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484
484화
황제는 은번을 따라 움직인 끝에 드디어 장패의 군중에 들 수 있었다. 장패는 황제를 맞이하기 위해 직접 나아가 그를 모셨고, 황제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상찬하였다.
“폐하의 행차에 소신, 참으로 감읍하옵니다.”
마차에서 막 내린 황제는 약간 피곤한 얼굴로 장패에게 물었다.
“송왕께서 따로 전하신 말씀은 없으셨습니까?”
장패는 살짝 웃음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내저었다.
“송왕께서 따로 무엇을 원한다고 전하신 바는 없사옵니다. 그저 맡은 바 일을 부탁한다고 하셨을 뿐이었습니다.”
“그렇소?”
황제는 장패의 말에 약간의 안도를 하였지만, 이미 황도를 잃어버린 이러한 상황을 어찌 대처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기야 자신이 세운 것이 아니라 공융과 돌아가신 모후, 그리고 송왕이 세운 황도였기에 그다음을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이었다.
황제는 자신의 걱정을 슬쩍 꺼내었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수춘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닌가?”
황제는 그 말을 하면서도 그다지 가고 싶지 않은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딱 보아도 지금의 상황으로 인하여 인식에 대한 걱정이 드는 것 같았다. 청주에 있던 모든 것을 잃고 송왕이 거하는 수춘에 들어간다면, 마치 황제가 송왕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과 같았다. 그러하였기에 걱정하는 것이었다.
장패는 잠시 생각하다가 살짝 고개를 기울이고 말했다.
“수춘으로 가는 것이 가장 좋을 것입니다. 그것이 어렵다면 이곳에 머무시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하나…….”
장패는 몸을 돌려 말 위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는 황제의 발을 바라보았다.
“머무시기에는 그다지 좋지 않으실 것입니다. 소신들은 폐하께서 다시금 저 황궁을 되찾을 수 있도록 칼을 갈아야 하니 말입니다.”
“괜찮소이다. 내 이러한 상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대들의 노고에 횟가루를 뿌릴 마음은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사실 그것은 걱정이라기보다는 확신 같은 것이었다. 군인이 아닌 인물이 전장에 거하게 되면 응당 따라오는 일들이 많았고, 그로 인하여 빠져나가는 군수의 양은 생각보다 대단하였다.
그것도 황제를 챙겨야 하는 일이니 장패로서는 머리가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 장패는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아들을 바라보았고, 갑자기 시선을 받은 장애가 눈을 말똥말똥 떴다.
그리고 장패의 눈빛을 읽은 장애는 고개를 주억거리곤 은번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버님께서는 이제 군무를 해야 하는 일이 있어 제가 폐하를 모시겠습니다.”
은번은 장패의 눈치를 살피고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하는지는 명확했다. 은번은 곧바로 반발하려던 이들을 말리며 답했다.
“폐하께서도 와신상담의 마음으로 받아들이실 것입니다.”
은번의 대답에 다른 신료들은 말을 줄였고 황제 또한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딱 그 정도의 위치가 황제의 자리였다.
장애가 은번과 황제를 모시고 사라지자 장패는 걸음을 옮겨 이내 자신의 옛 친우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곳에 나이든 그의 동료들은 일전의 같이 술을 마시던 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결국 황제를 받아 준 것이오?”
“황제가 무엇이더냐? 폐하라 하여라. 없는 자리면 모르겠으나, 폐하가 이곳에 왕림한 순간 가벼이 여길 수는 없는 법이다. 또한, 아무리 송왕 전하라 하더라도 아직은 한조의 질서 아래에 있으니 폐하 앞에서는 그 질서를 지켜야 하는 법이니.”
피곤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수하는 눈을 껌벅이다가 답했다.
“그냥 마주치지 않겠소이다. 그게 마음에 편하지. 우리야 태산만 지키면 될 일이 아니겠소?”
“산에서 내려올 것이다.”
수하는 마치 장패가 무엇을 잘못 먹었나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우리가 조비를, 그것도 평지에서 상대하라는 것입니까? 저들 대다수가 기마 위에서 싸울 것인데 불가능합니다. 뭐, 묫자리를 그곳에 하라고 하면 못 갈 것도 아니지만요. 하지만 아직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곳에 묫자리를 쓰고 싶은 마음은 없어서…….”
