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478
478화
사마의가 등청했을 때는 이미 승태의 집무실에서 서서가 독대를 하고 있었다. 사마의는 집무실에 예를 표하고 들며 눈치를 슬쩍 보고는 서서와 같은 거리에 앉았다. 내관은 약간 놀란 눈을 지었지만 승태가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기에, 먼저 나서지 못하고 눈치를 보다가 이내 고개를 숙였다.
승태도 이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기에 사마의를 바라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내 별 신경은 안 쓰나 궁내의 법도가 있으니 이를 지키는 것이 좋을 것 같군.”
사마의도 화들짝 놀란 모습을 보이며 몇 걸음 뒤로 물러났고, 승태가 앞으로 오라는 말을 하자 그제야 사마의가 다시금 자리로 들어왔다.
승태는 운을 띄우듯 사마의에게 물었다.
“조비에게서 사람이 왔다던데 무슨 말을 전하던가?”
“조비의 말을 전했다기보다는 소신의 말을 전하기 위해 온 인물이었습니다.”
승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청주의 일이 단순하게 일을 이끌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을 터. 아마 왕기는 그 마중물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꽤 공적이 괜찮은 인물이 청주에서 다시 한번 공을 세우면 지지부진한 지금의 상황에서 이곳에 힘을 투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었다.
“유선에게 보낼 사신단은 잘 준비되고 있는가?”
이것은 사마의가 받은 두 번째 일이었다.
“잘 되어 가고 있습니다. 태사 장군을 총책임으로 삼으니 그다지 마찰이 없었고, 그냥 알아서 잘들 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하기야 황제에게 검리상전의 예우를 받는 태사자가 책임자로 움직인다는데 누가 무어라 하겠는가.
“그렇다면 어떤 경로를 통해 진으로 가는지가 문제이겠군. 경로는 결정하였는가? 낙양으로 향하는 길은 꽤 위험할 터인데.”
“위험할 것이야 따로 없습니다. 서쪽의 가짜 황제와 순욱이 무슨 생각을 하는가가 문제 아니겠습니까? 촉 땅으로 움직이는 것은 길 자체가 위험하니 낙양을 통하여 가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사마의가 자신만만하게 말했으나 승태는 고순의 일이 떠올라 영 거리끼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전장보다 더 위험하게 보이는군.”
“유비의 장례인데 설마 그러한 상황에서 피를 뿌리고자 하는 마음을 품지는 않을 것입니다.”
죽을 수도 있는 길이나, 칼을 꺼내는 순간 그 칼을 꺼낸 인물은 유비의 장례를 더럽히는 자가 될 것이었다. 그러하니 깔끔한 일 처리, 정석적인 일 처리를 좋아하는 제갈량이 유비군을 이끄는 이상 그러한 참사가 벌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이제는 그들 입장에서도 외정이 아닌 내정을 펼칠 시간이었으니까.
“그럼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군.”
“그러하옵니다. 기다리시면 그 결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잠시 후 사마의와 서서는 자리를 떠났고, 그 자리에는 승태 혼자만 남았다. 승태는 과거 언제나 노숙이 옆에 앉아 자신에게 조언을 건네는 일이 익숙하여 고개를 돌렸는데,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노숙이 멀리 외정을 나가 있을 때 이러한 상황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 익숙함은 익숙함이 아니었다. 그저 잠시 잊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잊었던 기억은 마치 유령이 찾아오는 것처럼 승태를 일깨웠다.
“참으로 미안하게 만듭니다.”
노숙이 처리하고 남은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지금 그 양에 치여서 죽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무리 확인해도 죽간이 줄어들지 않았고, 다시금 새로운 죽간이 쌓여 갔다. 내관들도 승태의 일을 돕기 위해 정리 작업을 진행 하였지만, 그들 역시 너무 많은 기운을 썼는지 꾸벅꾸벅 졸며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승태는 산처럼 쌓인 죽간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군주가 모든 일을 직접 챙기는 것은 필연적으로 업무가 계속 늘어난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그 행정 범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그 생산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말이다.
