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454
454화
장료의 말에 승태는 잠시 눈을 감고 나서 조금 뜸을 들이며 답을 미루었으나, 길어지는 침묵은 영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 장료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아는 승태였기에 더더욱 쉽게 입을 뗄 수 없었지만, 장료 역시 가만히 있을 정도로 만만하지는 않은 인물이었다.
“제가 얼핏 듣기로는 무예를 통하여 인재를 뽑는 경연을 열겠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맞는 말이었다. 승태는 자신이 왕의 자리에 오르는 자리이기도 하니, 볼거리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예가 출중한 인재를 뽑아 특무대를 만들고자 했다.
“그렇습니다. 장군 옆에는 소문에 귀가 밝은 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소문에만 밝은 것이 아니라, 이것저것 알아 오기는 합니다. 워낙 친화력이 있는 아이라서 말입니다.”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눈치가 빠른 아이이지요. 강하 잠씨 가문의 잠가(岑軻)라는 아이인데, 이것저것 일을 잘합니다. 수춘에서 공부를 했다고 하는데 주군께서도 보면 좋아하실 것입니다.”
“잠가라… 알겠습니다.”
승태는 잠씨라는 성에 순간 잠혼이 생각났지만, 잠혼이 그대로 나타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기에 그저 넘어가면서 물었다.
“그런 인물은 응당 중앙에서 쓰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군의 후방을 맡은 인물까지 내어 놓으라는 말입니까? 제가 귀천할 때 데리고 가시지요. 어차피 그때는 제 부곡들 또한 나라에 귀속 될 테니 말입니다.”
“어찌 그런 말을 하십니까? 아직 강건해 보입니다.”
“강건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가 된 것입니다.”
장료는 그 말을 하고는 잠시 조용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주군.”
“듣고 있습니다.”
“소신, 자그마한 부탁이 있사옵니다.”
“그 대회에 나가는 것은 안 됩니다. 궁술을 겨루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인 무예를 따지는 자리인 만큼 식도 길 것이고, 한두 번의 싸움도 아니고 계속 싸움이 일 것이고, 장군을 아는 자나 혹여 아니면 명예를 노리는 인물이 있다면…….”
승태는 이번의 일로 인하여 장료가 크게 아플 것이라는 말을 빙빙 돌려서 하며 결국 심중에 있던 걱정을 꺼냈다.
“무리를 하게 될 것입니다. 분명히 말입니다.”
“방금 제가 강건하다고 말씀하셨는데 결국은 소신에 대한 걱정이십니다. 누가 보면 귀가 순해지는 나이가 된 줄 알겠습니다.”
그러나 승태로서는 이릉 전투가 일어난 이때쯤에 장료가 죽는다는 것을 아니,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장료의 모습은 과거와는 상당히 달랐다. 과거의 풍채는 줄어들어 이제는 관복을 터트릴 것 같은 팔 근육은 사라져 옷이 잘 맞았다. 승태가 자신을 꼼꼼히 살피는 모습을 보이자 장료는 이내 말을 이어 나갔다.
“힘이 줄어든 것은 맞으나…….”
“한발 물러서 드리겠습니다.”
승태의 말에 장료는 웃음을 머금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한마디의 말에 그 웃음은 잦아들었다.
“단 한 번을 허하겠습니다.”
“…한 번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단 한 번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제 호병을 맡은 인물도 장군과 같은 요청을 했습니다. 하여 거절하였는데, 장군께는 한 번이라도 허락하니 많은 것을 내드린 것입니다.”
장료는 고개를 돌려 허정을 바라보았고, 허정이 고개를 푹 숙인 것을 본 그는 입을 삐죽였다.
“그리고 인재를 찾는 자리인데 이미 높은 자리에 앉으신 분께서 나와 무예를 뽐내는 것이 그다지 좋게 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니 우승자와 싸우시든지, 아니면 끌어다 쓰고 싶은 인물과 실력을 보시든지 호승심은 알아서 한 번만 채우시지요.”
