병사와 무기, 양초 이를 모두 내주시었으니, 어찌 이
것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소인은 조 서주를 주인으로 삼아 후일 원술을 토벌
하고 주공의 원수인 손가를 멸할 수 있도록 칼을 갈겠습니다.”
그의 말에 승태는 태사자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자의 공, 저를 위해 살고자 하신다면, 후일 기쁜 마음으로 만날 수 있도록
건강을 조심히 지키고, 물이든 음식이든 잘 익히도록 하세요. 그리고 여기 육
가의 소년도 같이 가는 게 좋겠습니다. 저번 조정의 일도 예측했고, 이번의
대계도 척척 잘 쌓는 인재입니다. 옆에 둔다면 크게 도움이 될 겁니다.”
태사자는 승태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제 호위를 제외한 단양의 병사들은 모두 이끌고 가는 게 좋을 것 같
습니다. 혹 조정에서 제 사병이라고 할지 모르지 않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승태는 이런 태사자를 보며 완벽하게 믿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강동을 손가의
이름으로 묶이지 않도록 만드는 하나의 계획에 성공하였다. 그뿐 아니라 일부
러 순가의 무사들이 태사자와 친분을 알고 있으니, 태사자가 예장과 단양을
차지한다면 조정에서 승태의 입지는 사뭇 달라질 것이었다.
‘마음이 변하더라도 큰 도움을 받았다는 것은 유효하니, 고지식한 태사자가
도움을 청하면 들어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