분명 양수나 서서, 사마의, 유엽 등의 수많은 유능한 이들에게 일을 맡기었지만 그럼에도 역부족이었다.
‘도망가고 싶군.’
과거 노숙이 있을 때에는 심장을 꺼낼 정도로 믿을 수 있는 인물이었으니 자신을 대신할 사람으로 세워 승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나 관심 있는 일에만 집중하였다. 그런데 노숙이 그 자리를 떠났으니 일을 던지고 도망 갈 수도 없었다.
‘아마도 봉건을 시행하여 지역을 온전히 책임지게 하고 입헌군주를 시행한 왕들은 일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승태는 졸린 눈을 비비고 헛생각을 날려 버렸다.
* * *
송이 주변의 상황으로 인하여 숨을 고르는 그때, 위는 고개를 숙이며 칼을 가는 것처럼 겉으로는 조용하였지만 잔잔한 수면 아래에서 군이 움직이고 있었다. 특히 청주에 그 세력이 집중되었다.
물론 아무리 조용히 움직인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주둔하는 군세가 늘어나고 움직이는 보급들이 자주 들락거리고 있었다.
이러하니 제아무리 군을 송에 많은 부분 의탁한다고 하지만 청주가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청주의 사족들도 눈과 귀가 없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인맥만큼은 송보다 더 넓은 이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 소식은 다 늙어 버린 공융의 귀에도 들려왔다.
“상국, 작금 위가 남하를 위해 군을 모으고 있습니다. 준비를 해 두어야 합니다.”
공융도 이러한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이미 사병들이 준비하고는 있지만 그 이익이 달랐기에 자신을 따르는 이들 마저도 영 시원치 않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아니, 도리어 국가에 해가 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국가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식량을 수매하여 전쟁에 비싸게 팔 준비를 하고, 전쟁에 사용될 물품들을 대양으로 빨아들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뿐이던가? 황도가 아닌 서주나 예주로 피신하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군을 맡길 인물인 태사자가 장안으로 향하였고, 그 자리는 속을 영 알아차리기 어려운 인물들이 대신하였다. 아니, 정확히는 친밀감을 쌓은 작업이 하나도 진행되지 않은 인물이었다.
이러한 처지이니 뜻이 있는 신하들은 몸이 달아올라 지금 조정의 가장 높은 신료인 공융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모르겠는가? 하나 송국의 군세를 온전히 쓰기에는 어려움이 있지 않은가. 그들에게 군권을 온전히 맡기었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아는가? 과거 조조의 상황을 벌써 잊어버렸는가?”
서간은 공융의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청주를 지킨 후에야 그러한 걱정을 할 것이 아닌가? 나중에 다시 권한을 받더라도…….”
“내준 권한은 다시 돌아오지 않음이네! 폐하께서 살아 있으면 황통을 이어 가는 것은 문제가 없어. 폐하께서 정정하시고 마마께서도 강건하시니 말이야. 황통이 이어지면 응당 황조는 이어 갈 것이고 충신들이…….”
공융이 순간 분노하며 서간에게 큰 소리를 지르자, 서간이 바닥을 두들겼다.
쾅!
“황통의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전쟁은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고, 진정 황실을 걱정한다면 임치에서 서주 근처로 자리를 옮겨야 할 것이네.”
“폐하께서 움직인다면 백성들이 불안해할 것이고 백성이 불안해하면 응당 군병들은 어찌 되겠는가?”
서간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하여 상국께서는 황도에 주둔한 기백의 군세로 지키겠다는 것입니까?”
“기백의 군세라고 하지만 정예병이니 버티지 못할 것이 없네.”