승태의 말에 장료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아이들 노는 곳에 거대한 이무기가 노니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만일 그렇게 하면 좋은 물고기들이 도망가는 법이이었다.
“그리하겠습니다. 주군의 명인데 들어야겠지요.”
승태는 안심한다는 듯 숨을 내쉬고는 장료에게 다가갔다. 장료는 빠르게 일어나려 했으나 이내 뻐근함이 나타나 급히 일어나지 못했고, 승태는 그런 장료의 손을 잡아 주었다.
“난세가 끝나고 생존의 사이에서 나타난 이들이 아니라, 정립의 시대에 일어난 이들입니다. 장군과 같은 간절함이 사라지고 자신감이 피어난 이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장료는 과거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발전이 있을 것입니다. 홀로 일진을 무너트리는 일이 어려워지는 것은 군이 정예화 되어 감에 따라 변화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일로 주군께서 힘을 써서 기병들을 정예화하여 응당 일군이 일진을 무너트릴 수 있게 만들었으나, 적들도 이에 대비할 일들을 만들었습니다. 소신도 알고 있나이다. 소신이 잡은 화극이 더는 과거와 같지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장료의 말에 승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의 전설은 냉병기의 질의 차이와 말에 대한 숙련도의 차이가 만들어 낸 일이었다. 후한의 혼란에서 이를 가장 잘 살린 것이 여포와 하후연처럼 기마를 이끄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발전시킨 인물이 장료였다. 그리고 그 문을 닫은 것이 문앙이었다. 그 뒤로는 회전의 시대가 열렸고, 현대에서 우스갯소리로 소드 마스터라 불리는 이들 정도나 천하를 흔들 무력을 보여 주었다.
승태는 문호를 생각하고는 약간 기대감을 가지며 말했다.
“더 대단한 인물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언제나 인간은 지금의 힘든 일을 극복하기 위해 나아가지 않습니까?”
“그러하지요, 그러합니다. 하나 조심해야 합니다. 인간이 부족한 점을 극복하고 싶어 하는 만큼 위에 선 자들은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니…….”
장료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입니까?”
“아니옵니다. 아직 주군께서 정정하니 그저 늙은이의 노망이라 봐주시지요.”
장료는 예를 취하고 물러 나갔고, 승태는 자리에 남아 묘한 눈으로 장료의 뒤를 바라보던 허정을 가까이 불렀다.
“어찌 생각합니까?”
허정은 순간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 못하고 멍한 표정으로 승태를 보았고, 승태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후계 말입니다. 왕위에 오르면 응당 세자를 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정은 승태의 물음에 순간 얼음이 되어 고개를 저었다.
“그러한 일은 소신의 생각에 없습니다. 주군께서 아직 소신의 앞에 계시니 어찌 다른 생각을 하겠습니까? 소신, 두 명의 주군을 섬기지 않을 것이옵니다. 명계에 간다고 하더라도 소신이 먼저 가 주군의 길을 닦아 놓겠습니다.”
승태는 순간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웃음이기는 했으나 승태의 마음속은 마치 썩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
‘명계에 간다면 응당 나를 죽이고자 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닐 것인데……. 아마 동생을 죽인 장본인이 나인 것을 안다면 그대도 나를 죽이고자 할 것일 터.’
승태는 순간 드는 안 좋은 생각들을 밀어 놓고 다시금 장료가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조조의 마음이 아마 이러한 마음일 것이리라. 차라리 자신의 아들만 아니었다면 그래도 객관적인 생각을 하였겠지만, 지금은 그들의 장단점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아이들의 잘하는 점들만 보이니 영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 형이 있었으면 단박에 말을 해 주었을 터인데. 서신이라도 보내야 하나?’
순간 노숙에 대한 안위가 걱정되면서도 이내 마음을 접었다. 이미 자신의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하며, 그간 하지 못한 일을 하겠다고 남하한 형님을 걱정한다고 한들 달라질 일은 아니었다.
“우선 서신이나 보내어 봐야겠다.”