그의 말에 주변의 인물들이 웃음을 지어 보이며 웃음을 지었고, 장패 또한 웃음을 터뜨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네놈이 공자께서 있는 곳에 같이 묻히는 건 바라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가 공자님 머리끄덩이라도 잡을까 무서우니, 죽게 하지 않을 것이다.”
“하하하하!”
그러다가 이내 장패는 웃음을 멈추고 탁자를 두들기며 말했다.
“이유가 있어 청주에서 움직일 것이다.”
“우리는 말을 잘 타지도 못해서 위나라 북방의 기마 놈들이 움직이면 분명 잡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도망도 못 가고, 잡지도 못하고, 뭐 아무것도 못 할 것인데… 이해가 되기 전에는 아니 움직일 것입니다.”
장패는 한숨을 내쉬며 수하 중 한 명에게 말해 뒤에 가려진 지도를 꺼내게 시킨 뒤 말했다.
“적들의 보급을 칠 예정이네. 적의 보급을 무너트리고, 창고를 털어 낼 인물은 자네들과 같은 전문가들이 아니겠는가?”
장패의 말에 기분이 좋아진 그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죽을 길에 들어간다는 것은 해결되지 않았다. 다만 장패의 말대로 재물을 터는 것 하나만큼은 전문성을 보이는 이들이었다.
“그렇게까지 말하는 것을 보니 무엇인가 숨기는 것이 있는 듯합니다.”
“그렇네. 뭐… 결정된 사안이 내려온 것이니 내가 무어라 말하기도 어렵군.”
“간자들이 그리 전한 것이라면 그런 것이겠지요. 아국의 능력은 꽤 괜찮지 않습니까?”
장패는 깐깐한 서서의 모습을 생각하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장패의 모습에 수하들은 자신의 앞에 놓인 술잔을 찬성의 의미로 그대로 쭉 들이켜고는 외쳤다.
“형님을 믿겠소이다. 그 자리가 묫자리 안 되게 해 준다고 말한 것, 내 깊이 믿겠소이다.”
* * *
황제가 장패의 군세에 들어간 그때, 왕기는 하품을 내뱉으며 황도의 성루에 앉아 허름해진 그곳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조비의 전령을 맡은 인물이 그 뒤를 따라 걸어오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며칠 동안 난리가 났군, 난리가 났어. 보고를 해도 믿어 주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야.”
“그래도 이에 대해서 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위왕 전하께서 친림하실 터인데, 고하지 않으면 분명 후에 경을 치를 것입니다.”
전령은 정론을 말했다. 어떻게 되었든 조비에게 고하여 이번 일의 판단을 맡기자는 것이었다.
왕기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알고 있었기에 이번 일을 만들어 낸 무능한 이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옥에 가두지 않았는가.
옥에 갇힌 이들은 어찌 귀부한 자신들에게 이러한 처사를 가하냐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왕기는 그들의 외침을 비웃었다.
다 망가진 황도를 내놓은 것도 죄인데, 자신들이 귀부한 값을 내놓으라는 인간들더러 무슨 호의를 베풀겠는가?
아니, 오히려 저렇게 벌하는 게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길이고, 귀부한 대가를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 일을 사마의에게 고하면 어찌어찌 분칠하여 아무런 문제없이 일을 끝낼 수 있을 테지.’
왕기는 전령을 향해 물었다.
“적들의 움직임은 없는가? 황도를 차지하였다는 것을 안다면 분명 움직일 것인데?”
“태산의 병력들이 모였다는 것은 알 수 있었으나, 그다음에는 아무런 일도 벌이지 않고 있습니다.”
태산이라는 말에 왕기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태산의 병력이라고 하면 얼마 정도의 숫자인가?”
“기천의 병력입니다.”
‘보병 기천이라고 하면 뭐, 걱정할 정도의 숫자는 아니군. 물론 약간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기병들이 대응하지 못할 테니 너무 마음에 담아 둘 필요는 없을 터.’