서간은 말이 통하지 않음을 알고는 잠시 고개를 떨구었다. 과거 조조의 반대편에 서 있을 때는 분명 조조를 꺾기 위해 단단하고 곧은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으나, 지금에 이르러 가장 높이 선 인물들은 곧은 소나무가 아닌 굽디 굽은 곡송(曲松)이어야 했다.
‘지금 그대가 서 있는 곳은 양지가 아니라 바람이 휘몰아치는 바위산이네…….’
문제는 상국인 공융만 바라보는 충절지사들까지 환상에 빠져 있는 공융이 지금의 사태를 해결할 거라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아니, 충절지사들이 아니라… 시키는 일만 하는 이들이던가?’
서간은 더는 이곳에서 무엇인가를 방도를 구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다면 이를 타파할 방법은 공융이 아니라 송에 있을 것이었다.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서간이 일러나 예를 표하는 그때, 공융은 그를 바라보았다. 어디로 향할지는 뻔히 보이는 바였다.
“송의 장수들을 만날 생각이라면… 내 자네를 더는 같은 친우로 봐주지 못할 것이네.”
서간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공융을 바라보았다.
“상국께서는 황실의 법통과 권위를 지키려 하지만, 소신의 마지막은 황실이 피해를 받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죽음에 가까워 친우들이 소신을 떠나갔는데 한 명이 더 떠나간다고 한들 외로움이야 다르겠습니까?”
서간이 떠나간 그곳에 공융은 주먹을 쥐고 깡마른 손으로 탁자를 후려쳤다.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었다. 송왕의 힘을 보았고, 송왕과 황제가 너무나도 가까웠으며, 그리하여 자신은 황실이 가질 권한과 권력을 하나둘씩 빼앗았다.
수많은 신료들이 자신이 권신이 되었다며 황제에게 내칠 것을 권하였으나, 황제는 도리어 감싸 주었. 단순히 사돈을 감싼 것이 아니라, 공융과 송왕은 자신을 황제로 만든 인물이니 자신의 권한이 본시 공융과 송왕에게 나오는 것이 맞다는 말로서 둘을 추켜세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공융은 늙은 권신이 되어 황실을 쥐락펴락하였으나 많은 현신들이 떠났고, 황제 스스로 설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내가… 조조와 같은 짓을 저지른 것인가?”
인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과 조조는 달랐다. 조조가 자신의 권력으로 황실을 위협했지만 자신은 황실을 지킬 터이니.
서간이 물러가는 그때 공융의 아들들이 그를 보고 예를 표하였다. 이제 약관의 언저리인 공융의 아들들이었다.
“위의 일로 오셨습니까?”
“그렇네. 상국을 뵙고 왔는데…….”
“영 결과가 좋지 않은 듯하옵니다.”
“상국께서 굽히시지 않으시는군.”
“어찌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상국께서 흔들린다면 남은 것은 한 가지의 결정 밖에 없을 것이고, 그 결정은 상국께서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실 것입니다.”
“그러한가? 하기야 그간 한조의 굴욕을 직접 봐온 상국이라면 그럴 수 있지. 하나 다른 것을 지키려면 응당 하나를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모든 것을 들고서 지키려면 자강해야 할 것인데, 우리는 그러하지 못하니 말이야. 이 늙은이들의 잘못 때문에 미래가 창창한 이들의 머리에 걱정이 많겠군.”
“어찌 효를 버리겠습니까? 저희가 선택하지는 않았으나, 부모의 뜻을 받들어 따르는 것이 효가 아니겠습니까?”
“어려운 길을 가려하는군.”
“둥지가 깨졌으면 그 안의 알은 무사할 수 없는 법입니다. 그저 둥지를 떠나 하늘을 날기 전에는 상국의 의지를 따라 움직일 뿐이옵니다.”
서간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우신(愚臣)들의 시대를 지나니 현신들의 시대가 오겠구나. 그대들을 보니 내 미래가 걱정 되지 않군. 하면 우신들이 좀 더 움직여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