* * *
승태가 왕에 오르는 것은 그다지 문제 될 것 없이 이루어졌다. 단지 승태가 약조한 일들이 꽤 큰 파급을 가지고 조용히 퍼져 나갔을 뿐. 그리고 장료가 원하는 무예를 뽐내는 대회가 시작되었다.
병사들이 대다수 형주와 사주 쪽으로 나와 있는데 무예를 뽐내는 것이 이상하다고 볼 수 있으나, 승태는 그저 미끼를 드리워 전장에 나가지 않으려는 유협들이나 남쪽의 월족들, 그리고 지주들을 판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일이었다.
“특무대를 만드는 일 뿐만 아니라 나온 이들을 전장에 내보낼 수도 있을 테니 일석이조입니다.”
사마의의 말에 승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달의 말대로 되었지요.”
“전하의 현명한 판단일 뿐이옵니다.”
사마의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단순히 어리석은 부귀한 자들만 부르려는 것은 아니옵니다. 분명 집안이 어려운 이들도 나올 것입니다.”
“무기 값을 우리가 내주니 이번의 일로 어떻게든 눈에 띄어 이루고자 하는 이들도 모일 것입니다.”
승태는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현대에서야 무기를 국가에서 내주지만 이 당시만 하여도 통일성을 위하여 무기를 전부 챙겨 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현실적으로도 징집된 이들 하나하나에게 모두 무기를 지급한다면 그 비용이 얼마나 많이 들겠는가?
그랬기에 오나라가 봉건 제도와 비슷한 도독제를 잘 이용하여 군을 키웠던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었다.
“제 금고에서 꽤 많은 돈을 꺼내었습니다.”
승태의 너스레에 사마의는 살짝 웃음이 나왔다.
“전하의 내탕고에서 한 줌 정도는 나왔습니까?”
승태는 약간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쓸 곳에 써야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씀이지요.”
계속 미소를 짓는 사마의를 보며 승태가 다른 것을 물어보았다.
“특별 시험을 치를 이들은 어떻습니까?”
“굉장히 많사옵니다. 이곳저곳에서 온 명사들도 이제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있으니 웃음을 지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전장 제도를 정비할 이들을 모으는 일인데 이렇게까지 할 것인지 잘 모르겠는데 어떻습니까?”
“마지막일 것 같으니 저들이 이렇게 모인 것일 것입니다. 주군께서 학교를 세워 연고가 없는 이들을 가까이 두었고, 그들은 지금 각지에서 큰 힘을 가지고 돌아가니 그 땅의 유지들은 응당 부럽기도 하고 질투가 날 것입니다. 그동안 주군을 흔들고자 하였는데 결과는 그들의 오롯한 패배였습니다. 저번에는 거의 몰살에 가깝게 당하였으니 패배감이 짙어지는 지금, 주군께서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준 것입니다.”
승태가 턱을 쓰다듬으며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은 표정을 보이자 사마의는 승태를 말렸다.
“주군, 그들을 대할 때는 마음속에 경멸은 접어 두소서.”
“솔직한 말로 고는 전장(典章)과 제도에 대한 일은 이미 많은 것을 세워 두었습니다.”
“소소한 것을 그들에게 넘기고자 한 것입니다. 주군의 의지를 알면 저들이 큰 틀에 따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것을 먼저 보여 주는 것은 혜택이 아니라 그들에게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들이 나아가야 할 곳은 공맹의 자리가 아니라 바로 전하께서 내어주신 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순간 승태의 눈이 서늘해지며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이번 일로 병사를 구한 것이니 공에 대한 상을 바라는 바는 없습니까?”
“딱히 무엇인가를 원하는 바는 없습니다. 아, 하나 있다면 주군의 옆에서 주군을 모시는 것이지요.”
“그렇습니까?”
“그러하옵니다.”
승태는 순간 사마의를 떠보듯이 물었다.
“왕의 자리에 오른 것이 낯설어 무엇을 할지 모르겠는데 중달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됩니다. 신료들에게서는 후계를 단단히 세우라 하였는데 어찌 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