“전하는 언제쯤 오신다고 하셨는가?”
“아직 내려온 명은 없사옵니다. 그리고 그런 중요한 명이 들어왔다면 장군께 제일 먼저 드렸을 것입니다.”
“고맙네, 고마워.”
왕기는 품에서 무엇을 꺼내어 그에게 쥐여 주었고, 전령은 그것을 받아 품에 숨기고는 예를 취하였다.
“전하께 보낼 서신은 병사에게 맡기었으니 이를 들고 잘 말해 주시게.”
“알겠습니다.”
조비가 직접 친정을 하자 청주를 넘은 이들은 빠르게 청주 전체를 장악하기 위해 움직였다. 특히 임치까지의 길은 하후가와 조가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내듯 진군하며 장악하기 시작했고, 조비는 황도까지 무리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휑한 황도의 앞에 선 조비는 잠시 움찔하였다.
‘사람이 거의 없는 황도라니.’
이곳이 정녕 과거 제나라의 수도이자 작금 역적이라 하지만, 몇몇 인물들에게는 인정받아 동조라고 불리기까지 한 나라의 중심이라 보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
“중달이 이야기했던 것과는 꽤 많이 다른 것 같은데? 한 나라의 수도라고 하기에는 너무 볼품이 없군.”
오질은 멀리 보이는 황도를 비웃으며 답하였다. 마치 황도를 깔보는 것 같은 그의 표정을 황제가 보았다면 그 얼굴만으로도 죽음을 선고했으리라.
“반역 도당들이 예를 알고 법을 알고 미를 알겠습니까? 오롯이 이를 통달한 우국만이 그 모든 것을 알아 법도와 아름다움이 존재한 것입니다.”
조비의 곁에 선 왕기는 그 말에 맞장구를 치면서 말했다.
“그러하니 충신들 없이 쓸쓸하게 도망간 것이 아니겠습니까? 역당의 수괴가 장패에게 의탁을 하였을 때, 내관들만 그를 보필하였다고 합니다.”
“하하하하하! 고자들만 말이던가? 알 만하군, 알 만해!”
천천히 말을 타고 걸음을 옮기는 조비는 사방을 바라보며 마치 확신을 가진 사람처럼 조용하게 다짐하듯 말했다.
“이제 한조의 빛과 유학의 빛이 모두 진 것 같군.”
조비의 말에 그 뒤를 따르는 이들은 무슨 반응을 하려 했지만, 그것만큼은 하기 힘들었다. 한조 하나야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유학까지 같이 묶어 버리자니 자신의 출신과 스승을 모두 욕 먹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조비는 거기에 자신의 신념과 욕심을 얹으며 웃음을 지었다.
“이제 내가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을 것이다. 송국은 내가 두려워 나서지 못하며 위제(僞帝)만 받들었고 이내 선을 그었다. 서조의 황제 또한 동탁과 순욱의 시대에 이르러 한조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졌으니, 새로운 아침을 열어야 하지 않겠는가?”
조비의 말에 왕릉이 나서 그를 말렸다.
“전하, 전하의 말이 모두 옳사오나 아직은 아니 될 일입니다.”
조비는 인상을 찌푸리며 왕릉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왕릉은 딱히 두려워하는 마음 없이 계속 고하였다.
“황실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졌든 아니든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 문제이옵니다. 누군가가 그 황실을 앞세워 명분을 만든다면 사방에 적이 있는 위국은 위험한 상황에 빠질 것입니다.”
“그럼 언제 가능하단 말인가?”
“아국이 송과 진을 모두 상대 가능할 때, 송이나 진이 먼저 황실을 폐할 때에 가능할 것입니다.”
“진은 유씨이니…….”
“상관없습니다. 황실을 넘본다는 것 자체가 명분이 될 터이니 말입니다.”
조비는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물었다.
“작금의 동조와 서조가 모두 사라진다면 어찌 될 것 같은가? 그때는 내가 황제의 자리에 올라도 되겠는가? 아니, 그때는 응당 올라야 하지 않겠는가? 그는 하늘이 나를 택했다는 것인데 말이야.”